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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고 싶은데, 혹시 시를 쓰고 싶지 않으세요?

그렇다고요. 이제 쓰고 싶다고요! 내가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다면, 쓰세요!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고요의 울림’을 들어보세요. 그 안에는 자연에 대한 경탄, 사랑에 대한 갈망, 자유와 정의에 대한 소망,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우리가 떠맡아야 할 역사적 사명과 과제 등이 들어 있을 거예요. 그것들을 단어와 문장에 담아보세요. 그럼으로써 당신이 “역사적 현존재로서 이미 던져져 들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열어 밝혀보세요. 그것이 시이고, 사랑이고, 불의에 저항하는 분노잖아요. (397-398쪽)


그래서 써 봤어요. 손닿는 거리에 사랑스럽게 놓인 포도주잔에 바칩니다.


빈 잔을 참을 수 없어하던 시절에

애인은 찬 잔을 못 참아했어

기억나는 한

늘 빈 잔으로 끝났고

내가 늘 졌어


져서 좋았어


? ‘자연에 대한 경탄, 사랑에 대한 갈망, 자유와 정의에 대한 소망,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 우리가 떠맡아야 할 역사적 사명과 과제’는 어디...-_- 좌절하고 술 따릅니다. 흡연실에서 본 하늘엔 반달. 다시, 이번엔 담배예요.


이 시대의 기도*라 했던 회색

한숨

가난한 영혼들의 유일한 사치이자 뿌연

위안

무채색 가벼운 분자 대기로 흩 어  지    는

가슴 저 깊은 속 울분 사랑 좌절 아 득  한   그     대

거짓말의 1년

2100원 너마저 오른다면

값싼 위안도

한숨조차!


(*사르트르의 말로 알고 있으나 틀릴 수 있음)


음음. 콸콸-

 

 

 

 

 

 

 

 

 

 

p.s. 내가 뱉은 ‘사랑합니다’의 무게. 그래요, 사랑합니다.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행하는 과정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랑의 선언은 그토록 위태로운 것이며, 일종의 어마어마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의 선언은 필연적으로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고 산만하며, 혼돈스럽고 복잡하며, 선언되고 또 다시 선언되며, 그런 후에조차 여전히 선언되도록 예정된 무엇일 수 있습니다. (85-86쪽 / 바디우, ‘사랑의 선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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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0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로 시작해서...-_-(이렇게 부정하듯 눈감은 점에 대해) 이의 있습니다. 구차달님 따라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포도주잔에 바치는 저 헌사는 제가 다섯 번을 읽어봐도 완전 띠용+ + 이라는 걸, 술김에 하는 말 아니예요.^^

에르고숨 2014-01-09 21:41   좋아요 0 | URL
'술김'이라는 말 이렇게 반가울 수가요! 견디셔 님도 건배- 어, 진짜 술 잘 마시던 애인이었는데 말입니다. 흐음. 칭찬 고마워요, 콸콸콸.

비로그인 2014-01-09 21:55   좋아요 0 | URL
저의 온라인 진입을 아직까진 방해받지 않고 있는 시간...이라서;;
지금 아주 급하게(격하게) 빈 잔을 내밉니다. 꽉꽉 눌러 9부 능선까지 채워주십시요 ㅎㅎ
오늘은 자작 독작 다 관두고 이쯤에서 작작들(?) 하십시다.(말장난이 지나쳐 술판 깨는 소리를?ㅎㅎ)

에르고숨 2014-01-09 22:15   좋아요 0 | URL
오- 어서 갈증을 재우도록 하세요. 저는 병이 비어야 작작할 듯 한데욤. 술판 깨는 소리도 아주 좋은 화음으로 느껴집니다마구마구ㅋㅋㅋ
 

 

페이퍼를 썼다 지웠는데 문장 하나가 자꾸 눈에 밟혀서 안 되겠다. 다시 백지를 펼친다.


그 아이는 우울했다. 그 아이는 불안했다. 그 아이는 우울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불안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술을 많이 마셨다. 이것은 자가 약물투여라고 불렸다. 우울증 약물로서의 알코올은 주지하는 바대로 나름의 결함들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항우울제가 아니라고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다(어느 의사에게든 물어보라). (푸른 밤)


항우울제.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이것, 다시 서재로 기어들게 하는 마법의 묘약.

