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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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 첫 장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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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또는 유년의 기억 펭귄클래식 110
조르주 페렉 지음, 이재룡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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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짜여진 공간. 틈이 벌어지면서 페렉의 문장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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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본 백석 시집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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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유동박씨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는 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달옹배기에 복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 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매에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보이더라, 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게 내게 있었구나 싶을 정도다. 전에는 읽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이 책의 마지막 시 <남신의주유동박씨봉방>을 읽으면서 내가 이걸 읽고 있다니, 하고 놀라워했다. 이 시가 이렇게 가까워질 줄은 몰랐다. 가벼운 마음과 가벼운 손가락으로 읽고 페이퍼 제출하기 바빴던 게 생각난다. 무거운 마음이 여전히 가벼운 손가락을 짓누르고 있는 요즘. 좋은 문장은 언제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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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쳐놓은 노래

 

 

 

무얼 하니? 뭐든지 조금씩

넌 무슨 재능이 있지? 몰라,

예측, 시도,

힘과 혐오……

넌 무슨 재능이 있지? 몰라……

무얼 바라니? 아무런 것도, 그러나 전부를

 

무얼 아니? 권태를,

무얼 할 수 있지? 꿈꾸는 걸

매일 낮을 밤으로 바꾸려고 꿈꾸는 걸.

무얼 알지? 꿈꿀 줄을,

권태를 갈아치우려고.

 

무얼 바라지? 내 행복을.

무얼 할 생각이지? 앎,

예측, 능력을 얻을 작정이야,

아무짝에도 쓸모 없지만.

무얼 겁내니? 의욕을

넌 누구니? 아무 것도 아니야!

 

어디로 가니? 죽음으로

어떤 조치가 있겠는가? 그만두기,

개 같은 팔자로

더 이상 되돌아가지 않기

어디로 가니? 끝장 내러 간다

무얼 할 것인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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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불현듯 터무니없지만 정확한 감각을 느낀다. 은밀한 깨달음을 통해서 내가 아무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아닌 사람. 전적으로 아무도 아닌 사람. 빛이 깜박하는 동안 내가 도시라고 믿었던 그곳은 황량한 목초지였다. 내게 나 자신을 보여주었던 사악한 불빛은 그 목초지 위의 하늘을 보여주지 않았다.

 

*

 

모든 감정에 개성을. 모든 정신 상태에 영혼을 주기

 

*

 

지루함은 내게 속한 것이고, 그것은 늘 현재하는데 말이다. 내가 존재하는 그곳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데, 나는 왜 존재할까? 질병이 나를 둘러싼 환경이 아니라 나의 폐 안에 있다면 나는 어디에서 더 잘 숨을 쉴까? 나는 순수한 태양과 자유로운 들판, 눈앞에 보이는 바다와 넓은 수평선을 열렬히 꿈꾼다. 하지만 내가 여덟 계단을 내려가 잠을 자지 않고, 음식을 먹지 않고, 도로에 가지 않는 것이, 모퉁이 담배 가게에 들르지 않거나 게으른 이발사와 인사를 나누지 않는 것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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