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킬러 시리즈 2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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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열차 신칸센 '하야테'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추격전, <마리아비틀>을 읽었다.

예전에 <마리아비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책은 두껍고 열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하여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드랬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사카 고타로님의 이 무시무시한 걸작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지만 말이다.

열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긴장과 재미는 최고였다. 이 두꺼운 책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기무라 유이치'는 모리오카행 신칸센 '하야테' 7호차로 간다. 자신의 여섯 살 난 어린 아들 '와타루'를 백화점 옥상에서 밀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한 장본인 '오우지 사토시(일명 '왕자')'를 처단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는 '오우지 사토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에게 잡혀 버리고 만다. 왕자는 와타루의 목숨을 빌미로 유이치를 자신의 마음대로 이용하려고 한다.

'왕자'는 겉으로는 열네 살의 모범적이고 예의바른 중학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학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똑똑하고 사람을 조종하는 데 능한 악의 화신이자 악의 결정체이다.

- p. 357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힘에 조종당하는 게 재밌어. 자기변호나 정당화의 덫에 걸려들고, 타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은 자연스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게 즐거워.

내가 그걸 조종할 수 있다면 최고지. 안 그래? 르완다 학살이든 정체로 인한 교통사로든, 나도 잘만 하면 만들어낼 수 있다니까.

한편, 이 열차에는 잔인한 고리대금업자 '미네시기 요시오'의 아들을 구해 데려가는 킬러 '밀감'과 '레몬'도 타고 있었다. 진지하고 소설을 즐겨 읽는 밀감과 엉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레몬은 미네시기 요시오의 아들 도련님과 그의 몸값으로 가져간 트렁크를 다시 전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레몬이 돈이 든 트렁크를 열차 칸 사이의 짐 넣는 선반에 두었고 그걸 둘이 가지러 간 사이에 도련님이 죽고 만다. 트렁크도 잃어버리고 도련님도 죽어버린 이 난감한 상황...

소심하고 착하게 생긴, 그러나 위급상황에서의 판단이 누구보다 빠른 킬러 '무당벌레' 나나오도 이 열차에 올라탄다. 나나오의 임무는, 밀감과 레몬이 가진 트렁크를 들고 우에노역에서 내리는 것. 무척이나 간단한 임무같지만 불운의 아이콘, 불운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지독하게 운이 없는 사나이 '나나오'는 그걸 못하고 만다. 우에노 역에서 내리려던 때에 문 앞 플랫폼에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킬러 '늑대'를 마주치게 되고 그와 몸싸움을 하는 도중 의도치 않게 늑대를 죽이고 만다.

- p. 193

내가 항상 머뭇거리는 이유는 소심하거나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야. 경험상 알아서 그래. 내 인생은 지독히도 운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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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의도치 않게 초고속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각자 위기상황을 맞이한다. 위 중심 킬러(?)들의 시선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들의 대화 속에 등장한 전설의 킬러(?)인 듯한 이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 열차 진짜 이상하다!!! 무서운 킬러들이 가득 타고 있다!!!

각각의 캐릭터는 무척 개성이 넘친다. 기무라 유이치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알콜중독증세에 허덕이지만,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 몹쓸 일을 당하자 그는 그 좋아하는 술을 끊고 복수에 나선다. 물론 너무 단순한 계획이라 똑똑하고 교활한 왕자에게 간파당하고 오히려 잡혀 버렸지만 말이다.

소심한 나나오는 너무 하는 일마다 꼬여버려 안타깝기도 했지만, 책의 뒷부분에선 그를 사랑하는 불운의 여신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말할 때마다 꼬마 기관차 토머스와 관련된 말을 쏟아내는 조금은 특이해 보이는 레몬도, 그의 파트너이자 진지하게 문학 소설을 인용하는 밀감도 무서운 킬러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그리고 무시무시하고 믿고 싶지 않은 캐릭터 '왕자'가 있다.

하얗고 말간 얼굴로 우등생의 가면을 쓴 왕자는 자신의 의도대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죽음으로 몰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면에 속고, 기무라 유이치 역시 중학생일 뿐이라고 그를 저평가했기에 복수는 단 1도 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하는 말은 또 시시콜콜 얼마나 똑똑한지... 중학생인데 이 정도라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역시도 왕자가 본다면 속이기 쉬운 상대라고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 p. 253

물건을 훔치거나 남을 때리거나 하는 인간에게는 법률이 가능하다. 법조문에 적용해 벌을 주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훨씬 애매모호한 악의는 간단치가 않다. 법률은 효력이 없다.

