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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이 남긴 조선 엄마의 레시피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월
평점 :
한 작가에게 필이 꽂히면 그 작가의 다른 책들을 두루 섭렵한다.
보통은 내가 필이 꽂히게 만든 그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응당 치러야 할 대가쯤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들이는 편이다.
이렇게 서론이 긴 이유는,
내가 필이 꽂히게 만든 그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좀 빠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김서령 님은 '이야기가 있는 집'으로 처음 만났었다.
'김서령의 家', '참외는 참 외롭다' 따위를 읽었던 것 같고,
'여자전'은 좀 묵직한 주제여서 내가 코멘트할 수 있는 깜냥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황홀했다.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보고, 눈으로 먹는건데도 몹시 황홀했다.
내가 좋아하는 박찬일이나 권여선의 '오늘 뭐 먹지?'를 닮은 듯 하면서도 한결 웅숭깊다.
백석의 글들이 적재적소에 인용되는 것도 훌륭했다.
이렇게 야물딱지면서도 단아한 문장이라니.
더 이상 이런 글들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못내 아쉽다.
그동안의 것이라도 곁에 두고 복기하는 수밖에.
그렇지만 엄마에겐 실감나지 않았고 다만 강과 물과 바람과 갓 모가 심긴 들판과 논물 위에 내려와 앉은 복사꽃 이파리가 좋아 신행길이 좋았다. 시조모와 시조부, 홀로 된 시어머니와 어린 시동생 둘, 그들의 음식 수발과 옷 수발과 한 해 열세 번이나 지낼 제사를 홀로 감당해야 할 운명을 목전에 두고서도 엄마는 공중에 휘날리는 복사꽃 이파리가 좋아 그 순간 생에 감사했다. 천지가 이토록 고우니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71쪽)
봄이 오는데,
천변에 꽃들이 흐드러질텐데,
바깥의 날씨가 화창하면 화창할수록 실은 내 마음은 지랄맞았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고마워 하는 마음이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터,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애써 다스려볼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