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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ㅣ 킬러 시리즈 2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평점 :
초고속 열차 신칸센 '하야테'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추격전, <마리아비틀>을 읽었다.
예전에 <마리아비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책은 두껍고 열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하여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드랬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사카 고타로님의 이 무시무시한 걸작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지만 말이다.
열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긴장과 재미는 최고였다. 이 두꺼운 책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기무라 유이치'는 모리오카행 신칸센 '하야테' 7호차로 간다. 자신의 여섯 살 난 어린 아들 '와타루'를 백화점 옥상에서 밀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한 장본인 '오우지 사토시(일명 '왕자')'를 처단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는 '오우지 사토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에게 잡혀 버리고 만다. 왕자는 와타루의 목숨을 빌미로 유이치를 자신의 마음대로 이용하려고 한다.
'왕자'는 겉으로는 열네 살의 모범적이고 예의바른 중학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학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똑똑하고 사람을 조종하는 데 능한 악의 화신이자 악의 결정체이다.
- p. 357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힘에 조종당하는 게 재밌어. 자기변호나 정당화의 덫에 걸려들고, 타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은 자연스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게 즐거워.
내가 그걸 조종할 수 있다면 최고지. 안 그래? 르완다 학살이든 정체로 인한 교통사로든, 나도 잘만 하면 만들어낼 수 있다니까.
한편, 이 열차에는 잔인한 고리대금업자 '미네시기 요시오'의 아들을 구해 데려가는 킬러 '밀감'과 '레몬'도 타고 있었다. 진지하고 소설을 즐겨 읽는 밀감과 엉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레몬은 미네시기 요시오의 아들 도련님과 그의 몸값으로 가져간 트렁크를 다시 전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레몬이 돈이 든 트렁크를 열차 칸 사이의 짐 넣는 선반에 두었고 그걸 둘이 가지러 간 사이에 도련님이 죽고 만다. 트렁크도 잃어버리고 도련님도 죽어버린 이 난감한 상황...
소심하고 착하게 생긴, 그러나 위급상황에서의 판단이 누구보다 빠른 킬러 '무당벌레' 나나오도 이 열차에 올라탄다. 나나오의 임무는, 밀감과 레몬이 가진 트렁크를 들고 우에노역에서 내리는 것. 무척이나 간단한 임무같지만 불운의 아이콘, 불운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지독하게 운이 없는 사나이 '나나오'는 그걸 못하고 만다. 우에노 역에서 내리려던 때에 문 앞 플랫폼에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킬러 '늑대'를 마주치게 되고 그와 몸싸움을 하는 도중 의도치 않게 늑대를 죽이고 만다.
- p. 193
내가 항상 머뭇거리는 이유는 소심하거나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야. 경험상 알아서 그래. 내 인생은 지독히도 운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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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의도치 않게 초고속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각자 위기상황을 맞이한다. 위 중심 킬러(?)들의 시선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들의 대화 속에 등장한 전설의 킬러(?)인 듯한 이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 열차 진짜 이상하다!!! 무서운 킬러들이 가득 타고 있다!!!
각각의 캐릭터는 무척 개성이 넘친다. 기무라 유이치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알콜중독증세에 허덕이지만,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 몹쓸 일을 당하자 그는 그 좋아하는 술을 끊고 복수에 나선다. 물론 너무 단순한 계획이라 똑똑하고 교활한 왕자에게 간파당하고 오히려 잡혀 버렸지만 말이다.
소심한 나나오는 너무 하는 일마다 꼬여버려 안타깝기도 했지만, 책의 뒷부분에선 그를 사랑하는 불운의 여신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말할 때마다 꼬마 기관차 토머스와 관련된 말을 쏟아내는 조금은 특이해 보이는 레몬도, 그의 파트너이자 진지하게 문학 소설을 인용하는 밀감도 무서운 킬러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그리고 무시무시하고 믿고 싶지 않은 캐릭터 '왕자'가 있다.
하얗고 말간 얼굴로 우등생의 가면을 쓴 왕자는 자신의 의도대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죽음으로 몰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면에 속고, 기무라 유이치 역시 중학생일 뿐이라고 그를 저평가했기에 복수는 단 1도 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하는 말은 또 시시콜콜 얼마나 똑똑한지... 중학생인데 이 정도라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역시도 왕자가 본다면 속이기 쉬운 상대라고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 p. 253
물건을 훔치거나 남을 때리거나 하는 인간에게는 법률이 가능하다. 법조문에 적용해 벌을 주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훨씬 애매모호한 악의는 간단치가 않다. 법률은 효력이 없다.
중학생인 왕자의 마음 안에 깃든 어머어마한 악의와 잔인함이 놀라우면서도 무섭고 끔찍했다. 정말 끔찍하고 대단한 캐릭터였다. 킬러들조차 그의 가면에 속거나 혹은 가면이라는 걸 알면서도 중학생이라는 것에 현혹되어 그에게 기회를 줬다. 행운이 늘 자신에게 깃든다고 믿는 왕자는 그렇게 위기의 순간을 몇 번이고 넘긴다.
그러나 역시, 노익장의 연륜있는 그분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분들의 정체는 책으로 확인해 보시길... ^^
킬러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긴장감과 재미를 듬뿍 안겨줬다. 그리고 재미뿐만 아니라 왕자로 대변되는 '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이사카 고타로!! 역시 엄치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