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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하여야 할까, 때론 감정이 양가적인데,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얼굴을 반쯤 가리는 커다란 선그라스를 끼고 일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람들이 내감정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서 신호등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단추를 가슴에 붙이고 일하고 싶기도 하다.
운전할 때 사람 말소리가 들리면 짜증이 난다. 그 말소리에 자꾸 끌려 들어간다. 무시하고 운전에 집중하면 좋겠는데 잘 안 된다. 더군다나 버스는 철판으로 둘려 있어 소리가 울리면서 증폭된다.(156쪽)
이 말을 내 식대로 바꾸자면,
환자를 치료할때, 하다못해 침을 꽂거나 매뉴얼을 할 때 말소리가 들리면 짜증이 난다.
게다가 당신의 몸을 만지고 있는데 큰소리로 전화 통화를 해버리면 대책이 없다.
이럴 경우 손 놓고 전화 통화를 끝내시면 말씀 하시라고 하면 대충 전화를 끊는 시늉이라도 하시는데,
심한 경우 '상관 없으니 그냥 하시라'고 하거나 '상관은 있으나 시간이 없으니 그냥 하시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엔 이 정도는 일도 아니어서 살살 구슬릴 줄 알았는데,
아들의 일이 있고 나서는 맘이 맘이 아닌고로 생각이 이리저리 널을 뛰기 일쑤이고,
그러다 보면 내 정신을 바짝 챙겨야 하기 때문에 누굴 구슬릴 여력이 없다.
나는 그냥 짜증만 내고 말았는데,
이 책의 저자 허혁 님은 분석까지 하신다.
모든 말소리가 다 짜증 나는 건 아니다. 개념 있게 조용조용 통화를 하면 기사의 귀가 딸려 들어갈 일도 없고 라디오 백색소음이 어느 정도 소리를 희석시켜주니까 신경이 안 쓰인다. 소리가 커도 '용건만 간단히'하면 문제가 없다. 어르신들의 투박한 말소리는 좀 길어져도 재미있을 때가 있다.
마음에 상처가 깊은 사람이 떨리는 목젖으로 큰 소리를 내어 말을 한다. 기사 역시 마음의 병이 깊어 승객 목소리에 화가 배어 있는 걸 금방 알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리라!(157쪽)
이쯤되면 나보다 윗질이어도 한참 윗질이다.
나를 찾아오는 이들이 어딘가는 아픈 환자들이란걸 알면서도 가끔 짜증이 나는데,
님은 그걸 분석하고 이해하려 들다니,
종교가 없으셔도 성불 하시고 복 받으실 게다.
정색을 하고 앉아 무게 잡고 읽을 책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설렁설렁 넘기며 읽기엔 아까운 책이다.
좀 늦게 이 책을 들여 읽게 됐지만,
이 책을 공들여 읽은 것은 아무래도,
있는 곳은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어르신들을 주로 대하는 것도,
사람과 보대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똑같은데,
체념하고 눌러앉기보다는,
나완 다르게 꾸준히 분석,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어서 나이가 들면 에고가 강해지기 때문에,
자신을 쉽게 바꾸려 들지 않는다.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서 상대방 보고 바뀌고 변하라고만 한다.
그런데 꾸준히 분석, 연구하고 이해하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말을 내뱉는 해법을 터득했다. 좋은 의도로 먼저 말을 꺼내면 어두운 동굴에서 막 나온 것처럼 상태가 바로 환해졌다.
"아직 젊고만 기어 올라온대요?"
"아이고 기사님, 칠십이 젊어요!"
옆에서 다른 아주머니 말씀이 "여자들 나이 먹으면 다 그리요."
다시 기사 말이 "안 그런 분도 많더만요."
방금 기어 올라온 아주머니 말씀이 "젊었을 때 일을 하도 많이 히서 그리요."(45쪽)
이건 여간한 내공이 아니다.
이런 반어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건, 말을 내뱉는 해법을 터득하는 건 '우연히' 이루어 질 수 있는 경지의 것이 아니다.
