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탄생의 거의 모든 것이랄까. 작품 안보다 밖의 얘기가 잘 담겼다. 메리 셸리의 성장 과정과 여행, 삶과 주변인들은 물론이고 당시 과학 발전상을 빈틈없이, 거의 지루할 만큼 소개한다. “우리 각자 유령 이야기를 써봅시다.” 1816년 저 유명한 바이런의 제안에 대한 메리 셸리의 응답이, 초자연적인 ‘유령’이 출몰하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터다. 메리 셸리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주술이나 연금술에서 벗어나 의학과 전기 현상으로 관심을 돌리는 ‘과학자’다.


계몽의 시대를 막 지나온 당시는 자연철학, 즉 과학이 유행이었다.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칭하지는 않았지만 (‘과학자’라는 단어 자체는 1833년에야 만들어졌다) 많은 천재들이 과학을 했고 대중화에 힘썼다. 이런 분위기 속 어린 메리 고드윈의 집을 드나들었던 문학가, 예술가, 자연철학자들의 대화, 빌라 디오다티 회합을 비롯한 교류와 여행과 독서 등이 <프랑켄슈타인>의 토양이 됐다. <괴물의 탄생>은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자, 제목 그대로 ‘괴물’을 만드는 실용서이기도 해서 예컨대 2장의 소제목을 순서대로 따라하면 여러분도 시체를 살릴 수 있... 농담이다. 교육, 영감, 수집, 보존 처리, 조립, 감전, 소생이라는 소제목들을 따라가면 연금술, 화학, 해부(+시체 거래), 의학, 전기, 전지의 과학사를 푸짐하게 만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을 빌미로 과학사를 읽거나, 과학을 빌미로 <프랑켄슈타인> 탄생 배경을 읽거나 양쪽 모두 만족할 독서가 돼준다.


눈에 띄었던 단어가 하나 있다.


메리가 직접 봤던 자기 괴물의 다른 이미지는 『프랑켄슈타인』을 각색한 <추정, 또는 프랑켄슈타인의 운명Presumption: Or the Fate of Frankenstein>이라는 제목의 연극에서 T. P. 쿡Cooke이 연기한 해석이 유일하다. 1823년에 메리가 런던에 돌아왔을 때 이 연극은 공연 4주 차였고 메리는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 연극을 관람하러 갔다. 쿡은 이름 없는 한 괴물 역을 맡아 빅터의 연구실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계단을 부숴 엉망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겁을 주었다. 쿡은 인정받는 배우였고 낭만주의극 <뱀파이어The Vampyre>에서 루스벤 경 역으로 공포 연기를 해 이미 명성을 얻은 터였다. 이 극의 원작자는 다름 아닌 빌라 디오다티에 머물렀던 또 한 명의 손님인 존 폴리도리였다. (311)


보이는지? ‘presumption’이다. 추정이라는 뜻도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의 운명과 함께 놓이기에는 좀 생뚱맞다. 아래 책 <프랑켄슈타인>에는 같은 연극 제목을 ‘자만, 또는 프랑켄슈타인의 운명’으로 옮겼고, 이쪽이 더 나을 듯하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만하였다. 한편, 적어도 원작소설에 한해서는, 사악하거나 미치지 (추정하지도) 않았다. 프랑켄슈타인=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이미지는 각색 영화나 연극에서 만들어졌다고 하쿠프 선생도 지적한다. 또한 빅터는 실패한 과학자도 아니다. ‘활기가 없는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은 빅터의 실험은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 빅터를 몰락하게 한 것은 다만 자기 행동의 잠재적인 결과를 미리 보지 못한 무능력이었다.’(110)


발췌문에 폴리도리가 나온 김에 덧붙인다. 빌라 디오다티 손님들이 ‘여름이 없는 해’ 1816년 각자 시작한 작품 중 끝을 본 것은 두 개뿐이다. ‘양적으로는 그리 대단한 결과를 낳지 못했지만, 구질구질한 여름날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바이런이 제안했던 가벼운 제안은 고딕 소설과 공포소설에서 가장 잘 알려진 두 인물을 만들어냈다.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뱀파이어였다.’(87) ‘제안했던 가벼운 제안’이라니... 음. 존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어떤 내용인가. 런던 사교계에 등장한 창백하고 아름다운 남자가 알고 보니 뱀파이어였더라, 하는 소설이다. 짧고 단순하고 퍽 싱겁다. 카르밀라(1872년)와 드라큘라(1897년)를 이미 겪은 우리에게 그렇다는 얘기다. 어쩌면 루스벤 경보다, 젊고 우울하고 요절해버린 의사 폴리도리의 삶이 더 드라마틱할지도 모른다. 스무 살에 바이런의 주치의가 되어 함께 여행했다. 소설과 일기를 썼다. 불화를 경험했고 도박 빚을 졌다. 청산가리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겨우 26세였다.




