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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권여선의 '오늘 뭐 먹지?'라는 산문집이 너무 좋았어서, 아무 망설임 없이 구입하였지만,
내처 읽을 수는 없었다.
소설집의 제목이 '안녕 주정뱅이'여서 책을 펼치자마자 '안녕 주정뱅이'라는 소설을 찾았는데, 그런 제목의 소설은 없었다.
곳곳에 주정뱅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알콜리즘에 가까운) 주정뱅이들이 등장한다.
기뻐서 마시는 건배의 술까지는 아니어도 '오늘 뭐먹지'에 나오는 류의 경쾌한 내용들을 기대했었는데,
고통을 달래고 아픔을 잊기 위하여,
(이런 말들도 사치인것 같고,)
생각을 안 하고 통증을 마취시키기 위하여,
거기다가 기억을 잊기 위하여 술이 등장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의 상실과 결핍 때문에 몸서리를 쳤다.
'오늘 뭐 먹지?'에 등장하는 사람과 안주들은 가볍고 경쾌하며 유머러스하기까지 한데,
이 책 '안녕 주정뱅이'에 등장하는 이들은 이다지도 어둡고 침잠하려드는 것인지,
내용이 재미없거나 글을 못 썼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지만,
이런 줄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글을 읽다가 어둠에 물들거나 침잠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단편 소설 하나 하나 마음이 아파서 힘들게 읽었다.
우선 '봄밤'에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류머티스 관절염이 쇳독이 올라서 병이 난거라고 하는 설정도 그랬지만,
여성에게서 남성의 3배가 넘는 발병률을 보이는데,
남자를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를 만들어놓고 급속히 악화시키는 설정이 개연성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관계의 온도에 대해서 생각했다.
관계의 온도가 공평하고 적절한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인연은 우리 주변에서 한단계만 걸치면 눈에 띄지 않는 관계가 되어 악연으로 뒤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나 만남은 하염없고 속수무책이다.
그런 걸 알게 되니,
오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갖거나 개입을 할일도 아니지 싶다.
어찌 어찌 읽었지만,
이런 어둠이나 슬픔 속으로 침잠하는 건 싫다.
훌훌 떨고 일어나시길,
그리하여 권여선 님의 다음 소설들은 적당히 경쾌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