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9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 종국, 완결 미생 9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며칠전 오랫만에 애인과 데이트를 했다.

결혼해 고2의 아들을 둔 아녀자가 애인이라고 하면,

화득짝~놀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려고들 들지만,

愛人- 말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귀하고 즐거운 시간은 다름 아닌 울아들과의 쇼핑 되시겠다.

 

누굴 닮아 패션 감각이 뛰어난건지 또는 까탈스러운건지,

남들이 아무리 멋있다고 칭찬을 하고 부추겨도,

자기가 내키지 않으면 입고 쓰고 걸쳐주질 않으시는고로 내겐 지독한 강행군이다.

 

자식이 부몰 닮지 누굴 닮겠냐고 하지만,

지 딴엔 한껏 멋을 낸다고 냈는데, 내 눈엔 눈꼴신 경우가 한두번이 아닌 걸 보면...결코 내 쪽은 아닌 게다.

 

며칠 전부터 무슨 모자를 산다고 노래를 불러대는데,

묘사하는 걸 머릿속에 상상하여 그려보니...소위 힙합모자다.

"학생이 지금 날티나는 힙합 모자를 쓴다는 거니?"

"왜 안되는데...?"

"너,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커서 모자를 '투 엑스 라아지' 를 쓰면서,

 모자 챙이 반대로 뒤집어진 힙합 모자를 쓰면 완전 여라 동산인거 알지?"

난 이정도 충격적인 언사를 사용하면 포기할 줄 알았다.

"엄마는 왜 써보지도 않았는데... 쓴걸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된다는 거야?

 일단 쓴걸 보고 나서,

 그게 엄마가 상상하는 그 모자가 맞는지...

 정말 엄마가 상상하는 대로 날티나는지 아니면 어울리는지, 판단해도 늦지 않잖아?"

하고 일목요연하게 따지는데, 난 암말 못하고 입 다물 수밖에 없었고,

녀석이 모자를 골라서 쓴 걸 본 후에는 완전, 급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쓴건 분명 '야구모자'였는데, 간단히 챙의 굴곡을 한번만 반대로 뒤집으면 '힙합모자'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주제파악을 좀 하는 녀석은 챙의 굴곡을 반대로 뒤집어 힙합모자로 쓰는 만행은 결코 저지르지 않았다.

 

"야구모자라고 말을 하쥐~~~~~"

난 미안하고 겸연쩍은 마음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녀석은 이미 내가 뱉어낸 뾰족한 말들로 상처를 받았을 터였다.

"이미 여러차례 얘기를 했거든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계하던게,

편견과 선입견에 눈이 멀게 되는거...

타성에 젖어 아무 생각없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을 반복하게 되는 거...이런 거였다.

사람들, 심지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가 나누어야 할 것은 호들갑스럽고 과장된 친근감이 아니라 누추하고 소박하더라도 진실된 마음이다.

눈을 뜨고 있어도 깨어있지 못하면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세월 흐르고 나이가 먹어도, 난 눈 밝히고 마음 말랑말랑하게 하고 살자고 다짐했었는데,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만을 고집하게 되는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고 늙나 보다.('그녀의 취향' 페이퍼 링크)

 

 

늘 그대로인듯 하지만 눈곱만큼씩 변하는게 세상이고 삶이라지만,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완전 범생이과여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만 사는 꼭두각시 유형이었는데도,

그럭저럭 여기까지 버텨왔던건 시대를 잘 만난 탓이지 싶다.

난 언젠가부터 (그래봤자 시어머니 돌아가실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신통방통한 생각도 해가며,

어른들이 뭐라고 하면 기분 내키는 대로 '배째라, 나몰라라~' 하고 버티기도 해 보지만,

남들이 보기에 상어른인 남편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어른들에게 '예스맨'으로 통한다.

어른들이 뭐라고 하면 하늘이 두쪽이 나더라도 토다는 법이 없다.

'예' 한마디로 끝이다.

 

뭐, 어떤 땐 내가 치마 저고리만 안 입었을 뿐이지,

봉건시대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때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혼자 해결을 보려고 하지,

나나 아들에게까지 확장시키지 않아 그럭저럭 건너간다.

세상은 더 이상 혈연이나 지연,또는 학연 따위에 의해 얽힌 어느 특정한 이들만을 위하여 돌아가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평범한 내 자신 누구나가 마음만 먹으면 목소리를 내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으며

내 자신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말 그대로 '내 인프라는 내 자신'인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예스맨'을 원하지도 않지만,

내자신을 말끄러미 들여다보고 앉아서 내 자신의 인프라가 뭔지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거울에 내 자신을 비추듯, 또 다른 나를 보고 있는 듯 하여...

나의 인프라를 알아 차릴 수 있는게 바둑의 '맞수' 다른 말로 '호적수'가 아닐까 싶다.

드이어 흑이 돌파를 시작한다. 흑▲ 때 준비해둔 그 시나리오다.

포위망이 뚫리느냐, 대마가 죽느냐. 이 한 판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했다.

지금까지의 수순은 모두 이 장면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비정한 바둑판에서 삶과 죽음은 동의어나 다름없다.

한쪽의 삶은 다른 한쪽의 죽음과 닿아 있다.(123쪽)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친절한 해석을 9권'완간'에서야 보았다.

'아직 살아있는 못한자'라는 말은, 언젠가는 살아있게 된다는 뉘앙스로 들리지만,

'완생'도 왠지 좋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 채워가질 수 없는 결여'처럼 여겨져서 말이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나의 삶에 대입시켜 봤을때...

편견과 선입견에 눈이 멀고, 타성에 젖은 내 자신의 모습은,

완생은 꿈꾸지도 않았지만,

미생 또한 아니어서,

방향성을 띠지 못하고 고착되었으니 퇴보나 매한가지다.

 

경쟁자 뿐만 아니고,

마음맞는 동료와 친구라든지 제대로 된 사수 등,

삶을 어느 방향으로든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맞수' 또는 '호적수'이고,

그를 가늠하여 거울에 나를 비추듯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일테니까 말이다.

 

나이가 들고 보니, 내 행동반경이 점점 좁아진다.

시야와 생각도 점점 좁아진다.

자꾸만 한계에 부딪친다.

 

하지만, 거울에 나를 비추듯 하는 '맞수' 또는 '호적수'는 내 삶을 어느 방향으로든 변화시킨다.

편견과 선입견에 눈이 멀게 하거나,

타성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게 하지 않고,

내 스스로 기꺼이 변화를 선택하고 결정하고 받아들이도록 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제 겨우 1부 완결인데 벌써 2부를 기다리는 난 뭐란 말인가? , 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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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05 19:56   좋아요 0 | URL
앞으로 언제나 아들하고
즐겁게 마실 다니면서
재미난 이야기 일구셔요.

아들도 어머니하고
재미나게 마실하기를 바라리라 믿어요.

감은빛 2013-10-07 15:38   좋아요 0 | URL
삶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잖아요.
그러니 장그래는 아직 살아있지 못한 존재가 아닌,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훌륭히 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요?
전 이 만화 왠지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끝까지 다 읽긴 했어요.(웹툰으로)

순오기 2013-10-07 17:53   좋아요 0 | URL
애인과의 데이트~ 아들 가진 엄마는 척 알아들어요!^^
나도 지난주에 휴가나온 아들과 영화보고 점심먹고 쇼핑하고 제대로 데이트했어요.ㅋㅋ
오랫만에 서재들러 리뷰도 읽고 안부도 전합니다.

2013-10-07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