 

<푸른 밤>은 존(Joan, 조앤) 디디온(1934-)이 딸의 죽음을 겪고 쓴 회고록이다. 디디온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빌 헤이스가 어디선가 언급한 적이 있어 간직한 사람인데, 아쉽게 번역본은 두 권이 다다. 다른 하나는 <상실>이고 그나마 품절 상태. <상실>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푸른 밤>은 그 몇 달 후 딸까지 잃은 기록이다. 우리에겐 ‘상실’의 작가로만 알려진 셈이나, 미국에서의 평은 ‘소설처럼 읽히는 저널리즘’의 필력이라니 이전에 쓰인 다른 글들도 보고 싶다.


존 디디온의 딸 퀸타나가 알코올중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렴풋 사인이 폐렴이라고 본 것 같은데, 저자가 딸의 임종 순간이나 병중의 모습을 세세히 그리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상실감을 기억들과 연결해 시적으로 쓴 작품이다. 그렇지만 술 마시는 딸!이라니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드링킹>의 캐럴라인(캐롤라인) 냅.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구판의 제목)은 엄청나게 아름답고도 처절한 술과의 러브스토리, 냅의 책에서 죽는 이는 어머니였다.

 

나는 점심을 먹다가 와인 잔을 들고 어머니 방으로 상태를 보러 갔다. 숨소리가 전보다 가쁘고 얕아져 있었다. 몇 분 후 우리는 모두 방에 모였다. 베카와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오후 1시에 돌아가셨다. 내 와인 잔은 침대 옆 나이트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놓자마자 그 잔을 집어 들었다. (드링킹)


몇 년 전 저 문장을 대하고 몹시 슬퍼, 나 역시 잔을 집어 드는 수밖에 다른 일을 생각 못했다. <드링킹>을 읽을 때의 취기와 아픔과 사랑을 분간하기 힘들었던 공기가 떠오른다. 마침내 술을 끊었으나 2003년 폐암으로 숨진 작가가 너무 아깝고 가슴 저렸던 기억도 나고. 술을 끊은 냅(여전히 매력적인)을 보기 위해선 게일 캘드웰을 읽으면 된다. <먼길로 돌아갈까?>. 모든 것을 함께했던 두 작가의 우정과, 먼저 떠나보내게 되는 냅을 애도하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이는 닮은 점보다 더 깊숙한 공통점은 술에 얽힌 과거였다. 중독의 본질인 가슴 속 빈방, 우리 둘 다 그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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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의 죽음은 심장에 뚫린 빈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를 채울 수도 없고 채우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녀의 부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이자, 마치 범죄 현장처럼 테두리를 둘러 엄중히 보존된 기억이었다. (먼 길로 돌아갈까?)


<푸른 밤>은 알코올에 관한 책이 아닌데, 어쩌다 저 <드링킹>까지 들먹였는지 (어쩌다? 책상 위 술잔!) 살짝 후회가 된다. 언젠가 본격 술 페이퍼를 쓴다면 단연 주역을 맡으실 걸작이 <드링킹>인데. 아쉽지만, 그럼에도 지금 여기서 결국은 상실감이 세 작품을 관통한다. ‘가슴 속 빈방.’ 게일 캐드웰은 책에 실린 작가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상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성급하게 훈계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먼 길로 돌아갈까?)


<먼 길로 돌아갈까?>가 딱 저랬고 그래서 좋았다. 성급한 훈계, 성급한 위로 모두 더 큰 아픔을 줄 수 있음을, <푸른 밤>의 존 디디온은 이렇게 쓴다.


“멋진 기억들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나중에 내게 말했다. 마치 기억이 위안이라는 듯이. 기억은 위안이 아니다. 기억은 정의상 지나간 시간, 지나간 것들이다. 기억은 벽장에 들어있는 웨스트레이크 여학교의 교복이고, 색이 바래고 구깃구깃한 사진들이고, 더 이상 부부가 아닌 사람들이 보냈던 청첩장들이고, 내가 더 이상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장례식 미사 안내장들이다. 기억은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이다. (푸른 밤)


아픈 저자(들)에게 미안하게, 아니 고맙게도 내가 위로 받는다. 가슴 속 빈방을 알아주어서, 좀체 가셔지지 않는 갈증을, 결핍감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작품들을 쓰면서 저자 본인들도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으면 무엇보다 좋겠다. 캐롤라인 냅은 지금도 몹시 그립다. 마치 내 술친구였던 것 같은 느낌으로. 자, 자가약물투여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꽐라 선생 당신들 가슴 속 빈방도 가만히- 생각해보는 새해 첫 불금.