중학생인 왕자의 마음 안에 깃든 어머어마한 악의와 잔인함이 놀라우면서도 무섭고 끔찍했다. 정말 끔찍하고 대단한 캐릭터였다. 킬러들조차 그의 가면에 속거나 혹은 가면이라는 걸 알면서도 중학생이라는 것에 현혹되어 그에게 기회를 줬다. 행운이 늘 자신에게 깃든다고 믿는 왕자는 그렇게 위기의 순간을 몇 번이고 넘긴다.

그러나 역시, 노익장의 연륜있는 그분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분들의 정체는 책으로 확인해 보시길... ^^

킬러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긴장감과 재미를 듬뿍 안겨줬다. 그리고 재미뿐만 아니라 왕자로 대변되는 '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이사카 고타로!! 역시 엄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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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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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자주 출간되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었지만, 요즘에는 예전 작품들이 개정되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분명 예전에 읽고 접했던 책들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소설은 큰 재미와 치밀한 트릭과 생각할 여지까지 줘서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이번 <교통경찰의 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미스터리 소설로 그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문예지에 연재한 것을 1992년에 한 권으로 묶어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고라고 하면 아마 교통사고일 것이다. 내가 안전운전을 하고 교통 법규를 잘 지킨다고 해서 교통사고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보통의 사람은 언제나 교통사고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에는 교통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자주 보고 접할 수 있는 사고들이지만, 그낭 지나칠 수가 없는 건 그 안에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사의 귀]

사거리에서 승용차끼리 충돌한 사건이 발생했고, 외제차의 운전자 및 동승자는 거의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경차의 운전자는 병원으로 호송되었으나 결국 사망하고 경상을 입은 동승자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서로 상대방이 신호위반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시각장애인인 소녀는 놀랄 만한 청력으로 상대방이 신호위반을 한 것임을 증명해 낸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 '천사의 귀'는 진실이었을까?

[중앙분리대]

트럭이 중앙분리대를 넘는 사고가 발생하고 운전자는 사망한다. 운전자의 부인은 운전자가 평소 조심성이 많고 그동안 무사고였다고 사고의 원인을 밝혀 달라고 한다.

교통법규의 허점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부인의 선택은?

[위험한 초보운전]

초보운전 차량에 대해 위협운전을 하던 남자, 그는 상대방이 자신의 위협운전으로 사고가 났지만 도와주지 않고 도망쳐 버린다. 그런데 그 후 그는 위협운전이 아닌 전혀 다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건너가세요]

애인의 집 근처에 무단주차해 둔 차량을 누군가 박고 지나갔다. 얼마 후 연락해 온 남자는 자신이 차량을 박았고 그것이 미안하니 자신의 별장에서 연휴를 보내라고 말한다. 이 남자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무단주차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이야기였다. (무단주차는 나빠요...!!!)

[버리지 말아 줘]

고속도로를 달리던 커플의 차 안으로 앞차에서 버린 커피 캔이 날아들고, 여자는 날아오는 캔에 눈을 맞아 결국 한 쪽 눈을 실명하게 된다. 경찰에서는 앞차 사람들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남자는 그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듯 했지만... 마지막 나쁜 놈들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걸 눈으로 확인해서 시원+통쾌했던 이야기였다.

[거울 속에서]

승용차와 스쿠터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운전자는 유명 회사에 소속된 마라톤 선수 출신 코치였다. 경찰은 사고 경위 및 상황에 대하여 듣지만 사고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은 그의 설명과는 달랐다. 이 사고에 얽힌 비밀은 무엇일까?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짧은 단편들이었지만, 그 안에 트릭과 반전,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미들이 다 들어 있었다.

거의 27년 전의 이야기이므로 세세하게 따지면 오늘날과 다른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이야기 속 사람들의 행태는 현재에도 비슷할 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죄의식 없이 무단횡단, 무단주차, 위협운전 등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놓고 위험이 너무 큰 교통사고를 유발하는원인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해... 정도로 가볍게 치부해 버리고 만다.

무단횡단쯤이야... 무단주차쯤이야... 저 차가 내 진로를 방해했으니 위협운전쯤이야... 이런 식으로 자기중심적으로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교통경찰의 밤>에 나오는 이 이야기들을 보면 그런 가벼운 생각과 대처가 누군가에게는 죽음으로 이어져 상처를 남긴다.   

 

아마 과거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차를 이용하고 있으니 교통사고는 결코 줄지는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금요일 퇴근시간이다. 어쩌면 오늘도 교통경찰의 밤은 길고 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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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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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가지 의혹도 하나의 증거는 될 수 없다.


-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중에서 -


책을 다 읽은 후에 잠시 멍해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중간중간 받기는 했지만, 이건 정말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었다.