키워드가 프랑켄슈타인이다. 과학사학자(이두갑), 역사학자(질 르포어), 과학 기자(윤신영), SF 작가(김초엽) 글이 묶였다. 겹치는 부분이 없이 각각 멋지다. 200년 전에 번개(전기 현상이다)와 함께 나타난 크리처 하나와 여성 창조자가, 숱한 자식들을 낳고 여전히 계속 읽히고 다시 쓰인다. 끊임없는 ‘현재적’ 알레고리와 해석을 가능케 하는 명작. 불멸이란 이런 것이겠다. 내 가족사진↓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하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의 혼란과 분노에는 그가 왜 이러한 존재를 원했는지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이 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창조된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프랑켄슈타인』에는 과연 우리가 창조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교훈이 있다. 인공생명, 인공지능, 로봇에게 보호받고, 도움 받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그 사회는 그것들과 공존하는 삶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는 기존의 인간관계에 대한 축소를 의미할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존재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 확장된 사회적 삶을 의미할 것이다. (124, 이두갑 | 프랑켄슈타인, 낭만주의 과학의 이상과 좌절)




원작소설뿐 아니라 영화와 변주 작품들까지 언급하고 소개해준다. 몇몇 꼭지는 와 닿지 않았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신분증’(장-자크 르세르클)과 ‘서녀들’(카트린 라논) 꼭지 재밌게 읽었다. 르세르클 선생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괴물인 이유를, 신분증을 도구로 하여 촤르르 푼다. 마지막 문단은 격정적이기까지 하다. 내가 <프랑켄슈타인>을 좋아하는 이유와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르세르클 선생의 역설(力說)이 좋았다. 어쩌면 문학의 모든 ‘괴물’들을 향한 독자의 매혹을 잘 설명해주는 듯도 하다. 긴 발췌문을 그대로 기록해둔다.


비극에 관한 에세이에서 흄은 실상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어떻게 나는 연극에서, 보통 상황이라면 비탄과 공포에 빠지게 할 장면들을 보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가? 어떻게 끔찍한 장면이 공포보다 오히려 즐거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그 까닭은 신분증에 예속되어 있는 주체로서의 나의 삶이란 무미건조하고 진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직업난만이 빠져 있는 신분증의 항목들은 나의 존재를 허락하지만, 그것은 나를 사슬로 묶고 있다. 괴물은 사슬에서 풀려나 있다. 이러한 모순에 대한 불행한 해결책, 현실이 나에게 선택하길 강요하는 해결책, 존재를 보장해주는 예속과는 정반대의 해결책, 비존재의 대가를 치르고 얻는 자유라는 해결책을 구현함으로써, 괴물은 나를 유혹하는 동시에 격분하게 한다.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괴물의 진정한 창조주인 메리 셸리는 괴물을 매혹적이면서 끔찍하고, 극도로 선량하면서도 악독한 존재로 창조해냈던 것이다. (116-117, 괴물 프랑켄슈타인에겐 신분증이 없었다 | 장-자크 르세르클)


카트린 라논 선생의 ‘서녀들’ 편은 말 그대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잇는 여성작가들 작품을 안내해준다. 라논 선생이 꼭지를 오늘날 다시 쓴다면 재닛 윈터슨의 <프랭키스슈타인>을 아주 멋지게 포함할 터다. 왜냐하면 <프랭키스슈타인> 멋지거든. 윈터슨이 없는 라논 선생 글에서 나는 안젤라(앤젤라/앤절라) 카터를 건졌다. <피로 물든 방> 하나 읽었고 <서커스의 밤>과 <매직 토이 숍>을 갖고 있는데, 맙소사, 라논 선생이 알려주는 <그림자 춤Shadow Dance>과 <새로운 이브의 열정The Passion of New Eve>은 번역 출간이 되지 않았다! 줄거리를 보아하니 아주 후덜, 기괴하고 무서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거다) 참, 내가 왜 <프랑켄슈타인>을 좋아하는지 말했던가?


빤한 답이라 실망하셔도 할 수 없다. ‘괴물’을 철저한 외부인, 혐오스러운 이방인, 혹은 알 수 없는 타자로 만들어 내팽개치지 않은 점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의 번민만큼, 아니 오히려 더, 크리처의 두려움과 외로움과 분노에 공감하도록 써내려간 메리 셸리 선생의 훌륭함 말이다. 오래 전이지만 <프랑켄슈타인>을 읽는 내내 크리처가, 대상으로 무섭다기보다 크리처 몸속에서 내가 외로워하고 세상과 인간을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피부색, 소수자, 이방인, 장애인, 비미인(응?), 나아가 사이보그, 인공지능, 인공생명 등 숱한 현재적 알레고리로 다시 읽을 수 있는 힘도 거기에 있다고 느낀다. 다시 안젤라 카터로 돌아와서, <새로운 이브의 열정>은 마치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 혹은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가 사는 피부>와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 보고 싶다. (출간해주세요) 카터 책 두 권을 책장에서 뽑아본 김에 <매직 토이 숍> 읽기 시작했다. 윽, 외삼촌 왜 이래...



<죽은 자의 제국>(팔리셨음)이 떠나기 전에 가족사진 다시 찍었다. <제국>에는 존 왓슨, 프라이데이, 알렉세이 카라마조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레트 버틀러 등등등등이 등장한다. 각각 주인공인 원작품과 연관이 영 없지 않은 채 <제국>에 스카웃됐다. 그게 큰 재미 포인트다. 관건은 죽은 자에게 영혼을 삽입하여 어찌저찌한다는 기술이다. 괴물이 도주할 때 가지고 갔던 프랑켄슈타인의 기록이 큰 역할을 한다. 배비지의 해석 기관이 대빵 규모로 출현하는 건 좀 장관이었다만… 정신없겠지. 정신없었고 뭔가 비장하고 아슴아슴한 게, 이게 단지 잊어버린 건지 애초에 이해나 한 건지 싶으면서 여하튼 대단한 작품이긴 했고 게다가 절판본이다. 안녕!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3-04-26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간만에 숨님의 긴 페이퍼를 봅니다. 항상 책구매 전에 짧은 리뷰만 봤던지라..^^;;

긴페이퍼 써 주시면 득달같이 와서 탐독하겠어요..ㅎㅎ

에르고숨 2023-04-27 12:07   좋아요 0 | URL
이글루스 문 닫는다고 해서 피난 왔어요.ㅜㅜ
백 자 넘게 할 말이 있는 책은 페이퍼 쓰지 싶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