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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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 독서는 새로울 것이 없고,

독서와 대구를 이루는 것이 글쓰기 일텐데,

글쓰기라고 하면 문학작품처럼 거창한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예전이라면 일기 쓰기와 편지 쓰기 정도,

요즘으로 치자면 독서 일기나 블로그 관리 따위를 그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정민'의 <오직 독서뿐>을 보면,

책만 읽는 바보로 알려진 이덕무는 독서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하고 있다.

(알라딘서재에도 '만병통치약'이란 멋진 닉을 가진 분이 계시더라, ㅋ~.)

그런데, 독서만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하기(또는 사유하기)와 글쓰기가 적절히 어우러졌을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과 치유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편지글은,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한사람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것으로 읽히는데,

그게 '어느 일부분이냐' 또는 '비교적 긴 시간이냐'가 차이점일 뿐이다.

이런 것들은 그동안 내게 주는 교훈보다 남의 사생활을 엿본다는데서 오는 께름칙함,

사람을 비교의 대상으로 놓고 보는데서 생기는 경쟁의식 따위 때문에,

썩 내키지 않았었다.

더우기 오래전에 쓰여진 편지글이기 때문에,

한분은 초등학교 선생님, 또 한분은 교회의 종치기라고 하셔서,

감동을 주기보다는 고리타분하고 교과서 같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지 모르겠는데,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오덕 님의 면면을 깨닫고 느꼈다.

사람이 배웠다는게 이런 거구나,

배워서 아는 걸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하신 분이 계시구나,

그래서 당신의 그것은 소박할지라도 큰 울림을 주는구나, 하는 것들.

 

권정생 님이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한데다가 가난하고 병까지들어 사람을 싫어했었다는건,

그리하여 그렇게 잔뜩 안으로 움추러든 그를 이오덕 님이 끄집어내주고 어루만져 줬다는 것을,

머리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마음을 여는 과정을 직접 쓴 편지 글을 통하여 보기 전까지는 실감할 수 없었다.

1년여라는 시간의 경과 동안,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더욱이 거짓말 잘하는 어른은 보기도 싫었습니다.(13쪽,197328일)'

라던 그가,

'아직 친구를 가져 보지 제가 이제야 친구가 어떤 것인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ㆍㆍㆍㆍㆍㆍ저 역시 현주 같은 동생(?) 잃어버리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숨김없이, 그러나 예의바른 사람 드물 것입니다.(107쪽, 1975년 4월9일)'

라는 변화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오덕 님은 그런 권정생 님에게 항상 위로와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물론,

권정생 님이 경험이 없어 놓치는 부분까지 간과하지 않고 세심하게 챙겨주는걸 잊지않는다.

선생님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는 분이 있다니 다행한 일입니다. 책이 나오면 상당한 부수가 나갈 것 같습니다만, 대중들의 유행 취미물이 아니어서 크게 팔리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동화란 것을 심심풀이 오락물로 읽는 백만 명의 독자보다 단 백 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들과 진실한 삶을 찾는 젊은이들이 읽어 주는 것이 더욱 기쁘고 보람 있는 것이지요.(58쪽,1974년 4월 30일, 이오덕)

이들의 관계를 보고, 운근성풍(風)고사의 장석과 영인이 생각났다.

1976년 4월에는,

'제가 못 배운 것도, 그리고 가난한 것도, 병든 것도 제 잘못이라면 너무도 억울합니다. 그런데도 역시, 책임은 제게 있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라고 했던 권정생은, 1977년 9월24일에는,

'지금부터라도 저는 인간학을 공부하겠습니다. 한 인간의 선행이나 악행은 모두 그 역사와 사회의 소산물이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한 살인 강도가 있었다면 그건 그 사회 모두의 공동 책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고 발전되고 성숙한 속내를 이오덕에게 내비칠 수 있게 된다.

 

처음엔 이들의 관계가 마냥 부럽기만 했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관계란 상호적인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장석이었으니 영인이었을 수 있는거다.

내 주변에 나의 장석과 영인이 없는 것을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손내밀어 그들의 장석과 영인이 되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배우지 못한 것이 제일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책 한 권을 읽는데도 사전을 펼쳐 놓고 봐야 되니, 글 한편 쓰는 데야 말할 나위 없지요. 그래도 자꾸 틀립니다. 어려운 말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쉬운 말로 쓰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계속 글은 쓰겠습니다. 앉아서 배길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무엇이곤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니까요. 아무와 얘기할 것이 없으니, 자연 책에 눈이 가고, 하고 싶은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지요.(60쪽, 1974년, 5월6일, 권정생)

 

이 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본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책의 '교육성'에 관해서이다.

이건 내가 주변에서 '책같은 책을 읽으라'는 충고를 들을때마다 생각해보는 문제이기도 한데,

책이 약이 되고 치유가 되고 한다지만...매번 그런 목적성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냥 책이 좋아서 읽는 것이다.

