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쓴 책
데이비드 미첼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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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걸 믿어 버리기에는 과학이나 의학을 깊숙히 공부하였지만,
그렇다고 그 기준에 맞춰서 내 삶을 설명하려 하면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럴 때 난 신이 존재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이 책도 그런 경우다.
'수많은 우연이 모여 운명이 된다'는 내용이라는 책 표지를 보고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없다는 건,삶을 너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게 아닐까?
내 인생은 내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그런 거여야 하지 않을까?하며 읽었는데,
다 읽은 후...결과적으로는 의학이나 과학을 통하여 설명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운명'으로 명명할 수 밖에 없겠다.

때문에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 책을 좀 재밌게 읽는 법은,
숨은 그림찾기나 미로 찾기,퍼즐 맞추기 처럼 이 책을 생각하여,
책 속에 숨어있는 수 많은 복선들을 찾아내어 앞뒤 전후 사정에 맞게 꿰어맞추는 지에 있다.

거기에 한가지 더,유령이라는 말 뜻을 다시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겠다.

대개 저승에 살면서 특수한 형태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신봉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때때로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나 죽은 사람의 희미한 형체, 또는 그밖의 다른 형태를 빌려 나타난다.
유령 신앙은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분리될 수 있으며 사람이 죽은 뒤에도 영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장례식은 살아 있는 사람들 앞에 유령이 자주 나타나서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는 의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백과사전의 뜻>

그 중에서 이 책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의 형태로 나타난다.
<성산>에서만 나무의 정령쯤으로 나타나고,
그리고,유령의 영혼은 산사람끼리의 접촉을 통해서 이러저리 갈아타기 할 수 있다.
클리어아일랜드에 이르러서는 이런 유령의 상위 단계로 과학을 얘기한다.

처음 <오키나와>의 지하철 테러범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이비 종교 얘기인 줄만 알았고,
언젠가 읽었던 <통곡>의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래서,그가 사용하는 '우연을 지배하는 분'을 사이비 종교의 교주'구루' 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읽다보니'우연'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분'이란 '운명'을 관장하는 분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의 두번째 챕터인 <도쿄>편이,
그리고 도쿄편의 얘기를 이끌어가는 '사토'도 맘에 들었다.
수많은 음악가들과 음악이 나오는 데,그만의 해석법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찰리 파커를 '서서히 녹아들어 비틀거리는 음색,잔인함을 아는자'로 표현하는 게 그런 예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사토'가 또 다른 나인듯 여겨져서 애착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함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잡동사니가 되거나 동굴 속 개미가 되고 만다.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깨닫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격리하기 위한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하지만 도교에서는 불가능하다.도쿄에서는 회장,갱,정치인,황제가 아닌 이상 절대로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없다.지하철에서는 몸과 몸을 부대껴야 하고,전철에서는 손잡이 하나를 여럿이 나눠써야 한다...아니,도쿄에서는 자기 머릿속에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65쪽)"

"익명은 우연을 감싸버리지 않는다.오히려 우연을 더욱 눈에 띄게 만들 뿐이다.(75쪽)"

"당신만의 공간은 당신을 제정신으로 있게 해주지만 또한 당신을 외롭게 할 수도 있다.(106쪽)"
같은 대목들은 그랬다.

"...둘이 우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둘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둘 사이에 섹스가 팽팽하게 긴장을 하며 떨었고,그때문에 나는 둘이 아직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처음 몇번이 지나면 생겨나는 나태한 소유권의 주장은 보이지 않았다.(129쪽)"

"우뢰같은 바그너라기보다는 소리죽인 시벨리우스 분위기였다(169쪽)'
같은 표현의 섬세함에 매료되어 작가가 맘에 들었다.
그래서 인연이나 운명을 해석하는 법이 나랑 달라도,작가의 내공쯤으로 넘길 수 있었고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실은 읽다보니 무한반복되는 그렇고 그런 삶으로 미루어 끝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내 자신의 일상을 바로잡은 부분이 있는데,'용어'에 관해서다.
근위적외선,원위적외선 하는 것들은 과학에서 사용하는 거랑 의학에서 사용하는거랑 다르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알파파 감마파 같은 경우도 물리에서 접근하는 거랑 의학에서 사용하는 거랑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에는 이런 용어 뿐만 아니라,
우연,운명,신이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이동'을 물리학의 입장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우연을 지배하시는 분'이 미국에 비자발급을 거부당하고,공간변환술을 이용하는 부분은,블랙홀,화이트홀,웜홀 이론이다.

처음엔 '사이비종교'로 설명되어지는 것인가 다소 실망스럽지만,여기서 주저앉아버리지만 않는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하게 되는데,
작가의 상상력의 유연함,과학적인 지식,이 모두를 버무려내는 품 등이 다 훌륭하다. 

