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서양미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프랑스 라코스 동굴벽화이다. 1만 5천년에서 1만 7천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는 붉고 노란 황토와 동물의 기름 섞은 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중권의 서양미술사에서는 라코스 동굴벽화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들어가기에 잘 설명되어 있다.


‘2000년이 넘는 미술사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 주요한 양식만 한정적으로 선택하였으며, 선택된 양식들은 각각에 대해서 구체적인 조형의 원리 및 그 바탕에 깔린 예술의 의지까지 드러내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 깊이를 확보하기 위해서 먼저 미술사학에서 널리 알려진 논문이나 저서를 선택하여, 그것을 선형적으로 배치하는 형식으로 미술사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런 연유로 이 책은 미술의 근본 요소인 형태와 색채로 출발하여 투시법, 형식과 내용, 미술 비평, 반복되는 고전주의 예술에서 모더니즘까지 시간과 선형적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덕분에 미술사를 처음 접하는 이도, 깊이 있는 미술지식을 흥미를 갖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장 ‘아름다운 비례를 찾아서’에서 알려준 흥미로운 사실들은 미술사로 빠져 들기에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이집트의 장인들은 조상의 제작에 ‘카논(Kanon)'을 사용했다. 그래서 실제 모델을 사용하지 않아도 조상의 비례는 표준에 따라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체의 길이는 자세와 각도, 그리고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나, 이런 미세한 변화량까지 카논으로 일일이 정해놓을 수 없었다.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미의식에 따라 신체의 길이와 보폭의 길이 따위를 표준화하여 똑같이 그려냈다.



이집트인들이 이런 미의식을 갖는 이유는 현세가 아니라 내세를 그렸기 때문이다. 가변적이고 우연적이며 다양한 현실 세계를 초월해 불변적이고 필연적이며 획일적인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 이집트는 전제군주의 나라라 개인의 자유는 물론이고 창작의 자유마저 규제하고 있었다. 그 동안 무심코 보아왔던 이집트 벽화 속 인물의 얼굴과 하체는 측면, 상체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것도 다 까닭이 있었다. 신체의 단축을 피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고대 이집트엔 장인은 있으되 예술가는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이집트 그림들이 새롭게 다가왔고 그리스 미술과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이집트에 비해 그리스 예술은 자유롭다. 그리스시대도 ‘카논’에 의해 정해진 비례에 따라 조상이 만들었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예술가 개개인의 재량에 맡겼다. 그리스 장인들은 순간을 포착하여 형상화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역동적이다.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그리스 사회는 성원들 개개인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예술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그림들은 국가의 정치와 종교가 미술에 어떻게 미치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는 좋은 예였다. 이런 그림들, 일률적으로 정형화된 그림과 그리스의 역동적인 그림을 보면서 난 단 한 번도 왜 다를까? 라는 의심해 보지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이것은 이집트 미술작품이야 이것은 그리스의 미술 작품이야, 라는 식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우리식 교육이지, 왜 둘이 다르지 라고는 의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식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속된 국가의 정치나 종교, 교육, 풍습 따위가 예술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고체계까지 얼마나 교묘하게 지배하고 억압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진중권의『서양미술사』를 읽다보면 비례의 예와 같이 색과 빛, 원근법, 자연과 종교, 인간의 모방한 예술에 대해서도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상반되거나 변화 된 그림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이해하기 쉬었지만, 색채 부분에서는 책에 실린 그림의 색이 명확하지 않아 작가의 설명을 확인할 없는 것도 있었다. 또 앞부분에서는 친절히 설명되었던 전문용어들이 뒤로 갈수로 초보자들은 알 수 없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설명 없이 진행되어 어렵게 느껴져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동안 미술작품을 너무 겉으로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술 작품의 외형미와  의미를 읽을 수 있을 수 계기가 될 수 책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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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 다빈치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큰마음 먹고 디카를 샀다. 디카의 매력은 필름을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고 사진을 현상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어 경제적이라는 점이다. 또 디카는 조금만 배우면 자유자재로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이런 이유로 디카를 휴대폰처럼 휴대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디카와 함께 하면서 세상이 좀 달리 보인다.

