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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죽음 - 국내 최초, 죽음을 실험하다!
EBS <데스> 제작팀 지음 / 책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오늘의 화두는 남경태 님의 지병으로 인한 별세 소식이 아닐까 싶다.
나같은 경우는 당신 덕에 국사와 세계사가 재밌는, 그래서 읽어보고 공부해볼만한 학문이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분위기를 바꾸어,
내가 하루종일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파서 죽을 것 같애...빨리 델꾸 갔으면 좋겠어."
뭐, 이런 류의 말이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지체하지 말고,
"엄마~!" 내지는 "어르신~!"하고 크게 호칭을 하여 주위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면 "나 귀 안 먹었어, 조용조용 얘기해.귓청 떨어져 죽것다."
이런 말들이 들려온다.
그럴때 뜸들이지 말고 꼭 이렇게 대꾸해야 한다.
"그렇게 아픈걸로 안 죽는닷~!"
어쩜 이분들은 죽을만큼 아파서 나를 찾는다기 보다는, 당신이 아픈걸로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다시말해,
오랜세월 함께 해오던 실체가 있는 통증이 두려운게 아니라, 실체 따윈 없어서 어떤지 알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 하고 계신 셈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이런 분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자다가... 잠자듯 갔으면 좋겠다'가 희망사항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죽지않고 살 수 있는게,
진시황제처럼 不老, 不死가 인류의 최종 과업처럼 생각되는데,
'삶이 아름다운건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는 카프카의 역설적인 표현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삶을 산다는 건 어떤의미로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의미도 되겠다.
겉표지의 '국내최초, 죽음을 실험하다!'와 '죽음'을 '실험'으로 증명하다'따위의 돌출 문구를 보고,
그리고 이 다큐프라임의 기획 기간이 1년여가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죽음'이라는 실체에 어떤 식으로든 접근할 수 있게 될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죽음의 실체에 접근하게 됐을때,
공중파 방송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에게 죽음의 공포에 노출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움을 겪을텐데 괜찮았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런 것은 나의 기우였다.
그러면 그렇지~,
공중파 방송을 통하여 불특정 다수가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무언가를 느낄 정도로 그렇게 선명하거나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런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어 냈으니
실체에 접근은 고사하고,
실험으로 증명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나는 저 '죽음을 실험하다'와 '죽음을 실험으로 증명하다' 따위의 문구를,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근사체험자)이 존재한다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그런 개인적인 경험에서 객관성을 끄집어낼 수 있는 어떤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 냈다는 얘기인 줄 알았다.
물론 근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죽음 경험에서 뭔가 유사점이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그걸 과학적으로 증명해 낼 방법은 없다 싶어서 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의미는 이 책 자체에서 보다는,
EBS가 교육 방송국이라는 취지에 맞게,
죽음을 탐사하고 교육하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탐사는 탐구로 바꾸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이런 속마음을 들여다본듯, 이 책의 에필로그는 위처럼 끝을 맺는다.
이게 방송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을때는 한줄짜리 격언과 사진, 그림들이,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을 하느라 필요했을 것 같은데,
책에서 만나게 되니, 여백이라기 보다는 군더더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동안 양자역학, 물리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쪽으로 내공이 깊은 게 흥미로웠다.
소설 속에서는 냉각요법이나 수면 요법 등을 통하여,
그 상태로 몇 백년동안 유지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되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양자역학, 양자 물리학이 인간의 '의식'과 관련하여 언급되어지는건 처음이라 흥미로웠다.
'죽음을 교육해야 한다' 말고도,
'죽음을 피할 수 있다' 가 깊이있게 논의되어줘야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텐데,
'~카더라'수준으로 일축하고 말아 아쉬웠다.
이 책의 내용은 피상적이지만,
'참고문헌'목록만으로도 값어치는 충분하다.
만족한다.
언젠가 주말의 명화에서 봤었던것 같은데,
유명 여배우가 평생 젊음을 유지하다가 죽은 후에 보니,
얼굴은 성형수술의 힘으로 젊을 때 고대로인데,
손의 주름살은 어쩔 수 없어 장갑을 껴서 감췄더라는 내용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잠자는 동안 모든 생체의 흐름이 멈춰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비껴 갈 수 있고,
중력을 거슬러 주름살 하나 없는 팽팽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죽음을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죽지 않고(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그렇다면 살아있어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나 축복,
이렇게 온몸으로 맴새맡고, 만지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공감각적인 '감각'들은 무뎌지지 않을까?
인생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백세까지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세상 모든것을 감각하고 누리고 호흡하고,
그리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내 멋에 겨워 살고싶다.
물론 그전에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편을 초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단서는 붙겠지만,
내가 날 잘 아는데,
그동안의 내 삶에 미루어 크게 비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