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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ㅣ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평점 :
조선의 3대 구라의 뒤를 잇는 한국의 3대구라에 유홍준이 들어간다는 얘길, 어제 오늘 들은 게아니다.
그의 책을 제법 찾아 읽었지 싶은데, 책을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은 글은 말과는 또 다른 것인가 보다.
이분이 하시는 말씀은 꽤 재밌어서 찾아 들을 정도인데,
글은 좀 지루하다 싶을 정도의 동어 반복에다, 만연체의 느낌까지 들어서 인내심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난, 일본문화답사기에서 두 손을 들어버렸다.
일본에 대한 어떤 사전 지식이 없는데다가 늘어지니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걸 '아~부~지, 도~올~굴~러~가~셔~유~'꼴로 은근 슬쩍 구렁이 담을 넘듯 만연체로 풀어내니까,
짜증 또한 슬금슬금 밀려왔다.
결정적으로, '명작순례'라는 이 책은 전에 나온'국보순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예로 국보순례에서 이미 언급되었던게 26점이나 된단다.
제목은 <명작순례>라고 하여 '옛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머릿말 격인 '책을 펴내며'를 통하여선,
이 책을 통하여 전하려고 한 것이 당신의 작품을 보는 안목이 아니라,
당신의 작품 감상은 되도록 절제하면서,
당신이 사사받았던 고유섭, 최순우, 김원용, 이동주, 안휘준 선생님들의 명작 해설을 길라잡이 삼았다고 하고 있다.
대신...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와 사회적ㆍ예술적 배경, 화가의 예술적 노력과 특징이 그림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옛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을 갖도록 하려고 애썼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의 주특기인 지루한 만연체의 연장선 상이다~--;
감히 말하자면 이를 미술사가의 사회적 실천에 해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ㆍㆍㆍㆍㆍㆍ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 마주친 나무꾼이 "먼저 깨친 사람이 나중 사람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주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꾸지람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ㆍㆍㆍㆍㆍㆍ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미술사가로서 내가 배운 지식을 대중과 나누어 갖는 것은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순례기'와 '답사기'를 써오고 있는 것은 스스로 세상에 진 빚이라고 생각한 것을 하나씩 갚아가는 과정이다.(6쪽)
아무래도 유홍준의 책을 읽다보면, 손철주가 생각나게 마련이다.
문장이 아주 화려하고 빼어나지만 넘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얼마전 방현주가 진행하는 '라디오 북클럽'에 손철주가 나왔었다.
옆에 있는 이가 내로라 하는 말빨을 자랑하는 아나운서여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방현주에게 주눅들어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난 이 책이 좀 아쉬운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깜냥이 부족해서 그런거겠지만,
명작이 너무 한꺼번에 쏟아지니까 '희소성의 원칙'에 반하여 어느 작품이 좋은지 잘 모르겠고,
게다가 그가 말하는 명작이라는 것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분류하고 묶어 소개됐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난초 그림이면,
탄은 이정의 난과 능호관 이인상의 난과 표암 강세황의 난과 수월헌 임희지의 난과 소호 김응환의 난과 운미 민영익의 난과 추사 김정희의 난과 흥선대원군의 난을 차례로 나란히 열거하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는데,
'우봉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이상을 가장 훌륭히 구현한 19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다.' 라는 부분이다.
그 바로 밑에
추사 김정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난초를 치는 법은 역시 예서를 쓰는 법과 가까워서 반드시 문자향과 서권기가 있은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ㆍㆍㆍㆍㆍㆍ 조희룡 輩(무리)가 나에게서 난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 그리는 법식 한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문자기(氣)가 없는 까닭이다."(142쪽)
라고 하며, 우봉 조희룡의 예술을 낮추어 보았으며,
반면 이 책에는 안 나오지만, 조희룡은 추사의 부작란(不作蘭)만 하더라도(-세한도 같은 그림) 과장되었다고 조롱하였다.
세살 차이니까 얼마든지 경쟁관계에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라면 쉽지않은 상황 설정이다.
조희룡이 추사와 똑같은 글씨를 썼다는 것만으로 김정희의 예술적 이상을 훌륭히 구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둘 중 어느 누구도 스승과 제자라 칭하지 않았을 뿐더러, 상대방의 예술을 엄청 낮추어 보았다.
시서화일치라는 청나라 화법을 도입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오히려 그럴듯 하다.
암튼,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이 둘이 지향하는 바가 한참 달라보이는데 말이다.
"내가 난초를 그리는 것은 이것으로 즐거움을 삼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라고 했다.(145쪽)
암튼 사람마다 개성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을테지만,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조희룡 輩(무리)가 나에게서 난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 그리는 법식 한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문자기(氣)가 없는 까닭이다
라고 하는 사람과
'나에겐 그림 그리는 법이 따로 없다'
라고 하는 사람을 대비시켜 놓고,
'우봉 조희룡은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이상을 가장 훌륭히 구현한 19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다.'
라고 하는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 느껴진다.
'조희룡'의 '매화'(10곡 연결 병풍) 부분
'조희룡'의 '홍매도(대련)'
(암튼, 난 조희룡의 이 매화 그림만으로도 넋이 나가...책을 마냥 쓸고 닦고 어루만지고 하였지만 말이다, ㅋ~.)
차라리, 당신은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그림을 보고,
그리고 이런 것을 명작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라고 하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랬을 경우, 여기서 비껴간다고 하더라도 유홍준 개인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비껴가는 것이지,
일반적이거나 절대적인 진리에서 비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책의 맨앞에 내로라 하는 사람들을 나열해 놓으니까,
여기서 비껴가게 되면 어쩔 수 없는 소외감으로 고독이 몸무림칠 것 같다.
암튼 내가 주구장창 주장하는 건 다름을 인정하는 삶이다.
유홍준 같은 사람이 있으면, 손철주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글이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말이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한겨울을 이겨내는 인간의 의지를 높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봉 조희룡처럼 그림을 그리는 창작 행위 자체를 통하여 세상을 위해 애쓰는 사람을 위로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다들 방법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뿐이지, 생각이나 행동 자체를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하는 안목을 갖고 싶어하고,
그런 안목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명작을 통하여 예술가가 얘기하려고 했던 것을 읽어내고,
그대로 따르진 못하더라도 따를려고 노력하는게 아닐까 싶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흔히 습관이나 버릇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리고 누군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를 변하시키거나 그에 맞추어 내가 변화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명작이 위대한 이유는 사람을 어떤 방향으로든지 변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도 마찬가지로 적용시킬 수 있고 말이다.
12월이 벌써 1/3이나 지나갔다.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아무 해놓은 일도 없이 나이를 먹는 것 같고 멜랑꼬리해지려고 한다.
이럴때일수록 감성을 말랑하게 해놓을 필요가 있다.
말랑해진 감성은 스프링처럼 밑바닥을 치고 튀어 올라, 이내 명랑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