이런 반어법을 이해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도 일이지만,
상대에 맞춤한 적절한 반어법을 구사하는 것도 대단하다.
승객과의 관계를 가르는 본령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성장 과정이 어땠느냐이고 또 하나는 경력이 얼마나 됐느냐이다. 성장 과정이 원만하고 젊어 고생을 통해 속이 찬 동료는 입사 초기부터 별 무리 없이 승객을 잘 대한다. 그러나 일정 시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던 동료는 경력이 쌓여도 승객과 마찰이 있다. 보통은 처음 일이 년이나 이삼 년 동안 승객들 꼴을 못 봐 애를 먹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하는 수순을 밟는다.
내 경우도 '절대 진상'과 목소리 큰 전화질 빼고는 거의 적응을 마쳤는데 절대 진상을 조우하게 되는 것은 내 뜻이 아니고 운명인지라 민원을 감수하면 되고, 목소리 큰 전화질은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남은 과제다. 경력이 오래되고 성장 과정이 무난해 보이는 형님에게 도대체 큰 소리로 전화질하는 연놈들을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하면 오히려 나를 나무란다.
"자네가 신경이 좀 예민헌 편이고만."(153쪽)
명상치료를 하면서 내가 나한테 속고 살았음을 알았다. 신념이니 자유 의지니 하는 것들이 뇌과학 앞에서는 모두 소설이었다. 화가 나 있는 상태이기도 한 높은 베타파가 습관화되어 내 삶을 끌어왔던 것이고, 그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다른 사람과 대비되는 나만의 매력인 줄 알고 살았는데 그냥 울화병 환자였다.(47쪽)
위 문단은 많은걸 내포하고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울화병 환자여서 명상치료를 받았다' 정도가 되겠지만,
조금만 깊숙히 들어가보면 내가 내자신을 '속이고' 살았다 정도로, '세뇌시키고 위장하다' 정도로 대치될 수 있겠다.
팽팽하게 긴장하여 내려놓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이렇게 팽팽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명상치료까지 했다는 것이 대견하기(?)까지 하다.
예민하거나 날카로운건 살이가면서 마모되거나 둥글리면 되지만,
팽팽한 것은 툭 끊어져 버리면 다시 묶을 수도 없고,
억지로 묶는다고 하여도 더 팽팽해져서 언제 끊길지 모르니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셈이다.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그래."
운전을 생업으로 하면 사고를 피할 수 없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닐 때 우리는 기도를 한다. 오늘도 무사히는 운전 기사들의 겸허한 신앙고백이다. 나와 내 가족 먹고사는 일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문이다.
위태로운 생계의 다리, 양화대교 위에서 큰 아픔에 처한 동료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49쪽)
책에선 정말 열심히 살아야, 겨우 살아진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나름 노력을 해도 안되는 일이 있을때는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단다.
삶이란 그러고보면 자연이 실력을 행사하는 바,
내 의지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의 연속이니까 말이다.
이걸 저자 허혁은 '산다는 건 리듬을 타는 일(79쪽)' 또는 '움직이는 모든 사물의 배후에는 리듬이 있다.(112쪽)'고 얘기한다.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거나,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묘한 전체 구조를 만든다'는 '프랙탈'을 얘기할 법도 하다.
그러니 세상을 살다가 일이 내 뜻이나 의지대로 되지않는다 싶을 때는,
삶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조하다가 리듬을 집어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허혁 님은 버스를 운전하면서 그 리듬을 집어탔을 것이나,
아직 나는 어리석어 그 리듬을 알아채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그렇게 읽어가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다.
이런 문장을 만나면 그 리듬에서 잠시 내려 멈춰서서 음미하여도 좋으리라.
중년의 봄은 애도의 봄인 듯하다. 생의 중심에서 아직 어린 마음이 어른 노릇 하기가 쉽지 않다. 몇 번 보지도 못했는데 마당의 매화나무에 꽃이 다 져 있다. 눈물을 콕콕 찍으며 집을 떠나는 어머니 뒤로 어머니의 다섯 평 텃밭이 더욱 작아 보였다.(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