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싶은 집은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이 책을 시작한 건 '이일훈'님 때문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분의 '뒷산이 하하하'를 접하게 되었는데 좋았던 터라,

한번 필 꽂히면 전작을 두루 섭렵하는 나의 취향에 맞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를 읽어 주셨다.

그런 후에 읽게 된 이 책은, 어떤 의미로든 좀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건축가야 집을 건축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손 쳐도,

송승훈 샘이야 (이때까지는 ''책.따.세'의 일원이라는 것도 몰랐다~--;) 그냥 국어샘일 뿐인데,

집을 지을때 발생하는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속물스런 나는 돈과 연관시켜 생각이 이리저리 널을 뛰었는데,

땅값에, 설계비에, 건축비에...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하는 기우(杞憂)가 주를 이뤘다.

 

책을 읽다보면,

송승훈샘이 왜 이런 집을 짓게 되는 지,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하게 되는지,

가 조곤조곤 설명되어 있어...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이고 눈물 바람을 하게 되지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처럼, 그건 또 그때뿐이고...

평범한 소시민인 나로서는 복권에 당첨되거나 일확천금을 갖게 되지 않는다면,

평생 꿈꿔볼 수조차 없는 그런 집이어서 읽는 내내 부러움으로 배가 아팠던 것도 사실이다.

암튼 이 책은 중심을 잘못 잡아 읽으면 얼마든지 당혹스럽고 불편한 책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건축가인 이일훈님과 건축주인 송승훈샘이 지은 이 집의 이름은 '잔서완석루'이다.

해석해 보자면, '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 이라는 뜻이란다.

건축가 이일훈 님이야 '채나눔' 이라고 하여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 늘려 살기' 따위를 주창하신 분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송승훈 샘의 그것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송승훈 샘은 국어샘 답게 서재에 힘을 주려고 하셨는데,

서재는 공부를 하는 장소이므로 너무 편한 것보다 다소 긴장감이 드는,

어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장치들을 해달라는 대목에서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송샘의 책을 대하는 자세를 미루어, 나의 책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됐다.

 

이 분이 꿈꾸고 계신 집은 이 분이 그리는 삶에 대한 이상향을 반영하고 있고,

이건 '어떻게 살것인가'하는 삶의 근원적이고 궁긍적인 문제, 즉 자아성찰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는것 같다.

다시말해, 삶이란건 외부로만 무한히 열고 소통하려 해서 되는게 아니라,

그와 보조를 맞추어 안으로 자기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삶은 넓고 풍요롭고 풍성한 동시에 안으로 충분히 깊이 있어야 한다.

 

발상을 조금 바꾸어,

건축가 이일훈 님의 이 물음들을 꼭 짓는 집에만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집을 꿈꾸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인터넷에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라면 한 번씩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고,

의미를 더 축소시켜 집을 '서재'에 국한시켜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서재를 꿈꾸고 계신가요?"

- 책을 보관하고 쌓아두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읽고 생각을 키우고 나누고 발전시키는...말하자면, 열린 소통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 넓고 깊게, 풍요롭고 풍부하게.

 물에서 뜨기 위한 전제조건은 물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소통의 전제 조건 또한 마찬가지이다. 소통의 아우라나 파장이 얼마나 넓고 깊세 미칠 수 있는지 따위는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멋드러지게 대답해야 겠지만...어디까지나 준비된 답변일 뿐이고,

읽지 않은 책들로 날마다 책탑을 쌓고 살아가는 일개 중생일뿐이다.

책탑은 날마다 높아지고,

난 야한 생각을 할수록 머리카락이 빨리 긴다는 속설을 믿어 매일 꾸준이 야한 생각을 해서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머리카락을 드리우면 왕자님은 아니어도 누군가 책탑에 갇힌 나를 구하러 와줄것만 같다, ㅋ~.

 

요즘 책 정리를 하고 있다.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책은 더더욱 그런고로, 책들은 그렇게 쌓여 책탑을 이루는 형국이었고,

이게 심각한 사태구나 하는것을 깨달은건 우리 아들의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일기장이나 비밀노트 따위를 안버리는거야 그럴 수 있다손 쳐도, 초1때의 알림장이 그대로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거였다.)

급기야 책을 이고 자야 되는건 아닐까 걱정되어, 난 자못 심각하게 왜 안버리냐고 묻자,

우리 아들 曰,"버리는 건 줄 몰랐어~--;"

 

책은 단지 책꽂이에 꽂아놓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읽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책은 돌려 읽고,

생각을 나누고,

생각이 이렇게 저렇게 마음을 건드리고,

그게 어떤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어디다 내팽개쳐 버렸는지도 모를 수도 있고,

보이기 위해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는 놓았으나 읽지는 않았을 수도 있고,

책을 그저 뚝딱 읽어버리고 말았을 수도 있고,

책을 읽고 이런저런 일련의 과정의 변화를 거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나는...마다했다고 우기던, 서재에 연연해 온것이 된다.

