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수업 -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니체는 왜 자살하지 않았을까? 그 자신의 말처럼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마지막이었을 텐데. 광기로 변해가는 니체의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가 말한 초인의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긍지를 갖고 살 수 없을 때 당당하게 죽어야 한다고 외쳤던 니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신의 삶을 최고로 승화시켜야만 했다.

 

아니, 달리 생각해보면 고통을 초월하여 자신의 힘을 고양시키고 강화하고 싶어 하는 힘에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에 결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고통을 이기고 일어서는 고귀한 인간혹은 귀품 있는 인간인 초인이 되기 위해서였던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려워서 중도에 포기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살짝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니체의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은, 또한 그렇게 높게만 느껴졌던 철학이라는 학문의 벽이 이렇게 쉽게 허물어질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항상 어렵게만 느껴지던 그의 철학이 옆집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처럼 편하고 재미있게 들린다. 지루함에 잠이 쏟아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니체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가 말한 초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가 마음속에서 끝없이 솟아난다.

 

나는 니체의 사상에 100% 공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더 많다. 특히, 종교나 신념의 문제에 있어서 그와는 생각이 정반대이다.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기에 무조건적으로 니체의 말이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화된 기독교의 모습이 아닌 말씀이 전하는 모습에 눈을 돌리지 못한 니체가 아쉽기만 하다. 아무튼 종교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죽음을 바라보는 니체의 시각도 범인인 나로서는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말한 니체 자신도 자신의 죽음으로 삶을 승화시키지 못한 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는가?

 

니체가 말하듯이,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쇠하는 것을 느끼는 노인은 다른 곳에서는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 수 없을까? 단언컨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제 70대 후반이 되신 아버지와 3살 된 딸아기가 함께 있으면서 서로 간에 얼마나 큰 행복을 주고받는지를 보면 니체의 생각에 더욱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 초인은 개인의 문제일지 모른다. 고통을 겪고 이를 이겨내려고 하는 힘. 아름다운 힘이다. 그렇지만 행복은 그런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면이 분명히 있다.

 

책 한 권으로 니체의 사상을 모두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10가지 주제로 풀어낸 니체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 속에 한 가지 분명한 화두를 던진다. ‘너 만의 꽃을 피우라는 것이다. 나답게 살기 위해 고통을 극복하고 오히려 사랑하여 나를 넘어 나를 만나는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안일함에 빠진 이 세대에 던지는 니체의 이 한 마디가 우리 사회에 활기를 더해 줄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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