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그러니까 소싯적에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나서는, 도대체 이 책이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됐는지를 모르겠었었다.

뭐랄까~,

약간 우울하고 애조띤 것같은 분위기,

하지만 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무게를 두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 가 참 낯설었다.

 

소싯적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책들도,

나이가 들면서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웬만한 책이나 작가들을 향하여서는 고개 끄덕여가며 수긍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나이를 먹도록 수긍을 할 수 없는 사람 중에 '고은'시인이 속해 있었다.

고은 시인을 두고는,

왜 그의 시가 좋은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지에 대해서,

수긍할 수도, 내 자신을 납득시킬 수도 없었다.

급기야, 문학외적인 무언가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을 합리화하려 들었었지만,

한편으론 작가는 작품 속에서, 작품을 통하여 얘기해야 되는 존재라는 이중적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인 중에 고은 시인과 가까운 분이 한번씩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실때도,

훌륭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건 작품이랑은 별개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이란 것은 삶의 반영이지, 삶과 별개의 어떤 것은 아니지 싶다.

 

내가 생각이 이렇게 너그러워진건,

지난 수요일날 들은 '시선집중'의 '미니인터뷰' 코너가 결정적이었던듯 하다.

때마침, 고은 시인이 나왔는데,

나이 여든에 55년동안의 작품 생활을 해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벼린 칼날 같은, 말 매무새 또한 깊은 감동을 주었다.

607편의 대작으로 구성된 '무제시편'이라는 시집을 향하여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무제 시편
 고은 지음 / 창비 /

 2013년 11월

 

하지만, 무엇보다 내게 큰 감동을 준건,

시인의 작품을 향한 열정이었는데, 시인의 말씀중 기억나는 부분만 대충 옮겨보면 이렇다.

시 한편을 가지고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시 자체로 운명을 개척하기도 한다.

시는 나의 내부에서도 오지만, 우주의 저끝에서 달려오기도 한다.

시를 쓰기위해서 깨는게 아니라, 시심 자체가 잠을 깨우게도 한다.

 

시가 우주 저끝에서부터 나에게로 달려오는 상황을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 내게 주어졌다면,

난 시인처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시를 쓰기 위해서 깨는게 아니라, 시심 자체가 나를 잠깨우고, 깨어있게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채 여물지 않은 생각들을, 글로 옮겨써야 할 때가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글의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을때,

머리를 싸매고 치열하게 고민을 한적도,

생각을 묵혀두어 글이 무르익기를 기다린 적도, 없었다.

글이 나의 내부에서 샘솟듯 퐁퐁 솟아날 줄로만 알았었지,

우주의 저 끝에서 글들이 나를 향하여 달려오는 경험을 한 적도, 그런 상상을 한 적도...없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글을 잘 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글이 막 샘 솟을때,

글을 쓰지 않고 묵혀둬 보는 것도 글쓰기의 방법 중 하나일거라며, 떠벌리고 다녔었다.

반성한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3년 10월

 

요즘 이윤기 님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묵혀두고 야금야금 아껴 읽는다.

한장, 한쪽, 한문단, 한문장, 한단어, 한글자...허투루 할 수가 없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이윤기 님은 입말과 글말, 이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신 분이다.

글의 골짜기 골짜기마다, 구비 구비, 그런 고민의 흔적,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나도 따라서, 좋은 글이란,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좋은 글이란, 좋은 책이란...사람을 어떤 방향으로든 변하게 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한권 만들어지기 위해 베어넘어지는 나무가 아까운 줄 안다면,

그런 나무를 애도하기 위해서라도,

글이나 책은 사람에게 어떤 빙향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리라.

 

암튼, 나의 이런 생각들을 엿보기라도 한듯,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에는 이런 얘기가 등장한다.

 

10월 13일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고은 시인이 수상자가 될 경우 그분과의 개인적 친분과 문학 세계에 관련된 글을 두 신문사에 써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6시부터 잔뜩 긴장한 채 서재와 안방을 오가면서 신문 원고를 메모하거나 TV 화면을 힐끔거리거나 했다.ㆍㆍㆍㆍㆍㆍ고은 시인이 수상할 경우, 밤늦게까지 써야 할 원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ㆍㆍㆍㆍㆍㆍ고백하거니와, TV 앞에서 일어서면서 내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아이고, 살았구나."

ㆍㆍㆍㆍㆍㆍ이런 의례적인 인사 끝에, 발표 당일 내가 했던 마음고생과, 발표를 듣는 순간 내가 보였던, 이기적인 반응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러고는 가볍게 긴장했다.

ㆍㆍㆍㆍㆍㆍ그러나 아니었다. 고은 시인은 나의 고백을 듣고는 한동안 탁자를 치면서 박장대소하더니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 안 섭섭해. 이 사람아, 그게 인간이야. 우리는 그런 인간에 대해서 써야 해!"(86쪽)

이리하여, 난 좋은 글쓰기란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누구는 호평을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악평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좋은 글이란 그런 인간에 대해 솔직히 쓰는 글이란다.

솔직히 쓰는 글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니까 말이다.

 

알라딘 서재, 이 동네에서 지금 이시간에도...

내가 아는 누군가가,

또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있다.

그 누군가의 글과 책은 내게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시샘의 대상이기도 하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모두의 건투를 빈다.

그리고 부디,

사람에게 어떤 방향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좋은 글과 책에 대한 무게감을, 기억하고 가슴으로 느끼기를 바란다.

 

 

 나는 자랑스러운 이태극입니다
 이상미 지음, 강승원 그림 / 파란정원 /

 2013년 11월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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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3-11-22 17:29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나무꾼님 페이퍼를 보고, 이윤기님의 책 담아갑니다. ^--^

양철나무꾼 2013-11-26 11:49   좋아요 0 | URL
어머머~북극곰님이시다, 와락~( )
아흑~--; 이윤기 님 완전 죽음이예요.

숲노래 2013-11-22 17:35   좋아요 0 | URL
다 다른 사람이지만 다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요. '사랑' 하나를 놓고.
다만, 다 다른 사람이기에 '사랑'을 놓고 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구나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3-11-26 11:55   좋아요 0 | URL
따로 또 같이, 그렇게 그렇게 어울려지내는게 삶이겠지요.
그리고 삶과 사람, 삶과 사랑은...이음 동의어 같아요.

프레이야 2013-11-23 10:51   좋아요 0 | URL
으악! 주욱 읽어내려가다가ᆞᆢ 다락방님 책이잖아요!! 그래서 그랬구나ㅎㅎ 아주많이 축하해요.
양철나무꾼님 서재에서 축하인사를ㅎㅎ

양철나무꾼 2013-11-26 11:5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넘 멋지죠?
전 많이 부럽고, 솔직히 좀 배가 아프기도 해요, ㅋ~.

근데, 프레이야 님은 왜 이리 뜸하신거예엿, 췟~=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