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감사할 일이다.
한창훈의 소설을 읽었다.
그의 산문집 몇권을 읽었는데, 그게 좋아서,
소설도 그 연장선 상이겠지 생각하고 읽었다.
한창훈이니까 쓸 수 있는, 한창훈의 느낌이 배어있는 소설이긴 하지만,
독특한 설정이긴 하지만,
내용도 그렇다고는 못 하겠다.
약간 신파조로 흐르나 싶었는데, 순애보적인 사랑이 등장하는,
그렇다고 달달한 구석은 1도 없는(?) 그런 책이었다.
네가 이 별을 떠날 때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주변에 가까운 사람을 잃거나 먼저 보내버린 사람이 읽으면 공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
숨어있기 좋은 방 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한창훈의 글들을 읽으며 느낀 것은,
'홍합'은 읽었으나 기억이 없고, 다른 것들은 읽었는지조차 기억에 없는고로,
그의 소설에 대해 이렇다 얘기할 것은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도 경험이 묻어나는 글들이라는 거다.
그래서 '어린왕자'가 나오고 '생아저씨'가 나와도 현실의 일처럼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
밤낚시란 지루한 행위다.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름다운 별들과 별빛을 반사하며 출렁이는 바다, 허공을 지나가는 등대 불빛이 아른답다고 생각할 테니까. 물론 아름답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날마다 그 자리에 있다. 우리는 돌아보면 늘 있는 것에게는 아름답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35쪽)
나는 "우리는 돌아보면 늘 있는 것에게는 아름답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엔 격하게 반대를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있어야 할게 제 자리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뭐~(,.)
책을 읽다가 놀라운 발견- 문학동네 책에서 오타를 발견할 줄이야, ㅋㅋ
이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였던 부분은 다음이었다.
"제가 그리워하는 것은 집사람이 아니라 체온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익숙한 체온. 어쩌면 우리는 그런 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며 속고 사는 것 같아요."
"ㆍㆍㆍㆍㆍㆍ"(104쪽)
아이는 게속 침묵했다. 또다시 자신의 별을 떠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집으로 갈 수 없는 나그네는 처량맞은 신세가 되기 마련이다. 나도 얼마나 오랫동안 집을 그리워했던가. 침묵을 못 견디는 쪽은 나였다.
"우리 지구에서는."
목이 잠긴 탓에 가벼운 기침을 두어 번 한 다음 말을 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는데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서 아름다운 별이 된다고 해. 그래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표현하지."
"ㆍㆍㆍㆍㆍㆍ"(121쪽)
이런 구절은 요즘 나의 현실과 맞물려 위로가 되었다.
위 책은 그런 의미에서 다 괜찮다고 등 두드려주는 느낌이었다면,
아플때일수록 꼿꼿하게 나를 다잡아 세우라는 정반대 느낌의 책도 있었다.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한창훈의 소설을 읽는 중간에 겹쳐 읽었던 '아침의 피아노'였다.
한창훈의 소설은 감정 이입하며 읽다보면 흠뻑 빠져 들어 힘들었다면,
'아침의 피아노'는 아주 짧은 것이 감정이라곤 들어 있지 않을 정도로 담담한데,
때론 그 담담함에 목이 매여와서,
오랫동안 숨고르기를 해야만 했다.
아주 오랫동안 꼬장꼬장하게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정갈한 가르침을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새로 주문하여 대기중인 책으로
상검루수필, 블레이크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우리가 추락하는 이유가 있는데,
삼검루수필
백검당주.양우생.김용 지음, 이승수 외 옮김 /
태학사 / 2018년 4월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영미 옮김 /
창비 / 2010년 8월
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이런 주문했던 책들을 쟁이자마자 박균호 님의 새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단 주문을 넣어놨는데, 12월4일 수령예상이다.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
박균호 지음 / 지상의책 /
2018년 12월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읽기는 싫은데 왜 읽는지는 궁금하고 다 읽을 시간은 없는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부제 또한 재치 발랄하다.
그의 글쓰기를 일컬어 '유머러스하고 독특한 글쓰기'라고 한다는데,
그의 전작들을 읽은 나로서는 요번 작품도 기대된다.
추천 글을 보면 박상률 님이,
나무가 뿌리박혀 있는 땅속에는 지하수가 흐른다. 지하수는 땅속으로만 흐르기에 보이지 않지만 나무를 자라게 한다. 책도 그런 것 아닐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자라게 하는……. 그게 고전이다.
라고 하셨다는데,
내게도 '고전' 이란 그런 것 같다.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의 부제를 내 맘대로 패러디해보자면,
'읽고는 싶은데 왜 읽는지는 궁금하지 않고, 시간은 널널한데 다 읽기는 싫은 청장년을 위한' 정도가 되겠다.
이쯤 되면 책이 손에 닿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