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생기부 작성을 학생에게 시켜서 적발이 된 교사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만감이 교차하였다.

선생님들에게 가르치는 것 외에 잡무가 많기 때문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만으로 돌려버리기엔 뭔가 부족한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생기부 내용이 수능에 반영이 되기 때문이다.

매 학년 초가 되면 이름은 다르지만 가정환경 조사서 같은걸 집에서 작성해서 가져가야 한다.

뭐 그리 기록해야 할 빈칸이 많은지,

집중을 하여 작성을 하고 나면 거사를 치룬 것마냥 온몸에 힘이 빠진다.

그중 나를 가장 애먹이는건, 아이 성격의 장점과 단점을 기록하는 칸이다.

 

사람이나 사물의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는것은, 이러이러한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일종의 체념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자라나는 새싹인 것도 있지만, 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이러한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가 되려면 아주 쿨하고 객관적이 되어야 하는데,

난 아무래도 팔불출인지 아이가 그저 좋다, 사랑스럽다.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따위는 구분해 낼 수도 없을 뿐더러,

다른이들에게 단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내겐 그저 좋고 사랑스러운 장점으로 보이는 걸 어쩌겠는가 말이다.

 

사람이고 사물이고 간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고,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 때 하는 평가라야 의미가 있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생기부 작성을 선생님이 하지 못하고 학생한데 맡기는 것에 관한 적법성을 따지기 이전에,

생기부가 수능에 반영되는것이 타당하고 객관적인지,

제대로된 기준을 가지고 적용되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고,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모조차도 기재하기 어려운 그런 아이성격의 장ㆍ단점을,

물론 생기부야 그것과는 좀 다른 얘기겠지만,

선생님의 입장에선 이래저래 곤란할 수도 있겠다.

 

물론 선생님의 관점은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라던 장금이의 그것처럼,

아이가 그저 좋고 사랑스러운 엄마의 관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참에 느끼고 깨닫게 되는 분명한 것은,

진정한 사랑은 '그렇기 때문에'라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따위의 조건을 달지 않은 '그냥'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나 의료인이라면 차마 쓸 수 없는,

하지만 의학계에 웬만한 애정을 갖지 않고는 쓰기 힘든 책 한 권을 보았다.

'위험한 서양의학 모호한 동양의학'이라는 제목 아래,

'서양의학, 동양의학, 민간요법, 대체의학 사이에서 흔들리는 환자들이 모르면 위험한 동양의학의 허와 실, 그리고 통합 이야기!'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을 띠지로 두르고 있는 책인데,

방대한 자료를 종합하고 있는 정보의 보물창고라는 것이,

그리하여 이 책을 읽을 독자 층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서양의학, 동양의학, 민간요법, 대체의학'중 어느 하나에 종사하는 의사나 의료인의 입장이라면 이 정도의 객관성도 유지하기 힘들었을테고 당연히 한쪽으로 치유친 글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 김영수는 '서양의학, 동양의학, 민간요법, 대체의학'중 어느 하나에 종사하는 의사나 의료인은 아니지만,

경제학 박사이며 금융전문가인 동시에, 국제적인 당뇨병 치료약 생산회사를 만든 사람이었다.

 

당연 사업수완이나 경제적 측면으로는 촉이 엄청 발달하였을테고,

거기다가 의학적 지식 내지는 의료상식에 대해서 갖는 내공은,

겸손하게 의학관련 고서적을 모으는게 취미라고 하였지만, 凡人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독자층이라는 타겟을 제대로 정하지 않은게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어찌보면 그의 제약회사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효과일지도 모른다 싶어졌고,

그럴 경우라면 구태여 독자층이라는 타겟 따위는 의미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암튼, '서양의학, 동양의학, 민간요법, 대체의학'을 '제도권 현대 서양의학','제도권 동양(한)의학','비제도권 민간의학'해가며 어느 하나 신뢰할 수 없도록 낱낱이 파헤치던 그는,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안수기도로 큰병을 고친적이 있다고 고백하는데,

그게 나같은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것은 신비스러움이라는 탈을 쓴,

'성령의 힘으로~'내지는 '믿습니다'수준의 기독교 환자라고 여겨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서양의학, 동양의학, 민간의학, 대체의학에 대한 책을 두루 섭렵한 그가 덧붙이는 코멘트를 통해서,

수많은 의학 관련 서적 중에서 쓸데없는 책을 걸러내고 읽어야 할 책만을 엄선해준다는 것이고,

이슈가 되는 사안과 연관시켜 개념정리를 쉽게 해놓아,

경제적 측면에서 내가 노력해야할 시간을 한참 줄여준 것을 들 수 있겠다.

