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관련 산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국민의 해양 사상을 고취하며, 관계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

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정한 것은 장보고(張保皐)가 청해진을 설치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바다의 날’은 21세기 해양시대를 맞아 해양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국제상황에 적극 대처하고,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해양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할 필요성에서 제정되었다. (다음백과)


바다의 날 기념으로 바다 글을 옮겨온다. 작년 이글루스에 포스팅했던 글이다. 이글루스는 다음 달에 문 닫는다. 피난길에 나선 마음이 어수선하고 무겁다. 일단은 바다를 건지고 보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도 발등에 떨어진 불(물?)이로구나.



심해 | 클레르 누비앙 | 김옥진 옮김 | 궁리


심해. 뭐가 심해. 아름다움이 심해... 가 아니고. deep sea, 深海. <물백과사전>에 따르면 수심 2000~6000미터 사이를 심해라고 하는 모양이나, 통상적으로 수심 200미터부터 그리 불러도 되는 듯하다. 깊은 바다에 간 사람이 달에 간 사람보다 수가 적다. 1930년대 윌리엄 비비(약 800미터), 1954년 오귀스트 피카르(약 4,000미터), 1960년 자크 피카르와 돈 월시(10,916미터), 2012년 이목을 끌었던 캐머런 감독이 도달한 깊이가 10,908미터(혹은 자료에 따라 10,898미터)다. 피카르와 월시(트리에스테)는 탐사보다는 신기록 수립을 위한 잠수였다는 점 감안하면, 마리아나 해구 약 11킬로미터 깊이 ‘챌린저 딥’을 몸소 탐사한 사람은 캐머런 감독인 셈이다.


클레르 누비앙의 <심해>는 프랑스에서 2006년에 나왔고 우리 번역본은 2010년판이다. 아름다움이 심하다는 말은 맞다. 고퀄 사진들이다. 온통 발광하고 유영한다. 귀엽거나 희한하거나 예쁘거나 무섭거나 못생긴 우리 동료들이다. 압력과 저온과 어둠과 용적을 생각하면 폐소 공포가 스멀스멀 생길 법도 한데 세상에, 뭇 생물들이 나 여기 있소(혹은 나 귀찮게 하지 마라) 하는 거다. 이 크고 무겁고 멋진 책이 70% 정가인하로 만 원대다! 부디 두루 득템하시면 좋겠다. (개정판이 나왔고 가격도 재책정된 모양이다. 쏘리) 서재(혹은 화장실)에 두기에 딱 멋지다.


1970년대 중반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초점을 바꿔 갈라파고스 열곡으로 2,400미터까지 내려간 지질학자들은 암석성 해저의 갈라진 틈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섭씨 20도 내외)을 발견했다. 곧이어 그들은 캘리포니아 만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중남미 해안 앞바다에 걸쳐 있는 산맥인 동태평양해팽에서 높다란 광물질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천(섭씨 350도)를 발견했다. 그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온천, ‘열수분출공’이 심해저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고온의 물이 흐르는 곳에 희한한 동물들이 특별한 군집을 이루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40, 심해 탐험, 신디 리 반 도버 박사, 미국 윌리엄&메리 대학교)



바다의 숲 | 크레이그 포스터, 로스 프릴링크 | 이충호 옮김 | 해나무


다큐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은 어땠는지? 책으로만 만난 나는 글쎄... 바다에 미친 크레이그 님과, 자기 얘기를 줄줄 풀어놓는 로스 님을 보았다. 야생 자연이 좋다고 굳이 장비 없이 감행하는 다이빙, 그것도 매일 잠수를 고집하는 게 좀 의아했다. 뜯어말릴 이유야 없지만 뭐, (부럽기는 했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잠시 동안의 스노클링 경험만으로도 저 거대한 물에 공포감을 느꼈던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앉아 있다. 스노클링 말고 잠수는 또 다를 거야. 내가 좋아할 수도 있어... 하여간, ‘자연의 거울이 그(로스)에게 어떻게 효과를 나타내는지’(366) 보았어야 했나 보다. 바다와 바다 생물 얘기만 기대했다가 로스 개인사가 펼쳐져 놀라기는 했다. 두 명 각각 다른 색깔의 글쓰기를 한 책에 녹여낸 사람은 편집자 피파 에를리히 선생인 모양이다. 글 반, 사진 반. 사진 좋다.


이빨고래는 바다의 박쥐라고 할 수 있는데, 고주파 음을 발사해 청각으로 주변 환경을 ‘본다.’ 즉, 반사된 소리를 포착해 그것을 상으로 만들어 볼 수 있다. 수염고래는 주파수가 아주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들음으로써 아주 먼 거리에서도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 귀뼈는 고래의 몸에서 가장 단단하고 가장 오래 남는 뼈이기 때문에 고래의 마지막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339, 크레이그)



바다 생물 콘서트 | 프라우케 바구쉐 | 김종성 감수 | 배진아 옮김 | 흐름출판


2021년의 책으로 이미 등장했던 <바다 생물 콘서트>다. 플랑크톤으로 시작하여 산호초, 바닷물, 심해, 바다 생물, 해저 자원, 인간의 패악질(플라스틱)과 자성, 미래로 끝난다. 35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책이 이토록 커 보일 수 있는가. 낭비하는 페이지가 하나도 없이 지식으로 가득하다. 해양학자 프라우케 바구쉐(‘바구셰’로 표기해야 하지 않나 싶다만)의 첫 책이다. 이렇게 빼곡하게 아름다운 책을 써놓고 두 번째 책이 또 나올 수 있겠나 싶을 정도다. 아무튼 알라딘에 신간알림신청은 해 놓았다. 밑줄 친 곳이 너무 많아 감히 간추려 소개할 엄두가 나지 않고 다만 강추하는 바다.


그나마 기록해 두자면, 내 생애 손에 꼽을 정도로 먹어본 바닷가재에 대한 생각과, 이제 내가 사랑에 빠진 뱀장어와, 미워하기 위해 알기로 한 해달 정도 되겠다. 바닷가재는 매너 넘치는 사랑꾼이다. 궁금하지 않은지. 교미를 방해하는 저 딱딱한 껍질을 어떻게 벗고 입는지? … 읽어볼 일이다. 읽어본 나는 바닷가재 이제 못 먹는다. 더구나 바닷가재가 산 채 뜨거운 물에 들어갈 때는 고스란히 고통을 느낀다는 점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도 <재밌다고들 하지만~>에서 고발한 바 있다.