술꾼들은 서로 알아본다. 무리 속에서도 우리는 금세 짝패를 찾아낸다. 그것은 초보 엄마나 퇴역병사처럼 공통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잘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정 종류의 음악 -‘한 잔 더’라는 합창- 을 연주하기 위해 한 가지 음계로 조율되어 있으며, 누가 그 음악을 들으며 그 출렁거리는 유혹을 이해하는지, 누가 그러지 않는지를 판별할 줄 안다. 당장 첫 잔을 들이켜고 싶어 안달이 난 술꾼은 어김없이 그 음악을 듣는다. (드링킹)

 

tchin-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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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1-0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에 덜깨서 읽기에 아주 좋은 글이네요. 술꾼들이 서로를 알아본다는 구절에서 제가 에르고숨님의 서재에 왜 들락거리게 됐는지 알았다는 ㅋㅋㅋㅋㅋㅋ 술꾼들의 사랑방 같아요. ㅋㅋ 여튼 오늘은 챈들러가 땡기지만 그냥 크리스티아줌마의 글이나 읽으며 시간을 죽여야겠네요. 숙취가 가실 때까지. (매번 글 내용과 상관없는 덧글 달아서 죄송ㅋㅋㅋㅋㅋ)

에르고숨 2014-01-04 19:34   좋아요 0 | URL
술꾼들의 사랑방ㅋㅋㅋ 술주정도 하시고 때로는 토!도 하세요. 등 팍팍 쳐드립니다. 숙취 중에 저는 책을 전혀 못 읽겠던데, 대단하신걸요. 크리스티 주말 좋아 보여요. 금욜술 어서어서 깨시고 슬슬 토욜잔을 들어봅시다으하하- 즐토. (글 내용과 상관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괘념치 마세욤.)

moonnight 2014-01-0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에르고숨님. 저는 달밤이라고 합니다. 다락방님 서재에서 댓글로 뵙고 찾아왔습니다. ^^

몰래 들여다보고 나가려 했건만;;; 댓글을 쓰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페이퍼네요. 오. 캐롤라인 냅. ㅠ_ㅠ
저역시 (거의) 매일밤 항우울제를 자가약물투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드링킹>을 읽었을 때의 공감과 아픔은 정말 컸었어요. <먼 길로 돌아갈까?>를 읽었을 땐, 냅이 사망했을 때 최소한 외롭진 않았구나. 하고 안심하면서 울고 웃고 했었구요.
마치 내 술친구인 것 같은 기분으로 캐롤라인 냅을 그리워하신다는 말씀, 어찌나 와닿는지요. 저도 무척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어요. ㅠ_ㅠ

<푸른 밤>도 덕분에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에르고숨 2014-01-04 19:36   좋아요 0 | URL
오, 달밤 님, '냅'이 마치 무슨 (술꾼)접선암호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 지금 찾아보니 <드링킹>이 달밤 님 '내 인생의 책들' 페이퍼에 땋! 몰라 뵈어서-_-; 좋아서^_^ 미안하고 반갑습니다. 저는 구판으로 갖고 있는데 저 역시 인생의 (술)책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답니다.
한편 <푸른 밤>을 퍽 좋아하기에는 뭔가 좀 껄끄러운 게, 아마 존 디디온의 '이전'이 우리에게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짜고짜 마지막 말부터 듣는 느낌이랄까요. 저에겐 좀 그랬어요. 혹시 기대하실까하는 걱정에 부연하자면, 술 얘기도 저기 인용한 부분이 다예요.
냅 동지임을 알려 오셔서 고맙습니다, 달밤 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비로그인 2014-01-05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쓰든 우아합니다.
알콜에 관한 페이퍼를 '무음주' 상태에서 쓰셨을 거란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울만큼, 우아하고 정교합니다.

그리하여 이쯤에서 제가 만든 표어 하나.^^;
" 무음주 알콜페이퍼는 무면허 음주운전만큼이나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에르고숨 2014-01-06 13:52   좋아요 0 | URL
에그머니, 견디셔 님은 칭찬이 너무 후하셔서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페이퍼 쥐어짜면 술이 한 바가지 흐를 텐데, 엄청 절제했나 봅니다. 말짱한 눈에 심하게 부끄럽지 않은 걸 보면요. ㅋㅋ 무면허 음주운전은 안 되니까네, 저의 무음주 술페이퍼도 불가능한 것으로- ㅎㅎ
 

 

품절된 책 리뷰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바보 같은 짓일지도. 하필 그런 바보를 기꺼이 자처하고자한다. 걸핏하면 내가 저지르는 불모의 헛걸음, 우울한 헛짓에 그보다 더 어울릴 것은 없기에. 아래 쓰일 내용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과, 내게 불쑥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영어 단어 하나에 관한 것이다.

