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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첫날)


-안녕, 풀. 햇반 그릇이 마음에 들기를 바란다. 넌 혹시 대파 아니냐. 난 인간이다.

-안녕, 인간. 나는 튤립이다.

-애걔. 못 먹.. 아니 못 믿겠다. 증명할 수 있나.

-지금은 곤란하다. 2주일만 기다려 달라. 햇볕과 바람이 필요하다.


 


(3/10, 4일째)


-안녕, 식물.

-안녕, 인간. 나는 튤립이다.

-넌 제법 알로에 같아졌다.

-일주일 더 기다려 안쪽 깊숙이 살펴보기 바란다. 햇볕은 고맙다. 물도 좀 달라.




(3/18, 12일째)


-안녕, 선인장. 안쪽을 보아하니 너는 선인장이다. 다육식물.

-안녕, 꽃봉오리도 못 알아보는 인간.

-오, 미안하다. 통통 잎만 계속 나오는 줄 알았다. 왜 봉오리 색깔이 잎과 같으냐.

-스포하겠다.. 곧 변할 거다.




(3/21, 15일째)


-???

-...




(3/23, 17일째)


-!!!

-???




(3/24, 18일째)


-에라, 모르겠다. 거실 책꽂이 공개해 버렸다. 너는 지금 내 책들이랑 같이 있다. 너는 참으로.. 페어바일레 도흐, 두 비스트 조 슌.

-안녕, 인간. 나는 프랑스어 모른다.

-독일어다. 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 번역문 검색해 음차했다. 파우스트.

-됐다.




(3/26, 20일째)


-안녕, 튤립. 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튤립이다.

-안녕, 인간. 넌 어리지 않고 왕자도 아니며 나 또한 장미가 아니다만 그 말은 고맙게 듣겠다. 내 계절을 너도 즐기기 바란다. 페어바일레 뭐시기 순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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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3-2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감격입니다!

에르고숨 2024-03-26 19:36   좋아요 0 | URL
가까이에 튤립 한 송이가 있으니 얼마나 예쁜지요, 히힛.

호시우행 2024-03-27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 튤립을 좋아해서 며칠 전 구근구매를 했어요. 온라인으로, 그런데 빨간색 뿐이라고 연락와서 그냥 보내달라고 했어요. 이 사진을 보니 힐링됩니다.

에르고숨 2024-03-27 10:46   좋아요 0 | URL
저는 색깔도 모르고 키웠다가 노란색이 뿅 나타나서 깜짝 놀랐어요. 예뻐서.ㅎㅎ 우행 님이 좋아하시는 거였구나.. 화분은 작은데 키가 자꾸 크네요? 우행 님도 잎부터 꽃까지 쑥쑥 자라는 모습 행복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

호시우행 2024-03-2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Yujin 2024-05-02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대박! 식물을 키워서 꽃을 피워내시다니 진짜 멋져요! 전 꿈도 못 꾸는 일을 해내시다니! 여기 와서 구경해야겠네요^^

에르고숨 2024-05-02 22:54   좋아요 0 | URL
ㅋㅋ식물과 친하지 않으신 유진 님. 사실 (속닥) 저도 좀 감탄한 게, 본가에 3개 있던 튤립모종 화분 중 제일 작은 녀석을 얻어온 거였거든요? 제 집에 온 것만 저렇게 꽃 피우고 본가에 남은 2개는 키만 좀 크고 꽃을 피우지 않았답니다... 거 참. 이상해요잉?ㅎㅎ
 

국딩 때 누군가 제출한 독후감 제목 하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노래해 버렸네. ‘퀴리 부인’에 대한 글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숙제였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교탁에 놓인 과제물을 담임이 살피다가 해당 원고지에 멈춰서 ‘이게 뭐야’ 하며 큰 소리로 제목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냥 읽었느냐? 아니, 픽 비웃으면서 읽었다. 글쓴이 이름은 읊지 않았다. 그에 따라 몇몇 아이들도 킬킬+수군거리길, ‘누구야, 바보같이’ ‘ㅋㅋㅋㅋ’ ‘부인이 이미 여자라는 뜻 아냐?’


