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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몰리션 엔젤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8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박진재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평점 :
'햇살이 개미 등허리를 타고 남도록 따갑다'는 문장을 만날 무렵 , '볕이 몹시 눈부셔서 도끼날이 미간에 꽂힌 것 같았다.(332쪽)'는 표현을 이 책에서 만났다.
따사로운 햇살이고 싶지만...개미 등허리를 태우고 남을 정도로 따가운 걸 수도, 미간에 꽃힌 도끼날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또는 나는 선의였지만...내가 상대를, 상대가 나를 해치고 잡아 먹는 무한경쟁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개중 남을 해칠 수 없어 제 스스로를 잡아 먹는...유래도 찾아볼 수 없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 책 '데몰리션 엔젤'에도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로버트 크레이스가 마이클 코넬리보다 좋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둘 다 외롭고 쓸쓸함을 마구 발산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외롭고 쓸쓸함이 자기 자신을 갉아먹고 잡아먹도록 놔두는 사람들이라면,
로버트 크레이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남을 해칠 수 없어 제 스스로를 해치고 갉아먹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시켜 자체치유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감정을 뾰족하게 모두고 벼리었을 때는 흉기가 되지만,
가시가 뾰족한 고슴도치도 가시를 비껴가며 보금어 안을 수도, 체온을 나눠 가질 수도 있듯이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캐롤 스타키가 그런 존재다.
캐롤 스타키는 폭탄 수사관으로 폭탄 철거 작업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기 자신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 트라우마에 갇혀 자기자신을 스스로 해치고 갉아먹는 듯 보였지만,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추고 반영하여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나면 좋은 점이 많다고 언젠가 다나에게 이야기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홀로 일어나 생활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에 고독을 즐겼다. 아무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의 등 뒤에서 그녀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쳐다보지 않았다. 폭탄에 나가 떨어져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산산조각 난 상처를 도로 꿰맨 그 수사관이라고, 파트너를 잃은 그 사람이라고, 도망쳤던 그 사람이라고, 죽었던 그 사람이라고 하며 쳐다보지 않았다. 스타키는 이러한 문제를 다나와 상담한 적이 있었다. 다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감을 느끼거나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고 상상한 적이 있는지 물으면서 그녀에게 진실을 깨닫게 했다. 물론 스타키는 그 질문들을 모두 부정했다.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나가 꺠우쳐준 진실이 모두 옳았다. 고독은 그녀를 자유롭게 하는 '주문'이었다.(104쪽)
그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트라우마에 갇혀 혼자 안으로 움추리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그녀를 소외시키는 게 아니라, 그녀 스스로를 사람들 속에서 분리해 내고는 고독은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는 주문이라는 말로 자위한다.
그 결핍을 술과 담배로 채운다.
그를 알게 되고...그가 그녀와 닮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걸 알고 다가가기 위해 더듬이를 그를 향하면서도,
상처 받기 쉬운 영혼의 소유자이기도 한 그녀는 더듬이를 잘릴까봐 두려워 하기도 한다.
스타키는 다급히 그를 보고 싶어 하는 자신을 깨닫고 놀랐다. 지난밤 늦게, 또 오늘 이른 아침에, 그를 사랑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고 신중하고 싶었다. 지난 3년의 세월은 그녀에게 채워지길 갈망하는 공허함을 남겼다.그녀는 그 갈망과 사랑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그 갈망 때문에 우정과 친절을 사랑으로 왜곡시켜선 안 된다고 혼잣말을 했다(304쪽)
그의 호텔을 향해 차를 달리면서 스타키는 폭탄 해체 작업 중일 때와 똑같은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일종의 분리를 겪는 것과 같았다. 안전하고 편안한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살과 뼈는 있지만 감정은 전혀 없는 로봇이 되어 폭탄을 처리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공간에 들어서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을 감정에서 분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369쪽)
그녀는 펠에게 이 모든 사실을 말하는 게 생각보다 꽤 힘들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과 논쟁을 벌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는 상처를 입은 것 같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난 모든 사람에게 비밀 심장이 있다고 믿어요. 비밀스런 자신을 보관하는 저 깊숙한 안쪽에 있는 심장이요. 난 우리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그 비밀 심장이 본다고 생각해요. 아마 내 심장은 내가 상처 받은 것처럼 당신이 상처받은 모습을 봤나 봐요. 우리가 영혼이 통하는 사람들인것처럼요. 아마 그런 이유에서 내가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된 것 같아요. 당신이 내게 거짓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 심장이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할 뿐이에요."(373쪽)
캐롤 스타키를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할 수 있는 씩씩하고 당찬 인물로 그려내는 반면,
잭 펠은 좀 유약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거짓말도 불사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는 그녀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녀를 안다는 것은 안 좋았다. 함께 있을 때마다 그는 그녀의 좀더 어두운 면을 발견하며 놀랐고, 그 때문에 죄책감이 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읽는데, 비밀스럽게 숨겨진 모든 사람의 진짜 얼굴을 보는 데 너무나 능숙했다. 펠은 아주 오래전에 모든 사람이 실제로는 각기 두 사람임을 알았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한 사람과 그 안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또 한 사람이었다. 펠은 비밀스러운 사람을 언제나 읽을 수 있었다. 단단한 쿠키 같은 스타키의 외면 안에 있는 비밀스러운 사람은 애써 용감해지려는 작은 소녀였다. 작은 소녀는 전사의 심장이 있어서 자신의 삶과 경력을 새로 세우려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확신할 수 없어서 괴로웠고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240쪽)
펠은 차에 앉아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어린 상처 입은 표정에서 그는 자신이 개자식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그녀가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미스터 레드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그 외에 다른 것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녀 이름이 새겨진 파편이 있었다. 그는 탁자 너머로 손을 뻗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진신을 말하고 싶었다. 마음을 터놓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 또한 마음을 닫고 지낸 지 오랜지라, 그녀가 유일하게 이해해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는 점점 커져만 가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녀와의 만남에는 오직 미스터 레드만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미스터 레드가 어디서 끝냈고 자신이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지 못했다.(332쪽)
실은, 이 책에 남을 해칠 수 없어 제 스스로를 해치고 갉아먹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시켜 자체치유에 들어가는 사람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이들과 대비되는 그릇된 사랑도 등장한다.
그래서 폭탄이 등장하는 다소 생소한 상황이지만, 우리 주변의 일처럼 낯설지 않다.
칼은 다른 사람을 찌르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찌른 칼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언젠가는 내 자신을 찌른다.
오랫만에 여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해가며 읽었다.
과정의 생략이 빠른 전개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하게 느껴진다.
숨막히고 긴박한 내용에 걸맞게 번역도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