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고 싶은데, 혹시 시를 쓰고 싶지 않으세요?
그렇다고요. 이제 쓰고 싶다고요! 내가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다면, 쓰세요!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고요의 울림’을 들어보세요. 그 안에는 자연에 대한 경탄, 사랑에 대한 갈망, 자유와 정의에 대한 소망,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우리가 떠맡아야 할 역사적 사명과 과제 등이 들어 있을 거예요. 그것들을 단어와 문장에 담아보세요. 그럼으로써 당신이 “역사적 현존재로서 이미 던져져 들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열어 밝혀보세요. 그것이 시이고, 사랑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분노잖아요. (397-398쪽)
그래서 써 봤어요. 손닿는 거리에 사랑스럽게 놓인 포도주잔에 바칩니다.
빈 잔을 참을 수 없어하던 시절에
애인은 찬 잔을 못 참아했어
기억나는 한
늘 빈 잔으로 끝났고
내가 늘 졌어
져서 좋았어
? ‘자연에 대한 경탄, 사랑에 대한 갈망, 자유와 정의에 대한 소망,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 우리가 떠맡아야 할 역사적 사명과 과제’는 어디...-_- 좌절하고 술 따릅니다. 흡연실에서 본 하늘엔 반달. 다시, 이번엔 담배예요.
이 시대의 기도*라 했던 회색
한숨
가난한 영혼들의 유일한 사치이자 뿌연
위안
무채색 가벼운 분자 대기로 흩 어 지 는
가슴 저 깊은 속 울분 사랑 좌절 아 득 한 그 대
거짓말의 1년
2100원 너마저 오른다면
값싼 위안도
한숨조차!
(*사르트르의 말로 알고 있으나 틀릴 수 있음)
음음. 콸콸-
p.s. 내가 뱉은 ‘사랑합니다’의 무게. 그래요, 사랑합니다.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행하는 과정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랑의 선언은 그토록 위태로운 것이며, 일종의 어마어마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의 선언은 필연적으로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고 산만하며, 혼돈스럽고 복잡하며, 선언되고 또 다시 선언되며, 그런 후에조차 여전히 선언되도록 예정된 무엇일 수 있습니다. (85-86쪽 / 바디우, ‘사랑의 선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