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난쟁이의 쓱쓱싹싹 비빔밥 만들기 눈높이 책꽂이 20
양연주 지음, 유진희 그림 / 대교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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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동화란, 아이들이 그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하고 상상력을 키워주며, 다른 이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히도록 도와야한다. 또 동화에 쓰이는 언어는 아이들의 것으로 의미전달이 쉬워야 한다. 이런 조건을 고루고루 갖춘 동화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부분의 동화들이 진부한 주제를 반복해 다루거나, 무거운 주제에 어른들 감성을 실어, 그 무게를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이들이라고 해서 매번 가벼운 주제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거운 주제일수록 아이들 정서로 경쾌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곱 난쟁이 쓱쓱 싹싹 비빔밥 만들기>가 이런 여러가지 조건을 골고루 갖춘 좋은 동화란 생각이 들었다. 한권의 책에 엮은 다섯 가지 이야기는 각각 전혀 다른 내용과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곱 난쟁이 쓱쓱 싹싹 비빔밥 만들기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동화가 끝난 뒤 어떻게 살았을까? 난쟁이들은 바뀐 시대에 맞추어 가수와 춤을 좋아하고 인터넷을 즐기기도 한다. 특히, 쇼트트랙을 즐겨 보는데 김동성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김동성 선수가 오노선수에게 1등을 놓친 것을 보고 무척 아쉬워했다. 하루는, ‘김동성은 안톤 오노에게 비빔밥을 같이 먹자’라고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 난쟁이들은 왕비와 백설공주를 초대해 비빔밥을 같이 만들어 먹기로 한다. 왜냐하면 백설공주와 왕비는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빔밥은 한국전통음식으로 외국사람들도 좋아하는 건강식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하고나 비빔밥을 먹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도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한 그릇에 밥을 비벼 먹는다. 김동성 선수가 오노에게 ‘비빔밥을 먹자’고 한 까닭은 사건의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일단 서로 적대시 하지말고 친해보자는 뜻이 담겨있다.

서로 다른 나라사람들이 운동경기를 하는 목적은 친목을 도모하고 우의를 다지기 위해서이다. 금메달만을 목적으로 하거나, 승패에 따라 민족적 감정을 부추기는 것은 안 된다. 김동성이 비빔밥으로 화해를 생각해 낸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그런 의도에서인지 이 동화 속 백설공주와 왕비가 원작과 달리 선악을 분리하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한 그릇 속 비빔밥처럼 백설공주와 왕비를 똑같이 섞어버렸다. 외국 동화를 빌려 뒷이야기로 꾸몄지만, 다분히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소재(비빔밥)로 한국적인 감성을 말하고 있다.


눈물 파는 가게

여기서도 눈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 아주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저씨가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다, 고향에 돌아와 눈물을 모으기 시작한다. 마음이 흡족할 정도로 눈물이 모이자, 아저씨는 고향을 떠나 눈물 없는 나라로 가서 ‘눈물 파는 가게’를 차린다. 사람들은 처음엔 눈물이 뭔지 몰라 나름대로 분석하고 정의 내리려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눈물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꼬마아이가 눈물을 샀는데 실수로 그만 눈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아이의 눈물을 보자 싸움을 자주 하던 엄마 아빠는 싸움을 멈추고 아이에게 미안해했다. 눈물 덕분에 아이의 집은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 눈물을 사러오기 시작했다. 눈물은 기쁨의 표현으로 사용했고 슬픔을 쏟아 낼 때 필요했던 것이다. 온 나라 사람들은 눈물을 사용했고 덕분에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눈물 덕분에 웃을 수 있다니 참으로 역설적인 발상이다.   


이건 비밀인데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웅이는 관찰일기 거리를 찾을 수 없어 산으로 간다. 산에서 이상한 바위를 발견하게 된다. 웅이는 그 바위틈으로 난 동굴 속에 들어 간다. 동굴 안에는 개구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유난히 눈이 큰 개구리 한 마리이가 혼자 멀찍이 떨어져있었다. 새끼손가락이 굽은 웅이와 눈이 유난히 큰 개구리는 서로의 부끄러움을 위로하였고,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다.