이 책의 해답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는 자기 삶을 자기가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실제로는 우리 주변에 있는 힘에 의해  미리 쓰여 있는거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쓰여 있는 걸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는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459쪽)
 
"...전자는 전하를 띤 확률파이지 않나요?"
나는 이렇게 말하길 좋아한다.
"저는 그것을 춤이라 보는 편입니다."(532쪽)
 
물질은 생각이며 생각은 물질이다.
합성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536쪽)
 
"핵보유국들이 자기것은 '최상의 핵 억제물'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나라것은 '대량 살상무기'라고 부르는 거 알고 있어?"(543쪽)

 

"양자역학은 불확실성을 문법으로 삼아 확률을말한다.전자의 위치는 알 수 있지만 전자가 어디로 갈지 또는 눈금을 기록할 때 어디에 있을지는 알 수 없다.(581쪽)"

같은 부분 들이다.

결국 이책의 처음에 나와 있는 '존에게'란 헌사를 끝까지 붙들고 있는다면,
'우연을 지배하는 분'이란,결국 앞을 볼 수 없는 과학자의 남편인 그 '존'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육사는 지하철 테러범인 처음의 '고바야시'라고 불리우던 '퀘이샤'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또 다시 처음과 맞닿아 있다.

끝으로 세상이 살기에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 걸 늘상 깨닫게 되지만,
그걸 책에서 느끼고 싶자면, 역자'최용준'이 번역한 이 책을 읽으면 샤워하듯이 느낄 수 있다.  

                                                                                                                                <2010년 2월 22일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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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4-26 00:23   좋아요 0 | URL
양철댁님의 고마운 선물인 이 책을 저도 읽고 있어요. 양철댁님의 리뷰 대로 <오키나와>란 부분이 옴진리교 테러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책이 1999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1997년에 나왔는데 작가의 이력이 일본 부인을 두고, 일본에서 오래 거주한 영어 강사였다고 하니, <오키나와>에서 언급한 부분이 하루키 <언더그라운드>의 맺음말의 부분과 아주 흡사한 것을 보고 분명 하루키 책을 읽었겠구나 하는 나름 추측을 해 봤어요. 저도 <도쿄>까지 읽었는데 양철댁님과 같은 그런 섬세한 문장의 의미는 보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남자 주인공과 그 여자 주인공의 사랑 얘기에 집중해서 읽었어요. ^^ 전 더 책을 집중해서 읽어야 할 듯 ㅋㅋㅋ
그리고 '최용준'이란 역자를 좋아하신다는 사실도 깨달음. 헤헤 근데 2010년에 어디다 쓰신 글이세용?

양철나무꾼 2011-04-26 01:05   좋아요 0 | URL
ㅎ,ㅎ...이렇게 이런 넷상에서 님과 제가 만난 건 우연이겠지만,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운명이 되고 하는 과정들은...그 누군가의 입장에선 아주 질서정연하고 과학적이란 거지요~

나름 재밌죠?^^(막 강요하고 있다,ㅋ~.)

루쉰P 2011-04-29 10:50   좋아요 0 | URL
음 읽다보니 논리적이네요. 강요 당했음.

양철나무꾼 2011-04-30 01:10   좋아요 0 | URL
음~
논리적인 건 설득이고, 강요당했음 폭력행사인데 말이죠.

저 평화를 사랑해요, 폭력행사는 지극히 자제하는데~^^

버벌 2011-04-26 02:2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리뷰는 읽지 말아야 해요. ...... 서점 다녀 올게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1-04-28 12:24   좋아요 0 | URL
님의 글들도 심히 구매를 부추기던걸요~^^

이 책, 난해하지만 '쫌'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열손가락 안에 들어요.

첫눈 2011-04-26 12:47   좋아요 0 | URL
저도 복선들이 깔려있다가 나중에 꿰어맞춰지는 글을 좋아해요.
정말 읽어보고 싶어지는 리뷰네요
저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
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4-28 12: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복선이 사건이어도 좋고...사물이나 하나의 단어여도 좋고 말이죠.
그런게 장르소설을 읽는 묘미 아닐까요?^^

감은빛 2011-04-28 11:08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읽기 전에 버벌님의 댓글을 먼저 읽어버렸어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저는 이 리뷰를 안 읽을래요! ^^

양철나무꾼 2011-04-28 12:2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죄송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저와 다른 책들로도 심히 겹치는 님이시라면, 언젠간 분명히 만나실거라 호언장담합니다여~^^

아이리시스 2011-05-03 22:34   좋아요 0 | URL
유령이 썼구나.. 저 요즘 신나게 <49일> 보면서 유령 아니 영혼에 대해 곤히 생각해봤는데, 저는 지금 영혼인가 봐요. 내가 나처럼 안보이고, 책이 책처럼 안보이고, 남들도 나를 몰라주고, 눈팅만 하고, 듣기만 하다가 이제야 드디어 정신이 돌아와서 몸을 빌려서 씁니다,ㅋㅋㅋ

양철나무꾼 2011-05-04 01:13   좋아요 0 | URL
우와~ 아이리시스님이당~^^
ㅋ,ㅋ,ㅋ...이요원이 왕 예쁘게 나오는 그 드라마 말이죠?
이요원은 어쩜 저렇게 예쁠까, 이요원은 어쩜 저렇게 동안일까...
맨날 배 아파하고 있습니다~

영혼은 지켜보는 거 말고는, 염원하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빨리 아이리시스님 몸으로 복귀하세요~^^

2011-05-04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