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정원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속 이애린 작가는 80년대를 여는 학번이다. 나는 80년대를 닫는 학번이다. 그렇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소설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와는 또 다른 문화와 정서 속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는 것도 분명하다.

 

80년대를 마무리하고 90년대에 들어서서도 민주화를 향한 대학생들의 운동은 끝나지 않았다. 학교 앞에 상주하다시피 한 백골단과 이들과 맞서 싸우던 사수대와 학생들. 발밑에서 우리를 쫓아다니던 지랄탄. NLPD계열. 학교 앞 해방터에서 목 놓아 부르던 운동가요. 마치 어제 일 인양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주로 90년대에 보낸 내 학창 시절은 한편으론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기도 했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쓸린 때이기도 하였다.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워크맨으로 수없이 토익 L/C를 듣기도 하였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친구들이 점차 늘어나던 시대였다. 어떤 친구들은 유럽으로 배낭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사회와 민주를 향한 이념 학습보다는 학점을 우선시하던 친구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니 나 역시 민주화의 현장에 있었지만 또한 그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적으로 벗어나지도 전적으로 빠져들지도 않았던 어중간한 청춘. 돌아보니 아쉬움이 너무나 크게 남는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 민주주의는 분명히 앞선 세대와 우리들 세대, 또한 우리 후배들 세대의 눈물과 땀과 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민주화를 외치고, 이념적 무장을 하던 그 때를 바라보니, 때로는 하나를 보다 다른 것을 놓치고 마는, 열정이 앞서 냉정하지 못했던, 사람과의 관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풋풋한 사랑의 흔적만을 남긴 순수하면서도 아직은 영글지 않은 나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애린과 동혁이 하나를 보며 다른 하나를 놓쳤던 것처럼.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작가의 정서,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의 정서, 2014년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젊은 청춘들의 정서는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와 도전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주어진 동등한 기회일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갈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시대적 아픔과 개인적 아픔이 어우러진 작가의 이야기가 온전히 나를 사로잡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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