일상의 사소한 것에 의미을 부여하게 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된 것이다. 내가 찍은 이미지가 객관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 지라도 내 주변에 있는 것이고, 내 시선이 머문 곳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한 자락을 담았기에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실 전엔 사진이란 단순히 추억하고 싶은 순간을 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속에 찍는 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진작품이란 미적 감각을 자극하는 현란한 이미지일 뿐이라 생각했고 순간을 포착하여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까 솔직히 사진 작품 속에 실은 작가정신이랄지,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통 몰랐던 것이다. 그런 내가 생활 주변을 렌즈를 통해 보기 시작하면서 '사진작가에게 작가 정신이 필요 하구나! 사진작품 속에서도 작가의 모습을 읽어 낼 수 있겠구나!'라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바보스럽게도 이제야 깨달게 되었다.

김영갑의 사진집 대하고, 48세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불운의 사진작가 김영갑은 무엇을 담았는가? 묻게 되었다. 그는 20 여 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제주 오름의 사계를 담았다. 제주의 빛과 그림자를 담았고 바람과 구름을 담았다. 그 속에 숨쉬는 자연의 울림을 담아냈다. 처음 김영갑의 사진집을 받아 봤을 때, 특별할 것 없이 밋밋한 작품들을 보고 잠시 실망 했다. 안목이 없는 탓에 글자를 통해서야 비로소 사진들이 새롭게 다가 왔다.

‘아주 평범한 풍경을 제주의 정체성으로 확장했다. 아주 평범한 풍경을 제주의 정체성으로 확장했다. 아름다운 곳이라고는 전혀 없는 풍경, 그는 그 평범함을 가장 제주다운 풍경으로 바라보았다. 그랬다. 사진이 그런 말을 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풍경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풍경이라고 생명을 주는 호흡이 뭐 특별할 게 있느냐고, 맞는 말이다. 사진의 미학은 여기에 있다. 사진도 삶처럼,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래야 수용되고 오랫동안 품에 안겨지는 사람이 된다. 사진을 사진답게 하는 것은 자연성이다. 미학의 정토는 바로 이것이다. 풍경을 만든 삶. 삶을 만든 풍경을 꿰뚫는 것이 사진의 철학이다. 철학만이 진정한 사진을 만들고 삶을 수용하는 사진만이 미학이 될 수 있다.’

현란한 기술을 자랑하는 자극적인 사진작품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김영갑은 태초의 에덴동산을 연상케 하는 고요한 원시적 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고요한 오름 능선에 펼쳐지는 바람의 모습은 참으로 다채롭다. 나뭇가지를 심하게 흔드는가 하면, 갈대밭을 날카롭게 스치기도 하고 부드럽게 쓰다듬기도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람만이 자연물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채꽃밭에 펼쳐진 역동성은 분명 바람이 아닌 작가의 흥분된 빠른 움직임이었다.
       
작가 김영갑은 이런 자연물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정체된 자연물에 빛과 구름이 투영된 전혀 다른 실체를 드러낸다. 이 순간은 작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 것이라, 작가는 그 것을 얻기 위해  수 많은 시간을 기다릴 속에 보냈다. 한번 놓치면 일년을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기다려도 다시 만나지 못 할 때도 허다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20년. 말년에 루게릭 병을 얻어 6년 간 투병생활을 하는 와중에 손수 두모악 갤러리를 만들고 그 마당에 뼈를 뿌렸다.

그가 보여준 제주는 내가 보았던 관광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바다도 아니고 인간이 만들 낸 어떤 사물도 거부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제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중간 산이다. 그 오름이 그려낸 것은 선이고 색칠한 것은 빛과 그림자, 구름과 안개이다. 그 오름을 들뜨게 하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과 작가였다.

태초의 모습처럼 평화로운 이 원시적 미가 제주도 본래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그가 찍어낸 것은 자연이었고 고요며 평화였다. 인공적인 것을 거부하고 오직 자연이 주는 것으로 원초적인 자연미를 드러내 미의 절정에 도달하고 싶어했다. 그는 근원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했던 원대한 꿈을 품은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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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0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진집 보고 싶어집니다..

수양버들 2006-08-09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만 보지 마시고 글을 함께 읽으세요.
그러면 사진이 처음 볼때완 다르게 보일 겁니다. ^^
코멘트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