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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평점 :
도서제목 : 습지생태보고서
작성자 : 최규석
출판사 : 거북이 북스
작가 최규석은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통해 나에게 만화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시켰다. 감히, 상상하지 못한 형태의 그림으로 상처 난 양심을 드러냈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던 작품이다. 반면, ‘습지생태보서’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모순에 초점을 맞춘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부하여, 독자에게 계층 간 문제에 대해 고민 할 것을 요구한다. ‘습지생태보서’는 우리가 순간순간 놓치는 사소한 일상의 부조리를 잡아서 보여주고 있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서 작가가 악을 악을 쓰는 절규하였다면 ‘습지생태보서’에서는 한 차례 호흡을 고른 뒤 자신에 대한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습지는 눅눅하고 칙칙한 곳이다. 그러나 무한한 원초적 가능성을 지닌 생태계의 보고이다. 최규석의 탄생은 그 곳이었기에 가능했다.
미래가 불투명한 만화과 학생 넷이 칙칙한 반 지하 단칸방에 기거한다. 그 곳에서 묻어나는 자칭 궁상의 얼룩들은 나에겐 낯설지 않은 추억인 동시에 현재 생활의 일부이기도 했다.
정답
‘친해질까 봐... 그 슬픔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질까봐 무서웠어.’
‘나도 내 꿈만 바라보며 달리기에도 벅찬데 왜 다들 나에게만 나타나는 걸까?’
‘너무 괴로워하지마’ ‘지금은 그냥 네 꿈을 향해 달리는 수밖에 없어...,
‘그렇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는 그냥 달려야겠지?’
‘그게 아니라... 성공하고 나면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보이지 않게 될 거라고...,’
뛰어 오른 적 없어!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아들에게 포도를 못 먹게 되자 시고 맛이 없을 거라고 하는 여우의 이솝이야기를 읽어 주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현장체험학습(2)
‘이 두 잔의 영혼이 서로 공명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
‘하지만 서로 다른 외형에 오랫동안 다른 색의 음료를 담고 있어서 둘은 그걸 몰라’
‘깨 버리면 되겠다!’
‘다른 시기에 다른 모습으로 만났다면 영혼의 짝이 되었을 사람들이 원수처럼 지내기도 하죠. 하지만 지금의 모습도 그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틀일 거예요. 아름답지 못하더라도...’
가난의 효용
성실 3년 장학생은 검소하기에 주머니가 항상 넉넉하다. 그래서 배고픈 후배에게 밥을 사는 호기를 부리기도 한다.
‘그...근데 왜 그렇게 자주 끼니 걸러?’
‘여친이 하도 차 사라고 성화라서 중고라도 한 대 사려고...,’
‘다음에 드라이브 시켜 드릴게요.’
팔이 잘려 본 사람은 손가락 잘린 사람을 위로하지 못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지붕이 날아갈까, 걱정한다는 친구 앞에서 6개월 동안 간장만 비벼 먹었다든가, 평생 두 칸짜리 전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사치가 되 버린다. 그런 습지를 한 발만 걸어 나오면 ‘기름 값 안 주는 걸 보니 집안이 어려워 진거 같다’고 걱정하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주인공 최군은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가난 속에서 꿈을 키우기 위해 가난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과 경제관을 갖고 있다. 그래야만이 습지를 탈출 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습지에 남게 될까 두렵지만 생태적으로 습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최군. 슬픔이 나에게 전해질까, 어려운 이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지만, 배부른 자의 고민도 위로해 주고 싶지 않다. 그런데 뭔가가 양심에 걸린다.
사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일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친척이나 친구는 어려움은 해결 할 수 없어도 일정부분 같이 가야 하는 것으로 받아 드리게 되었다. 배부른 자의 슬픔 역시, 그에게는 가난한 자의 끼니 걱정만큼 자신에겐 심각한 일이다. 충분히 위로해 줄 만하다. 어차피 누구든 서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다. 습지의 슬픔 역시 부자들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가난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것도 우습다. 왜? 부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되고 만다. 부를 버리고 습지로 찾아와 가난을 예찬하는 것은 가져 봤던 자의 여유이다. 부를 가져보지 못한 자는 부를 비판하거나 안분자족 할 수밖에 없다.
세상 속에서 우수운 꼴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일단 부를 가져 봐야한다. 그래야 버리든, 기부하든, 지키든 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양심의 가책 없이 깨끗한 돈을 손에 쥐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위로는 당연히 내 습지 생활에 방해를 받지 않는 선에서라는 전제가 있다.
자신의 생각들을 여과 없이 솔직히 드러낸 작가의 젊은 순수성을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사소한 일이라 여기고 고민하지 않는 나. 조금은 뻔뻔스러워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이제는 습지를 벗어난, 아니 습지로 다시 향한 작가. 그래서 다음 작품을 통해 습지를 벗어나지 못했거나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최규석의 만화은 대사처리가 짧다. 그런데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인물들의 표정에서 모든 걸 찾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 우정, 질투, 순수, 부와 가난, 그의 고뇌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