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가계 - 소박하고 서늘한 우리 옛글 다시 읽기
이상하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환자분 한분이 소양증 搔癢症 증세를 호소하시길래,

기왕력에 미루어,

머리 염색을 새로 하셨던지,

아님 출처분명의 온갖 약을 장복하셔서 내부장기가 견뎌내지 못하고 겉으로 발현한 것이겠거니 하고

등허리를 들추다가 깜놀하고 말았다.

이유인즉슨, 나의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갔기 때문인데,

일단 피부는 멀쩡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어주시고, 휴우~=3

깔깔이 내복을 뒤집어 입으셨는데,

맨질맨질한 겉이 피부에 닿게 속으로 가고,

속의 보플들이 겉으로 온 아이디어까지는 그럴듯 한데,

내복 전체를 앞뒤로 뒤덮은 머리카락이 어찌보면 고슴도치의 가시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전사들의 갑옷 같기도 해 보였다.

 

"엄마, 옷 속에 머리카락이 한 두개만 붙어도 가려워서 난리인데,

 머리카락이 이렇게 붙어있으니 안 가렵고 배기나?"

넓은 박스테이프를 가져다가 머리카락을 일일이 떼어드리는데, '배시시'웃음이 피어올랐다.

 

언젠가는 그런 일도 있었다.

소화가 안되고 진땀이 나신다는데,

내가 보기엔 푸루둥둥해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숨쉬기가 힘들어보이셨다.

 

복진을 위해 손으로 슬쩍 배를 누르는데 튕겨져 나온다.

들춰보니, 짱짱한 '보정용 속옷' 가장자리로 살들이 비어져 올라온다.

뭐냐고 묻자, 그제서야,

다이어트를 위해 그 전날 새로 장만한 신제품인데,

입긴 입었는데 꼭 껴서 벗질 못하겠더란다.

밤에 잠은 어찌 주무셨냐고 묻자,

입고 잤는데 불편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셨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어째 띄엄띄엄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는것 같기래,

가위로 보정용 속옷을 자르고 벗겨드린 적도 있다.

 

한살 한살 나이 먹는게 좋다.

예전엔 서울 깍쟁이 소리를 듣고 살았다.

손끝으로 떨어내는 것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었다.

 

근데, 요즘은 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할 정도로,

타인에 대해서도, 내 자신에 대해서도 넉넉해졌다.

 

예전엔 가슴 시려 어쩌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그럴라치면, 친구는 브레지어를 두개를 하라고 농을 하곤 하였다.

요즘은 가슴이 넓어졌으니, 친구는 가슴을 모아주는 볼륨업 브레지어를 권하려나 모르겠다, ㅋ~.

 

'소박하고 서늘한 우리 옛글 다시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냉담가계(冷淡家計)', 이 책은 조선시대 우리선인들의 글을 '이상하'라는 분이 읽기 쉽게 재해석해 주셨다.

  사서는 요열(鬧熱)하고 경서는 냉담하네. 역사서는 사람이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와 같아 흥미를 끌기 쉬운데 경서는 그 내용이 냉담하여 맛이 없다는 것이다. 즉 냉담가계는 경서와 같이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을 말한다. (206~207쪽)

위 글은 '장자'나 '근사록'이나 '주자어류'의,

'마음이 바르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텅비고 텅비면 의식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31쪽)'는 구절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이다.

 

예전엔 책을 읽어도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모르는 용어나 추상적인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읽다가 딱 막혀 버려서 애를 먹었었는데,

요즘은 읽다가 막혔던 그 구절에서 갑자기 문리가 트이는 경험을 한다.

그러면 책읽기가 너무 너무 신나고 즐거워진다.

 

이상하, 이분은 우리 옛글 중에서 소박하고 고졸한 멋을 가진 것을 골라낸 것도 그렇지만,

옛글에 대한 해석과 이분의 감상 또한 소박하고 고졸하다.

 

책이란 것도, 가르침이나 깨달음이란 것도 그런 것 같다.

좋은 책이라고 하여 누구에게나 좋은 책일 수 없고,

명강의라고 해도 모두에게 깨우침을 주지는 못한다.

 

책이라면 자기가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고,

강의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야겠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고수란 좋은 책이나 명강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과 강의를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적절하게 운용의 묘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분은,

좋은 글이 가슴에 와 닿기도 하지만, 그것은 대개 일이라는 중압감을 벗어났을 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이거나 아니먄 조금 과장을 보태어 자족하는 경우일 터다. 따라서 나처럼 고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고전은 농부의밭과 같은 것이라 오히려 고전이 나의 감성을 좀처럼 적셔주지 않는다.(6쪽)

겸양을 보이신다.

