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 수업 - 우리가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에리카 하야사키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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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았다.

죽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죽음 뒤에도 나를, 가족을 , 친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음 뒤에는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한 상태, 나를 잃어버린 상태가 되는 걸까?

아주 어린 나이에도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너무나 무섭고 두렵다는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바쁘게 살다보니 죽음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얼마 전에 예전에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분이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보다도 몇 년 아래였던 분의 갑작스런 죽음에 당황스럽고 착착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죽음학 수업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책 제목으로 수업이란 표현을 쓴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보니 진짜 죽음학 수업이란 과목이 있고 이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가 노마 보위 박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수업은 3년 치 수강분이 마감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수업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수업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녀의 수업을 참관한 전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이자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 문학 저널리즘 프로그램 조교수인 에리카 하야사키가 쓴 글이다. 그녀는 노마 교수의 수업을 참관한 내용을 이야기식으로 풀어쓴다. 그녀의 수업을 들었던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또한 죽음에 대비한 삶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케이틀린, 조나단, 이스라엘, 아이시스 등이 겪은 죽음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지는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또한 아주 멀리 동떨어진 일도 아니다. 노마 교수는 다양한 수업 방식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에게 쓰는 작별 편지, 검시소에서 죽음을 보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기가 언제인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를 써보는 되감기 버튼,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 표현 등 그녀의 수업은 현장과 작문 등으로 학생들이 깊은 사고를 하도록 유도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죽음이라는 여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예수님을 믿기에 영생, 부활을 믿는다. 우리의 육체적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죽음과 비교해 우리의 현재 삶도 역시 사랑해야 한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분명한 선물이다. 그 선물을 어떻게 사용할지, 어디에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문제이다.


만약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삶을 살지. 자신도 남에게도 모두 어렵고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는 불운한 삶을 살지 선택하라는 질문이 던져진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당연히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죽음학 수업은 삶의 사랑학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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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 역사학자 홉스봄이 바라본 재즈의 삶과 죽음
에릭 홉스봄 지음, 황덕호 옮김 / 포노(PHONO)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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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친구가 데리고 간 이태원 어느 재즈 카페.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재즈를 접했다. 자그마한 카페 안에 자욱하게 깔린 담배 연기. 때로는 몽환적으로 흐느적거리고 때로는 온 몸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신나는 연주. 달콤한 한 잔의 속삭임 속에 울려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개인적인 일로 너무나 힘들어 하던 내게 재즈는 아픔을 보듬어주는 치유제였다.

 

재즈란 어떤 음악일까? 누군가는 클래식으로 가는 대중음악의 마지막 교두보라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재즈는 클래식으로 가기 위한 음악이 아니다. 재즈,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예술이다. 유럽으로 간 재즈는 단순한 실용음악이 아니라 진지한 감상음악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재즈를 받아들인 계층과 의미는 달랐지만 재즈는 사교 음악으로써도, 하나의 예술로써도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재즈는 비범한 음악이다.

 

재즈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책의 제목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을까? 역사학자 홉스봄은 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라는 4명의 재즈 거장들을 소개한다. 언뜻 보면 이들은 뚜렷한 능력을 드러내어 천재라고 불릴만한 존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그들만의 능력을 가진 또 다른 천재들이다. 베이시의 경우를 보자.

 

베이시는 템포를 벗어나 비트를 넣는데 탁월했고 지금도 그렇다. (p.84)

 

편곡의 원재료가 무엇이든 간에 그 곡은 가차 없는 발췌와 조각을 통해 베이시 버전으로 만들어졌다.(p.86)

 

듣는다는 것은 그의 본질적인 능력이었다.(p.87)

 

 

베이시는 연주자들의 연주들 듣고 자신의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존재였다. 쉬워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창작의 과정이다. 이런 능력이 말 그대로 타고난다.

 

이 책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또한 재즈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재즈와 재즈 연주자의 모습이기에, 보다 객관적으로 설명된 재즈 평가서가 아닌가 싶다.

 

다만, 조금 더 다듬어진 번역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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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4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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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정원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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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이애린 작가는 80년대를 여는 학번이다. 나는 80년대를 닫는 학번이다. 그렇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소설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와는 또 다른 문화와 정서 속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는 것도 분명하다.

 

