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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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함민복에게 기꺼히, 감히 실천시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솔직히 그가 시에 쓴대로 실천을 하고 사는지 어떤지는 보지 않고, 접하지 않았으니 모르지만,

이런 시들을 쓸 수 있는 시인라면 실천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겠다는 걸 그의 삶을 보거나 접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겠으니 말이다.

 
함민복이 누구냐 하면 '긍정적인 밥'이란 시에서,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집 한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집이 국밥 한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했던 사람이다.

 

시를 feel 충만하여, 그리하여 말랑말랑해져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하는 걸 느낄 요량으로 읽는 나같은 사람한테는,

저 시를 모르고 읽을라치면,

요번 시집의 시들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딱딱하기도 한 것이 읽기가 좀 버거울 만도 한데,

'긍정적인 밥'을 쓴 '함민복'이라는 걸 알고 읽게 되면, 시가 아름답고 서러워 눈물이 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와 신념대로 실천하는 그런 삶이야말로,

소박하고 곤궁할지라도, 그래서 서러워 눈물나도록 아름답다.

 

마음을 다잡아 먹고 읽어나갔는데,

그런 나를 초반부터 무장해제시킨 시가 바로 이 시였다.

당신은 담배를 피워 물어 영혼에 뜸을 뜨고 계신거였다지만,

이 시 한편으로 충분히 시인은 내 머릿속에 제대로 각인되었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살며 풀어놓았던 말

연기라

거두어들이는가

입가 쪼글쪼글한

주름의 힘으로

눈 지그시 감고

영혼에 뜸을 뜨고 있는

노파에게

거기는 금연구역이라고

살면서 내뱉었던 말들이 아니라, 살며 풀어놓았던 말이라고 하니...왠지 구전 이야기의 느낌이다.

풀어놓을때는 술술 잘만 풀리던 그것들이,

연기의 형상을 하고도 거두어 들일 때는 그토록 힘이 든 것인가 보다.

입가 쪼글쪼글 주름이 생기도록 힘껏 빨아 들인 후,

영혼에 바람을 넣어 뜸에 고루 불을 당긴다.

풀어놓을 때 칼날이 되기도 하고 흉기가 되기도 했던 말들이,

거두어 들일 때는 연기의 형상을 하여 부질없어진다고 해도,

눈을 지그시 감고 시간과 온도를 가늠해서

제대로 달구어 은근한 불로 밥에 뜸을 뭉근히 들이듯이 뜸을 떠야 한다.

말조심을 해야 하는 곳은 장소 불문이지만,

눈 지그시 감고 추억에 잠겨 있는 노파에게선 비껴가기로 하자.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뜨겁고 깊고

단호하게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딴전

딴전이 있어

세상이 윤활히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보기도 하지만

늘 딴전이어서

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

죽음이 앞에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가

그래도 세계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고 깊고

뜨겁게

나를 낳아주고 있으니 

 

 

이 시는 시집의 제목과 같은 표제시이다.

그리고 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듯 하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로 실천하며 살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서럽고 눈물 나지만,

그 눈물을 초승달처럼 생긴 눈꺼풀로 자르고,

그렇게 그렇게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달이 차고 이울듯이, 삶 또한 영원한 도돌이다.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 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

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양팔저울'부분)

 

 

얼마전이었다.

무슨 말을 하다가 친구가 '나는 잘 해준 것도 없는데...'하는데 참 서러웠었는데 내색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나를, 내 자신을 보태기도 하고 덜어내기도 하고...그러면서 관계는 형성되는게 아닐까?

쌍둥이처럼 나를 닮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 닮은 친구...

친구의 모습에서 나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친구에게 더하는게 나에게 더하는 것이고,

친구에게서 덜어내는 것이 내 자신을 에이는 듯 깎아내는 것인데...

친구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말로 해 무엇할까?

친구를 향한 집중은,

바로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그것인데,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

대화가 부족했나보다.

아니면, 내가 내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나?

 

빨래집게

 

옷을 집고 있지 않을 때

제 몸을 넌다

 

몸뚱이가 되어 허공을 입고

허공을 걷던 옷가지들

 

떨어지던 물방울의 시간

입아귀 근력이 떨어진

 

입 다무는 일이 일생인

빨래집게를 물고 있는 허공

 

물 수 없는

시간을 깨물다

 

철사 근육이 삭아 끊어지면

툭, 그 한마디 내지루고

 

훑어지고 말

온몸이 입인

 

대운하 망상

 

물이 법(法)이었는데

법이 물이라 하네

 

물을 보고 삶을 배워왔거늘

티끌 중생이 물을 가르치려 하네

 

흐르는 물의 힘을 빌리는 것과

물을 가둬 실용화하는 것은 사뭇 다르네

 

무용(無用)의 용(用)을 모르고

괴물강산 만든다 하니

 

물소리 어찌 들을 건가

새봄의 피 흐려지겠네

 

개인적으로 '빨래집게''대운하망상' 같은 시도 좋았지만, 좀 어려웠다.

누구, 내게 조곤 조곤 해석해 주는 사람 어디 없을까,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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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2-28 16:27   좋아요 1 | URL
갑자기 시 좋아하던 20살로 절 데려다 주셨더랬어요
그랬군요 눈꺼풀은 눈물을 잘라냈군요, 늘 그렇듯
눈에 힘 꼭 주다가 눈꺼풀로 싹둑.

프레이야 2013-03-01 10:50   좋아요 1 | URL
함 시인은 참 선하고 순한 사람이라고 느껴져요.
산문집 '미안한 마음'을 읽었는데 거기 글들에서도 그런게 느껴지구요.
이 시집, 요즘 평들이 좋으네요. 멋진 하루 보내세요^^

다크아이즈 2013-03-01 18:16   좋아요 1 | URL
나무꾼님 전 빨빠래집게,대운하망상 다 이해되어요. 어쩜 좋아요 ㅋ
제가 원래 독해력이 많이 딸리는데 언제나 제 멋대로 해석하니 이런 현상이. ㅠ
용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