(…)성체가 되어서는 인간들의 접시 위에 오르게 된다. 이 경우 그들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왜냐하면-너무나도 고통스런 운반 과정을 겨우 참고 견딘 끝에-산 채로 펄펄 끓는 소금물 속으로 던져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에 바닷가재가 학습능력이 있고, 고통과 불안, 스트레스를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2017년 베를린 행정 재판소는 바닷가재를 비롯한 다른 갑각류 동물들의 고통 감내 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274-275, 섹스와 바다 | 헌신적인 아버지들)


뱀장어 편에서 요하네스 슈미트의 이름이 나왔을 때 <삶, 죽음, 그리고~>를 옆에 두고 흐뭇해했다. 책 쌓아두고 읽는 마약효과다. 사르가소해까지 나오자, 앗, 스포하지 마시라고 육성으로 얘기하더라, 내가. 하하. 해달은 ‘검은 영혼’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소개된다. 와, 개자식 아니고 해달자식이다. 해달 수컷의 행패가 끝장이다. 성폭행, 살해, 시간, 유괴, 협박 등등. 매카시 선생이 비정하게 묘사하는 사이코패스 주인공 격이다. 개자식 대신에 해달자식이라는 욕 사용하기를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이 새끼, 근데 수달이랑 어떻게 구별하지? <사소한 구별법>을 보면 된다.


가차오탈리즘 덧붙인다. ‘~ㄱ건대’ 맞춤법은 이미 언급했고, 아마도 편집자가 가장 부끄러워할 64쪽은 이렇다.



‘고둥’ 뒤에 붙은 영문표기는 당연히 학명이어야 할 텐데, rhend는 뭐다? 백과사전 검색까지 한 나도 부끄러웠다(저절로 ‘고둥’을 찾아주더라)...



사소한 구별법 | 김은정 글 그림 | 이수종 감수 | 한권의책


‘배영을 하면 해달, 자유형을 하면 수달’(24)이란다. (배영을 하며 손에 조개를 쥐고 있는 귀여운 모습의 해달이다. 속지 않아!) 둘 다 족제빗과, 각각 해달속 수달속을 차지한다. 해달은 해양동물, 수달은 육상 동물로 분류되지만 수달은 물에서도 뭍에서도 산다. 둘이 사는 곳이 겹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수달만 산다. 해달 뒷발은 지느러미 모양이라 땅 위에서 걷지 못하는 반면 수달은 네 발로 땅 위에서 사람보다 빨리 뛸 수 있다. 해달은 주행성, 수달은 야행성이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어린이책이다. 친절하고 과학적인 그림이 함께한다. 자꾸 자꾸 잊어버리는 ‘자연 속 작은 차이’ 아웃소싱된 책이랄까. 17쌍 생물들이 소개되는데 어.. 물개/물범이 없다. (해달자식이 성폭행하는 대상 중에 어린 바다표범(물범)이 있다) 검색으로 찾아놓은 게 이렇다.

물개(northern fur seal 북방물개) : 귓바퀴 있음. 4족 보행. ㄴ자 몸.

물범(harbour seal) : 귓바퀴 없이 귓구멍. 뱃살 튕겨 이동. ㅡ자 몸.

‘물개 박수’는 과연 옳은 말 되겠다. 그나저나 이렇게 읽고도 시험 본다면 틀릴걸? 미워하기 위해 알기로 한 해달자식... 역시 좋아해서 알고자 하는 것에는 못 미치는 건가. 옳다. 좋아하게 된 거 얘기하자.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 패트릭 스벤손 |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존재론적인 결의로 이뤄지는 기나긴 금욕의 여정이다. 하지만 뱀장어가 사르가소해에 다다르면 다시 집에 돌아온 것이다. 수면을 뒤덮은 두터운 해조류의 소용돌이 아래에서 뱀장어의 알이 수정된다. 이와 더불어 뱀장어의 임무가 끝나고, 뱀장어의 이야기가 완성되고, 뱀장어는 죽는다. (13)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가 내게 오면서, 사르가소해=진 리스 공식에서 사르가소해=뱀장어 공식으로 바뀌었다. 뱀장어 생태 연구 역사와 요하네스 슈미트의 삶, ‘뱀장어 문학’까지 환기한다. 뭐가 빠지지 않으면서? 자기 이야기. 1장 ‘뱀장어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자.’(7)로 시작하여 2장 ‘아버지는 당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집 주변 들판과 맞닿은 개울에서 나에게 뱀장어 낚시를 가르쳐주셨다.’(15)로 이어진다. 패트릭 스벤손은 스웨덴에서 태어났고 기자 출신으로 아버지 회고록을 이따위로 썼다. 이따위, 특정 분야를 깊이 공부한 후에 넓게 연결시키는 글쓰기를 말함이다. 와, 멋진 책.


뱀장어의 생활사는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미스터리였다. 여러 생물학자들의 연구와 발견을 거쳐 번식지를 드디어 알아낸 사람이 요하네스 슈미트다. 슈미트에 이르기 전에, 젊은 프로이트 할배도 (열아홉 살이어도 프로이트는 할배임) 트리에스테에서 뱀장어 고환을 찾으려 몇 년을 보냈단다. 고환은 못 찾고 ‘그는 물고기의 성적 특성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기껏해야 자신의 성적 특성만 발견했다.’(64) (뱀장어는 필요한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눈에 보이는 생식기를 가지지 않는다.) 덴마크 사람 요하네스 슈미트는 칼스버그 연구소의 후원으로 탐사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면서 작은 렙토세팔루스 유생, 더 작은 렙토세팔루스 유생, 더 더 작은 렙토세팔루스 유생을 따라가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버들잎 모양 유생의 이동과 강력한 해류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87)


