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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은 재미있다.
역시 데니스 루헤인이라며 믿고 볼 만하다.
하지만 번역이 많이 아쉽다.
오타 작렬이고 비문 투성이여서, 문장이 껄끄러워 읽다보면 떨꺽떨꺽 걸리는 느낌이다.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이고 게다가 열린 결말이라,
그 후의 일들이 궁금하여 다음 권을 기대하게 되지만,
같은 역자가 번역한다면 '글쎄~(,.)'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난 데니스 루헤인의 이런 문장들을 좋아한다.
나무는 대부분 헐벗었고, 하늘에는 태양이 없어 나무만큼이나 텅 비어 있었다.(117쪽)
문장이 섬세하고 감성을 잘 대변해주지만,
그냥 감성에 젖는 것은 아니고 사건을 암시한다.
게다가 이번 책은 여성 화자라 감정이입 하기가 더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중 프롤로그를 힘주어 읽은 사람들은,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5월의 어느 화요일, 레이철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었다.(7쪽)
이라는 첫 문장이 각인되어 레이철의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죽었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던데,
레이철의 남편 브라이언은 (이 책 속에서는 적어도) 죽지 않았다.
총으로 쏘아 죽였는데 왜 죽지않았는지,
사기꾼, 살인, 탐욕, 복수로 가득 찬 범죄 소설인데,
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작품의 핵심인지는,
이 책을 끝까지 꼼꼼이 읽어야 짐작할 수 있다.
나처럼 '둘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따위의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석연찮은 결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니스 루헤인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것만으로는 별점을 꽉꽉 눌러채워도 부족함이 없지만,
번역이나 말이 안되는 문장 때문에 별 하나를 뺐다.
레이철과 브라이언이 어떤 삶을 살든지,
삶의 한 과정으로서 밤이나 어둠을 선택하든지 간에,
그들의 삶 또는 죽음을 응원한다.
원제는 'since we fell'이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로 번역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우리가 추락한 이후'로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난 그들이 '추락한 이유'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추락한 이후'에 어떻게 될 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렇게 되면 권선징악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신파가 되려나?
자신의 존재, 뿌리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위선이나 거짓을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을지,
용납할 수 있을 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