얼굴이 빨개진 아이가 하나 있었을 터다. 뭔가 얼토당토않은 글을 쓴 건가, 감상문은 자기 마음대로 써도 되잖아, 제목은 내용을 잘 대변해야 하고, 그러나 앞으로는 선생님 눈에 띄지 않을 제목을 붙여야겠다고, 빨간 얼굴 위 두개골 안 회색 뇌세포에 각인한 아이가… 그렇다, 나다. 마리 퀴리는 그토록 굴욕적으로 내게 왔고 그만큼 애틋하게 간직한 (내) 과학자다. 몇 십 년 전의 내게 보내는 격려(과연?)처럼 마리 퀴리를 사 모으고, 이제 대개는 다 읽었다. 머릿속에 남은 건 별로 없을 듯하지만 저 무더기를 올해 안에 해산시키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 검열하는 담임 없이. 아아 어쩌면 소재별 책무더기 만드는 버릇 없애기를 새해 목표로 삼아야 할지도 몰라.



방사성 원소, 전자, 핵, 핵자, 핵분열, 핵발전, 핵폭탄, 방사능 피폭까지 가지가 뻗으니 20세기 거의 모든 과학사와 과학자를 만나도 가족사진이 됨 직하더라. 방사능이 특정 원소가 갖는 성질이며 앞으로 널리 쓰이리라 공언한 나의 마리 퀴리 선생은 그만큼 큰 업적을 남기신 분. 사랑하고 존경한다. 한편, 마리 퀴리는 물질이 내보이는 특징을 현상 그대로 기술했을 뿐, 다른 이론물리학자들에 비해 상상력이 부족했던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옳지 않다. 광물이 스스로 방출하는 방사선이 다름 아닌 원자 자체의 속성이리라는 추론은 당시로서는 대담한 상상력이었다. 그 덕에 이후 핵물리학이 눈부시게 발전해올 수 있었다. 극단적으로는 ‘천 개의 태양보다’ 밝게. 또한 외국인이자 여성이었기에 당했던 온갖 스캔들과 수난까지 생각하면 프랑스라는 선진국도 정말 후졌... 참, 담탱이(나쁜 선생이었음)가 픽 비웃으며 낭독했던 내 독후감 제목은 이렇다. 웃참 하셔도, 또 못하셔도 이젠 마상 입지 않음. ‘퀴리 부인도 여자다!’



시작하기에 마침맞고 매우 아름다운 책 아닌가. 백자평을 보니 3개월 전에 재독했다고 되어 있는데 3독, 4독하여도 좋을 명작이다. 작품의 이미지 인쇄를 퀴리 혹은 라듐의 ‘발광성’에 어울리게 작업하였다고 한다. 마리 퀴리의 삶과 연구, 방사성 원소, 그 화합물의 상업적 이용과 폐해까지 짚는다. 1920년대 U. S. 라듐 노동자들과, 마리 퀴리의 몸만큼 방사능 피폭 피해를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전에, 냉전 시기 숱한 핵폭탄 실험 전에, 스리마일 전에, 체르노빌 전에, 후쿠시마 전에 이미.


이들은 고작 말갈기 서너 가닥으로 만든 작은 붓으로 언다크 도료를 시계 숫자판의 숫자에 칠하는 일을 했다. 정교하게 숫자를 그릴 수 있도록 붓을 뾰족하게 만드느라 늘 두 입술로 털을 빙빙 말아야 했다. 하루 할당량인 숫자판 250개를 모두 작업하면 이들은 항상 무향에 순한 맛의 방사능 도료를 소량 삼킨 후였다. 라듐은 <골 친화성 원소>이다. 인체에 들어가면 뼈의 칼슘을 빼앗아서 뼈가 약해지게 만든다. 얼마 후 여공들에게 심각한 증세가 줄지어 일어났다. 그들은 턱이 부패하거나 잇몸에서 피가 나거나 심한 빈혈을 일으키거나 허약해져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며 차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떤 여공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절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속에서부터 빛이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90)



에브 퀴리가 쓴 어머니 전기 <퀴리 부인>을 선택하지 않고, 역사가이자 작가인 골드스미스가 집필한 평전을 골랐다. 덜 친밀하고 더 현재적인 서술이 보고 싶어서다. 국딩 때 읽은 문제의 위인전이 전자의 축약본이었던 듯도 싶다. 아차, 그렇다면 옛 마상 극복을 위한 충격요법으로 해당 책을 볼 걸 그랬나. 음. 아니다, 음음. (나쁜 담탱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아무튼 이 훌륭한 책 <열정적인 천재>는 마리 퀴리 선생의 뛰어난 업적과 억척스러움을 잘 그려 보여준다. 연구자로서, 생활인으로서, 폴란드인이자 프랑스인으로서, 평화주의자로서 마리 퀴리와 후세들까지.