렙토세팔루스 유생-실뱀장어-황뱀장어-은뱀장어 네 단계, 강하성(降河性) 생활사를 지금은 안다. 번식과 죽음을 아우르는 첫 순간 혹은 마지막 순간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생존 기간도 수수께끼다.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남획과 기후 변화가 뱀장어를 위협하고 있다. 멕시코 만류가 약해져 유생이 길을 잃으면, 망망대해... 흑. 저자는 도도나 스텔러바다소 예를 들며 더 슬프게 한다. 베링해에 이름을 준 비투스 베링과 함께 캄차카 반도를 탐사했던 게오르그 빌헬름 스텔러가 해우류(바다소)를 소개하기가 무섭게 (27년 만에) 멸종해버린 사실 말이다. (참고로, 난파에서 살아남은 이들 일행은 베링섬에서 해달자식!들을 잡아먹는다) 스텔러바다소는 낭만적인 이름만 남기고 ‘도도와 달리 일상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274)


뱀장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적어도 4,000만 년 동안 존재해온 생물을, 빙하기에 살아남았고 대륙 이동을 목격한 생물을, 인간보다 수백만 년 앞서 지구에 등장한 생물을, 수많은 전통과 축하와 신화와 이야기의 대상인 생물을 지울 수 있을까? (277)


그리 된다 해도 내가 기억할 거야, 멋진 앙귈라 앙귈라여. 저자가 언급한 권터 그라스 《양철북》, 보리스 비앙 《거품의 나날》, 그레이엄 스위프트《워터랜드》(1983)를 ‘뱀장어 문학’으로 링크했다. 《워터랜드》는 소설 번역본이 없고 영화 <나의 청춘 워터랜드>(1992)로 나온 적 있나 보다. 제레미 아이언스, 에단 호크 출연. 스티브 질렌할 감독. 소설로 보고 싶은데 아쉽다.



문어의 영혼 | 사이 몽고메리 | 최로미 옮김 | 글항아리


저자가 만난 여러 문어 선생님들과 아쿠아리움 사람들, 잠수 경험까지 담겼다. 문어 선생님들 포함하여 모두가 이름을 가졌다. 그리 무겁지 않은 에세이. 사이 몽고메리 선생은 다른 책으로 더 만날 것이므로 여기서는 이만.


난 통 위로 몸을 구부려 경외심과 고마움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물속으로 한 방울 떨어졌다. 기쁨과 슬픔의 눈물에는 프로락틴이 들어 있다. 프로락틴은 남녀 공히 성교와 꿈, 발작 시 절정에 이르는 호르몬이며 여성에게서는 젖의 합성에 관계한다. 난 옥타비아가 내 감정을 맛볼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맛을 인식했을 수도 있다. 물고기에게도 프로락틴이 있다. 옥타비아에게도 마찬가지다. (332)



바다의 시간 | 자크 아탈리 | 전경훈 옮김 | 책과함께


아탈리 선생이 쓴 바다의 ‘총체적 역사’(11)다. 300쪽 남짓한 책에 총체적 역사라니, 넓은 글쓰기랄까. 이런 식의 서술은 ‘세분화된 영역들의 전문가들로부터 그토록 오랫동안 오해를 받아왔다’(11)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세분화된 영역의 깊은 글쓰기가 쓸모 있는 만큼 아탈리 식 총체적 역사 서술도 의미가 있을 터다. 다만, 재미가 좀 덜... 바다의 기원부터 생명의 탄생, 인간의 출현, 항해, 전쟁, 배의 발달, 어업, 무역, 통신, 지정학, 해양문학, 해저탐사, 해저자원까지 압축된 이야기가 빽빽하다. 참고자료 수만 해도 253개다. 각주인가 싶은 작은 숫자들이 모두 참고자료로 안내한다. 서양에만 치우치지 않아 반가웠다. 바다 관련 책들 읽다 보니 기승전환경문제이더라. 아탈리 선생 역시 ‘바다를 구하라’가 맺음말이다.


시멘트, 콘크리트, 유리 제조 시 해저면에서 채취한 모래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충분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가라면 누구나 이들 시장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면서 동시에 수익성이 있는 대체재를 개발하는 데 열중해야 한다. (291-292, 바다를 구하라 | 건설적인 기업이 해야 할 일)



해변이 정말로 사라지고 있을까? | 롤랑 파스코프 | 전효택 감수 | 김성희 옮김 | 민음in


응. 왜? 댐 건설, 골재를 위한 채굴, 해변에 인접하여 지은 건축물, 항만 시설, 평균 기온 상승 등등 때문이란다. ‘퇴적물 결핍 위기에서 해변을 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해변 앞바다에서 채취한 모래와 자갈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 방법만이 자연적인 상태에서 해변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업이 전 세계의 모든 해안에 확대되려면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55)




바다1. 뱀장어책 표지가 처음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좋다. 잔잔한 물 표면에 빛이 찰랑찰랑... 삶, 죽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고기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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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주를 ‘골든 스테이트’라고 부른단다. 금 캐러 갔던 과거 골드러시 잔재인가 보다. 캘리포니아는 또한 1930년대 미국 중부의 모래폭풍을 피해 이주민들이 몰려갔던 지역이기도 하다. 모래폭풍은 캐런 헤스의 <황사를 벗어나서>에서 본 적 있다. (우리나라 라떼 냄새 풍기고 싶은 분께는 ‘가주’라는 고풍스러운 명칭이 있음을 알려드린다. 캘리포니아주=가리복니아주加利福尼亞州 줄여서 가주加州) 1970~80년대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 콘트라코스타, 샌타바버라, 벤투라, 오렌지카운티 등지에서 강간과 살인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2018년까지 미제 사건이었다.


이 범죄자에게 맥나마라 선생이 골든 스테이트 킬러GSK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전까지는 뭐였는가. 북가주(라떼, 바로 나다)에서는 ‘동부지역 연쇄성폭행범EAR’이었고 남가주에서는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ONS’였다. 성폭행범EAR과 살인범ONS을 동일인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DNA 분석 기술 발전 덕이었다. 그로부터 또 몇 년 후 2018년 범인을 지목할 수 있었다. 과학기술 발전에 더해 맥나마라 선생의 저서도 큰 역할을 했지 싶다. 첫 범행 후 40여 년이 흐른 뒤였다. 72세 조지프 제임스 디앤젤로(조셉 제임스 드앤젤로)라는 사람이었다. 1976년부터 1986년까지 강간 50건, 살인 10건, 절도 120가구에 이르는 범죄행각을 벌인 혐의다. 전직 (형편없는) 경찰*이었고 평범한** 할배였다. 다른 말로 ‘낫씽맨’***이랄까. 길리언 플린도 서문에서 말한다.