 

정원 얘기부터 해보자. 프랑스와 영국의 다른 점은 저 유명한 정원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프랑스 문학, 문화 등의 수업시간에 슬라이드 사진으로 곧잘 비교해 보여주는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이 그것이다.

 

 

                 (프랑스식 정원)

 

 

                  (영국식 정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대칭, 웅장한 규모, 빈틈없이 인공적인 (살짝 토할 것 같은) 프랑스식 정원에서 프랑스 고전주의의 엄격함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에 반해 훨씬 자연스럽고 자유분방한 영국식 정원은 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에의 인위적이고 절대적인 개입은 저절로 ‘통제’라는 의미와도 연결된다. 이런 기조는 언어정책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하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40인!의 석학으로 구성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권위 : 영국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 과정에의 민중참여 도식을 보면 과연 그렇다.


OED 즉,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의 민주적인 면모는 자원봉사활동에 있다. ‘영어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자 한 야심, 즉 ‘모든 어휘와 뉘앙스, 미미한 차이를 보이는 모든 뜻과 철자, 발음, 어원의 변화 전부와 모든 영어 저술가들의 글에서 따온 최대한 생생한 인용문 전부를 담는 사전’을 만들기 위해, 일반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프랑스 식의 중앙집권적이고 절대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비약을 하자면, ‘성당’이 아니라 ‘시장’*을 추구했다고 할까. 밀폐된 먹물들의 세계인 성당이 아니라, 시장 ‘어중이떠중이’의 잠재력을 처음부터 믿고 들어간 OED의 출발점이 내게는 무척 감격스러웠다. 물론 이런 방침 덕분에 ‘교수와 광인’이 서로 만날 수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시의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훌륭한 책에서는 늘 어느 정도 지금 여기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시의성에 고개 끄덕여지는 면이 있다. 심지어 이 영어 사전 편찬 이야기책에서도 보인다. 바로 이런 멋진 문장. ‘사전 편찬자는 역사가이지 비평가가 아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에 곧장 대입해 볼 수 있는 이런 관점이 한 세기도 넘게 떨어진 과거에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음을 어찌 해야 하나. 아닌 게 아니라 OED 이전의 사전 편찬 과정에 가치 평가적인 기준이 적용되었음을 꼬집는 지점이다.


장래에 사전을 만들 사람이라면, 사전이 단순히 ‘언어의 목록’이라는 점을 깨닫는 게 기본 신조라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즉 사전은 언어 사용법 안내 책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좋은 어휘, 나쁜 어휘를 가름해서 사전에 실을 어휘를 선택하는 일은 사전 편집자가 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뮤얼 존슨을 포함해서 앞서 사전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자의로 어휘를 선택해서 싣는 잘못을 저질렀다. (『교수와 광인』, 131쪽)


사전은 단순히 언어의 목록, 역사는 단순히 일어난 일의 목록. 그게 어려운가? 어휘나 역사는 자의로 선택할 사항이 아니라는 기초적인 내용임에도 지금 이 시대에 읽노라니 아주 혁명적으로 여겨져 옥스퍼드 사전이 더욱 높아 보이는 것 같다. 정권에 따라 역사(어휘) 기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망상 또는 독재다. 사실만 기록하면 역사(어휘)는 실상 정치와 관계없는 것이어야 한다.


문헌들을 뒤지며 단어의 쓰임새를 살펴보는 일은 솔직히, 내가 참 좋아할 작업이라 부러운 시선으로 닥터 마이너의 꼼꼼한 손길을 살펴보았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니 책에서 각 어휘의 인용문을 찾아 손으로 기록하는 일을 상상해보면 가히 보통 성격으로는 힘들었을 게 틀림없다. 빈틈없는 마이너의 작업과정을 그에 못지않게 꼼꼼히 들려주는 저자. 그 솜씨를 해치지 않기 위해 조금 긴 문장을 그대로 옮긴다.


