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마음에 드는 그런 사람이나 사물이 있다.
그리 헤프게 내어주거나, 인색하게 거두어 들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이가 들면서...맘에 쏙 드는 그런 사람이나 사물이 점점 없어져만 간다.
어쩜 맘이 아니라, 내 눈이 점점 까다로워져만 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요즘은 내 맘에 쏙 드는 그런 사람이나 사물을 만나면 일단은 못 본척 돌아서게 된다. 
잃어버릴까봐, 나의 더러운 성질머리를 보고 저만큼 도망가 버릴까봐 두렵고 겁이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묵혀두고, 누그러뜨리고, 사그라들고, 퇴색하고, 바래져...마음에서 나기를 기다려본다. 
그런데 그 정도면...오래 두고 기다린 것만으로도,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이고 사물로 거듭나는 기간이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것이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라는 얘기가 하고 싶은건지,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 마음에 드는 것이 되어버리더라는 얘기가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낯가림이 심하다'는 얘기를 한참 돌려서 했다.
사람이나 사물에게 마음을 주기까지 참 오래 걸린다.
출발이 빠른 사람들 중에는 속전속결인 사람들이 있고, 개중에는 나의 더딤을 답답해 하거나 서운해 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난 한번 마음을 주고나면 모든 이유 불문하고 '그렇기 때문에'가 슬그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탈바꿈해 버리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녀가 마음에 든건, 나처럼 장르소설을 좋아해서였다.
그녀와도 이런 기간을 거쳤나? 거쳐간 것 같다.
 
그녀가 공부하고 있는 MBTI분류에 따르면,
그녀는 INTJ(내향형,직관형, 사고형, 판단형)이고, 난 INFP(내향형, 직관형, 감정형, 인식형)란다.
그래서 그런지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른 것 같으면서도 닮은 것 같다.

물론 노란 찻집에서도 아니었고,
그녈 세번째도 아니고 두번째 만나는 날이었지만,
가슴이 떨려오고 설레이기는 했었다.
 
머리는 깁고, 왼쪽 다리는 절고, 가슴은 뻐근하게 저려오는 몸을 이끌고 일부러 찾아간 길이었다.
문자로 메뉴를 정하라기에,
'다 좋아...많이 걷지만 않으면 돼.'
라고 대답했더니, 그녀
'에,..생각해보니 다 좋아하는 건 아니자너..회 싫지 고기 싫지 막창 싫지 등등등.. 담엔 명확하게 의사표현하도록 연습 좀 해봐.'
라는 발랄한 답문자를 보내온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문자를 보냈더니,
'2번 출구 밑에 앉을데가 있다'는 문자까지 자상하다.

청바지에 회색 라이더 자켓, 검은 헌팅캡을 대충 눌러 쓴 나와는 비교되게, 
그녀는 검정 터틀넥에 검정 조끼, 검정과 빨간 체크의 레이어드 스커트를 입고, 빨간 가죽 배낭과 구두로 포인트를 준 도로시 공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녀가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둔 수제 햄버거 집에서 햄버거를 먹고,
차를 마시려다 내가 호기를 부려 와인을 마셔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와인을 저녁 약과 함께 먹어 취해 졸지만 않았으면, 좀 더 있었을텐데...아쉽다.

그녀는 많은 얘기를 했고, 많이 웃기도 했다.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거리기도 했고, 서로 다른 관심사를 이해시키려 침을 튀기기도 했던것 같다.
닮은 점도 있었고, 다른 점도 있었지만 문제될게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나도, 꿈을 가지고 있었고...꿈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꿈이라고 얘기하면 근사한 것 같지만, 불혹을 넘긴 아줌마들이 하고 싶은게 있다고 하여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것...보는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무모할 수도 있는거니까 말이다, ㅋ~.)
 
그녀가 한 얘기 중 실루엣에 대한 얘기가 아직 기억에 남는다.

가끔 세상을 사물 하나하나가 아닌, 어우러진 그 자체로서 즐긴다는 얘기.
한자리에서 열시간 이상을 바다를 바라보면서 보낸 적도 있다는 얘기.
거리의 나무들을 볼때,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을 같이 보는 걸 좋아한다는 얘기. 
 
나는 많은 얘기를 들었고, 결리는 가슴팍을 쥐어 짜가며 따라 웃었다.
그저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뒤에 수선스럽고 살갑게 챙기지 못해 그녀는 좀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맘에 쏙 드는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머리는 깁고, 왼쪽 다리는 절고, 가슴은 뻐근하게 저려오는 몸을 이끌고 그곳까지 갔겠는가 말이다.