웅이는 오늘 일을 비밀로 하기로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만 친구의 자랑에지지 않고 쫓아서 자랑하는 바람에 개구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결국, 둘의 만남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학교와 학원, 집만을 오가는 아이가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개구리와 즐거운 한때를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다.

편지 속 틀니

용암 할머니는 가끔 소영이에게 객지에 나가 있는 손녀딸에게 보낼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그 때마다 할머니는 당신은 이가 아파서 못 먹는 옥수수를 쪄주시고 돈도 주신다. 소영이는 엄마가 이른 데로 매번 돈 받는 것을 사양하지만, 이번에 할머니가 주신 돈을 받았다. 그 돈으로 할머니 틀니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영이는 틀니를 사러 다니지만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상심한다. 소영이는 할머니 몰래 미순언니에게 할머니가 음식을 잘 드실 수 있도록 틀니를 해드려야 한다고 편지를 쓴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는 소영이의 예쁜 마음이 잘 느껴지는 작품이다.

맘껏 놀아도 돼, 여기서만

참개구리 시에 새로 뽑힌 시장님은 어린 참개구리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기로 했다. 이런 결정에 주민 모두 기뻐했는데, 오직 쭈글이 할아버지만 반대를 한다. 할아버지는 시 전체가 아이들 놀이터이여야 스스로 배우는 것도 많다고 하셨다. 할아버지 반대와는 상관없이 놀이터가 들어섰다. 어린 개구리들은 한동안 그 곳에서 즐겁게 지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놀이터 놀이가 시들해졌다. 놀이터가 생긴 이후로 다른 곳에서는 놀 수도 없게 되었다. 어린 개구리들의 풀 죽은 모습을 보자 어른들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초록 풀로 붙여 만든 “어린 개구리들이 맘껏 놀도록 하자, 일단 놀이터에서만.” 이라고 쓴 플래카드다. 어린 개구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마음에 안 들었지만, 새로운 놀이 감으로는 충분했다. 그래서 플래카드를 뛰어넘고 그네도 타다보니 ‘어린’ ‘놀이터에서만’ ‘일단’ 이란 글자들이 하나 둘 떨어졌다. “ 개구리들이 맘껏 놀도록 하자” 

작가는 ‘마음껏 놀라는 놀이터가 아이들을 얼마나 제한하고 있는지'를 주제로 패러독스의 묘미를 동화 속에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동화에서 보기 드문 신선한 소재와 방법을 택하고 있다. 깊이가 느껴지는 주제를 실으면서도 경쾌한 리듬을 타고 흐르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는 아이들의 어투를 빌려 쓰고 있어 입말이 살아 숨쉰다. 사건에 극적인 반전 없이도 역설적인 유머와 위트가가 번득이는 색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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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호동 왕자 (양장) 푸른도서관 11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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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은 어릴 적부터 많이 접해 왔던 이야기다. 어릴 적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서동과 선화공주, 공민왕과 노국공주 따위를 역사속 기록의 전후 맥락을 알지 못하고 막연히 동화로만 받아 들였다. 그런 기억들이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종묘를 찾았을 때이다. 동행들과 함께 문화해설자의 안내를 받았다. 조선왕조의 신위를 모셔 놓은 종묘에서 막상 발 거름을 멈추게 한 곳은 정전이 아니라, 공민왕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공민왕 신당에서 였다. 안내하시는 분이 신당 안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정이 모셔져있고 일반인에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료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자료를 보는 두 인물에게 순간 묘한 매력이 끌렸다. 우리가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700여 년 전 사랑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역사 속 사랑이야기는 내게 특별한 흥밋거리가 되었다. 그 중 우리에게 그 어떤 사랑보다도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이야기 일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조국과 부모를 배신한 여인, 조국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한 사나이. 이 운명적인 사랑에는 한 가지 숨겨진 비밀이 있다. 한 나라의 왕이 되고자 사랑하는 여인까지 이용할 정도로 큰 야망을 품었던 사나이가, 뜻을 이루고 왜 자살을 했는가, 낙랑공주에 대한 죄책감과 애통함 때문이었을까,