마이너가 ‘buffoon’이라는 단어와 마주친 순간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우선 뒤 보스크의 책 34쪽에 나오는 문장을 보고 이 단어가 적절하게 쓰인 예가 된다고 느꼈다. 즉시 단어를 소책자에 알아보기 쉬운 작은 글씨로 깔끔하게 썼다. 흠잡을 데 없는 글씨였다. 그는 이렇게 첫 단에 단어를 쓰고, 3분의 1쯤 내려간 곳에 단어와 쪽 수를 적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안성맞춤한 위치였다. 신중하게 선택한 자리였다. 그렇게 위에 빈 공간을 마련해두는 것은 조만간 관심을 끄는 b로 시작하는 단어가 나오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buffoon 전에 넣을 단어가 나타날 확률은 아주 많았고, 그 다음에 들어가야 하는 단어가 나올 확률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buffoon의 두 번째 철자는 u이므로 그 뒤에 넣을 단어가 올 가능성은 딱 세 가지였다. 두 번째 철자가 다시 u인 단어가 오거나, w로 시작되는 경우, 즉 bwana(주인님, 나리)라는 뜻의 스와힐리어나, y인 단어가 올 경우 세 가지였다.

몇 페이지 뒤에 ‘balk(방해하다, 말이 갑자기 서다)’라는 흥미로운 어휘가 멋진 인용 구문과 함께 나왔다. 어휘 목록표에 넣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어휘였다. 그는buffoon 위에 balk를 적어넣었지만 두 단어의 사이를 충분히 두었다. 두 번째 철자가 balk의 a와 buffoon의 u 사이에 들어갈 단어가 나올 경우에 대비해서였다. 다섯 페이지 뒤에서 ‘blab(주책없이 지껄이다)’라는 단어를 발견하자 이런 종류의 단어가 나오기를 고대했던 마이너는 흐뭇해하면서 balk 아래, buffoon 보다는 한참 위의 빈자리에 써넣었다. (『교수와 광인』, 170-171쪽)


이렇게 사전 편찬에 맞춤한 것 같은 성격 소유자 마이너는 ‘미친’ 사람이었다. 요즘 용어로는 정신분열증 환자. 망상에 시달리던 마이너의 모습은 안쓰럽고 처참할 정도였다. 현대의학으로는 알약 몇 개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겠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편집증적 환자는 병리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했고, 곧장 사회에서 격리 수용되는 ‘도덕 치료’가 다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마이너가 미국 군의관 출신이었으므로 연금이 충분하여 비록 수용소 안이라지만 방 두 개를 호화롭게 쓸 수 있었다. 걱정 없이 책을 주문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정신분열증 환자가 수용소에 가게 된 연유는 살인.


저자의 가장 멋진 면모가 드러나는 지점인데, 훌륭한 이 책을 다른 누구도 아닌 문제의 살인사건 피해자에게 바쳤다는 사실이다. 광기와 위대한 업적이라는 섹시한 기삿거리에서 죄 없이, 소리 없이 저물어간 사람을 기억하게 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다. 헌사가 이렇다.


1872년 2월 토요일 밤, 총탄에 맞아 차갑고 축축한 람베스의 길바닥에서 쓰러진 불쌍한 영혼 조지 메리트를 추모하며


이쯤 되면 책 제목의 두 인물 중 ‘교수’도 나올법한데, 그저 딱 한 마디만 하겠다. 천재. (헛발질 페이퍼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


헌사에 이어 이 책의 또 다른 멋은 각 장의 시작에 표제어 하나씩 사전 항목 그대로 삽입해 놓은 점. ‘에필로그’에 달린 단어는 memorial (1.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는 것 / 3. 기념비적인 것으로서 사람, 사물, 사건의 기억을 보존하는 것) 이고 그 편에 피해자인 조지 메리트의 이야기가 담겼다. ‘작가의 말’은 coda ((음악)정확하고 만족스러운 결말을 형성하기 위해서 악장의 주요 부문이 완결된 후에 도입하는 독립적인 부분) 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과 저자 자신의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마지막 단어, 고루해 보이고 괜히 어렵게 생긴 acknowledgment에 마음이 쿵-하고 말았는데  ‘감사의 말’에 붙어 있다. 


1. 인정, 고백, 시인하는 행위 ; 고백, 공언

5. 선물이나 호혜 혹은 전갈을 받았음을 인정 ; 감사하며, 예절 바르게 혹은 분명하게 인정함

6. 받았음을 인정하는 적절한 신호 ; 호의나 전갈에 대한 보답으로 주거나 행하는 것, 혹은 그것을 받았다는 것을 알리는 격식 갖춘 통지.