한동안 예전에 읽었던 '칼럼 매켄'의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를 떠올렸었다, 그녀에게도 권해주고 싶다.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0년 6월



ㆍㆍㆍㆍㆍㆍ
"그렇게 오래 미소를 지었다니." 그녀가 말한다.
"나도 미소를 지었어요, 클레어."
"당신도 그랬어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잖아요, 그게 진리죠."
그때 그녀는 알았다, 그 하늘을 걷는 사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깨달음이 그녀 깊은 것에서 세계 울리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천사도 악마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예술도, 개선된 공간도, 인간과 매개체와의 만남도, 자연을 넘어서는 인간도 아니었다.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가 그 높은 것에 있었던 것은 일종의 외로움에서였다. 그의 정신이 한 행위는, 그의 몸이 한 행위는, 외로움에서였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196쪽)
외로움이 내 안으로 밀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참으로 우스웠다. 모두가 자기만의 작은 세계 속에 오도카니 앉아 말을 하고 싶은 깊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각자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그냥 불쑥 중간에서 시작하고선 그 이야기를 다 하려고, 모두 말이 되고, 논리적이고 최종적인 것이 되게 하려고 너무나도 애를 쓴다.
 내가 클레어에게 이야기를 다 하도록 했다고, 나아가 모든 걸 다 쏟아내도록 격려했다고 말하는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래 전 내가 시러큐스에서 대학을 다닐 때, 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계속 말을 하게 해서 나는 그다지 말할 필요가 없도록 하는, 그런 종류의 어법을 개발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나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벽을 쌓고 있었던 것 같다. 부자들이 많은 곳에서 나는 '자비를', '하느님', 그리고 '맙소사'를 추임새로 넣는 내 오랜 남부식 습관을 더욱 완벽하게 했다. 그 단어들은 또 다른 형태의 침묵으로 내가 의지하는 말들이었다. 내가 항상 의지하는 말들, 내가 믿을 수 있는 말들, 언제부터인지 내가 마지막 기댈 곳으로 사용한 말들이었다.(494쪽)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 여정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아 사랑을 발견하면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 차를 몰고 뛰어내리는 벼랑이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세상을 좀 살아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란 그저 하루하루 변하는 것이라고, 사랑은 얼마나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싸우느냐에 따라 얻기도 하고, 유지하기도 하고, 또는 잃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애초에 사랑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도 했다.(512쪽)

이제사 난 그녀를 맘에 꼭 드는 사람으로 여긴다.
그렇다고 수선내고 살갑게 챙기지는 못할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때로 그녀를 서운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나이 들수록 멋지게 사는 여자>가 되길 바라고, 나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것은 분명하다.
 

 

 

 나이 들수록 멋지게 사는 여자
 마커스 버킹엄 지음, 김원옥 옮김 /
 살림 / 2011년 10월

 * 강점 테스트 주소: www.sallimbooks.com/sltest.html


 

비상/임재범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감당할수 없어서 버려둔 그 모든건
나를 기다리지 않고 떠났지
그렇게 많은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서 더 멀리 갈수 있다면
상처 받는것보단 혼자를 택한거지
고독이 꼭 나쁜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걸 깨닫게 했으니까
이젠 세상에 나갈수 있어
당당히 내 꿈을 보여줄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더 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줄거야
힘겨웠던 방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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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6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10-27 04:22   좋아요 0 | URL
이런 러브레터라니~~~~~~ 내가 그녀가 아니라도 행복합니다!^^
보기 좋아요~ 그녀와 양철나무꾼님!!

양철나무꾼 2011-10-27 10:2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이야...제가 아니라도 뭋 사람들의 인기와 러브레터를 한몸에 받고 계시잖아요~~~!
저, 순오기님도 꼭 한번 뵙고 싶어요~^^

감은빛 2011-10-27 12:42   좋아요 0 | URL
두 분 멋진 만남을 가지셨군요.
양철님의 그 마음 그 분도 잘 알고계실거라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많이 다치셨나봐요.
얼른 나으시길 바랍니다!

북극곰 2011-10-27 15:07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의 맘은 저도 다 알것 같은데 그 분이 모를 리가 없죠.^^ MBTI 안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두 가지 성향은 같고 두 가지 성향은 서로 다른 게 젤 이상적인 관계일 것 같아요!

머큐리 2011-10-27 15:47   좋아요 0 | URL
제게 부족한 부분이 무언지를 깨닫게 해 주는 페퍼에요..더불어 저는 임재범의 '비상'을 느무므무 좋아하는 사람이라구요..^^

숲노래 2011-10-28 07:15   좋아요 0 | URL
오늘도 즐거이 맞이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