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를 썼다 지웠는데 문장 하나가 자꾸 눈에 밟혀서 안 되겠다. 다시 백지를 펼친다.
그 아이는 우울했다. 그 아이는 불안했다. 그 아이는 우울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불안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술을 많이 마셨다. 이것은 자가 약물투여라고 불렸다. 우울증 약물로서의 알코올은 주지하는 바대로 나름의 결함들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항우울제가 아니라고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다(어느 의사에게든 물어보라). (푸른 밤)
항우울제.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이것, 다시 서재로 기어들게 하는 마법의 묘약.
<푸른 밤>은 존(Joan, 조앤) 디디온(1934-)이 딸의 죽음을 겪고 쓴 회고록이다. 디디온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빌 헤이스가 어디선가 언급한 적이 있어 간직한 사람인데, 아쉽게 번역본은 두 권이 다다. 다른 하나는 <상실>이고 그나마 품절 상태. <상실>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푸른 밤>은 그 몇 달 후 딸까지 잃은 기록이다. 우리에겐 ‘상실’의 작가로만 알려진 셈이나, 미국에서의 평은 ‘소설처럼 읽히는 저널리즘’의 필력이라니 이전에 쓰인 다른 글들도 보고 싶다.
존 디디온의 딸 퀸타나가 알코올중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렴풋 사인이 폐렴이라고 본 것 같은데, 저자가 딸의 임종 순간이나 병중의 모습을 세세히 그리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상실감을 기억들과 연결해 시적으로 쓴 작품이다. 그렇지만 술 마시는 딸!이라니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드링킹>의 캐럴라인(캐롤라인) 냅.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구판의 제목)은 엄청나게 아름답고도 처절한 술과의 러브스토리, 냅의 책에서 죽는 이는 어머니였다.
나는 점심을 먹다가 와인 잔을 들고 어머니 방으로 상태를 보러 갔다. 숨소리가 전보다 가쁘고 얕아져 있었다. 몇 분 후 우리는 모두 방에 모였다. 베카와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오후 1시에 돌아가셨다. 내 와인 잔은 침대 옆 나이트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놓자마자 그 잔을 집어 들었다. (드링킹)
몇 년 전 저 문장을 대하고 몹시 슬퍼, 나 역시 잔을 집어 드는 수밖에 다른 일을 생각 못했다. <드링킹>을 읽을 때의 취기와 아픔과 사랑을 분간하기 힘들었던 공기가 떠오른다. 마침내 술을 끊었으나 2003년 폐암으로 숨진 작가가 너무 아깝고 가슴 저렸던 기억도 나고. 술을 끊은 냅(여전히 매력적인)을 보기 위해선 게일 캘드웰을 읽으면 된다. <먼길로 돌아갈까?>. 모든 것을 함께했던 두 작가의 우정과, 먼저 떠나보내게 되는 냅을 애도하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이는 닮은 점보다 더 깊숙한 공통점은 술에 얽힌 과거였다. 중독의 본질인 가슴 속 빈방, 우리 둘 다 그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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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의 죽음은 심장에 뚫린 빈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를 채울 수도 없고 채우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녀의 부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이자, 마치 범죄 현장처럼 테두리를 둘러 엄중히 보존된 기억이었다. (먼 길로 돌아갈까?)
<푸른 밤>은 알코올에 관한 책이 아닌데, 어쩌다 저 <드링킹>까지 들먹였는지 (어쩌다? 책상 위 술잔!) 살짝 후회가 된다. 언젠가 본격 술 페이퍼를 쓴다면 단연 주역을 맡으실 걸작이 <드링킹>인데. 아쉽지만, 그럼에도 지금 여기서 결국은 상실감이 세 작품을 관통한다. ‘가슴 속 빈방.’ 게일 캐드웰은 책에 실린 작가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상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성급하게 훈계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먼 길로 돌아갈까?)
<먼 길로 돌아갈까?>가 딱 저랬고 그래서 좋았다. 성급한 훈계, 성급한 위로 모두 더 큰 아픔을 줄 수 있음을, <푸른 밤>의 존 디디온은 이렇게 쓴다.
“멋진 기억들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나중에 내게 말했다. 마치 기억이 위안이라는 듯이. 기억은 위안이 아니다. 기억은 정의상 지나간 시간, 지나간 것들이다. 기억은 벽장에 들어있는 웨스트레이크 여학교의 교복이고, 색이 바래고 구깃구깃한 사진들이고, 더 이상 부부가 아닌 사람들이 보냈던 청첩장들이고, 내가 더 이상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장례식 미사 안내장들이다. 기억은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이다. (푸른 밤)
아픈 저자(들)에게 미안하게, 아니 고맙게도 내가 위로 받는다. 가슴 속 빈방을 알아주어서, 좀체 가셔지지 않는 갈증을, 결핍감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작품들을 쓰면서 저자 본인들도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으면 무엇보다 좋겠다. 캐롤라인 냅은 지금도 몹시 그립다. 마치 내 술친구였던 것 같은 느낌으로. 자, 자가약물투여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꽐라 선생 당신들 가슴 속 빈방도 가만히- 생각해보는 새해 첫 불금.
술꾼들은 서로 알아본다. 무리 속에서도 우리는 금세 짝패를 찾아낸다. 그것은 초보 엄마나 퇴역병사처럼 공통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잘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정 종류의 음악 -‘한 잔 더’라는 합창- 을 연주하기 위해 한 가지 음계로 조율되어 있으며, 누가 그 음악을 들으며 그 출렁거리는 유혹을 이해하는지, 누가 그러지 않는지를 판별할 줄 안다. 당장 첫 잔을 들이켜고 싶어 안달이 난 술꾼은 어김없이 그 음악을 듣는다. (드링킹)
tchin-tc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