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3개월 8일              1937년 1월 18일 월요일

 잠들 때 내가 좋아하는 놀이가 있다. 또다시 잠드는 즐거움을 위해 잠에서 깨어나는 것. 잠이 들려는 순간 깨어나는 그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달콤하다! 잠드는 기술을 가르쳐준 건 아빠였다. 너 자신을 잘 살펴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근육이 풀리고, 머리 무게가 베개 위에 실리고, 이제 네가 생각하는 게 실은 생각되어지지도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되지. 마치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꿈꾸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야. 혹은 곧 잠에 떨어질 준비가 된 채로 벽 위를 균형 잡고 걸어가는 것 같다고 할까. 바로 그거야! 그러다 잠 쪽으로 기울어진다고 느껴지면 얼른 머리를 흔들면서 깨어나야 해. 그러곤 벽 위에 머물러 있어야지. 깨어 있는 몇 초 동안 스스로에게 이렇게 중얼거려봐. 난 다시 잠들 거다! 그건 황홀한 예감이지. 잠드는 즐거움을 한 번 더 즐기기 위해선 또다시 깨어나도 좋아. 흔들리기 시작하면 널 꼬집어도 돼. 가능한 한 자주 표면 위로 돌아오다가 마지막에야 비로소 잠 속으로 빠져드는 거야. 아빠는 잠드는 기술을 계속 속삭여주었고 난 열심히 들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아빠 덕분에 난 매일 저녁 잠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75세 1개월 28일             1998년 12월 8일 화요일

 티조가 죽기 며칠 전,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J,C에게 전화를 걸었다(티조의 친구들은 거의가 청소년기에 사귄 이들이다). 가장 친하다는 그 친구는 티조를 보러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늘 활기 넘쳤던' 티조의 이미지가 '깨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그래서 친구 홀로 임종을 맞게 하겠다, 이거지. 꽤나 섬세한 척하지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난 정신적인 친구들이 싫다. 그냥 살과 뼈만 있는 친구들이 좋다.

 

86세 9개월 8일                 2010년 7월 18일 일요일

 (…)한밤중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평범한 죽음을 맞고 싶다. 자다가 죽는 것. 평생 동안 잠든든 기술을 연마해온 자가 꿈꿔온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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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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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는 지난한 시간이 지난하지 않게 쌓이는 중. 언제나 뒤집어지는 작은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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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올해는 시집을 많이 읽지 않은 것 같다. 서점에서 확 땡기면 확 사기도 하고 알고 있는 시인의 새 시집이 나오면 몇 편을 읽어보는데 유난히 올해는 읽지 않은 느낌이다. 세 권 정도. 그 중에 한 권은 아직도 읽는 중.

 그래도 올해 1월 읽은 시집이 참 좋았다. 이제니를 막 좋아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는데 이 시집을 읽고 좋아짐. 그 전에 나온 시집보다 몇 겹이 더 쌓인 느낌이다. 좋아서 몇 개의 시는 여러 번 여러 번 외우듯 읽었다. 그 중에 이것! <분실된 기록> 참 좋다.

 

 

 

 

 

 

 

 

 

 

 

분실된 기록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픔을 드러낼 수 있는. 슬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고통의 고통 중의 잠든 눈꺼풀 속에서.

 

꿈속에서 나는 한 권의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펼치자마자 접히는 책

접힌 부분이 전체의 전체의 전체인 책

 

너는 붉었던 시절이 있었다

너는 검었던 시절이 있었다

검었던 시절 다음엔 희고 불투명한 시절이

희고 불투명한 시절 다음에는 거칠고 각진 시절이

 

우리는 이미 지나왓던 길을 나란히 걸었고. 열린 눈꺼풀 틈으로 오래전 보았던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고양이와 나무와 하늘 속의 고양이

나무와 하늘과 고양이 속의 하늘과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잎들은 눈부시게 흔들리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희미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지금 순간의 안쪽에 있는 것인가.

 

아니요. 당신은 지금 슬픔의 안쪽에 있어요.

슬픔의 안에. 슬픔의 안의 안에.

마치 거품처럼.

 

우리는 미끄러졌고 이전보다 조금 유연해졌다.

 

언젠가 내가 썼던 기억나지 않는 책

언젠가 내가 읽었던 기적과도 같은 책

 

지금은 그저 이 고통의 고통에 대해서만 생각하도록 하자. 우주의 밖으로 나갔다고 믿는 자들이 실은 우주 속을 헤매는 미아일 뿐이듯이. 우주의 밖은 여전히 우주일 뿐이니까. 슬픔 안의 슬픔이 슬픔 안의 슬픔일 뿐이듯이.

