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샤오루 궈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제목만 보고 김소연의 '마음사전' 류의 책일거라고 생각했었던 나는 좀 아쉬웠지만,

설정과 내용은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오너가 누구든지 책은 믿을 수 있는 출판사의 그것이고, 번역도 내공 있는 변용란 되시겠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이런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은것도 아니고,

연애의 고수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니,

이런 로맨스소설을 놓고 개연성을 얘기한다는것 자체가 아주 웃기는 일이니 그저 재밌게 읽으면 된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다짐은 그저 다짐일뿐,

내가  로맨스소설을 즐기기엔 너무 올드하거나,

감정이 메말랐거나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딴지를 걸고 혼자 귀신 씨나락 까먹듯 툴툴거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재미있었다.

이런 작품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번역자의 내공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화가 처음에는 높임말로 번역되다가 나중에는 예삿말로 번역된다.

영어에는 높임말이 없다는 얘길 들었다.

1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들의 관계가 친밀해졌음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지만,

차리리 이런 존칭의 구분보다는,

처음엔 격식을 차린 언어, 나중에는 그런 것의 생략 정도가...오히려 그럴듯 하지 않았을까 싶다.

 

로맨스를 로맨스로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만,

스물네 살 먹도록 부모님 밑에서 살다가 영국으로 혼자 어학연수를 간 중국 여자가,

만난지 일주일 만에 스무살이나 많은 남자랑 같이 사는 게,

게다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녀의 필요에 의해서 얹혀 사는 것이면서,

전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낯선 이국땅에서 늘 혼자이고 혼잣말을 하는게 싫어,

뭔가 따뜻한 것을 붙잡고 싶어서,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찾고 싶다'고 한다.

 

이 얘기는 소통을 하고 싶다는 것일테고,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상호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인 것에 전제조건이,

그 남자를 나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의미에서 봤을때, 언어가 달라서도 쉽지않은 그것이, 스무 살이나 연상이 되어버리면 더 요원한 일이 아닐까?

 

그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소통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매개체로 몸짓 언어, 섹스가 언급되는데,

글쎄, 처음엔 어떨지 몰라도,

나이에 따라 신체적 조건과 건강상태, 피로 회복도 등이 다를 수밖에 없을텐데,

사랑과 신뢰에서 비롯되는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위가 아니라면,

차이나 다름은 소통의 매개체가 아니라 단절과 불신의 골을 깊어지게 하진 않을까?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은 개방적인데 반해, 사고방식은 폐쇄적이고 유아적이다.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니, 로맨스소설이 전혀 로맨틱하지 않게 읽힐 밖에~--;

하지만, 뜨문 뜨문 독백처럼 이어지는 몸에 대한 성찰은 충분히 깊이있고 로맨틱하며 아름답다.

강한 냄새와 강한 영혼. 나는 심지어 그것을 느끼고 만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당신 몸은 어쩌면 역시 아름답다 생각한다. 당신 영혼의 집이니.(79쪽)

 

섹스는 원래 이런것인가? 관통함은 당신이 나의 영혼에 들어오는 방식이다.(151쪽)

 

그녀의 일기장에 더 많은 단어들이 적히고 언어 실력이 늘면서 그와의 다툼은 늘어만 가는게 몹시 안타까웠다.

그녀의 단어들이 늘어가면서, 그녀의 사고방식 또한 넓고 깊어져 간다.

다른 단어는 그녀의 견해로 받아들이겠는데, 비관주의와 낙천주의에 대한 부분은 집고 넘어 가야겠다.

꽃잎은 비관주의자다. 꽃잎은 시들어 버릴 것이다.

노인의 몸은 비관주의자다. 몸은 썪고 무너져 내린다.

불교신자는 현실에서는 비관주의자이지만, 마지막에 죽음을 대할 때는 죽음의 평화를 환영할 수 있도록 삶 전체를 준비했으므로 낙천주의자다.ㆍㆍㆍㆍㆍㆍ사랑은 참으로 비관적일 수 있고, 사랑은 참 파괴적일 수 있다. 사랑은 한 여자가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이끌 수 있으며, 그 잃어버린 세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마도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떠나는 것 뿐일 것이다.(316~317쪽)

 

"하지만 당신도 미래에 나와 함께 있기를 바라지 않아?"