이제 책탑을 허물고 걸어나와,

책을 읽고,

책에서 배운대로 실천하도록 해야겠다.

 

비록 나의 그것은 송승훈 샘의 '구름배'같은 그것은 아닐 것이다. 

 ‘구름배 같으면 좋겠습니다. 구름이 부드럽게 감싸 안고 공기 잘 통하는 하늘로 사람을 두둥실 띄워가는 듯 편안한 방이길 꿈꿉니다.’ (32쪽)

 

삶이란 것이 몸으로 통과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듯이,

책도 자기가 읽고 감동 받았을때,

그 감동이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 체화하는 과정을 겪었을때,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독서가 된다.

 

독서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독선이나 독단에 빠지는 것이다.

그랑제의 소설 <검은 선>에도 그런 사람이 나오고,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에도 보면,

책을 누구보다도 많이 읽지만, 해석을 자기 마음대로해서 독선이나 독단에 빠진 사람들이 나온다.

그러니 책을 읽는 사람들은 계속 자신을 돌아봐야하고, 주변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 서재는,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않고 타성에 빠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이중적인 잣대가 된다.

 

집이란 '어드메 한 구석 기둥을 부여잡고 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말이 책을 읽는 내내 입가를 맴돌았다.

이 말은 이렇게 저렇게 바꿔 적용시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둥 대용의 친구와 책은 그럭저럭 확보한 셈이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런 의미에서 이일훈 님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도 많은 물음을 던지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일훈 지음 / 사문난적 /

 2011년 1

 

숲 닮은 도시가 갖춰야할 최소한의 덕목은 '경계'를 없애는 일이다. '영역' '구획'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숲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자연의 공간의 경계가 생기지 않는다. 나무와 바위 사이에도, 계곡과 능선 사이에도 경계가 없다. 숲이 숲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그 경계 없는 자연공간들이 바로 숨통이기 때문이다. 모든 흐로고 지나가는 것들이 그 경계 옶는 사이에서 작용하고 존재하므로 숲과 나뭉와 동물들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럼 도시는? 그 반대다. 경계를 확보하려고 혈안이다. 영역 표시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구획을 지어야 마음을 놓는다. 개체의 구획이 전체를 죽인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구획된 경계는 불통의 공간이 된다. 건물이 두 체면 불통의 공간도 두 배가 된다. 그 사이를 허물어 나무 심고 사람이 다니면 그게 바로 소통이다. 숲은 자연이 소통되는 상태다. 숲 닮은 도시를 꿈꾼다면 모든 것을 통하게 하라. 그러면 아무도 콘크리트 숲을 욕하지 않으리.

 

숲이 말한다. 경계를 없애야 숲이 된다고.

도시에 묻는다. 우리는 오늘 몇 배의 불통을 참고 있는가.(40쪽)

 

자연이란 말의 의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진 무엇'이라는 정의(定義)이다. '~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이 자연스레 다가왔다'하는 자연스러움은 역시 사랑의 묘사에 제격이다. 하는 이도 모르게 저절로 맺어지는 사랑이 있는가 햐면 꾐ㆍ 설득 ㆍ도전ㆍ 쟁취의 사랑도 잇다. 저절로 이루어진 사랑이 자연의 숲이라면 계획된 작전 같은 사랑은 인곡 숲이다. 모든 사랑이 다 소중하듯이 숲도 자연이든 인공이든 다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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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2-08-16 20:37   좋아요 1 | URL
책을 쌓아두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읽고 소통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언니 서재 정리하실때 제게도 좋은책 보내주세요.ㅋㅋ

하늘바람 2012-08-17 01:25   좋아요 1 | URL
한 때 책으로 집을 도배하던 떄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 책은 장식용이 아니라고.
그다음부턴 책을 가능하면 모으지 않으리라 하고 있지만
그게 참 안 되더이다^^
오늘 이상하게 님 생각 많이 했는데
님이 페이퍼를 올리셨네요^^
전 사실 책을 뒤죽박죽 정리 못하기의 달인인지라
어떤 서재를 꿈꾸냐 하면 정리 안해도 되는 서재?
과연 그런 서재가 있을런지.

라로 2012-08-18 00:06   좋아요 1 | URL
이일훈, 잘 모르는 작가인데 여기서 알게 되었네요!!!
찾아서 읽어봐야겠지만 도서관에 자주 못 가는 사람이라 언제 읽을지 장담은 못 하겠어요.
하지만 양철나무꾼님의 페이퍼를 읽고 있자니 꼭 만나고 싶네요!!^^

2012-08-19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