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감정이 복받치면 잠이 오지않는다는데, 지금 내가 그짝이다.
내년 수험생인 아들과 홈시어터 업그레이드에 목숨건 남편을 둔 덕에 영화관 문턱을 밟아본지가 좀 된 것 같다.
'혼자라도 가서보면 되지~'라고 하겠지만,
난 어쩜 그 정도로 영화를 즐기는 부류는 아니었는지, 파파로티가 마지막이었나 보다.
웬일로 억만 년만에 남편이 영화를 한편 예매해 놓았다고 보러 가자고 하여,
아무 생각없이 쭐레쭐레 따라 나섰다가는, 복받친 감정이 가라앉지 않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무색하고 민망할 정도로, 나는 요즘 너무 아무 생각없이 살았었다.
변호인
2013년/
양우석/
송강호|시완|곽도원|김영애|오달수|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음은 물론이고,
전에 '응답하라 1997'인가 하는 드라마에서 부산 사투리가 나오는데,
우리나라 말을 하고 있는데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먹었을 만큼, 지방색에 둔하다.
다시 말해, 좀 옛날 일이다 싶은 역사적 사건을 잘 모른다.
창피한 얘기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송강호가 노무현의 롤모델인지조차 몰랐었다.
모르고 봐도 부산 학림 사태는 분개할 일이었고,
그리고 송강호는 충분히 훌륭하여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영화 속의 송강호가 그랬듯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데모로 바뀔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다.
달걀로 바위치기.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것이요, 달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니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지만 달걀은 깨어나 그 바위를 넘는다."
돼지국밥 집 아주머니의 아들은 이념이 뭐냐는 물음에 '실존주의'라고 할 정도로 순수하지만,
적어도 옳다고 느끼면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영화 속의 송강호도 그랬다.
그리하여 부동산 전문 변호사, 세무 전문 변호사 였던 그는, 인권 전문 변호사로 거듭난다.
난 여기서, 맨날 뉴스에 회자되는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처럼 정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렇게 치밀어 오르는 가슴을 잠재우기가 힘이 든데,
노사모다, 문함대나 문향이다 해가며 쫒아다닌 우리 남편은 어떨까 싶다.
우리 남편이 부산 출신이 아닌것에, 부산 학림 사건을 경험 하지 않을 정도로 올드하지 않은 것에 감사할 밖에~(,.)
영화를 보면서,
무엇보다 날 불편하게 한것은,
군의관이 돼지국밥집 아들에게 수액을 달아주는 장면이었다.
수액의 바늘이 심장쪽을 향하는게 아니라, 손쪽을 향하게 잘못 꽂혀 있었다.
내 눈에만 크게 확대되어 다가왔었던 것인지, ㅋ~.
영화를 보는 내내 '돼지국밥'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부산에서는 순대국밥을 '돼지국밥'이라고 부른다고 가르쳐준 친구가 있었다.
생각은 엉뚱한 곳으로 널을 뛰어, 돼지국밥의 국물은 돼지고기로 할까, 소고기로 할까?
근데, 정말 궁금한건 이거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던 그 말이 설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말자...던 그를 포기하도록 만든 그것이 도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