하지만 내게 그의 정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가 잡히길 바랄 뿐 어떤 사람인지는 관심이 없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보는 것은 오히려 시시한 결말일 것이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 이상의 정보는 결국 진부하고 하찮고 약간은 상투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내 어머니는 잔인했다, 나는 여자가 싫다, 나는 가족이 없다…” 등등. 나는 진실에 대해, 온전한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지 추악한 인간쓰레기에겐 관심이 없다.

나는 미셸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 (13, 들어가며 | 길리언 플린)


미셸이라는 사람에 대해 나도 더 알고 싶었다. 어릴 적 동네에서 일어났던 미제 살인 사건, 같은 반 소년의 뒤통수를 사랑했던 일****, 성장하면서 어머니와 겪었던 불화, 딸 출산 등 맥나마라 선생을 겨우 알게 되나 싶을 때 덜컥 이별이다. 맥나마라 선생은 골든 스테이트 킬러가 체포될 때 이 세상에 없었다. 아까운 논픽션 작가다. 선정적인 범죄 장면 묘사에 치우치지 않고, 희생자와 수사관 이야기, 어렵게 구한 자료와 만난 사람과 취재 내용을 들려주는 글쓰기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밤새 범죄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궁리하고 글 쓰는 사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으리라. 거의 같은 처지에서 깊게 공감하는 얘기를 폴 홀스 수사관의 <언마스크드>에서 볼 수 있다. <어둠 속으로~>에서도 당연히 폴 홀스 수사관을 만나게 된다. 거울처럼, 둘이 서로를 어떻게 그리는지 보는 재미(?)도 있다. 하여, 저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배우자와 편집자가 엮어 마무리한 역작이 <어둠 속으로~>다. 할배 체포 기사가 부록으로 실렸고, 배우인 배우자(말장난 아니고 진짜) 후기도 볼 수 있다. 소중한 책에 오타가 꽤 많았는데 메모를 해 두지 않았네.




‘폴 홀스 구술’이라 돼 있다. 대필 작가가 쓴 모양이고 정직하게 ‘로빈 개비 피셔 정리’라고 적혔다. 범죄과학수사관으로서의 일화와 개인사가 다 담겼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범죄과학연구소에 취업하여 은퇴하는 시기까지, 그리고 결혼과 이혼과 결혼과... 트라우마로 인한 정서적 곤란도 숨기지 않는다. 동료 수사관이 생명을 잃는 일화에서는 나도 모르게 핑그르+뚝. 홀스가 과학수사관이었으므로 DNA 분석 기술 발전상을 몸소 겪는다. EAR와 ONS를 동일인으로 확인하는 순간은 내게도 극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맥나마라 선생과의 만남을 가장 기대했고 기대는 한 챕터로 응답 받았다.



무뚝뚝하게도 헌사가 없는 책. 나 혼자 마음속으로 ‘미셸에게’라고 써놓았다. 그리고 이건 오타 메모해 놨더라. 많아. 가차오탈리즘.


(32쪽) 자신을 잡지 못하는 경찰들을 비웃고 있을 것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141쪽) 그 모텔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 하룻밤 잠자리 상대와 투숙하는 사람들, 4번 고속도로에서 너무 늦게 빠져나와 좋은 호텔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에 묶었다. 내가 묶던 방과 같은 층에 있는 방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 내가 조사를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책에서는 무서운 오자입니다만.)

(160쪽) 그곳에 보관된 보트, 현장 주변을 카메라로 수백 장 찍으며 기본적인 마쳤지만, 지문과 족문을 채취하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생물학적 흔적을 찾기 위해 물건들의 표면을 조사해야했다.

(177쪽 사진캡션) 1999년 어느 날 셰리가 약물 분석 업무를 돕고 있는 모습. 당시 세리에게 흠뻑 빠져 있던 내가 찍은 사진이다.

(220쪽) 범인은 모라가 로드을 따라 운전하다가 새끼 고양이와 놀고 있던 신시아와 스테파니를 봤다.

(243쪽) 피해자가 친동생이라는 것을 사실을 강조하며 협조를 구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303쪽) 이런 범행은 분노 살인이 아니다. 살인자가 자신을 환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살인이다.


*나는 윌릭에게 오번 경찰서에서 해고된 전직 경찰관 조지프 디앤젤로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윌릭이 한 마디로 단언했다. “디앤젤로는 형편없는 경찰이었습니다.” 나는 당시 그의 신체적 모습은 어땠는지를 물었다. “키는 180센티미터가 좀 안 됐고, 금발에 운동선수 머리를 하고 다녔습니다.” 윌릭이 대답했다. (<언마스크드>, 384)

**흉악한 연쇄강간범이자 연쇄살인범은 집 앞 진입로에 낚싯배를, 차고에 볼보 차를 주차해 놓은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였다. 모형 비행기를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낸 “평범한 남자”였다. 우리가 찾던 범인은 깨끗하게 정원 잔디를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집주인, 잔디 깎기를 마치면 집 앞에 자신이 장식용으로 놓아둔 돌들을 무릎을 꿇고 하나하나 손질하는 남자였다. (<언마스크드>, 388-389)

***“우리는 그들이 잡혔기 때문에 그 이름을 아는 겁니다. 이 남자들은, 그들은 살면서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무엇을 성취하거나 특별히 성공적이지 못했어요. 그들은 따분하고 별 볼 일 없는 실패자들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 점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낫씽맨 역시 그렇다는 걸요. 경찰은 그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그렇게 부르지만, 저는 그것이 그의 실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낫씽. 별 볼 일 없는 사람. 실패자. 그리고 저는 그의 정체를 밝혀서 그 점을 증명하고 싶어요.” (<낫씽맨>, 163)

****학창 시절 내가 짝사랑했던 소년들은 매우 다양한 유형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 모두 학급에서 내 앞자리에 앉았다는 것이다. 옆자리나 뒷자리에 앉는 학생들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러려면 너무 직접적으로 교류해야 하고 때로 목을 돌려 눈을 마주보아야 한다. 너무 현실적이다. 나는 소년의 뒤통수가 제일 좋았다. 텅 빈 구부정한 등만 한없이 투사할 수도 있었다. 입을 반쯤 벌리고 있든가 코를 파고 있어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골든 스테이트 킬러>,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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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08-02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맛 에르고숨님. 제가 요즘 <언마스크드>를 재미나게(이렇게 얘기해도 될지-_-) 읽고 있는데 예전에 사 두기만 했던 <어둠속으로~>와 비교하며 읽고 싶어서 책장을 엎었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흑흑ㅠㅠ 슬퍼하다가 에르고숨님께서 일목요연하게 비교 정리해주신 페이퍼를 읽으며 위로받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에르고숨 2023-08-03 16:51   좋아요 0 | URL
아이고. <어둠 속으로~>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책장을 엎어도 안 나오면 답답해서 우째요.ㅜㅜ 더구나 <어둠 속으로~>가 저는 <언마스크드>보다 훨씬 좋았는데 말입니다. 모쪼록 곧 발견하시기를 바라요! (책장 한 번 더 엎는 걸로?ㅎㅎ) 고맙습니다.
 