며칠 전 내 인생 최고의 아름다운 ‘애크널리지먼트’를 받고 쩔쩔매던 중 마침 이 단어를 만났으니. 감정도 감상도 와서 잠시 머물다 연기처럼 사라지곤 하는 ‘술과 장미의 나날’**, 복잡하고 떨리는 감정을 농축해놓은 단 하나의 단어를 마주친 일은 벅찬 감동이었다. 가슴 한 구석이 쿡쿡 아려오는 증상을 단어 하나가 와서 ‘이거야.’ 하고 간다. 적확한! 단어가 주는 위무는 놀라웠다. 이 헛발질 페이퍼는 내가 경험한 가장 멋진 애크널리지먼트를 써 준 이를 생각하는 방식인데, 이것으로 내 몫의 애크널리지먼트가 그 사람에게 가 닿는다면 이 시간이 불모만은 아닌, 포근하고 촉촉하며 비로소 조금 미소 지어도 될 하나의 겨울밤이 될 것이다.


품절된 『교수와 광인』저자는 사이먼 윈체스터, 이런 책들도 썼다. 품에 안을 수밖에 없겠다.

 

 


 

 

 

 

 

 

 

*<성당과 시장>, 에릭 레이먼드의 논문

**영화 제목이자, 술에 관한 어떤 책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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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2-2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지금 두 분이 서로 acknowledgment를 주고 받으며 애정을 속삭이시는 겁니까, 지금? 네? 그런겁니까?

에르고숨 2013-12-21 13:50   좋아요 0 | URL
엇, 다락방 님 오셨다. 사실은 제가... 일방적으로 고백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슴 아픈 짝사랑이에요ㅠㅠ.

다락방 2013-12-2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

에르고숨 2013-12-22 15:41   좋아요 0 | URL
의 나날.
 

 

커피의 쓴 맛, 맥주의 쓴 맛, 블랙러시안의 쓰면서 단 맛에 이어 소주는 다디달았다. 세상에- 너무 달아서 백자평 하나 남길 일 없이 증발한 월요일이 조금 부끄럽구나. 숙취가 심하지 않아 조금만 부끄러운 건가. 여하간 부끄러울 줄 알면서 또 저녁 술약속이 돼있는 화요일이다.


품절이라 어렵게 구한 이 멋진 <교수와 광인>을 차분히 앉아 음미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다. 19세기의 위대한 프로젝트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에서 엮인 두 사람, 제임스 머리와 윌리엄 마이너의 이야기가 각각 조금씩 맛보기로 소개된 흥미진진한 초기지점에 내 책갈피는 머물러 있다. 그런데 빅토리아 시기 영국이니 제임스 머리(어마어마한 지식 소유자이자 추구자)가 슥- 스치고 지나가는 주변인들이 예사롭지 않아 단 몇 줄의 만남이라도 헛-하는 비중으로 다가온다.

 

 


 


만약 두 사람의 우정이 없었다면, 머리의 언어학에 대한 관심은 아마추어로 열심히 노력하는 정도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도움을 준 친구는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알렉산더 엘리스였고, 또 한 친구는 옹고집에다가 불손하기로 악명 높은 음성학자 헨리 스위트였다. 헨리 스위트는 얼마나 특이했던지 이 사람의 성격은 나중에 버나드 쇼가 <피그말리온>이라는 작품에서 헨리 히긴스 교수라는 인물로 묘사했는데, 이 작품은 후에 불후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되었다.


렉스 해리슨 경의 연기로 기억되는 히긴스 교수 아닌가. 주위에 이런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미드나잇 인 파리>같은 마술이 일어난다면 내가 택할 시기도 다름 아닌 19세기. 프랑스 뿐 아니라 영국, 러시아까지 가 볼 거다...(?)마술이니까 내가 게으르거나 하진 않겠지.


