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밥상 - 밥상으로 본 조선왕조사
함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으로 흔히들 부자라고 하루 다섯 끼 먹을 수는 없다는 말을 하지만,

이 말은 비교하는 기준이나 단서가 명확하지 않으니 잘못된 말이 되시겠다.

부의 척도로야 하루 다섯끼 아니라 열끼도 먹을 수 있었을,

조선시대 왕들이 하루에 다섯끼를 먹었던 것은 수라상의 식재료를 살피는 과정을 통하여 나라살림과 백성들의 고뇌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요즘도 농촌이나 공사장 등의 일터에서는 새참을 사이에 두번 더하여 다섯끼를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걸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봐야지 부자여서 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부자라고 하루 다섯 끼 먹을 수는 없다'는 이 말 앞에, 특정 연령대를 기준이나 단서로 달아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와 남이 다를게 없다는 그럴듯한 얘기가 된다, 앗싸~!

'부자라고 하루 다섯 끼 먹을 수는 없다'는 연령대는 70대로 굳이 이름 붙이자면 부의 평준화쯤 될텐데,

이 연령대가 되면 일반적으로 하루 다섯 끼를 소화시킬 여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연령대별 평준화를 나열해보면 이렇다.

40대는 미의 평준화.

소싯적 황금비율의 조각같은 몸매를 자랑했었더라도 지금은 나너 없는 이웃집 아줌 되시겠다.

50대에는 학력의 평준화.

두뇌가 비상하고 SKY대 출신이고 빽이 악어가죽이고 다 소용없다.

스마트 세대앞에선 컴맹, 넷맹에다가 인터넷 용어 미숙으로 소통불가이다.

60대는 정력의 평준화.

카사노바도 굴 대신 비아그라가 필요한 시기이다.

80대에는 병약하든 건강하든 다 그만그만하고,

90대에는 집에 있으나 무덤에 있으나 누워있기는 매한가지란다.

100세시대라지만 반짝반짝 빛나게 사는건 순간이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다.

이 책은 '왕의 밥상'-밥상으로 보는 조선왕조사-여서 표면적으로 '밥상'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저자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고, 피터싱어의 '죽음의 밥상'을 번역한 이력의 소유자라는 걸 감안할때,

'왕의 밥상'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윤리적 의미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이쪽으로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읽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한권의 책 속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다루려 하다보니까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책의 맨뒤 참고문헌의 방대한 양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게 이 책의 장점이자 맹점이 될 수도 있을텐데,

이 책처럼 동서를 종횡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책을 또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고 하더라도,

밥상머리에서 의학까지 언급하니까 자료가 방대해지게 마련이고, 아무래도 자료가 방대하면 표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책의 서술에 어떤 규칙도 없는것도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시대순으로 정렬해 나간게 아니고, 5장으로 나누어,

1장에서 왕의 식사장면을 재연했으며,

2장에서는 역대 왕별로 치세와 음식을 연계해 풀이한다.

3장에서는 밥상을 차리기 위해 있었던 제도와 관청, 요리사들과 음식들을 소개하고,

4ㆍ5장에선 이를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데,

왕위 계승 과정을 시대순으로 나열한 것도 아니고,

계속 반복하며 덧입히는, 동어반복일 뿐이다.

 

본인이 쉬웠고, 쉽게 접근했다고 하여,

그것을 읽는 사람도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쉬운 글은 근거가 명확하여야 한다.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타당하여야 하는데,

한문단에서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에 논리적으로 모순이 생기면 글을 해석하기 힘들어 지고, 그러다보면 어렵지 않은 단어로 쓰여진 문장이라도 어려운 글이 되어버린다.

 

이런 사진(92쪽)의 경우 어찌보면 상당히 친절한듯 착각할 수도 있지만,

 

사진만으로는 보시기와 쟁첩, 접시, 종지, 푼주, 합 크기의 차이를 짐작할 수조차 없다.

차라리 한데 어울려 찍는게 나았을 것 같다.