마르게리트는 퀴리 부인이 남자였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폴 랑주뱅에게 나라를 떠나라거나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3)


마르게리트는 마리 퀴리의 친구다. 폴 랑주뱅과의 저 유명한 스캔들이 터졌을 때는 마리 퀴리가 단독으로 두 번째 노벨, 이번에는 화학상을 받을 무렵이었다. 당사자 마리 퀴리의 쾌도난마는 적어둘 필요가 있겠다. 노벨위원회의 한 위원이 마리에게 상 받으러 스웨덴에 오지 말라고 하자 마리가 한 답변이다. ‘당신이 조언한대로 하는 것은 제게는 큰 실수로 비칩니다. 사실상 이 상은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공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과학적 업적과 사생활은 관계가 없다고 믿습니다.’(185-186) 멋져. 여기저기서 해당 스캔들을 읽고 보니 폴 랑주뱅이 어찌나 지질한지. 끊임없이 바람은 피우면서 부인과는 별거 재결합을 반복하며 또 과학계에서는 명성도 자자해. 마리 퀴리에 대한 대중과 동료 과학자들의 반응과 얼마나 다른가 말이다.


짜증나는 스캔들을 다루는 방식이 <열정적인 천재>에서는 선정적이지 않게 세심했고, 사위에 대한 마리의 태도에서는 나도 모르게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친구이자 동료로 마리가 연구를 같이 하던 첫째 딸 이렌 아닌가. (마리 퀴리 전기를 쓴 이는 둘째 딸 에브) 딸이 결혼하더라도(이혼하더라도) 퀴리 연구소와 라듐의 권리를 딸이 갖도록 조처해 놓는다. 또 연구실 조수이기는 해도 이렌에 비해 공부가 한참 모자라는 사위에게 어떻게 한다? 석박사 학위 따오라고 막 시킨다. 사위는 말 잘 들음. 이 착하고 성실한 부부 또한 노벨상 받는 건 다 아실 터다. 인공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로 1935년 노벨화학상. 마리 퀴리가 1934년 사망했으니 이 장면을 보진 못했다.


골드스미스 작가는 프랑스에서 이렌 부부의 딸 엘렌(역시 핵물리학자)을 만나는 장면을 책 말미에 삽입해 놓았다. 서문에서 웃음기 없는 마리 퀴리와 어린 두 딸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말문을 열더니 사진의 배경이 되는 집을 방문하여 3세대 후손과 대화하는 일화로 책을 닫는 셈이다. 무겁고 불안정한 핵이 붕괴를 거듭하여 안정한 원자가 되듯, 긴 여행을 끝내고 차분하게 제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랄까. 그러는 동안 뭐가 나온다? 알파 베타 감마... 감동. 책 분량에 비해 매우 방대한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 든다. ‘저자가 자료 뒤에 숨어 있지 않고 앞뒤에 ‘나’로 잠깐 등장하는 구성이 좋았다‘고 백자평을 잘 써 놓았네?



마리 퀴리가 1907년부터 1908년까지 주변 자녀 대상으로 ‘공동교육’을 꾸렸다. 마리의 첫째 딸 이렌이 10세쯤 됐겠다. <딸에게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는 그 수업에 참가한 어린이 중 이자벨 샤반이라는, 이렌과도 친했던 학생이 남긴 노트를 후손이 정리해 펴낸 것이다. 이 후손의 성도 랑주벵(랑주뱅)이야. 두 가계 참 얽힌다. 수업을 들었던 꼬마들이 동료 과학자들의 자녀이니 당연하겠다만. (마리 퀴리의 손녀 엘렌은 폴 랑주뱅의 손자 미셸과 결혼해 또 핵커플이 됨) <딸에게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는 아주 기초적인 과학 실험이 내용이고 따라서 뭔가 귀엽다. 샤반의 노트 사진이 삽입되어 있어 손글씨 보는 재미도 있다. 필체가 유려하다.


 


정완상 교수가 마리 퀴리인 척하며 강의한다. 무척 쉽고 간략해 좀 감동했다. 역시, 알면 쉽게 쓴다고 했어. 특히 ‘핵호텔’ 예시는 핵귀욤이다. 세 종류 방사선이 방출되는 양상을 호텔방 투숙하는 중성자와 양성자로 설명해 놓았다.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방출이 핵자들의 어떤 기작으로 이루어지는지 선명해졌다. 물론 단순화되었고 생략된 내용도 있겠지만. (다른 책들에서 배워 알고 있음) 정완상+퀴리 선생 덕분에, 그리고 순전히 마리 퀴리의 후대라는 이유로 원자핵을 당시보다 더 알게 된 게 감개무량하다. <퀴리 부인이 들려주는 방사능 이야기>는 <퀴리 부인이 딸에게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를 오마주한 것이기도 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표지를 꾸미고 있는 손글씨와 그림이 다 샤반의 노트에서 온 것들이다. 부록으로는 청소년소설이 하나 실려 있다. 이것 역시 퀴리를 빗댄 십대 여성 꾸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핵융합 폭탄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는 이야기다.