'이치로이 고즈에'는 1997년 11월 6일 밤에 괴한의 침입을 받아 죽을 뻔 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범인에게 타격을 입혔고 살아났다. 괴한은 도망쳤고 경찰들은 주변을 탐문했지만 범인을 찾지는 못했다.

고즈에의 증언과 범인이 떨어뜨린 학생수첩을 근거로 범인은 고등학생인 '구츠와 기미히코'로 밝혀지지만, 그는 이미 사건 발생 전인 2월 15일부터 가출 혹은 실종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학생수첩에 적혀 있던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수첩에는 고즈에를 포함한 4명의 이름, 나이, 직업, 연락처 등과 함께 살인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 발생했던 살인사건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의자인 구츠와 기미히코의 행방을 전혀 알 수 없는 가운데 사건은 해결되지 못한 채 4년이 흘렀다.

그리고 2001년 12월 31일, 고즈에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 미스터리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교류 겸 스터디를 위한 모임인 '연미회' 사람들 5명이 모인다.

사실 고즈에가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범행 동기였다. 자신은 구츠와 기미히코와 일면식도 없었기에 왜 타깃이 되어야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범인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 범인에게 직접 그 동기를 들을 수는 없으므로 연미회 사람들의 추리에 기대를 품게 된다.

이 날 모인 연미회 사람들은 미스터리 작가, 사립 탐정을 하는 전직 경찰, 범죄 심리학자 등이었는데, 유명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어 고즈에는 이번에야말로 동기를 알 수 있으리란 큰 기대를 갖는다.

각 탐정(멤버)들은 사건 자료 혹은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근거로 자기만의 추리를 펼친다. 누군가의 추리쇼가 끝나갈 즈음엔 기존의 추리를 뒤집는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또다른 누군가의 추리쇼가 시작된다.

고즈에의 입장에서 그들의 추리는 저런 부분까지 생각을 하다니, 라며 놀라는 부분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우연에 의지해서, 또는 약간의 억지를 붙여 추리쇼를 펼친다.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있는 탐정은 사소한 우연에 의지하지 않고 작은 빈틈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인과관계를 따지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범인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이었다. 사실 책을 읽다가 몇 차례 위화감을 주는 문장들을 느꼈는데, 그래도 이런 결말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친구 뭔가 이상하다, 싶은 그런 기분은 분명 느꼈는데 말이다.

요즘 세상에는 동기도 이유도 공감이 가지 않는 사건들이 많다. 이 책 역시 그런 의미에서 범인(들)의 살해 동기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범죄들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기에 그저 소설 속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다. 

 

다 읽고 나니, 무섭고 끔찍한 제목 <끝없는 살인>의 의미가 크게 와 닿는다. 아직은 끝난 게 아니야... 란 섬뜩함을 던져주는 제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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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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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상품화한 여행 상품을 파는 '정글'에서 여행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요나',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일하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직장에서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위치를 잃은 퇴물들만 성추행 대상으로 삼던 상사 '김'이 그녀를 노골적으로 성추행하고 기획업무에서 빼고 신입들이 할 만한 허드렛일을 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근무해 온 회사에서 더 버티려 했지만 지쳐버린 요나는 사표를 내고, 김은 휴가 처리를 해 주겠다며 회사에서 검토중인 여행 상품 중 하나를 다녀와 머리도 식히고 상품의 존폐여부도 결정하라고 한다.

그렇게 요나는 '사막의 싱크홀'이라는 상품을 선택하고 '무이'라는 섬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무이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던 날, 요나는 전날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로 기차의 다른 칸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고 그 사이 기차의 칸이 분리되어 일행들과 떨어진다. 요나는 전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배터리마저 간당간당한 휴대폰으로 '폴'을 찾으라는 문자를 받고 여차여차해서 다시 원래의 무이로 돌아오게 된다.

직장에서의 성추행, 머리를 식히기 위해 떠난 여행 등 이야기의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이 어느 정도 나왔다고 여겼고, 그래서 그런 요나의 여행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아뿔사,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다.

본격적인 소설은 어쩌면 요나가 일행들로부터 이탈해 다시 무이로 돌아와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무이의 유일한 리조트인 '벨에포크'의 매니저는 요나에게 리조트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요나는 외출했고 일행들과 여행자로서 보냈을 때와는 다른 마을의 모습을 하나하나 발견한다. 거기다 트럭이 사람을 치고, 다시 밟고 가는 모습을 목격한 요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요나가 정글 여행사의 직원인 것을 알게 된 매니저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재난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떨어진 무이를 다시 재난의 한가운데에 두어 새로운 재난 여행지로 만드는 것.

재난이라는 건 그냥 찾아오는 것이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보통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 재난을, 싱크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피해자를 만들고, 그 안에 감동적인 스토리를 입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

- p. 122

재난은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발밑이 갑자기 폭삭 무너지는 것처럼 우연이라기엔 억울하고 운명이라기엔 서글픈, 그런 일.

