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석유의 종말, 그리고 우리의 미래 라루스 지식in 이슈 2
안 르페브르 발레이디에 지음, 김용석 옮김 / 현실문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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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 생활에 있어서 석유에너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에 대해 굳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석유는 한정적인 것으로 언젠가는 고갈되고 말 것이다. 그에 대비해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고 있지만 실용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석유를 쓸 수 있는 시기가 언제까지인지, 그 때까지 대체에너지는 공급되는 것인지, 그런 과정은 어떻게 전개되며 우리 생활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에너지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고층아파트를 어떻게 오르내릴 것이며 난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 항간엔 선진국에선 대체에너지 개발은 이미 완성되어 있으나 자신들의 이속 때문에 대중화 시키고 있지 않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인지? 조금 속된 마음으로 값싼 석유의 종말이 오면 어디에 투자하는 것이 이득인지, 그러니까 지금 어떻게 해서라도 아파트를 장만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여차하며 나무라도 때거나 태양열에너지 집적기를 설치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이런 기대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석유에너지와 대체에너지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보고서 형식으로 나열하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석유.대체 에너지 재고의 분포도와 량, 개발진행 현황과 장단점에 대해서 잘 정리 되어 있다.

『 값싼 석유의 종말,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읽으면서 조금 충격적인 부분은 농사를 짓는데 있어서도 석유가 차지하는 위치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석유를 보급 받지 못한다면, 옛날처럼 우리나라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 예가 북한인데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자 석유와 가스 지원이 중단되었고 오늘날과 같은 경제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업과 관련한 노동력을 높이고 있음에도, 생산성은 50년 전보다 낮은 상태란다.

그래도 북한 식량자급률이 65%이지만 남한의 식량자급률은 25%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도 석유 의존도가 높은 형편이다. 석유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 10%로도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4대강 정비를 위해 팔당강변 농지를 없애고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고 한다니, 석유 값의 고공행진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울 판에 무엇으로 관광을 한다는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진국을 쫓아 녹색성장을 외치며 선두에 나서면서, 선진국이 환경운동과 함께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은 왜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강은 식수원으로 국민의 생명줄이다. 이런 국민의 생명줄을 단보로 사업을 추진할 때, 대통령은 물론 그 친인척들의 목숨까지도 내 놓는다는 각서라도 써 놓아야 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대우만 해줄 것이 아니라 이런 대규모 사업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에도 물을 수 있어야, 국민을 만만히 보고 우롱하는 일이 없어 질 것이며, 지키지 못할 공약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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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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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목 : 습지생태보고서
작성자 : 최규석
출판사 : 거북이 북스

작가 최규석은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통해 나에게 만화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시켰다. 감히, 상상하지 못한 형태의 그림으로 상처 난 양심을 드러냈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작품이다. 반면, ‘습지생태보서’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모순에 초점을 맞춘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부하여, 독자에게 계층 간 문제에 대해 고민 할 것을  요구한다.  ‘습지생태보서’는 우리가 순간순간 놓치는 사소한 일상의 부조리를 잡아서 보여주고 있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서 작가가 악을 악을 쓰는 절규하였다면 ‘습지생태보서’에서는  한 차례 호흡을 고른 뒤 자신에 대한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습지는 눅눅하고 칙칙한 곳이다. 그러나 무한한 원초적 가능성을 지닌 생태계의 보고이다. 최규석의 탄생은 그 곳이었기에 가능했다.

미래가 불투명한 만화과 학생 넷이 칙칙한 반 지하 단칸방에 기거한다. 그 곳에서 묻어나는 자칭 궁상의 얼룩들은 나에겐 낯설지 않은 추억인 동시에 현재 생활의 일부이기도 했다.

정답

‘친해질까 봐... 그 슬픔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질까봐 무서웠어.’
‘나도 내 꿈만 바라보며 달리기에도 벅찬데 왜 다들 나에게만 나타나는 걸까?’

‘너무 괴로워하지마’ ‘지금은 그냥 네 꿈을 향해 달리는 수밖에 없어...,

‘그렇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는 그냥 달려야겠지?’

‘그게 아니라... 성공하고 나면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보이지 않게 될 거라고...,’


뛰어 오른 적 없어!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아들에게 포도를 못 먹게 되자 시고 맛이 없을 거라고  하는 여우의 이솝이야기를 읽어 주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현장체험학습(2)

‘이 두 잔의 영혼이 서로 공명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
‘하지만 서로 다른 외형에 오랫동안 다른 색의 음료를 담고 있어서 둘은 그걸 몰라’
‘깨 버리면 되겠다!’

‘다른 시기에 다른 모습으로 만났다면 영혼의 짝이 되었을 사람들이 원수처럼 지내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의 모습도 그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틀일 거예요.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가난의 효용

성실 3년 장학생은 검소하기에 주머니가 항상 넉넉하다. 그래서 배고픈 후배에게  밥을 사는 호기를 부리기도 한다.
 
‘그...근데 왜 그렇게 자주 끼니 걸러?’

‘여친이 하도 차 사라고 성화라서 중고라도 한 대 사려고...,’
‘다음에 드라이브 시켜 드릴게요.’

팔이 잘려 본 사람은 손가락 잘린 사람을 위로하지 못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지붕이 날아갈까, 걱정한다는 친구 앞에서 6개월 동안 간장만 비벼 먹었다든가, 평생 두 칸짜리 전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사치가 되 버린다. 그런 습지를 한 발만 걸어 나오면 ‘기름 값 안 주는 걸 보니 집안이 어려워 진거 같다’고 걱정하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주인공 최군은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가난 속에서 꿈을 키우기 위해 가난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과 경제관을 갖고 있다. 그래야만이 습지를 탈출 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습지에 남게 될까 두렵지만 생태적으로 습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최군. 슬픔이 나에게 전해질까, 어려운 이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지만, 배부른 자의 고민도 위로해 주고 싶지 않다. 그런데 뭔가가 양심에 걸린다.