80년대를 마무리하고 90년대에 들어서서도 민주화를 향한 대학생들의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학교 앞에 상주하다시피 한 백골단과 이들과 맞서 싸우던 사수대와 학생들. 발밑에서 우리를 쫓아다니던 지랄탄. NLPD계열. 학교 앞 해방터에서 목 놓아 부르던 운동가요. 마치 어제 일 인양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주로 90년대에 보낸 내 학창 시절은 한편으론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기도 했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린 때이기도 하였다.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워크맨으로 수없이 토익 L/C를 듣기도 하였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친구들이 점차 늘어나던 시대였다. 어떤 친구들은 유럽으로 배낭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사회와 민주를 향한 이념 학습보다는 학점을 우선시하던 친구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니 나 역시 민주화의 현장에 있었지만 또한 그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적으로 벗어나지도 전적으로 빠져들지도 않았던 어중간한 청춘. 돌아보니 아쉬움이 너무나 크게 남는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 민주주의는 분명히 앞선 세대와 우리들 세대, 또한 우리 후배들 세대의 눈물과 땀과 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민주화를 외치고, 이념적 무장을 하던 그 때를 바라보니, 때로는 하나를 보다 다른 것을 놓치고 마는, 열정이 앞서 냉정하지 못했던, 사람과의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풋풋한 사랑의 흔적만을 남긴 순수하면서도 아직은 영글지 않은 나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애린과 동혁이 하나를 보며 다른 하나를 놓쳤던 것처럼.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작가의 정서,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의 정서, 2014년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젊은 청춘들의 정서는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와 도전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주어진 동등한 기회일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갈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시대적 아픔과 개인적 아픔이 어우러진 작가의 이야기가 온전히 나를 사로잡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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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모닝스
산제이 굽타 지음, 최필원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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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돌연한 사망 소식에 가슴 아파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나 역시 그의 노래와 함께 성장하였기에 그의 죽음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동료 가수들이 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유족들과의 협의 끝에 부검을 실시했다. 그리고 발견된 천공 두 곳. 이는 의사의 과실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일까? 아니면?

 

의료 사고가 생기면 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크게 당황한다. 의사 한 사람과의 문제가 아니라 어찌 보면 병원이라는 커다란 조직과의 싸움이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료 과실의 당사자인 의사는 과연 그 마음이 어떨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받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아니면 창창한 자신의 앞날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오리발을 내밀고 어쩔 수 없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을까?

 

의사들도 결국은 사람이다.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실수를 통해 더 성장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더 완벽해진다. 하지만 이런 실수를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다. 자신들의 세계에서는 반성과 질책을 용납하지만 다른 세계에 속한 이들에게 자신들의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종합병원 첼시 제너럴에서 월요일 아침 비공개로 열리는 먼데이 모닝스가 바로 의료사고를 일으킨 의사들이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른 의사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회의이다.

 

첼시 제너럴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을 보면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형과 동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후 의사가 된 타이 윌슨의 모습은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자리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자신의 실수로 사망하게 된 퀸 맥대니얼. 그로 인해 끝없이 방황하고 고민하고 자신감마저 잃어버린 채 수술을 기피하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외과 과장 하딩 후튼은 어떤가? 냉정하고 침착한 완벽주의자인 그도 기부금 유치를 생각하다 그만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 예상보다 빨리 병원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은 쓰러진 채 주저앉아 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사례를 통해 후배 의사들이 더욱 꼼꼼해지기를 바라는 하딩의 마음이나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더 나은 의사가 되도록 계속 정진하고자 하는 타이의 모습에 독자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 그렇기에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못한다. 그런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도 생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이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다. 그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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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수업 -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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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왜 자살하지 않았을까? 그 자신의 말처럼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마지막이었을 텐데. 광기로 변해가는 니체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가 말한 초인의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긍지를 갖고 살 수 없을 때 당당하게 죽어야 한다고 외쳤던 니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신의 삶을 최고로 승화시켜야만 했다.

 

아니, 달리 생각해보면 고통을 초월하여 자신의 힘을 고양시키고 강화하고 싶어 하는 힘에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에 결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고통을 이기고 일어서는 고귀한 인간혹은 귀품 있는 인간인 초인이 되기 위해서였던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려워서 중도에 포기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니체의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또한 그렇게 높게만 느껴졌던 철학이라는 학문의 벽이 이렇게 쉽게 허물어질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항상 어렵게만 느껴지던 그의 철학이 옆집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처럼 편하고 재미있게 들린다. 지루함에 잠이 쏟아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니체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가 말한 초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가 마음속에서 끝없이 솟아난다.

 

나는 니체의 사상에 100% 공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더 많다. 특히, 종교나 신념의 문제에 있어서 그와는 생각이 정반대이다.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기에 무조건적으로 니체의 말이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화된 기독교의 모습이 아닌 말씀이 전하는 모습에 눈을 돌리지 못한 니체가 아쉽기만 하다. 아무튼 종교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죽음을 바라보는 니체의 시각도 범인인 나로서는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말한 니체 자신도 자신의 죽음으로 삶을 승화시키지 못한 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는가?

 

니체가 말하듯이,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쇠하는 것을 느끼는 노인은 다른 곳에서는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 수 없을까?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제 70대 후반이 되신 아버지와 3살 된 딸아기가 함께 있으면서 서로 간에 얼마나 큰 행복을 주고받는지를 보면 니체의 생각에 더욱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 초인은 개인의 문제일지 모른다. 고통을 겪고 이를 이겨내려고 하는 힘. 아름다운 힘이다. 그렇지만 행복은 그런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면이 분명히 있다.

 

책 한 권으로 니체의 사상을 모두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10가지 주제로 풀어낸 니체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 속에 한 가지 분명한 화두를 던진다. ‘너 만의 꽃을 피우라는 것이다. 나답게 살기 위해 고통을 극복하고 오히려 사랑하여 나를 넘어 나를 만나는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안일함에 빠진 이 세대에 던지는 니체의 이 한 마디가 우리 사회에 활기를 더해 줄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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