그런데 그런 일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 p. 129

진짜 재난이 뭔 줄 아십니까?

바로 재난 이후의 상황입니다. 그때 삶과 죽음이 또 한 번 갈라니까요.

재난 이후에 올 진짜 재난에서 최대한 무이를 살리는 것, 그게 고요나 씨의 몫입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타인들에게 더 감명을 주기 위한 재난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그 재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여행 프로그램을 짜고, 누군가는 인위적 재난을 위한 피해자들을 트럭으로 치어 죽인다.

재난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불필요한, 쓸모없는 주민들은 시나리오에서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남자1 혹은 여자1, 대사조차 없는 악어1 등으로 불리며 계획된 재난의 날에 던져진다.

다행이랄까(사실은 다행은 아니지만),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위장된 재난을 만들려던 그들의 계획은 거대한 자연의 힘, 진짜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는 없다.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직장 내 문제와 휴식을 위한 여행에서 시작된 요나의 무이에서의 생활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타인의 재난을 대하는 보통의 사람들의 심리에 약간은 뜨끔했고, 거대한 재난 프로젝트를 계획하며 많은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극악한 이기심에 놀랐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결국은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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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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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과 매기의 사랑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일반의, 상식의 눈으로 그들을 간단히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해도 되는 걸까?

프라이빗한 사랑이라도 세상에 당당하게 '쇼잉'할 수 없는 그들의 연애는, 왜 이리 애잔하고 먹먹한 마음이 드는 걸까...

- p. 60

매기와 나와의 관계에서 선택이란 가능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빗물처럼 손바닥을 적시듯 매기가 내 인생으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는.

재훈과 매기는 대학 시절 연인이었으나 재훈이 군대를 간 이후 헤어지게 되었고, 14년 정도가 지난 이후에 재회하게 된다.

이미 결혼을 해서 남편과 아이가 있는 매기와 재훈은 다시 육체 관계를 가지는 사이가 되고, 재연배우인 매기는 육지로 촬영을 올 때마다 재훈의 방에서 묵고 간다.

혹여나 재연배우인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 매기는 밖을 다닐 땐 재훈과 거리를 두고 걷고, 당당하게 자신의 연애와 사랑을 드러내고 싶은 재훈은 그런 매기가 야속하고 서운하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유지되는 듯 하다 거리를 두고, 또 유지되는 듯 하다 결국엔 끝을 맺는다.

사실은 소설의 줄거리를 어떻게 써야할 지 잘 모르겠다.

재훈은 대학에서 매기를 만나 친해지고 사귀게 된 상황, 그 뒤 매기와의 연애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끄집어낸다. 그러나 정당한(어찌되었든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이고, 재훈과 매기마저 당당하지 못한 연애였으므로) 연애가 아니다보니, 그들 사이의 에피소드는 사랑의 무한한 행복이나 기쁨을 보여주기보다는 조금 먹먹하다.

재훈이 세 들어 살던 2층집에서 사랑을 나눌 때 풍기는 1층 레이디치킨의 기름냄새, 여의도의 유명한 복집에서 정작 매기와 매기의 친구가 회덮밥을 먹었던 이유, 문자나 연락처 등을 정식 이름으로 기재할 수 없어 만든 '매기'라는 별명, 재훈이 '매기'라는 별명을 그녀에게 지어준 순대국밥집 등등 흔한 맛집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연애를 마음껏 드러내고 즐기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결국은 이렇게 끝이 날 연애가 아니었을까...

책을 읽어가면서도 이들의 연애가 끝끝내는 행복해지겠지, 라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 p. 112

나는 우리가 자꾸 어긋나고 상대를 향한 모멸의 흔적을 남기게 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매기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것은 시작과 동시에 숙명처럼 가져갈 수밖에 없었던 슬픔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덜 사랑하거나 더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서로에게 생채기만 낸 것 같은 아픈 사랑이었지만,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사랑한 행위가 스스로를 예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면... 어쩌면 재훈과 매기에게 있어 함께 한 사랑의 추억은 오래도록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만 같다.

- p. 124

어쩔 수 없이 손가락들이 스쳤다. 나는 그것을 주고받았을 때의 느낌을 아마 긴 시간이 흘러도, 어쩌면 매기와 관련한 기억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로 가져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디에도 미뤄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매기에게도 정권에게도 이 세상이나 어느 사랑에게도.

아무리 동산 수풀은 사라지고 장미꽃은 피어 만발하더라도, 모두 옛날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시간이 지나 나의 사랑, 매기가 백발이 다 된 이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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