 

내가 그의 이런 입장을 놓고,

기독교 환자의 그것 내지는 모든 것을 사업과 연관시킨 노이즈 마케팅이 아닌가 의심들게 한 저변에는,

제도권, 비제도권 해가며 과학적 근거를 중요시하던 그도,

 'ㆍㆍㆍㆍㆍㆍ성경이 침묵하는 문제는 그 침묵을 존중해 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하는가 하면,

'솔직히 민간의료나 대체의학 쪽에서는 기독교 교리로 해당 의료분야를 정복하는 것이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59쪽)'고 하면서

'ㆍㆍㆍㆍㆍㆍ안수와 기도, 금식과 강도 높은 종교활동이 효과가 있는 몇몇 질병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참으로 좋은 시도' 라고 하고 있는데,

'안수와 기도, 금식과 강도 높은 종교활동' 따위가 과학적으로 어떤 근거가 있는지 알 수 없겠기 때문이다.

 

위양성(병이 없는데도 있다고 판정하는 것. 그래서 필요치 않은 의험한 치료를 하게됨)과 위음성(병이 있는데도 없다고 판정하는 것. 그래서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게 됨) 검사의 설명은 충분히 필요한 것이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방을 절제했다는 언급은,

그녀가 유명인이라는 걸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보기에 충분히 선동적인 내용이다.

 

더우기 충격적이었던건,

새로 개발되는 의료 용품이 효과적이고 안전할수록 환자를 빼앗길까봐 박해하고 따돌리며(100쪽),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적당히 좋아야 받아들인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기존 제도권, 제도권 제약회사두고 치사하고 더러운 암투라는 표현을 해가며 경제적 이윤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고 있는데,

그렇게 놓고 본다면 당뇨병 치료약 생산회사를 만든 그도 거기서 크게 비껴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암튼, 난 '안수와 기도, 금식과 강도 높은 종교활동'이 과학적 근거가 없고,

그리하여 제도권 현대의학과 상반된 개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현대의학의 문제점으로 사이비 종교성을 들고 있고, 아무리 좋은 학문ㆍ지식체계라도 사이비 종교성을 띠게되면 남용과 부조리가 발생한다(109쪽)고 하고 있다.

  

 

 

 

 

 

 

 

 

 

 

 

 

 

이쯤에서, 얼마전에 들었던 벙커강의 강신주의 '다상담'마지막편이 생각났다.

당근 책도 구입해주었다.

강신주의 다상담 강의가 마지막인데, 그렇게 쫑을 하게 된 원인을 두고 강신주는 우리들이 그를 사이비교주로 만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종교나 신은 우리가 넘어졌을때 일으켜세워주고, 자신들의 어깨도 내어주면서 기대라고 한다고 한다.

반면, 철학과 인문학은 우리가 넘어졌을때 결코 일으켜세워주지 않는단다.

홀로 일어섰을때 훌훌 털고 재정비하여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단다.

그런데 우리가 철퍼덕 넘어져서는 손내밀고 일으켜세워주길 바라고,

자꾸만 그에게 기대고 의지하려고 하니까 그는 떠난다고 하였다.

그걸 책의 에필로그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ㆍㆍㆍㆍㆍㆍ저는 철학자의 역할을 생각했습니다. 철학자란 끝내 당당해야 한다는, 산처럼 일체 감정의 동요 없이 여러분 곁에 있어야 하는 의무를 다시 생각했습니다.ㆍㆍㆍㆍㆍㆍ제가 <다상담>을 마무리하는 이유는 바로 여러분 때문이라고 나무랐습니다. 여러분들이 제게 너무 기대거나 혹은 저를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사실 그건 일정 정도 정확한 진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제가 아무리 여러분의 감정을 건드리려고 해도, 여러분들은 이제 그냥 그걸 제 스타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ㆍㆍㆍㆍㆍㆍ저에게 저항하는 모습을 저는 보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제가 망가져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욕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다시 스스로 당당한 삶의 주인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말입니다.ㆍㆍㆍㆍㆍㆍ그런데 불행히도 어느 순간 <다상담>이 일종의 관광 명소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랑을 먹고사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들어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512~513쪽)

 

앞의 '현대의학의 문제점이라고 한 사이비 종교성' 내용으로 돌아가서,

'거대제약회사'나 '위약효과'등을 언급하고 있는데, 왜 강신주가 생각났느냐 하면...