 

쓴 것을 후회한다. 후회하는 것을 지운다.

지운 것을 후회한다. 후회하는 것을 다시 쓴다.

 

백지와 백치의 해후

후회와 해후의 악무한

 

텅 비어 있는 페이지의 첫 줄을 쓰다듬는다.

슬픔에는 가장자리가 없고 우리에게는 할 말이 없었다.

 

펼쳐서 읽어라

펼쳐서 다시 써라

 

분열된 두 개의 손으로 쓰인 책. 너는 어둠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 극적인 빛을 끌고 나타났다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밤은 길어진다. 손은 어두워진다. 너는 다시 한 발 더 어둠 속으로 나아간다.

 

무수한 괄호들 속의 무수한 목소리들

말과 침묵 사이에 스스로를 유폐한 사람들

 

이름 없는 이름들을 다시 부르면서

다시 돌아온 검은 시절을 바라보면서

 

그것은 고통의 고통 중의 잠든 눈꺼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흙으로 다시 돌아가듯이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는 듯이

 

 

 

 

이건 작년에 가장 좋아했던 시집. 그 중에 가장 좋아했던 건<겨울>

 

 

 

 

 

 

 

 

 

 

 

 

 

겨울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그가 언덕에서 내려왔다. 그는 언덕 너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계속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햇빛에 눈이 녹았다. 무언가 반짝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나는 너에게 가 너의 살을 보았다. 너의 살을 핥았다. 조금 짰다. 조금 흐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나는 네 옆에서 눈을 떴다. 까치 한 마리가 너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나는 네가 우물에 돌을 던지며 웃던 날을 기억했다. 그 우물은 얼어 있었다. 너도 얼어 잇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나는 언덕을 올라갔다. 나는 언덕 너머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언덕을 내려왔다. 나는 너에게 토끼 가죽신을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이가 몇 개 빠지고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나는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언덕 너머에서 한 사내가 왔다. 그는 나를 너무 닮아 있었다. 나는 그를 외면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마을이 사라졌다. 너도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시를 읽었다.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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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이야기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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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걸어야 할 계단 뿐이던 때. 발에도 계단, 주머니 안에도 계단, 단추가 떨어진 카디건에서도 계단이 느껴지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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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이야기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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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은 성경을 읽는다. 비코도 평생 수천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곳에서는 더 이상 읽지 않는다. 책을 읽으려면,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 많이는 아니고 어느 정도. 비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전에 어땠는지 생각해봐요. 비카를 달래기 위해 내가 말한다. 지갑은 텅 비었고, 동전 하나 구할 수 없었을 때. 온통 걸어야 할 계단 뿐이던 때. 발에도 계단, 주머니 안에도 계단, 단추가 떨어진 카디건에서도 계단이 느껴지던 때. 그 말이 절로 나왔잖아요. 기억나요? 큰 고통은 아직 안 온 거야, 라고 했던! 그렇게 말하고나면 생각은 바뀌었고, 비카 당신은 이를 악물며 이렇게 말했죠. 오라고 해! 오라고 해! 곧 닥칠 거야, 킹! 큰 고통이! 빨리 오면 빨리 올 수록 더 좋아!

 

존 버거의 책을 좋아한다. 몇 권 읽었나 세어보니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연휴에 <킹>을 읽었다. 이제 만날 사람이 별로 없는 고향 동네, 카페에 앉아 집 없는 자들의 낡은 소매같은 것을 보고 있자니 침착해지는 기분. 존 버거의 소설은 이상하게 따뜻하다. 이상한 느낌 없이 따뜻했더라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무너지는 중이거나 무너졌거나 무너진 자리에서 흔들거리고 있다. 그들의 동행자 킹은 개다. 대놓고 개다, 라고 써놓으니 이상하지만. 여튼 개다. 개입니다.

 <킹>은 노숙 무리의 하루 동안 이야기를 킹의 시선으로 담은 이야기다. 킹은 북돋아주고 고개 끄덕여주는 자, 함께 움직여주는 자, 지켜주는 자로서 최선을 다한다. 그들의 곁에 있음에도 그들을 생각하기. 킹은 최선을 다한다. 최선.

 

 읽는 동안 존 맥그리거의 <개들조차도>가 생각났다. 집없는 자들의 이야기라는 같은 웅덩이를 가지고 있지만 흐르는 방법은 꽤 다른 편이다. <개들조차도>를 아주 좋아하는데 <킹>을 읽고 좋았던 사람이 있다면 <개들조차도>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바로 읽지 말고 몇 권의 텀을 둔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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