 

인간 세종이 개인적으로 좋아한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고기인데, 주로 소고기였을 것이다. 돼지고기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으며, 세종 때에는 제사 음식의 형식을 맞추기 위한 돼지를 특별히 중국에서 수입해 쓸 정도였다. 또 세종 12년(1430년)에는 세종의 소갈증을 달래는 藥食으로 흰색 장닭, 노란색 암꿩, 양고기를 올리겠다는 말에 "임금이 되어서 스스로를 그렇게 후하게 봉양할 수는 없다. 특히 양고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으니 공연한 일을 벌이지 마라"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51쪽)

위 문단에서 세종이 고기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전후 사정을 살피면 설득력이 약하다.

태종이 "주상(세종)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몸이 비중하시니 마땅히 때때로 나와 노니셔서 몸을 존절히 하셔야 하겠으며,ㆍㆍㆍㆍㆍㆍ"와 "고기가 아니면 식사를 들지 못하시니"라고 한 것은,

태종이 사냥을 나가고 싶었는데 신하들이 못하게 하니 한소리였지 고기를 좋아한다는 소리는 없었으며,

'고기가 아니면 식사를 들지 못하시니'따위의 말은 아무리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다고 해도 쉽게 할 수 있었던 말은 아닐터, 정권이 안정되지 않았던 시절, '죽은 이를 위하여 생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교훈을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백번 양보하여, 세종이 고기를 좋아하였다고 한다면,

재위 초기에 관을 짤 정도로 그렇게 병이 위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고기의 경우, 소갈증이었기 때문에 소고기를 좋아했을것 같지만,

저 위의 문장에선 타당한 근거가 없다. 

게다가 돼지고기는 당시 조선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다고 했는데,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은게 아니라,

소는 밭을 갈고 개는 집을 지키지만,

돼지는 아무 하는 일 없이 먹기만 한다는 인식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아무래도 식량난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기에,

돼지를 키울 여력이 없었고,

때문에 돼지고기를 잘 안 먹게 되었다고 해야 이해될 수 있겠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사적인 밥상이 되었지만, 적어도 전기에는 굳이 그런 불편한 방식으로 진어했던 까닭은 왕의 식사가 한 개인의 사적인 활동이라기 보다는 공적이고 엄숙한 행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ㆍ왕의 식사는 한 개인에게는 단순한 끼니 때움이지만, 온 백성들에게는 나라와 조정이 계속해서 운영되어감을 의미했다. 온 백성의 정성으로 마련한 먹을거리를 왕이 듬뿍 섭취하고 한껏 힘을 내서 영명한 정사를 베푸는 것, 그것은 해와 달의 운행과 같은 중대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30쪽)

그 사람이 먹는 걸로 미루어 그 사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왕에게 적용될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먹는 것조차 맘대로 못하는 왕이라 비춰질수도 있지만,

밥상을 통하여 나라 살림과 백성들의 고뇌를 파악하는 어진 왕이었을 수도 있고,

편식에 탐식을 밥 먹듯 한 왕은 아니나 다를까 폭군이었다.

신하들의 분쟁을 잠재우고 자신앞에 무릎을 꿇리기 위해,

감선과 철선, 감선을 왕권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영조 같은 왕도 있었다.

다시말해, 영조는 밥상을 통하여 나라 살림과 백성의 고뇌를 읽으려한 왕이라기보다는,

자기마음대로 신하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자기관리를 했던 왕이었다.

 

하지만, 이걸 부정적으로만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사관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예를 들어,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은 자식도 너무 똑똑한 행동을 보이면 표적이 될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ㆍ하지만 그처럼 어릴 때부터 유교적 소양을 주입받지 않은 결과, 새로운 문물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되기도 했다.(162쪽)

하는걸 보면 말이다.

 

어찌되었건 우리나라 왕의 '밥상'은 음식이 되었건 약이 되었건 간에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얘기되어진다.

음양은 바꾸어 말하면 자연이다.