종교나 신은 손내밀어 일으켜주고 기댈 수 있는 어깨는 빌려주는 대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의지가 되도록 한다.

서양의학, 동양의학, 민간요법, 대체의학 등, 의학이라는 허울을 쓴 것도 마찬가지이다.

쾌유나 완치가 목적이 아닌 듯 보일때도 있다.

어떤 종류의 의학이든지 간에 환자가 있어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고,

안타깝게도 의료사업이라는 것 또한, 의료이기 이전에 경영 이윤을 발생시켜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어깨를 빌려주는 것은, 일단 내가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경영이윤이라는 건, 어쩔 수 없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똑같이 경영이윤을 내야 하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누가 더 도덕적이고,

누가 더 소박하며 욕심이 작고는, 중요하지 않다.

누워서 뱉은 침은 제 얼굴로 떨어진다.

 

암튼 의학을 비롯한 의료사업이 됐든, 종교가 됐든 심신이 안 아프고 괴롭지 않으면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갖고 갑론을박하기보다는,

여러종류의 의학나 종교, 신 따위는'아웃 오브 안중'일 수 있도록,

옆에서 자존감을 불어넣어주고,

그리하여 스스로 자아를 찾아 갈 수 있도록 부추기는 것이 어쩜 제대로 된 도움일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지금 이 순간 마음이 시키는대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살고 볼 일이다.

 

위의 것은 강신주의 '다상담 3권'의 사인, 아래는 '감정수업'의 사인.

사인본을 갖게 되어 영광이지만,

사인본의 글씨를 가만 들여다보면서 든 생각은 글씨는 참 못쓴다는 것이다.

글씨마저 잘 썼으면 어쩔뻔 했어, 완전 폭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을텐데...

천만다행이다.

'때문에'와 '불구하고'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최면'이다라는 말이 다시 한번 적용되는 순간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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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3-12-30 11:32   좋아요 0 | URL
으으으 오늘도 역시나.. 님 서재에 왔다가 빈 손으로 그냥 가기는 너무 어렵단 말입니다. 흑흑
그나마 다행은 강신주의 다상담 1권을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보았다는 사실!! 흐흣

양철나무꾼님 해피 뉴 이어^^~~~

양철나무꾼 2014-01-08 16:13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헤피 해피 뉴이어~~~^^
다상담 3권은 읽을만 해요.
아쉬운대로 팟캐스트로 들어도 좋고요.
잘 지내시죠?^__________^

숲노래 2013-12-30 17:57   좋아요 0 | URL
내가 공부할 몫을 누군가 줄여 주는 일이
그렇게까지 고마울 일이 없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도움이 될 일은 없지만,
어차피 우리 삶을 스스로 제대로 느끼자면
스스로 하나하나 겪어야 해요.

냄비를 태워 본 적이 없다면
탄맛이 무언지 제대로 알 길이 없을 테고,
김치를 손수 담근 적이 없다면
고춧가루가 눈에 들어갈 적에 얼마나 쓰린지 알 길이 없어요.

설거지조차 도와주지 않으면서
남녀평등 이론만 신나게 외친다 한들,
설거지가 무엇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숱한 집안일과 밥하기를 하나도
참답게 깨닫지 못하겠지요.

몸소 겪는 일은 그리 나쁘지 않아요.
이것저것 걸러서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양철나무꾼 2014-01-08 16:18   좋아요 0 | URL
전 결혼할때까지 청소, 설거지는 고사하고 속옷조차 안 빨아봤어요.
할머니랑 고모들 밑에서 자랐는데,
늘상 하시는 말씀이 제가 부잣집 맏며느리 상이어서,
시집가서 사람두고 살면 손하나 까딱 안해도 된다, 가 그 이유였습니다.

전 제가 좋아서 부잣집은 아니고 맏며느리가 됐을 뿐이고,
남편은 같은 반찬이 두번 상에 올라도 안 먹는 귀한 입이더라는~--;

암튼 그래도 둘이 죽고못살아 결혼해서 지지고볶고 살다보니,
그런대로 살게 되더군요, ㅋ~.



북극곰 2013-12-31 10:17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이미 많이 지어놓으셨으니. ^^
새해 인사 꼭 하고 싶어서, 짧은 댓글만 남깁니다.

양철나무꾼 2014-01-08 16:20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은 반달곰은 아니시니, 동면 모드는 아니실거고~.
아무래도 경황없고 바쁘기만 했던 1학년 학부모로서의 한해가 이렇게 지나가셨네요?
어때세요?
저는 돌이켜보니 왕 대견하고 대왕 뿌듯했었는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