사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일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친척이나 친구는 어려움은 해결 할 수 없어도 일정부분 같이 가야 하는 것으로 받아 드리게 되었다. 배부른 자의 슬픔 역시, 그에게는 가난한 자의 끼니 걱정만큼 자신에겐 심각한 일이다. 충분히 위로해 줄 만하다. 어차피 누구든 서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다. 습지의 슬픔 역시 부자들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가난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것도 우습다. 왜? 부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되고 만다. 부를 버리고 습지로 찾아와 가난을 예찬하는 것은 가져 봤던 자의 여유이다. 부를 가져보지 못한 자는 부를 비판하거나 안분자족 할 수밖에 없다.
 
세상 속에서 우수운 꼴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일단 부를 가져 봐야한다. 그래야 버리든, 기부하든, 지키든 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양심의 가책 없이 깨끗한 돈을 손에 쥐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위로는 당연히 내 습지 생활에 방해를 받지 않는 선에서라는 전제가 있다.

자신의 생각들을 여과 없이 솔직히 드러낸 작가의 젊은 순수성을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사소한 일이라 여기고 고민하지 않는 나. 조금은 뻔뻔스러워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이제는 습지를 벗어난, 아니 습지로 다시 향한 작가. 그래서 다음 작품을 통해 습지를 벗어나지 못했거나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최규석의 만화은 대사처리가 짧다. 그런데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인물들의 표정에서 모든 걸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 우정, 질투, 순수, 부와 가난, 그의 고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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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3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리뷰도 재밌습니다. 땡스투 눌렀어요.^^

수양버들 2005-10-3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저는 매번 책 살때 땡스투 누루는 걸 잊어 먹어요.
다음엔 꼭 저도 해야 겠어요. 다른 분들도 기분 좋으라고....., **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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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그림과 언어의 예술이다. 문학과 그림의 예술로써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면, 그 둘이 보완관계인 만화 역시 예술로써 그에 비준한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문학이나 미술작품이 모두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만화를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

  몇 장을 넘기다 작가 약력을 살펴보았다. 77년생 아직은 세상에 찌들기엔 이른. 그래서인지 그 표현 방식이 과감하고 충격적이다. 순간을 놓치지 않는  관찰력, 극에 닿은 상상. 작가는 자신의 말처럼 젊음만큼이나 솔직한 생각들을 드러냈다.

자아실현, 사회참여, 고차원적 소통, 남위에 서기, 칭찬듣기, 정신적 노출증... 이런 고상하거나 혹은 세속적인 많은 부모들에게 태어나기 했지만 그것들과 관계없이 이 책 속에는 읽히기를 바라는 저의 간절한 마음과 그것을 위한 노력만이 들어 있습니다.

작가가 작품에 쏟은 정성과 노력이 많이 읽히기 바라는 마음으로 자극적인 방식을 택했다면 독자는 약간에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솔직했지만 나는 그를 예술가라 부르기를 보류한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다른 생명체를 먹고 살과 피를 만드는 것에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나 생명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곧 이런 죄책감을 위해 적당한 변명을 만들어낸다.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허접 쓰레기 같은 인생이지만 이나마 지탱하는 대에는 또 다른 희생을 정당화 해야한다. 콜라맨을 밟고 일어선 소년이 그렇고, 명랑만화가 끝난 공룡 둘리 친구들이 그렇다.


  최규석의 작품은 극에 닿아 있다. 다음에 올 것은 희망 밖에 없다. 그저 여기가 끝이라고 극점(한계점)을 찍어 놓는다.  

  그런 가운데 ‘리바이어던’에선 한계점마저 발견되지 않아,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작품이다. 배고 푼 백성의 고통을 알지 못한 착한 왕을 몰아내고 청년이 등장한다. 청년은 영웅답게 스스로 왕이 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 줄  ‘리바이어던’을 새 왕으로 모신다.

 리바이어던이란 구약성서 《욥기(記)》에 나오는 거대한 영생(永生)동물의 이름이다. 홉스는 책에선  리바이어던을 교회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국가를 가리키며 그러한 국가의 성립을 논했다. 왕이 된 리바이어던은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착한 마음”을 받은 백성들은 리바이어던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따르기만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 ‘리바이어던 눈’은 미소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낸다. 영생동물(리바이어던)은 인간과는 다른 위치로 교회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국가라는 의미가 주어진다. 그러나  “착한마음”이 의미하는 것은 국민을 다루기 위한 또 다른 수단으로 선, 덕, 인간애 따위를 강조하고 있음이다. 

국민들은 “착한마음”으로 무장하여 분노를 억누르고 행복을 가장한다. 지능화된 폭력 앞에서 사람들은 행복이란 거짓 미소에 익숙하다.

이 작품에 절망하는 이유는 인류가 잉여생산이 만들어 낸 이후 계층 간의 갈등이 계속 되어 왔다는 데에 있다. 작가의 말처럼 영웅이 나타나 혁명을 이룬다 해도 권력은 또 다른 권력으로의 이양일 뿐 하층민은 언제나 누군가의 지배와 조정아래 살아야 했다. 젊은 혈기는 개혁을 꿈꾸지만 지배구조는 축이 되어 빙빙 돌 뿐 자신들의 축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나의 생각들은 작가의 그것과 좀 다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세상을 자기식대로 읽고 표현 했다면,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내식대로 읽었다. 작가 최규석은 젊음만큼이나 과감하게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그림만 보아도 섬듯한 그의 작품들은 나에게 드러난 현실보다 리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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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3 19: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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