<프랑켄슈타인> 탄생의 거의 모든 것이랄까. 작품 안보다 밖의 얘기가 잘 담겼다. 메리 셸리의 성장 과정과 여행, 삶과 주변인들은 물론이고 당시 과학 발전상을 빈틈없이, 거의 지루할 만큼 소개한다. “우리 각자 유령 이야기를 써봅시다.” 1816년 저 유명한 바이런의 제안에 대한 메리 셸리의 응답이, 초자연적인 ‘유령’이 출몰하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터다. 메리 셸리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주술이나 연금술에서 벗어나 의학과 전기 현상으로 관심을 돌리는 ‘과학자’다.


계몽의 시대를 막 지나온 당시는 자연철학, 즉 과학이 유행이었다.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칭하지는 않았지만 (‘과학자’라는 단어 자체는 1833년에야 만들어졌다) 많은 천재들이 과학을 했고 대중화에 힘썼다. 이런 분위기 속 어린 메리 고드윈의 집을 드나들었던 문학가, 예술가, 자연철학자들의 대화, 빌라 디오다티 회합을 비롯한 교류와 여행과 독서 등이 <프랑켄슈타인>의 토양이 됐다. <괴물의 탄생>은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자, 제목 그대로 ‘괴물’을 만드는 실용서이기도 해서 예컨대 2장의 소제목을 순서대로 따라하면 여러분도 시체를 살릴 수 있... 농담이다. 교육, 영감, 수집, 보존 처리, 조립, 감전, 소생이라는 소제목들을 따라가면 연금술, 화학, 해부(+시체 거래), 의학, 전기, 전지의 과학사를 푸짐하게 만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을 빌미로 과학사를 읽거나, 과학을 빌미로 <프랑켄슈타인> 탄생 배경을 읽거나 양쪽 모두 만족할 독서가 돼준다.


눈에 띄었던 단어가 하나 있다.


메리가 직접 봤던 자기 괴물의 다른 이미지는 『프랑켄슈타인』을 각색한 <추정, 또는 프랑켄슈타인의 운명Presumption: Or the Fate of Frankenstein>이라는 제목의 연극에서 T. P. 쿡Cooke이 연기한 해석이 유일하다. 1823년에 메리가 런던에 돌아왔을 때 이 연극은 공연 4주 차였고 메리는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 연극을 관람하러 갔다. 쿡은 이름 없는 한 괴물 역을 맡아 빅터의 연구실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계단을 부숴 엉망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겁을 주었다. 쿡은 인정받는 배우였고 낭만주의극 <뱀파이어The Vampyre>에서 루스벤 경 역으로 공포 연기를 해 이미 명성을 얻은 터였다. 이 극의 원작자는 다름 아닌 빌라 디오다티에 머물렀던 또 한 명의 손님인 존 폴리도리였다. (311)


보이는지? ‘presumption’이다. 추정이라는 뜻도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의 운명과 함께 놓이기에는 좀 생뚱맞다. 아래 책 <프랑켄슈타인>에는 같은 연극 제목을 ‘자만, 또는 프랑켄슈타인의 운명’으로 옮겼고, 이쪽이 더 나을 듯하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만하였다. 한편, 적어도 원작소설에 한해서는, 사악하거나 미치지 (추정하지도) 않았다. 프랑켄슈타인=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이미지는 각색 영화나 연극에서 만들어졌다고 하쿠프 선생도 지적한다. 또한 빅터는 실패한 과학자도 아니다. ‘활기가 없는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은 빅터의 실험은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 빅터를 몰락하게 한 것은 다만 자기 행동의 잠재적인 결과를 미리 보지 못한 무능력이었다.’(110)


발췌문에 폴리도리가 나온 김에 덧붙인다. 빌라 디오다티 손님들이 ‘여름이 없는 해’ 1816년 각자 시작한 작품 중 끝을 본 것은 두 개뿐이다. ‘양적으로는 그리 대단한 결과를 낳지 못했지만, 구질구질한 여름날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바이런이 제안했던 가벼운 제안은 고딕 소설과 공포소설에서 가장 잘 알려진 두 인물을 만들어냈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뱀파이어였다.’(87) ‘제안했던 가벼운 제안’이라니... 음. 존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어떤 내용인가. 런던 사교계에 등장한 창백하고 아름다운 남자가 알고 보니 뱀파이어였더라, 하는 소설이다. 짧고 단순하고 퍽 싱겁다. 카르밀라(1872년)와 드라큘라(1897년)를 이미 겪은 우리에게 그렇다는 얘기다. 어쩌면 루스벤 경보다, 젊고 우울하고 요절해버린 의사 폴리도리의 삶이 더 드라마틱할지도 모른다. 스무 살에 바이런의 주치의가 되어 함께 여행했다. 소설과 일기를 썼다. 불화를 경험했고 도박 빚을 졌다. 청산가리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겨우 26세였다.