하지만 퍼니발은 뛰어난 학자였고, 머리처럼 배움에 대한 갈망을 지녔다.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 찰스 킹즐리, 윌리엄 모리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이너의 런던 스승이었던 존 러스킨, 요크셔 태생의 작곡가 프레더릭 딜리어스 같은 사람들이 퍼니발의 친구이자 숭배자였다. 같이 스컬 배를 타는 동료 케니스 그레이엄은 잉글랜드 은행 직원이었는데, 퍼니발에게 매혹되어 <갈대밭에 부는 바람Wind in the Willows>이란 동화를 쓰기도 했는데, 그는 작품 속에서 퍼니발을 물쥐로 표현했다. 작품 속에서 “우린 그것들을 배웠어!”라고 두꺼비가 말하면 물쥐는 “우린 그것들을 가르쳤어”라고 고쳐준다. 퍼니발은 잔꾀 많은 악동이었을지 몰라도 때로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갈대밭’이 아니라 ‘버드나무’가 바른 모양,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만났음에도 이상하게 아직 손에 넣지 않았는데, ‘반쯤 미친 집시 학자’이자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으로 꼽히는’ 퍼니발이 물쥐의 모델이라니, 확 구미가 (다시) 당겼다. 많은 번역본들 중에서도 이것으로! (좀 비싸구나;;)

 

 

 

 

 

 


1878년 4월 26일, 제임스 (오거스터스 헨리) 머리는 옥스퍼드로 초대받았다.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는 세계 최고의 지성인 집단으로 꼽히는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 대표 위원 전원이 모인 어마어마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단한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칼리지 학장 헨리 리델, 라이프치히 언어학자이며 동양학자, 산스크리트학자로 옥스퍼드의 비교 언어학과장 막스 뮐러, 빅토리아 시대에 역사학을 존중받는 학문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학 흠정 강좌 담당 교수 윌리엄 스터브즈,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참사 위원이자 고전 학자 에드윈 팔머, 뉴 칼리지 학장 제임스 수얼 등등.


헨리 리델의 딸이 바로 앨리스다. 수학자 찰스 도지슨 또는 작가 루이스 캐럴도 이때쯤 주변에서 소녀들 사진을 찍거나 하면서 서성이고 있었겠다. 막스 뮐러는 그 유명한 <독일인의 사랑>의 막스 뮐러가 맞다.

아 빅토리아, 빅토리아. 이런 책도 보관함에 들어앉아 있는데 <교수와 광인>을 다 읽고 나면 덜컥 지를지도 모르겠다.

 

 

 

 


 

빅토리아? 그러고 보니 어제는 영화 <글로리아>를 봤고


 

 

 “작품에 총이 등장하면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는 체호프의 말과(ㅋㅋㅋㅋ), 이런 영화는 관람 시 (흡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주를 허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구나, 사라진 월요일은 <글로리아> 때문이었어. 술과 숙취와 외로움의 쓰고도 단 맛. 음? 핑계 대기는. 네 삶 자체가 안주라고 그냥 말해. 내 삶은 안주, 삶은 안주,,, 날것은 못 먹습니다. 네 발로 기는 내일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네네.

 

이 닦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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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2-1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닦고 왔어요?
전 토요일에 <글로리아> 보러 가요.
오늘 저녁은 에르고숨님처럼 술약속이 있고요.
음, 우리 한 여덟시반쯤 서로를 생각하며 건배- 할까요?

에르고숨 2013-12-17 15:02   좋아요 0 | URL
오늘 여덟시 반쯤이요- 네 알겠습니다. 다락방 님 맛있게 드시고 술병 나지 마세욤.

Forgettable. 2013-12-1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11시 건배는 저와???? 저도 19-20세기 느무 궁금해요... 안그래도 예전에 19세기 작가들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있어 찾아보니 EM 포스터, 체스터튼, 서머셋몸, 벤야민, 소세키 좋다고 써놨네여 ㅋㅋ 닥터후 타임머신을 타고 그들을 만나러 가고싶어요 ㅠㅠ

에르고숨 2013-12-18 13:23   좋아요 0 | URL
건배- 마술이 일어난다면 거기서 뽀 님도 뵐 수 있는 거군요? 파리에서 만나 압생트 한 잔 합시다. 저는 보들레르와 친구 먹고 있을 겁니다하핫.

비로그인 2013-12-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두 번 이상 정독해도 어렵어렵x어렵습니다..인용문이 디따 어렵습니다. '모르는 사람(요즘 유행어^^)이 너무 많아 그렇습니다. 에르고숨 님, 숨 좀 고르며 가십시다. 술, 영화, 책 다 섭취하면서 아름다움을 배가시키는 마법같은 솜씨, 다 좋습니다. 다만 책을 고르는 기준이라든가 비법이 넘 우아하고 지적이라서 제가 따라갈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ㅠㅠ