책에서 뭔가 배울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그냥 시간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동화도 마찬가지이다.

'동화'의 '교육성'에 방점을 찍게 되면,

동화를 통하여 어떤 교육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만 치중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동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영역이 되어버리는데,

그렇게되면 '다른건 차치하고'라도 창작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한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동화에 대한 '교육성'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으로는 굳이 동화라는 이름을 의식하지 않고 글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왜 이렇게 부끄러워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못 배운 것도, 그리고 가난한 것도, 병든 것도 제 잘못이라면 너무도 억울합니다. 그런데도 역시, 책임은 제게 있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ㆍㆍㆍㆍㆍㆍ(132쪽, 1976년 4월 26일, 권정생)

 

책은 그냥 읽으면 되는 것이지,

책같은 책을 골라 읽으라고 한들 만병통치약이나 치유가 되는 책을 읽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책의 경계가 명확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대신 이렇게 이오덕 님처럼' 삶이 책'이신 분들을 통하여 저절로 깨우치게 되는게 제대로 된 전인교육이 아닐까 싶다.

 

독서가 곰곰이 생각하기(또는 사유하기), 글쓰기와 적절히 어우러졌을때에라야만,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과 치유책이 될 수 있는 걸 명심하고,

방안에 앉아서 책만 읽지 말 것이고, 이오덕 님처럼 삶에서 실천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져야 겠다.

 

다른 사람들은 손편지 쓰기가 어떻고 로맨틱하고 알콘달콩한 것이 어떻고 하는 이 책을 읽고,

엉뚱한 것을 느껴서 좀 그렇긴 하지만,

 

하나는 제대로된 독서란 삶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에겐 왜 장석과 영인 같은 친구가 없나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손내밀어 장석과 영인이 되어주고 볼 일이라는 거다.

 

그동안은 책상 앞에 앉아 책만 읽는 다소 소극적인 타입이었는데,

이제 책상에서 일어나 실행으로 옮겨 보아야 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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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04 19:35   좋아요 0 | URL
사유하기와 글쓰기가 일치되는 삶을 산다는 건 참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이 두 가지 행위가 서로 어긋나면 그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편이에요. 두 가지 행위가 어긋난 상태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곤란하게 되고, 애써 외면하려고 해요. 하지만 잘못된 격차를 받아들이고, 고쳐나간다면 사유하기와 글쓰기가 일치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sslmo 2015-08-06 17:52   좋아요 0 | URL
뜨끔하고 민감한 사안이예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겠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언젠가는 나아지고 발전할 것이고,
그냥 그렇게 외면하면 답보하고 마는 거겠죠, ㅋ~.

AgalmA 2015-08-05 01:45   좋아요 0 | URL
지, 덕, 예는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 글을 통해 또 확인합니다. 항상 실천이 문제겠지만요~_~;
만병통치약님을 기네스님이 치약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저도 치약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더라고요ㅎ 그런데, 기네스님이 그렇게 부르시는 특별함을 아끼고자 저는 그렇게 안 부르려고요^^
양철나무꾼님이 원하는 정도는 못 되겠지만 저는 양철나무꾼님의 장석이자 영인 같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더라도.

sslmo 2015-08-06 17:58   좋아요 0 | URL
그거 모르셨죠?
제가 혼자 님 닉을 `아~, 글마`는 말야 할때의 `아글마`로 부르는 거, ㅋ~.

아니, 근데 장석이랑 영인이랑 한꺼번에 다 하시겠다구요?
욕심도 많으셔라.
제가 나무꾼이니까 하나만 하셔도 될거 같은데,
왠지 이리되면, 제가 휘두르는 도끼에 콧등을 베이실까 부들부들 떨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는,,,
아이, 땀나라~``

페크pek0501 2015-08-06 13:58   좋아요 0 | URL
책은 읽어서 뭐하나, 나아지는 게 없는데, 하고 생각했던, 그리고 지금도 의문을 품고 있는 1인으로서
한 말씀 드립니다.
제 친구가 하는 말. - 자기 친척 중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있대요. 박학다식하대요.
그런데 문제는 타인을 이해할 줄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자기 중식적으로만 생각하고 이기적이라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고 남을 무시한대요.
그렇다면 독서를 해서 무엇하고, 공부를 해서 무엇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거예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책을 많이 읽어서 앎과 다르게 생활 속의 사람은 다른 경우를 보거든요.
그래서 책의 가치는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 라는 점에서 찾게 되더라고요.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독서만이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는 독서는 오히려 오만함만 갖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독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만드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sslmo 2015-08-06 18:03   좋아요 0 | URL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 할것 같아요.
님의 댓글이 오히려 저를 겸허하게 만드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독서는 차치하고라도,
공부라는 것이 말이죠, 책 속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오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