키워드가 프랑켄슈타인이다. 과학사학자(이두갑), 역사학자(질 르포어), 과학 기자(윤신영), SF 작가(김초엽) 글이 묶였다. 겹치는 부분이 없이 각각 멋지다. 200년 전에 번개(전기 현상이다)와 함께 나타난 크리처 하나와 여성 창조자가, 숱한 자식들을 낳고 여전히 계속 읽히고 다시 쓰인다. 끊임없는 ‘현재적’ 알레고리와 해석을 가능케 하는 명작. 불멸이란 이런 것이겠다. 내 가족사진↓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의 혼란과 분노에는 그가 왜 이러한 존재를 원했는지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이 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창조된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프랑켄슈타인』에는 과연 우리가 창조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교훈이 있다. 인공생명, 인공지능, 로봇에게 보호받고, 도움 받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그 사회는 그것들과 공존하는 삶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는 기존의 인간관계에 대한 축소를 의미할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존재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 확장된 사회적 삶을 의미할 것이다. (124, 이두갑 | 프랑켄슈타인, 낭만주의 과학의 이상과 좌절)




원작소설뿐 아니라 영화와 변주 작품들까지 언급하고 소개해준다. 몇몇 꼭지는 와 닿지 않았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신분증’(장-자크 르세르클)과 ‘서녀들’(카트린 라논) 꼭지 재밌게 읽었다. 르세르클 선생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괴물인 이유를, 신분증을 도구로 하여 촤르르 푼다. 마지막 문단은 격정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프랑켄슈타인>을 좋아하는 이유와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르세르클 선생의 역설(力說)이 좋았다. 어쩌면 문학의 모든 ‘괴물’들을 향한 독자의 매혹을 잘 설명해주는 듯도 하다. 긴 발췌문을 그대로 기록해둔다.


비극에 관한 에세이에서 흄은 실상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어떻게 나는 연극에서, 보통 상황이라면 비탄과 공포에 빠지게 할 장면들을 보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가? 어떻게 끔찍한 장면이 공포보다 오히려 즐거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그 까닭은 신분증에 예속되어 있는 주체로서의 나의 삶이란 무미건조하고 진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직업난만이 빠져 있는 신분증의 항목들은 나의 존재를 허락하지만, 그것은 나를 사슬로 묶고 있다. 괴물은 사슬에서 풀려나 있다. 이러한 모순에 대한 불행한 해결책, 현실이 나에게 선택하길 강요하는 해결책, 존재를 보장해주는 예속과는 정반대의 해결책, 비존재의 대가를 치르고 얻는 자유라는 해결책을 구현함으로써, 괴물은 나를 유혹하는 동시에 격분하게 한다.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괴물의 진정한 창조주인 메리 셸리는 괴물을 매혹적이면서 끔찍하고, 극도로 선량하면서도 악독한 존재로 창조해냈던 것이다. (116-117, 괴물 프랑켄슈타인에겐 신분증이 없었다 | 장-자크 르세르클)


카트린 라논 선생의 ‘서녀들’ 편은 말 그대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잇는 여성작가들 작품을 안내해준다. 라논 선생이 꼭지를 오늘날 다시 쓴다면 재닛 윈터슨의 <프랭키스슈타인>을 아주 멋지게 포함할 터다. 왜냐하면 <프랭키스슈타인> 멋지거든. 윈터슨이 없는 라논 선생 글에서 나는 안젤라(앤젤라/앤절라) 카터를 건졌다. <피로 물든 방> 하나 읽었고 <서커스의 밤>과 <매직 토이 숍>을 갖고 있는데, 맙소사, 라논 선생이 알려주는 <그림자 춤Shadow Dance>과 <새로운 이브의 열정The Passion of New Eve>은 번역 출간이 되지 않았다! 줄거리를 보아하니 아주 후덜, 기괴하고 무서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거다) 참, 내가 왜 <프랑켄슈타인>을 좋아하는지 말했던가?


빤한 답이라 실망하셔도 할 수 없다. ‘괴물’을 철저한 외부인, 혐오스러운 이방인, 혹은 알 수 없는 타자로 만들어 내팽개치지 않은 점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의 번민만큼, 아니 오히려 더, 크리처의 두려움과 외로움과 분노에 공감하도록 써내려간 메리 셸리 선생의 훌륭함 말이다. 오래 전이지만 <프랑켄슈타인>을 읽는 내내 크리처가, 대상으로 무섭다기보다 크리처 몸속에서 내가 외로워하고 세상과 인간을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피부색, 소수자, 이방인, 장애인, 비미인(응?), 나아가 사이보그, 인공지능, 인공생명 등 숱한 현재적 알레고리로 다시 읽을 수 있는 힘도 거기에 있다고 느낀다. 다시 안젤라 카터로 돌아와서, <새로운 이브의 열정>은 마치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 혹은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가 사는 피부>와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 보고 싶다. (출간해주세요) 카터 책 두 권을 책장에서 뽑아본 김에 <매직 토이 숍> 읽기 시작했다. 윽, 외삼촌 왜 이래...



<죽은 자의 제국>(팔리셨음)이 떠나기 전에 가족사진 다시 찍었다. <제국>에는 존 왓슨, 프라이데이, 알렉세이 카라마조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레트 버틀러 등등등등이 등장한다. 각각 주인공인 원작품과 연관이 영 없지 않은 채 <제국>에 스카웃됐다. 그게 큰 재미 포인트다. 관건은 죽은 자에게 영혼을 삽입하여 어찌저찌한다는 기술이다. 괴물이 도주할 때 가지고 갔던 프랑켄슈타인의 기록이 큰 역할을 한다. 배비지의 해석 기관이 대빵 규모로 출현하는 건 좀 장관이었다만… 정신없겠지. 정신없었고 뭔가 비장하고 아슴아슴한 게, 이게 단지 잊어버린 건지 애초에 이해나 한 건지 싶으면서 여하튼 대단한 작품이긴 했고 게다가 절판본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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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4-26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간만에 숨님의 긴 페이퍼를 봅니다. 항상 책구매 전에 짧은 리뷰만 봤던지라..^^;;

긴페이퍼 써 주시면 득달같이 와서 탐독하겠어요..ㅎㅎ

에르고숨 2023-04-27 12:07   좋아요 0 | URL
이글루스 문 닫는다고 해서 피난 왔어요.ㅜㅜ
백 자 넘게 할 말이 있는 책은 페이퍼 쓰지 싶어요. 고맙습니다:)
 

 

(…)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고 싶은데, 혹시 시를 쓰고 싶지 않으세요?

그렇다고요. 이제 쓰고 싶다고요! 내가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다면, 쓰세요!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고요의 울림’을 들어보세요. 그 안에는 자연에 대한 경탄, 사랑에 대한 갈망, 자유와 정의에 대한 소망,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우리가 떠맡아야 할 역사적 사명과 과제 등이 들어 있을 거예요. 그것들을 단어와 문장에 담아보세요. 그럼으로써 당신이 “역사적 현존재로서 이미 던져져 들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열어 밝혀보세요. 그것이 시이고, 사랑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분노잖아요. (397-398쪽)


그래서 써 봤어요. 손닿는 거리에 사랑스럽게 놓인 포도주잔에 바칩니다.