우리에게 보여 진 것은 낙랑공주의 주검을 끌어안고 애절하게 통곡하는 호동의 모습이 전부였다. 호동왕자가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호동왕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쓸쓸하고 허망한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에 누구보다도 잘 생기고 늠름한 왕자 호동. 그는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갈사국 왕의 손녀딸로 무휼의 둘째 부인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호동이 태자의 자리에 오르는 일이 조금씩 불리해진다. 그러나 호동은 아버지의 사랑에 의지하여며 고구려왕이 되는 꿈을 키워 나갔다.
 
호동은 아버지인 왕에게 인정받아 태자가 되고 싶었다. 그 마지막 수단으로  이미 혼례까지  치룬 낙랑공주에게 편지를 보내 자명고를 찢게 하였다.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아버지 무휼에 뜻에 따라 조국을 위해 큰일을 이루었다고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무휼은 선뜻 태자자리를 내리지 않고, 정실왕비는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호동을 비방한다. 왕비의 모함으로 아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무휼은 결국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더 이상 자신이 태자가 될 희망이 없어지자 호동왕자는 자신이 사랑을 미끼로 낙랑공주와 거래를 한 것을 후회하고 마지막으로 왕자로써 죽기를 결심하고 궁으로 향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낙랑의 왕 최리가 처음부터 호동왕자에게 호의를 보이고 공주와 인연을 맺게 한 것도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와 인연을 맺어 놓으며 그들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막상 딸의 배신을 알고 기가 막혔던 최리는 나라의 기강이 흩어질까, 두려워 딸을 죽인다. 이렇게 두 나라 왕은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자식의 순수한 사랑마저 이용하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젊었을 때는 은연중에 과격한 역사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사랑보다는 조국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만약 낙랑 공주 같은 선택의 기회가 온다면 나 역시 낙랑 공주처럼 사랑을 택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건 어쩌면 젊거나 늙거나 간에 일반 사람에게 그런 극적이고 긴박한 선택의 기회란 애초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부려 보는 생가의 호사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그려낸 낙랑공주의 사랑방식은 우리가 추측했던 것과 좀 다르다. 호동왕자가 보내온 ‘자명고를 찢으면 태자비로 맞이하겠다.’라는 전언을 듣는 순간 낙랑공주는 더 이상 호동을 목숨 바쳐 사랑해야할 연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명고를 찢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

‘나라의 운명을 두고 겨우 사랑놀이를 하냐’는 비웃음에 저자는 공주의 순수한 사랑을 지켜 주고 싶었는지, 공주를 위한 변명을 한다. 낙랑은 고구려보다 힘이 약하다. 자명고에만 의지해 나라를 지킬 수는 없다. 고구려가 낙랑을 쳐들어오려한다면 낙랑은 어차피 고구려를 이기기 어렵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순고한 사랑을 보여 주어, 목숨을 바쳐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어 호동왕자의 허언을 부끄럽게 하리라.

만약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고 살아남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공주는 평생을 죄책감으로 사로 잡혀를 것이다. 또 호동왕자에게 이용당했다는 마음에 상처로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해야하는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후손들에겐 어떠한 변명의 여지없이 조국과 부모를 배신한 철없는 여인으로, 자신의 사랑만을 쫓는 여인들의 한계로만 비쳐졌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오명을 쓰고 묻혀버렸을지도 모를 ‘낙랑공주의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가 강숙인에게  고마움마저 들었다.