당신은 3초간 침묵한다. 이 질문에 3초면 매우 긴 시간이다. 그러고 나서 당신이 대답한다. "당신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당신을 위해 결정을 내리는 거야. 당신은 불교 국가 출신이라 당신도 그 정도는 알 거라 생각했어."

"오케이. 지금부터 우리 미래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말자.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야. 우리 중국인들은 기대감으로 살아. 기대감, 그게 미래와 가까운 말인가?

ㆍㆍㆍㆍㆍㆍ

이모든 과정을 겪는 건 그래야만 한 가족이 겨울과 다가오는 봄 축제 때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야. 겨울에는 다음해 재경작을 위해, 땅에 영양분을 주려고 들판에서 뿌리와 풀을 태워. 모든 게 다음 단계를 위한 일이지. 그러니까 이 자연을 봐. 인생은 지금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늘이나 오늘 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감에 관한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오늘만을 살 순 없는 거야. 그런 날은 최후의 날이 될 테니까."(347~348쪽)

내세나 천국 따위를 믿는 사람은 현재가 불행한 사람이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이순간 행복에 겨운 사람이 내세나 천국 따위를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은 힘들고 꿀꿀하지만, 언젠가 더 나아질거라는 믿음과 기대감 따위가 내세를 얘기하도록 하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중반을 넘어 황혼을 바라보는 남자와 앞길이 구만리 같은 여자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고,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다.

다시 한번 나이가 걸림돌이나 하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몸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요.

나는 당장 당신에게 답장을 쓴다. 나는 나 홀로 떠난 여정이 너무도 외롭다고 말한다. 나는 요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답장을 쓴다.

 

서양에서 우리는 외로움에 익숙해요. 나는 당신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당신 혼자 있는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탐험해 보는 것이 당신을 위해 좋다고 생각해요. 얼마 지나면, 당신은 고독을 즐기기 시작할 거예요. 당신도 더 이상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예요.(246쪽)

이 책을 읽고,

관계는 누구나 맺을 수 있지만, 사랑은 어른만이 할 수 있다는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보여지는 표면적인 관계맺기에만 익숙한 난,

다시말해 관계가 채 무르익고 않아 성숙하다고 느낄 수 없는 난,

성숙하지 않았으니 어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어른이 아니니 제대로된 사랑을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말이다~--;

 

언어는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있지만,

사랑과 삶은 내가 주체가 되어 하는 것이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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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12 20:21   좋아요 0 | URL
20 살 차이보다 어쩌면 사랑에 대해 성숙하지 못한 , 건강하지 못한 바램 때문이라는 생각이 저도 드네요..양철나무꾼님..~~^^

사랑은 배워질 수 있는거라고 하지만 그건 가르쳐서 얻어지는 건 아닌거같아요...~~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ㅠ

sslmo 2014-02-20 10:22   좋아요 0 | URL
새벽숲길님, 댓글이 늦었네요.
어디 한국에 계신가요?
어쩜 성숙이란건 나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경험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하고...님을 보면서 해봤습니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바람 끝이 매서워요.
건강 조심하시구요~^^

숲노래 2014-02-13 00:08   좋아요 0 | URL
맑은 마음일 때에는 어른이 될 테고,
어른은 밥그릇 아닌
맑은 넋을 고이 건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얻는 이름이리라 느껴요.
그러니, 사랑은 어른만 할 수 있겠지요.

sslmo 2014-02-20 10:25   좋아요 0 | URL
요즘 마실도 못 다니고 댓글도 한없이 늦었네요.
산들보라랑 사금벼리랑 다 잘지내나요?

그런 의미에서,
산들보라랑 사금벼리에게서 맑음을 무한 수혈 받으시는 님은 만년 어른이실 수 있겠다는~^^
부럽~~~~~^^

감은빛 2014-02-13 13:49   좋아요 0 | URL
노래 잘 들었습니다. ^^

sslmo 2014-02-20 10:26   좋아요 0 | URL
It's my pleas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