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人은 그렇게 얘기를 시작한다.
"그래서,오늘은 기타맨이 어떤 어록을 남겼는데...?"
그녀는 직업상 맨날 그렇고 그런 얘기를 사람들과 주고 받는다.
그러니, 전날 나눴던 얘기를 기억했다가 끝나는 지점에서 대화를 이어가 주는 지인이 고맙다.
얘기를 통해서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음성을 통해 장기와의 관련성 여부, 경중의 정도, 심리상태의 변화여부 등을 파악해야 하니,
말이 없거나 짧은 사람을 만나면 난감하다.
때문에, 그녀의 취향은 말이랑 관련된다.
며칠째 그 중 '말을 너무나 예쁘게 하여' 그녀의 취향이라며 열을 올리고 있는 기타맨에 대해서이다.
"나이가 몇인데...?"
"......"
"어떻게 생겼는데...?"
"......"
"그것도 모르고...자기 취향이라는 게 말이 돼?"
그러고 보니...나이가 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왼쪽 손목이 불편하여 온 그의 손목을 만지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관절가동역 검사를 하고는 뒤짚어 손바닥을 보다가,
'헉...'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참느라고 말을 같이 눌러 삼켰다.
말이 목에 걸려 얼얼한 느낌이 아직이다.
왼쪽 다섯 손가락 끝에 하얗게 앉은 굳은 살 때문이었다.
"기타치세요?"
"네"
그는 수줍은 듯 대답이 짧다.
"주로 어떤 기타를 치세요?"
"먹고 살려면 아무거나 쳐요."
그녀는 가슴까지 먹먹하여 그 다음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 까먹고 말았었다.
"멋진게 아니라...슬픈 거네."
知人은 주위를 그렇게 환기시켜 그녀만의 생각 속에서 끄집어냈다.
얘기하자면, 한동안 그녀는 슬럼프에 빠졌었다.
가치관이 달라지며,
도구나 매개체를 이용하기보단 메뉴얼 위주로 일을 하게 됐고,
손끝은 감각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감지하여야 하니까 남겨두고,
주로 손가락 마디 꺾이는 곳의 주름진 부분을 이용해,
그 부분이 코끼리 껍데기 마냥 두껍게 굳은 살이 박혔었다.
손가락을 내보이기 창피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쯤되면 그녀의 직업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할 즈음 그를 만났다.
"그런데 참 신기해요. 어떻게 이렇게 만져보고 눌러보기만 하고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아요?"
"기타 몇 년 치셨어요?"
이사람이 정말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길래 얼마 안됐나보다 생각했다.
"조금 밖에 안 돼요...한 20년..."
"그럼요...?
눈 감고도 기타 코드 잡으시겠네요?"
"네...어떤 감이란 게 있어요."
가만이 듣고 있던 知人이 이번에는 멋지단다.
"달인이네...O선생도 달인이야."
달인이란 그녀의 기분을 띄워주기 위해 택한 단어였을게다.
그런데, 이 '달인'이란 말에서,
그녀는 '먹고 살기위해 아무거나'를 힘겹게 내뱉었던 그가 다시 떠올랐다.
"달인이란 말 참 슬픈 말이예요.
장자에 나오는 소 각뜨는 사람 정도가 아닌 다음에는...
부자가,또는 먹고 살기 위해 아무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달인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그가 눈 감고도 감으로 코드를 잡을 수 있게 되기 위해...
몸이나 근육 하나하나로 기억하기 위해...
굳은 살 박히며 통증을 달래가며 무수히 반복하며 보냈을 시간들을 생각한다면요.
저는요...
손끝으로 근육 하나하나 상태를 읽어내기 위해 무수히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근육의 감정상태는 아직 읽어내지 못해요."
'그런데,그 위에 굳은 살이 박히면 감정 상태를 더 읽기 어려워져요.
타성에 빠져 감으로 치료를하게 되는 거라구요.
치료를 하는 데 감은 방해가 될 뿐이예요.'
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 기타맨에게도 겉으로 소리내어 얘기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 기타맨은 그동안 먹고 살기 위해 감으로 치던 기타를 탈피하여,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싣는,혼을 싣는 주법으로 거듭나기 위해 홍역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녀도 근육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근육의 감정상태를 읽어낼 수 있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그때까지는 굳은살을 경계하여야 한다.
먹고 살기위해 생기는 굳은 살을 경계하여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 생기는 굳은 살은, 감정에도 굳은 살을 만든다.
감정에 생긴 굳은 살은 타성, 매너리즘의 다른이름이다.
기타맨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얘기하지만,
아직 다행스럽게도 감정에까지 굳은 살을 만들지 않았나 보다.
모든 음악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뮤지션을 평가하는 말투도 예쁘기만 하다.
"그 기타리스트가 훌륭하다는 건 알겠는데...제 취향은 아니예요."
누군가는 맨날 그렇고 그런 얘기들 사이에서 대화를 이끌어가 주는 知人이야말로 '그녀의 취향'이 아니겠냐고 하지만,
어찌되었건 한동안은,
기타맨의 감정에 굳은 살이 생기지 않는 동안은,
그녀의 근육의 감정을 일거내는 손끝에 굳은 살이 생기지 않는 동안은,
이 기타맨이 그녀의 취향으로 남을 것이다.
(2008년 5월의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