빈 잔을 참을 수 없어하던 시절에

애인은 찬 잔을 못 참아했어

기억나는 한

늘 빈 잔으로 끝났고

내가 늘 졌어


져서 좋았어


? ‘자연에 대한 경탄, 사랑에 대한 갈망, 자유와 정의에 대한 소망,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 우리가 떠맡아야 할 역사적 사명과 과제’는 어디...-_- 좌절하고 술 따릅니다. 흡연실에서 본 하늘엔 반달. 다시, 이번엔 담배예요.


이 시대의 기도*라 했던 회색

한숨

가난한 영혼들의 유일한 사치이자 뿌연

위안

무채색 가벼운 분자 대기로 흩 어  지    는

가슴 저 깊은 속 울분 사랑 좌절 아 득  한   그     대

거짓말의 1년

2100원 너마저 오른다면

값싼 위안도

한숨조차!


(*사르트르의 말로 알고 있으나 틀릴 수 있음)


음음. 콸콸-

 

 

 

 

 

 

 

 

 

 

p.s. 내가 뱉은 ‘사랑합니다’의 무게. 그래요, 사랑합니다.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행하는 과정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랑의 선언은 그토록 위태로운 것이며, 일종의 어마어마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의 선언은 필연적으로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고 산만하며, 혼돈스럽고 복잡하며, 선언되고 또 다시 선언되며, 그런 후에조차 여전히 선언되도록 예정된 무엇일 수 있습니다. (85-86쪽 / 바디우, ‘사랑의 선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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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0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로 시작해서...-_-(이렇게 부정하듯 눈감은 점에 대해) 이의 있습니다. 구차달님 따라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포도주잔에 바치는 저 헌사는 제가 다섯 번을 읽어봐도 완전 띠용+ + 이라는 걸, 술김에 하는 말 아니예요.^^

에르고숨 2014-01-09 21:41   좋아요 0 | URL
'술김'이라는 말 이렇게 반가울 수가요! 견디셔 님도 건배- 어, 진짜 술 잘 마시던 애인이었는데 말입니다. 흐음. 칭찬 고마워요, 콸콸콸.

비로그인 2014-01-09 21:55   좋아요 0 | URL
저의 온라인 진입을 아직까진 방해받지 않고 있는 시간...이라서;;
지금 아주 급하게(격하게) 빈 잔을 내밉니다. 꽉꽉 눌러 9부 능선까지 채워주십시요 ㅎㅎ
오늘은 자작 독작 다 관두고 이쯤에서 작작들(?) 하십시다.(말장난이 지나쳐 술판 깨는 소리를?ㅎㅎ)

에르고숨 2014-01-09 22:15   좋아요 0 | URL
오- 어서 갈증을 재우도록 하세요. 저는 병이 비어야 작작할 듯 한데욤. 술판 깨는 소리도 아주 좋은 화음으로 느껴집니다마구마구ㅋㅋㅋ
 

 

페이퍼를 썼다 지웠는데 문장 하나가 자꾸 눈에 밟혀서 안 되겠다. 다시 백지를 펼친다.


그 아이는 우울했다. 그 아이는 불안했다. 그 아이는 우울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불안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술을 많이 마셨다. 이것은 자가 약물투여라고 불렸다. 우울증 약물로서의 알코올은 주지하는 바대로 나름의 결함들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항우울제가 아니라고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다(어느 의사에게든 물어보라). (푸른 밤)


항우울제.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이것, 다시 서재로 기어들게 하는 마법의 묘약.

 

<푸른 밤>은 존(Joan, 조앤) 디디온(1934-)이 딸의 죽음을 겪고 쓴 회고록이다. 디디온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빌 헤이스가 어디선가 언급한 적이 있어 간직한 사람인데, 아쉽게 번역본은 두 권이 다다. 다른 하나는 <상실>이고 그나마 품절 상태. <상실>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푸른 밤>은 그 몇 달 후 딸까지 잃은 기록이다. 우리에겐 ‘상실’의 작가로만 알려진 셈이나, 미국에서의 평은 ‘소설처럼 읽히는 저널리즘’의 필력이라니 이전에 쓰인 다른 글들도 보고 싶다.


존 디디온의 딸 퀸타나가 알코올중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렴풋 사인이 폐렴이라고 본 것 같은데, 저자가 딸의 임종 순간이나 병중의 모습을 세세히 그리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상실감을 기억들과 연결해 시적으로 쓴 작품이다. 그렇지만 술 마시는 딸!이라니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드링킹>의 캐럴라인(캐롤라인) 냅.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구판의 제목)은 엄청나게 아름답고도 처절한 술과의 러브스토리, 냅의 책에서 죽는 이는 어머니였다.

 

나는 점심을 먹다가 와인 잔을 들고 어머니 방으로 상태를 보러 갔다. 숨소리가 전보다 가쁘고 얕아져 있었다. 몇 분 후 우리는 모두 방에 모였다. 베카와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오후 1시에 돌아가셨다. 내 와인 잔은 침대 옆 나이트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놓자마자 그 잔을 집어 들었다. (드링킹)


몇 년 전 저 문장을 대하고 몹시 슬퍼, 나 역시 잔을 집어 드는 수밖에 다른 일을 생각 못했다. <드링킹>을 읽을 때의 취기와 아픔과 사랑을 분간하기 힘들었던 공기가 떠오른다. 마침내 술을 끊었으나 2003년 폐암으로 숨진 작가가 너무 아깝고 가슴 저렸던 기억도 나고. 술을 끊은 냅(여전히 매력적인)을 보기 위해선 게일 캘드웰을 읽으면 된다. <먼길로 돌아갈까?>. 모든 것을 함께했던 두 작가의 우정과, 먼저 떠나보내게 되는 냅을 애도하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이는 닮은 점보다 더 깊숙한 공통점은 술에 얽힌 과거였다. 중독의 본질인 가슴 속 빈방, 우리 둘 다 그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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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의 죽음은 심장에 뚫린 빈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를 채울 수도 없고 채우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녀의 부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이자, 마치 범죄 현장처럼 테두리를 둘러 엄중히 보존된 기억이었다. (먼 길로 돌아갈까?)