에르고숨 2013-12-18 13: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람 이름이 많이 나와서 그렇죠? 이 책의 진정한 매력(완전히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의 우정이라든지, 언어에 대한 열정이라든지)은 차차 나올 텐데, 제가 아직 초반밖에 못 읽어서 말입니다. 못 읽은 대신 뭐라도 기록해두고 싶어서 섣불리 발췌한 게 탈인가 봅니다. 견디셔 님의 '매'눈이 더 훌륭하십니다. 어떤 책에 닿게 되는 계기는, 아니, 이번 책을 손에 든 이유는,,, 들으면 실망하실 텐데-_-; 아래 백자평의 댓글요ㅜㅜ '광...인'ㅋㅋㅋㅋ
 

 

두 시간에 걸쳐 집을 청소했다. 서재 겸 침실, 부엌 겸 거실, 내가 영국식물원-지금은 말라비틀어진 바질 화분 세 개가 있을 뿐이지만-이라 이름 붙인 발코니. 저녁에 측근이 오기 때문이다. 함께 장을 보아서 밥을 지어 먹든지, 또는 측근의 기분에 따라 간편하게 뭔가를 주문해 먹을지도 모르겠다. 측근이 와 줘야 한다, 그녀의 맑은 영혼과 육체를 받아들일 집구석 먼지를 떨어내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고르던 중 <책의 정신>이 손에 잡혔다. 들어가는 말에 저자 본인 인용의 이런 문장이 있다.


김훈이 쓴 책 <자전거 여행> 서문을 보면 ‘사람들이 새 자전거 사게 책 좀 사봐라’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저도 책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 마지막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이 저렸거든요. 그 말을 제 상황에 맞추면 ‘사람들아 새 컴퓨터 하나 사게 책 좀 사봐라’가 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책을 안 사나? 여기(알라딘)서 지내다보니 정말 모를 일이다. 벌써 메아리가 들릴 정도로. 사람들아 꽃을 사라 책 좀 사보게. 사람들아 커피 마셔라 책 좀 사보게. 사람들아 영화 봐라 책 좀 사보게. 사람들아 불어 배워라 책 좀 사보게... 마지막 사항은 물론 내 것이다. 우리가 점점이 외따로 콕 처박혀 사는 것 같아도 그 삶들이 다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남은 남이건만 남이 있어야 나도 있으며, 과연 꽃잎 하나가 지는 데도 전우주가 동원되는* 세상임을, 말끔한 집구석에 앉아 <책의 정신>을 손에 들고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자본주의, 사고파는 상품이라는 자격에서 한 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책의 정신.’


 

아 시간이 다가온다. 측근, 측근. 구차달 님으로부터 당당히 넘겨받은 ‘측근.’ 이 네모지고 무성(無性)이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닮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 끝’**의 경지는 아니라 해도, 단 한 번 츠, 혀를 차고 아래로 툭 떨어지는 단호하고 독립적이고 단단한 측근. 사랑하느냐고? 물론! 날씬하고 예쁘고 당찬 아가씨, 가출!한 조카인걸. 나비 같은 네 캔버스 운동화 발걸음으로 살살살 사뿐히 오너라. 눈길 조심, 길 건널 때는 차 조심하고.


 

*누군가의 표현인데, 그 누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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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2-13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으면서 그런 생각했어요. 나는 에르고숨님의 측근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측근이라 이를것인가, 나는 과연 그렇게 불릴 수 있는 사람인 것인가, 하고 말이지요.

저도 오늘 저녁, 측근과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양껏,맘껏 먹고 마십시다. (이따 밤에 들어와서 건배해야지.)

에르고숨 2013-12-13 22:48   좋아요 0 | URL
구차달 님은 배우자에 한정하여 측근이라는 말을 특정 사용하셨지요. 제가 조금 오염시킨 면이 있습니다. 친밀한 정도가 핵심일 텐데, 그렇게 물어보신다면 저는 다락방 님이 알라딘의 소중한 제 측근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물론 많고 많은 알라디너가 저만큼, 또는 저보다 더 다락방 님을 알고 사랑하시겠지요. 유명인 다락방 님의 질문 의도가 와 닿습니다. 다락방 님은 저의 측근, 그러나 다락방 님께 있어 제가 측근일지는 제가 궁금할 문제네요. 귀염둥이 조카아가씨는 오렌지주스, 저는 포도주에 이어 맥주 중, 건배-입니다.

다락방 2013-12-1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주와 맥주. 그러니 건배- 집에 가는 길이에요. 가서 씻고 와인을 들고 다시 건배할게요, 측근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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