하지만, 석주 '권필'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를 학자가 아닌 시인으로 본 대목 같은 경우는,

그의 내공의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하나의 기일 뿐인데, 기는 모이고 흩어짐이 있고 오르내림이 있습니다. 대저 바람이란 기의 자취인데 무엇이 이것을 불게 하는가? 理가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손이 손인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는 고요했고 지금은 움직이며 조금 전에는 굽혔고 지금은 폈으니,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기는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늘입니다. 하늘은 무엇인가? 기일 뿐이고 理일 뿐입니다. 하늘에 리와 기가 있어 만물이 생겨나니, 만물의 관점에서 자신을 보면 만물은 제각각 만물일 뿐이지만 하늘의 관점에서 만물을 보면 만물도 하늘입니다. 그러니 바람이 내가 아니며 내가 바람이 아니라고 어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두 사람이 서로 돌아보며 탄식하였다.

"아침에 밖에서 오는데 길에 있는 자들이 모두 남 아님이 없었습니다. 이제 주인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정신이 아득하여 다르게 느껴집니다. 나 자신을 찾아도 스스로 찾을 수 없거늘 누가 남이겠습니까."(49쪽)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편견과 선입견에 젖어,

또는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똑같은 일상 속에서 타성에 젖어,

그렇게 조금씩 본질을 비껴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때, 이 책을 만나게 된게 행운이지 싶다.

 

주자와 소동파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고봉과의 26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포용해주었던 퇴계를 치하한다.

그러면서,

이름난 학자가 되려면 명석한 두뇌,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겠지만,

좋은 학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사랑하는 푸근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분이야말로 푸근한 마음을 가진 분인것 같다.

 

귀하게 아껴 읽겠다고 하고 싶지만,

이 분이 원하는 건 곁에 두고 손때 묻혀가며 읽는 것일게다.

 

( 고칠 곳 )

권질은 퇴계의 고향인 예안으로 귀양간다. 거듭되는 집안의 참화를 겪으면서 허씨부인은 심한 충격을 받아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고 한다. 퇴계가 예안으로 귀양 온 권질을 찾아갔을때,(78쪽)

=>퇴계의 두 번째 부인은 허씨부인이 아니라 권씨이다, ㅋ~.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2-03 16:3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도 이미 소박 담담한 글맛을 내고 계시는데요 :)

양철나무꾼 2015-02-04 16:46   좋아요 0 | URL
소박마담으로 읽었다나, 어쨌다나~(,.)

고맙지만, 과찬이시라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이 안 느껴지는걸요~ㅠ.ㅠ

AgalmA 2015-02-04 16:51   좋아요 0 | URL
소박마담, 냉면가게...여기 왜 이럽니까-ㅋ-;)...제가 틀렸을 수는 있지만, 맘에 없는 소리나 겉치레는 안합니다. 다음부터 너무한 과찬은 자진 반타작 할께요ㅎ

cyrus 2015-02-03 17:32   좋아요 0 | URL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제목이 ‘냉면가게’인 줄 알았어요... 제 개인적 생각이지만 고전은 마음 비우고 읽는 게 낫더라고요. 널리 알려지고 줄거리가 익숙한 고전을 읽게 되면 예전 해석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려요. 이러면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아요. 줄거리 일부를 조금 알고 있다고 제대로 읽지 않고, 읽은 척하는 경우도 있죠. 남의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고전을 읽고 해석하는 올바른 독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5-02-04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고전은 저만의 페이스를 잃지않고,
제 깜냥에 맞게 읽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근데, 이 냉담가계는 워낙 번역과 해석, 거기다가 이상하 님의 성찰도 좋아서 말이죠, ㅋ~.
저 완전 반해버렸다니까요~^^

yamoo 2015-02-03 18:39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 당시 분위기로 기고봉이 대학자 퇴계의 해석을 문제삼는 것도 대단히 이례적이었지만 그걸 받아준 퇴계의 도량이 참으로 컸다고 생각합니다. 퇴계가 아니었다면 조선의 사단칠정 논쟁은 없었을 테니까요~ 확실히 퇴계는 치하받아 마땅하다 생각합니다..ㅎㅎ 기고봉의 문제의식은 그대로 율곡으로 이어지니...그러고보니 퇴계는 살아 생전 자기 이론의 반대자인 이 두 사람을 모두 만났군요~^^

양철나무꾼 2015-02-04 16:54   좋아요 0 | URL
퇴계의 도량을 엿볼 수 있는건 그 누구더라, 남명학파의 계승자라고 알려진 조식의 외손주던가요?
그 사람마저도 퇴계를 흠모했다죠?
암튼 멋진거 같아요, ㅋ~.

마녀고양이 2015-02-03 23:19   좋아요 0 | URL
이제 볼륨 업을 해서 모아주겠다니
자기의~ 아직 미모를 가꾸는 넓고 여유있는 가슴이 부러우이...
난 이제 중년 아저씨 비슷해지고 이뜸~♥

양철나무꾼 2015-02-04 16:56   좋아요 0 | URL
난, 냉담가계 읽다가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음.
퇴계 나이 43세를 두고 노년이라 칭하더라.
우리는 그럼 할머니들인겨,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