요즘 TV드라마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벗어나 고려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신돈과 서동요가 시청자들을 TV앞에 모으고 있다. 짧은 기록을 근거로 장편의 역사 드라마를 엮다보니, 다소 무리 있어 보인다. 그래도 이런 역사드라마는 이제 역사적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해주는 훌륭한 가족 드라마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역사 속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이야기만큼 드라마틱한 것도 드물텐데...., 이왕이면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였으면.....’ 조금 생뚱맞은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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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세계 역사 - 대변혁의 시대 브라보 시리즈 10
비토리오 주디치 지음, 남경태 옮김 / 사계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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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라는 것은 지금 학교의 교과 과정에도 있지만, 사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세계사라는 말을 어울리게 쓸 수 있는 시대는 20세기밖에 없습니다. 그전까지는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이 ‘동시적으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세계의 한쪽에서 일어난 일이 신속하게 나머지 세계에 알려졌고 세계의 모든 땅에 ‘임자’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인공위성을 통해 전해지는 사건들을 보고 들으면서 세계는 동시대를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러나 화면 속에 비쳐진 낯선 삶의 모습들을 접하면 정말 지금 이 시대에 저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시간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생각해 보면 같은 마을에 산다고 해도 경제적 여건에 따라 아주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것처럼, 각 지역의 나라들은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너무도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동시대를 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시간적 개념 같이 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면에서 우리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에 일어난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트를 빠른 속도로 보는듯했다.

이 책은 20세기에 벌어진 커다란 사건들을 기점으로 넷으로 나누고 있다.

제국과 혁명 (1900~1914)
제국주의 팽창에 열을 올리던 시기이기는 했지만, 혁명적인 과학기술을 발달시켰고 대체로 평화로운 시기였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인류는 이전엔 미처 경험하지도 상상하지 못했던 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재앙의 시대 (1914~1945)
1,2차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인류사에 유례없는 대량 학살이 벌어졌다. 산발적이던 민족 간의 갈등이 강력한 정치적 권력으로 부상하였다. 두 차례에 세계대전을 종식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번영의 시대 (1946~1972)
세계대전이후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냉전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핵무기 공포에서 비롯된 힘의 균형은 제 3차 세계대전을 예방했다. 한 편, 모든 대륙들은 서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세계 경제는 고속성장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위기의 시대 (1973~1999)
국가와 전통적 제도가 약화되었고 경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양상에서 벗어나 유럽과 일본이 점차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치열한 경합을 벌이기 이르렀다. 무기가 된 석유로 세계경제를 뒤흔드는 아랍 산유국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여 또 다른 축을 형성했다.

이 책은 각 시대마다 민족 간의 분쟁, 학문적 연구 성과, 과학문명의 발달, 사회. 경제적 상황들을 기사에 실린 사진을 통해 사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영화나 방송, 신문기사를 통해 조각조각 접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한눈에 정리할 수 있었다. 또 한 지금도 세계각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을 시대적 연장선상에서 바라 볼 수 있었으며, 일제침략과 6.25전쟁 같은 우리에게 벌어졌던 민족의 비극들을 20세기라는 역사 속에서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계기였다.

20세기는 큰 희생을 치르긴 했지만 과학문명의 발달로 물질의 풍요 속에서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시대로 진보해 왔다. 21세기는 공동의 운명체로서 한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의 운명도 세계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문화의 변화는 새로운 질서를 지켜 나갈 통제 수단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 민족이 서로에 대한 존중 속에서 합의를 통해 도출되어야 세계질서는 유지될 것이다. 20세기의 뼈아픔 경험을 토대로 분쟁 없는 역사의 진보를 이룰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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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박물관 - 즐거운 역사 체험 어린이 박물관 6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허현경 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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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0월 28일 개관을 했다. 특히, 새 박물관에는 어린이 체험식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사실 성인이 된 이후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에게는 힘든 하루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만져보기는커녕, 가까이 가기에도 부담스러운 전시물은 그야 말로 전시물에 지나지 않는다. 모처럼 마음먹고 간 부모의 욕심으로 모든 전시물을 봐야 하기에 아이들은 더욱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새 어린이박물관은 체험식 전시 공간과 세 개의 부속 시설로 꾸며져 있다.  전시 공간은 ‘원시.고대인의 생활 체험’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졌다. 따뜻한 집, 삶의 보금자리 - 집 / 쌀과 밥, 농사짓는 도구들-농사 / 무기와 무사들-전쟁 / 마음과 영혼의 소리-음악. 이렇게 4 곳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물들은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만져보고 그 쓰임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부속 시설로는 체험 교실과 영상실, 야외공연이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책은 새로워진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 전시 도록이자 안내서이다. 그래서 기획자체를 박물관 교육홍보팀에서 맡았다.