<푸른 밤>은 알코올에 관한 책이 아닌데, 어쩌다 저 <드링킹>까지 들먹였는지 (어쩌다? 책상 위 술잔!) 살짝 후회가 된다. 언젠가 본격 술 페이퍼를 쓴다면 단연 주역을 맡으실 걸작이 <드링킹>인데. 아쉽지만, 그럼에도 지금 여기서 결국은 상실감이 세 작품을 관통한다. ‘가슴 속 빈방.’ 게일 캐드웰은 책에 실린 작가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상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성급하게 훈계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먼 길로 돌아갈까?)


<먼 길로 돌아갈까?>가 딱 저랬고 그래서 좋았다. 성급한 훈계, 성급한 위로 모두 더 큰 아픔을 줄 수 있음을, <푸른 밤>의 존 디디온은 이렇게 쓴다.


“멋진 기억들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나중에 내게 말했다. 마치 기억이 위안이라는 듯이. 기억은 위안이 아니다. 기억은 정의상 지나간 시간, 지나간 것들이다. 기억은 벽장에 들어있는 웨스트레이크 여학교의 교복이고, 색이 바래고 구깃구깃한 사진들이고, 더 이상 부부가 아닌 사람들이 보냈던 청첩장들이고, 내가 더 이상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장례식 미사 안내장들이다. 기억은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이다. (푸른 밤)


아픈 저자(들)에게 미안하게, 아니 고맙게도 내가 위로 받는다. 가슴 속 빈방을 알아주어서, 좀체 가셔지지 않는 갈증을, 결핍감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작품들을 쓰면서 저자 본인들도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으면 무엇보다 좋겠다. 캐롤라인 냅은 지금도 몹시 그립다. 마치 내 술친구였던 것 같은 느낌으로. 자, 자가약물투여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꽐라 선생 당신들 가슴 속 빈방도 가만히- 생각해보는 새해 첫 불금.


술꾼들은 서로 알아본다. 무리 속에서도 우리는 금세 짝패를 찾아낸다. 그것은 초보 엄마나 퇴역병사처럼 공통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잘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정 종류의 음악 -‘한 잔 더’라는 합창- 을 연주하기 위해 한 가지 음계로 조율되어 있으며, 누가 그 음악을 들으며 그 출렁거리는 유혹을 이해하는지, 누가 그러지 않는지를 판별할 줄 안다. 당장 첫 잔을 들이켜고 싶어 안달이 난 술꾼은 어김없이 그 음악을 듣는다. (드링킹)

 

tchin-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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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1-0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에 덜깨서 읽기에 아주 좋은 글이네요. 술꾼들이 서로를 알아본다는 구절에서 제가 에르고숨님의 서재에 왜 들락거리게 됐는지 알았다는 ㅋㅋㅋㅋㅋㅋ 술꾼들의 사랑방 같아요. ㅋㅋ 여튼 오늘은 챈들러가 땡기지만 그냥 크리스티아줌마의 글이나 읽으며 시간을 죽여야겠네요. 숙취가 가실 때까지. (매번 글 내용과 상관없는 덧글 달아서 죄송ㅋㅋㅋㅋㅋ)

에르고숨 2014-01-04 19:34   좋아요 0 | URL
술꾼들의 사랑방ㅋㅋㅋ 술주정도 하시고 때로는 토!도 하세요. 등 팍팍 쳐드립니다. 숙취 중에 저는 책을 전혀 못 읽겠던데, 대단하신걸요. 크리스티 주말 좋아 보여요. 금욜술 어서어서 깨시고 슬슬 토욜잔을 들어봅시다으하하- 즐토. (글 내용과 상관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괘념치 마세욤.)

moonnight 2014-01-0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에르고숨님. 저는 달밤이라고 합니다. 다락방님 서재에서 댓글로 뵙고 찾아왔습니다. ^^

몰래 들여다보고 나가려 했건만;;; 댓글을 쓰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페이퍼네요. 오. 캐롤라인 냅. ㅠ_ㅠ
저역시 (거의) 매일밤 항우울제를 자가약물투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드링킹>을 읽었을 때의 공감과 아픔은 정말 컸었어요. <먼 길로 돌아갈까?>를 읽었을 땐, 냅이 사망했을 때 최소한 외롭진 않았구나. 하고 안심하면서 울고 웃고 했었구요.
마치 내 술친구인 것 같은 기분으로 캐롤라인 냅을 그리워하신다는 말씀, 어찌나 와닿는지요. 저도 무척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어요. ㅠ_ㅠ

<푸른 밤>도 덕분에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에르고숨 2014-01-04 19:36   좋아요 0 | URL
오, 달밤 님, '냅'이 마치 무슨 (술꾼)접선암호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 지금 찾아보니 <드링킹>이 달밤 님 '내 인생의 책들' 페이퍼에 땋! 몰라 뵈어서-_-; 좋아서^_^ 미안하고 반갑습니다. 저는 구판으로 갖고 있는데 저 역시 인생의 (술)책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답니다.
한편 <푸른 밤>을 퍽 좋아하기에는 뭔가 좀 껄끄러운 게, 아마 존 디디온의 '이전'이 우리에게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짜고짜 마지막 말부터 듣는 느낌이랄까요. 저에겐 좀 그랬어요. 혹시 기대하실까하는 걱정에 부연하자면, 술 얘기도 저기 인용한 부분이 다예요.
냅 동지임을 알려 오셔서 고맙습니다, 달밤 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비로그인 2014-01-05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쓰든 우아합니다.
알콜에 관한 페이퍼를 '무음주' 상태에서 쓰셨을 거란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울만큼, 우아하고 정교합니다.

그리하여 이쯤에서 제가 만든 표어 하나.^^;
" 무음주 알콜페이퍼는 무면허 음주운전만큼이나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에르고숨 2014-01-06 13:52   좋아요 0 | URL
에그머니, 견디셔 님은 칭찬이 너무 후하셔서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페이퍼 쥐어짜면 술이 한 바가지 흐를 텐데, 엄청 절제했나 봅니다. 말짱한 눈에 심하게 부끄럽지 않은 걸 보면요. ㅋㅋ 무면허 음주운전은 안 되니까네, 저의 무음주 술페이퍼도 불가능한 것으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