“무거워진 물을 마시면 물고기가 죽나요?”

“중수소와 삼중수소에서는 치명적인 방사선이 나와. 사람이 삼중수소를 먹으면 30초 안에 죽게 될 거야. 그러니까 물고기가 죽은 건 당연한 거지. 삐엘! 당장 이장님에게 달려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개천 물을 먹지 못하게 해.” (122)


 


두 권은 현대에 이롭게 쓰이고 있는 방사선 활용법을 나열한다. <방사능, 파괴인가 치료인가>는 짤막짤막한 꼭지별 설명이 일목요연하다. 고고학자의 탄소연대측정, 지질학 방사능연대측정 기술, 우주탐사에 쓰이는 에너지원, 해류나 식물에서 추적기로 쓰이는 경우, 진단과 치료에 사용하는 핵의학, 예술품을 복원하는 용도까지다. 책은 작고 편집도 널널한데 정보가 비교적 알차 꽤 즐겁게 읽었다.


<마리 퀴리의 위대한 유산>에는 불만이 있다. 단위가 마일, 파운드, 화씨야. 와, 씨. 소설책에서 만나도 싫건만, 과학책에서 이러면 안 되지 않나요. 에스아이, (욕 아님) 국제단위체계 씁시다. 표지에서 나의 퀴리 선생이 쳐다보고 서문은 엘렌 랑주뱅 졸리오가 썼는데 이러면 곤란해요. 아무튼, 지은이 월터 박사는 핵공학자이자 미국 원자력협회 회장을 역임했다고, 앞날개에 소개되어 있다. 그런 만큼 방사능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낮은 수준 방사선의 유익효과까지 언급하고 있으니 방사능 피폭에 관한 한 ‘보수적인’ 사람 말고, 이상한 보수, 카메라를 들이대면 바닷물도 막 떠먹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농업, 의학, 전기, 수송기관, 우주 탐사, 테러, 예술, 환경 보호 등으로 이어지는 목차다. 후반부는 미처 읽지 못했는데 내가 방사능 피폭에 대해 보수적이어서라기 보다, 맞아, 마일 파운드 화씨 표기가 싫어서야.


일부 방사성동위원소들은 놀라운 ‘사기꾼적’ 재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생물학적 요소와 유사한 화학적 성질을 지닌 탓에 이들과의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기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3인방은 요오드 131, 스트론튬 90 그리고 세슘 137이다. 스트론튬은 칼슘 계열에 속하는 물질로, 칼슘과 마찬가지로 뼈의 구조와 특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방사성 세슘은 칼륨처럼 근육 조직에 확산되며, 방사성 요오드는 정상적인 요오드를 대신해 갑상선에 축적된다. 핵 사고가 생긴 경우, 요오드화칼륨 정체를 복용하면 안정적인 요오드로 갑상선을 채움으로써 방사성 요오드가 몸에 고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방사능, 파괴인가 치료인가> 116)



짠. 리스트에 어울리지 않는 책 과감히 삽입한다. (가족사진에서는 빠져 아쉽다. 슈퍼바이백 기간에 팔아버린 모양이다) 리디아 데이비스도 마리 퀴리 약전을 썼다. <불안의 변이>는 매우 특이한 책이므로 마리 퀴리가 등장하여도, 아니지, 등장하여서 더 멋지다. 데이비스가 이 글을 쓴 과정이 각주에서 짧게 소개된다. 퀴리 전기를 영어로 번역하다가 ‘어색한’ 조각들을 모아 구성해보았다고. 음.


브라운 운동의 발견자 페랭의 붉은 곱슬머리가 하얘졌다. (310, 마리 퀴리, 너무나 고결한 여인 | 흐르는 시간)


 


마리 퀴리가 한 꼭지씩 등장하는 책들. 한 줄로 적어둔 메모가 이렇다.

<과학자들 2> 앙리 베크렐이 귀엽게 출연한다.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삶과 업적을 간결하게 잘 정리.