전시관에 들어서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류의 진화 모습이다. 인류 최초의 조상으로 알려진 350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부터 찍기라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구석기가 한반도에서 사용된 것은 약 70만 년 전부터라고 한다. 인류역사는 크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하는데 기록이 없던 선사시대는 도구의 재질에 따라 석기, 청동기, 철기로 나눈다. 이런 역사적 구분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 고고학이란 학문을 소개하고 연구과정에 대해 쉬운 말로 설명하고 있다.

집 - 따뜻한 집, 삶의 보금자리.

구석시대이후 주거 공간의 변천사를 보여 주고 있으며 움집을 짓는 과정과 난방방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온돌의 변화과정을 통해 우리조상의 지혜를 알 수 있다.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을 아궁이보다 높게 만드는 이유는 불이 아궁이 속으로 잘 빨려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굴뚝자리는 찬 공기가 곧바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약간 깊게 파 놓았다.
 
움집에서 흙이나 돌로 비바람을 막아주는 튼튼한 벽을 만들기 위해서 기둥도 굵어졌다. 시간이 지나 더 튼튼한 기둥이 필요해지자, 땅속에 돌을 깔고 기둥을 세웠다. 삼국시대에 들어와 화려한 장식이 달린 무거운 기와를 지붕에 얹을 수 있게 되었다.

농사 - 쌀과 밥, 농사짓는 도구들

농경시대 이전의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은 바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서 이다. 수렵채집시기와 농경시기를 뚜렷이 구분되는 유물로는 여러 가지 농기구와 농산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그릇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토기의 변천사는 그 시대의 문화와 미적 감각을 담고 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미의식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릇이 시대별로 모양이 다른 것은 그 만들어지는 과정이 다른 데에 있다. 신석기 시대 무른 그릇은 다 만든 그릇에 뾰족한 무늬 새기개로 무늬를 새겨, 야외에서 불을 때면 완성되었다. 삼국시대 단단한 그릇은 좋은 흙을 골라 반죽한 다음, 물레를 돌려 그릇 모양을 만들어 밀폐된 가마에 넣고 구어 단단하게 했다. 고려시대 자기는 그릇을 한 번 구워 낸 다음, 겉면에 무늬 자리를 파내고 그 자리에 하얀 흙이나 붉은 흙을 메워 무늬를 새겨, 유약을 입히고 가마에서 한 번 더 구어야 완성된다.
 
전쟁- 무기와 무사들

선사시대에는 집단 사이에 충돌은 있었지만 전쟁은 없었다. 농사기술이 발달하면서 빈부의 차가 생겨나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지배자들에 의해 세를 확장하는 목적으로 전쟁이 시작된다. 우리나라 고대에 일어난 전쟁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7세기 초에 벌어진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벌어진 길고 긴 전쟁이었다.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 되었다. 고려시대 몽골 제국이 침략해 들어오자 백성들은 불심으로 적을 무찌르고자 마음을 모아 8만대장경을 만들었다. 전쟁을 아름다운 문화로 꽃피운 우리 조상의 고귀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전쟁무기로는 철이 많이 생산되었던 가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철로 된 무기들을 볼 수 있다. 또 많은 산을 이용해 돌이나 흙으로 성을 쌓아 방어시설을 갖춘 것이, 우리나라에 산성이 많은 이유이다. 고구려의 성은 산성과 평지성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일반 백성도 짐을 싸 들고 산성으로 피신했고 식량과 들판은 적군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것을 ‘청야전술’이라고 한다.
 