세상 모든 것은 둘로 나누어 구분할 수가 있는데, 여기서 음과 양이 비롯된다는 견해다.

음도 더 잘게 둘로 나누어, 더한 음과 덜한 음으로 얘기하고,

양도 더한 양과 덜한 양으로 얘기하며,

어느 쪽으로도 치우쳤다고 하기 어려운 중간도 얘기한다.

상생, 상극, 상충을 얘기하기도 하며,

그러다가 '결국 어느정도 '적당하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260쪽)''중간'처럼 얘기하는데,

음양오행과 음양화합을 확실하게 이룬다는 뜻을 설명하는데 섣부른 감이 있다.

 

이 책에서는 영조, 고종, 숙종 등을 예로 들며 '적당한 스트레스'를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장수의 비결로 꼽고 있다.

책의 맺음말 '밥상의 도'에선 '밥상의 윤리'에 대해서 얘기하며,

로컬 푸드, 신토불이,공정무역 등으로 개념을 확산시킨다.

그러면서 음식 윤리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식사 방침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개인적으로 MSG가 왕창 들어간 인스턴트 식품이더라도 명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좋다.

참고 절제하고 아무거나 되는대로 먹겠다는 식의,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니맛도 내맛도 아닌 사람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 ㅋ~.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3-04 16:35   좋아요 0 | URL
저는 좋은 글을 ˝~때문에˝와 ˝그러나˝를 잘썼을 때 빛을 발한다고 봅니다. 때문에와 그러나는 논증적 진술이라 자칫 모순과 반격을 부르기 십상이라서 말이죠. 이런 문장을 적재적소에 쓸 정도가 되면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문이 되더군요!
장문이라도 계속 정리식의 문장 또한 좋지 않다고 봅니다.
시적 문장을 좋아하는 제 취향도 문제가 많지만 말이죠^^;;

양철나무꾼 2015-03-04 20:37   좋아요 1 | URL
저는 좋은 글은 잘 모르겠고 읽기 쉬운 글이 좋아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저도 그렇게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하고 문법이나 맞춤법따위와 상관없이 호흡을 고려하여 문장을 끊어쓰게 되더라구요.
암튼 그럴더라구요~^^

역쉬~, 시적 문장을 좋아하셔서 운율과 대구가 예술이었군요~^^

cyrus 2015-03-04 17:47   좋아요 1 | URL
볼 만한 자료가 가득한 역사책이라도 내용 정리가 산만하거나 독자가 저자의 글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역사를 더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양철나무꾼 2015-03-04 20:43   좋아요 1 | URL
그런 방대한 자료를 한데 모아놓은 것만으로도 특기할 일이지만,
기준이 모호한 채로 마구 쓸어담다 보니까 만성체증으로 소화불량에 걸릴것 같았어요, 헤에~^______^

쉽싸리 2015-03-05 09:27   좋아요 0 | URL
아, 찌게!
대관절 왕의 밥상을 알아서 뭐하겠다고. 조선시대 왕들이 반찬 종류와 가짓수에서 백성들을 긍휼히 여겼다는 식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고 봅니다.
괜히 딴지..

양철나무꾼 2015-03-09 09:41   좋아요 1 | URL
전 얼큰한 찌개도 좋고, 맑은 지리도 좋다는~^^
저도 조선시대 왕들의 반찬종류와 가짓수가 백성들을 궁휼히 여긴거란 생각은 안해요.
다만, 왕만의 파업방식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왜 저희들도 맘에 안 들면 단식투쟁으로 동참 하는 것처럼이요.
그러나 저는 먹는걸 좋아해서, 절대 단식 같은건 엄감생심이라는~--;

만병통치약 2015-03-07 20:38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읽고 나서 ˝사슴꼬리 요리˝먹으러 갈 회원을 모집중입니다. ㅋㅋ 생각있으세요?

양철나무꾼 2015-03-09 09:43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님이 사슴꼬리요리 먹으러 가기 협회 회장하시는 건가요?
생각뿐이겠습니까? 황공무지로소이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