음악- 마음과 영혼의 소리

선사시대 사람들은 사냥에 성공하면 제사를 지내곤 했다. 제사를 지낼 때마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용기를 얻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면 큰제사를 지내기 작했다. 제사장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성한 존재로 북과 방울 소리를 내며 격렬한 몸동작으로 행사를 치루는 데 이것이 춤과 음악의 단초가 되었다. 고구려의 거문고, 가야의 가야금, 백제의 금동대향로에서 우아한 악기를 연주하는 선녀들과 익살맞게 피리를 부는 신라 흙 인형, 삼국시대에 이르러 음악 세계는 무르익어 갔다.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에는 점차 일정한 형식을 갖춘 춤이 나타났고 직업적인 춤꾼이 등장했다.

가야의 가야금은 신라의 궁중 음악으로 발전하여 ‘신라금’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조선시대에는 분위기에 맞는 가야금을 따로 개발하기도 했다. 풍류 음악에는 풍류 가야금을 쓰고 빠른 곡에는 산조 가야금을 썼다. 오늘날에도 17현금, 25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른아이 구분 없이 전시물을 관람하던 것과는 달리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체험식 전시 공간 덕분에 아이들은 이제 박물관 나들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시대적 구분에 따라 학습해야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아이들은 박물관 전시물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고 직접 그 시대 사람이 되어 보는 다양한 체험들을 할 수 있다. 이제 아이들에게 역사는 박물관 속에서  그저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즐기는 가운데 그 시대를 이해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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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12-08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이주이 마이리뷰당선되신것을,,,,축하합니다,,

하늘바람 2005-12-09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수양버들 2005-12-0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메일을 확인해 보니 알라딘 코멘트가 많이 와 있더라구요.
어느날 자고 일어 났더니 이주의 리뷰어가 되 있었습니다.
울보님, 하늘 바람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mhy311 2005-12-1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지의 빛나는 활동이 , 알라딘에도 행운의 리뷰로 되신걸 축하드립니다.

수양버들 2005-12-1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어느 새마을 문고에 계시는지? 알지 아이디는 어떤건지 궁금해요.
 
하늘나라 임금과 4신 - 세계의 어린이가 함께 읽는 우리 별자리 이야기 1
장수하늘소 엮음, 강미영 그림 / 고래실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자미원은 북극성을 품고 하늘의 중앙에 있어,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자리이다. 자미원 안에는 하늘나라 임금님이 산다. 사신은 동쪽의 청룡, 서쪽의 백호, 남쪽의 주작, 북쪽의 거북이를 이른다. 하늘나라 임금님은 얼굴이 네 개나 되어 여덟 개의 귀로는 무슨 소리든 들을 수 있었고 네 개나 되는 입으로는 하늘 구석구석까지 명령을 내일 수 있었다. 그런데  코도 네 개라 좋은 냄새든 나쁜 냄새든 모두 맡아야 하기에 임금님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특히, 남쪽 하늘 ‘측간’ 별자리에서 나는 냄새로 곤욕스러워 했다. 그러자 남쪽 신인 주작이 나서서 측간 별자리 옆 ‘토공리’ 별자리를 시켜 병풍을 세우게 했다.

이처럼 동양에서 전해오는 별자리이야기는 서양의 것과 달리 인간적인 면을 그려내고 있다.  화장실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시장. 솥단지, 절구공이, 임금이 쓰는 양산, 강, 부엌 따위가 별자리로 정해져 있다. 일상적인 물건이나 장소를 소재로 다루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깊다.

서양 별자리인 처녀자리의 별 2개로 이루어진 각수는 남북으로 뻗은 것이 마치 뿔처럼 생겼다. 뿔은 동물의 힘을 나타내기 때문에 뿔 별자리인 각수는 임금의 힘과 위엄을 나타내는 별자리이다. 북쪽별은 우각성, 남쪽별은 좌각성이라 하는데 하늘에 임금이 있다고 믿었던 옛날에는 북극성 쪽에서 바라봤을 때를 기준으로, 별자리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과 반대 방향에 위치한다.

중국신화에 나오는 가장 큰 전쟁인 ‘탁록전쟁’에서 황제가 치우의 군사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 뿔피리 덕분 이였다. 그래서 신화에 등장하는 황제의 뿔피리는 왕의 힘과 위엄을 세상에 알리는 물건으로 여겼다. 인간은 동물처럼 뿔의 힘을 가지고 싶어, 금관을 만들어 머리에 써서 힘을 과시했다고 한다.

각수에 딸린 별자리로, 3개의 별로 이루어진 주정 별자리는 ‘주나라의 솥’이란 뜻을 갖고 있다. 솥은 살림의 기본이 되는 신성한 물건으로 나라에서 가장 먼저 살피는 별자리이다. 솥이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게 다리가 3개로 만들어 졌다. 솥별이 흔들려 보이면 나라가 위태롭게 될거라 예측했다.

주나라의 우임금은 9개 도시에 금속을 거둬들여 흉악한 동물과 귀신의 모습을 새겨 9개 솥을 만들었다. 백성들에게 동물과 귀신의 모습을 알려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솥들은 왕권만을 상징하게 되었고 진시황 이후 사라져 버렸다.

또 천문을 깨우쳤다는 제갈공명은 삼태성이 흐려지자 자신의 운이 다했음을 예견한다. 하늘에 기도를 올려 수명을 연장하려 했으나 부하의 실수로 그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제갈공명은 하늘 뜻을 바꾸려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생을 마쳤다.

동양의 별자리이야기는 인간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 별자리들이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 것에 비해, 동양에서는 중국의 한자가 그러하듯 사물과 사물 속에 담긴 의미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별자리에 담긴 서양사상은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 졌다 볼 수 있고, 동양사상은 인간주변의 사물과 그 것이 의미하는 상징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가 싶다. 서양의 별자리는 인간이나 동물, 악기의 형태를 직접 별자리에 그렸지만, 동양에선 북극성이란 별 하나가  ‘하늘의 극’(하늘의 임금)을 뜻하듯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이 책 읽으면 별을 바라보는 동양인의 사상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별자리에 관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하늘엔 문창성이라는 시의 왕국이 있다. 신라 최고의 문장가인 최치원은 지상에서 받았던 차별 대우로 뜻을 펼 수 없었던 한을 풀고자 ‘시의 왕국’의 왕이 되었다. ‘시의 왕국’에서도 낮은 벼슬에 머물고 있던  김시습은 최치원이 자신의 시를 알아주지 않자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김시습과 최치원이 마주 앉아 시 대결을 하게 되는데, 김시습의 입에서 나온 시가 ‘산’이라고 하면 산이 대답하고 ‘강’이라고 말하면 강이 대답 했다. 이에 최치원이 김시습의 재능에 감탄하고 그제야 김시습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한다.

우리조상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고 여겼다. 사람은 하늘로부터 생명을 받고, 죽은 후에도 하늘나라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땅의 삶과 하늘의 삶은 별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상의 풍습을 그린 그림과 별자리 그림을 한 벽화에 동시에 그린 것이다.

중국의 고대 천문학은 사마천이 쓴 사기 중 <천관서>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있다. 우리나라 천문학이 중국 천문학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천손사상’을 갖고 있었다. 또 중국의 북극성을 하늘의 중심으로 보았지만 우리는 북두칠성을 더욱 사랑해, 칠성신앙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같은 문화권에서는 생활방식이나 사상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성숙한 문화로써 중국과 교류 했다는 것과 일방적으로 중국문화권에 속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보여주는 별자리 그림들은 그런 맥락에서 더욱 소중하다 하겠다.   

우리 아이들은 몇 년 전부터 유행했던 그리스신화 만화를 통해 서양 별자리에 관해서는 박식하다.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계절별 별자리 관찰탐구 역시 그리스 신화의 별자리를 배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로 동양의 별자리 이야기보다는 그리스 신화 별자리에 더욱 익숙하다. 서양 별자리이야기는 오랫동안 역사와 철학, 문학, 심리학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켜 오랜 연구를 통해 전승되고 널리 알려졌다. 그들의 노력처럼 우리도 별자리에 관리 이야기가 그리스신화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하고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서양과 동양의 근본 사상이 어떻게 다른지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중국과 우리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만의 아름다운 별자리 이야기를 세상에 들어내고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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