 


마리 퀴리를 읽다 보면 만나게 되는 과학자들이 무척 많지만, 그중 마음이 특히 쓰이는 과학자가 있으니 리제 마이트너다. 마음이 쓰이는데 내 방구석에서 마이트너 무더기는 되지 못하고 여기(퀴리 무더기) 저기(핵 무더기) 흩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태생 유대인이고 독일에서 오래 연구했으나 나치 이후 스웨덴으로 피신하였으며 핵분열을 간파하고 거기서 방출되는 에너지 2억전자볼트를 계산해냈지만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고사하여 참여하지 않은 물리학자다.


저 짧은 인생 요약 속에 온갖 고초와 역경과 훌륭함이 있음을, 위 두 책에서나 <휘어진 시대> <강력의 탄생>에서도 볼 수 있다. 마리 퀴리 선생과 공교롭게 생일도 같아서 11월 7일이다. 11살 어리다. 졸리오 퀴리 부부와는 실험 결과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한 번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은 적이 없는 물리학자’(<위대한 여성 과학자들> 37),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연구에 근면 성실했던 멋진 분. 나 따위가 독후감을 쓰면 제목은 이렇게 되리라. 리제 마이트너도 여자다!




라이브 영상에 나오는 원자모형은 아직 러더퍼드 모델(1911년)에 머물러 있다. 보어와 슈뢰딩거 모델로 업데이트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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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싸면서 즐겁게 읽었다. 앞날개 작가 소개 글에서 잠깐 웃고 시작했다. ‘대학에서 생물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14년 동안 부동산업에 종사했다. 작가에 대한 꿈을 다시 살려 로맨스를 쓰기 시작했는데, 의도와 다르게 스릴러로 이야기가 발전하는 걸 보고 자신의 진짜 재능을 깨닫는다.’ 의도와 다르게 스릴러로 발전하는 이야기, 하하. <당남죽>도 과연 로맨스 없지 않은 스릴러다. (로맨스 싫어하는 독자로서도) 재밌게 읽었고 다시금 깨닫기를, 호모사피엔스에게는 동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애인보다 동지.




기차용으로 고른 게 <익명 소설>이다. 원제가 ‘원고 검토부’ 정도 되는 모양이다. ‘소설 속 연쇄 살인이 현실이 되었다!’고 표지가 말하는 바, 재밌을 것 같잖아. 출판 희망 원고를 검토하는 얘기라니 솔깃하잖아. 얇고 가볍기도 해, 까지가 휴가 전 감상이다. 휴가 후 (즉 지금) 쓰는 후기는 간단하다. 미안하지만 난 재미없었어. 오랜만에 느끼는 프랑스식 유치함이랄까. 매력적인 캐릭터나 인상적인 장면 하나 없이 작위적이고 시시했다. 살인과 강간이라는 심각하고 우울한 사건을 깔고 있음에도 핍진성이 떨어져 감흥도 없었어. 한편, 돌아오는 KTX는 비 때문에 서행했다. 2시간 거리를 3시간 반에 왔다. 사고 나지 않은 게 어디냐며 안도했다. 




사거나 대여해둔 전자책이 많아서 휴가지에서 책 고프지는 않았다. 크레마마 님을 깜빡 잊어, 수중에 없었던 사실이 약간 아쉬웠을 뿐. 휴대폰으로 보기에 만만한 것으로 <살인의 방>을 골랐다.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3권이다. 아홉 편이 실렸다. 표제작(다니자키 준이치로)보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듯한 <어떤 항의서>(기쿠치 간)를 기록해두고 싶다.


법무장관에게 쓴 항의 편지가 내용이다. 편지 작성자의 누나 부부가 5년 전 살해당했고 모친은 그 충격으로 일찍 사망했다. 가해자는 누나 부부 포함 9명을 살해한 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작성자는 온갖 마음고생 후 겨우 안도하고 살다가 사형수 사후 출간된 그자의 저서 때문에 복장이 터질 판이다. 범죄자가 두려움에 떨다가 사형장에 짐승처럼 끌려갔으리라는 자기 짐작과 달리, 기독교에 귀의하여 ‘흔연한’(353/477) 죽음을 맞았단다. 흔연하다,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흉악범에게 사형이 처벌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 부당하고 억울해 이를 어찌할꼬. 사형제나 감옥 선교 관행에 질문을 던지는 셈이기도 하다. 영화 <밀양>이 떠올랐고 마침 내가 <어떤 항의서>를 읽은 곳도 밀양이었다.


승호 씨 집과 밭과 풀!과 와이파이가 있는 전원이다. 예정보다 더 오래 머물러 3주를 채웠다. 쨍한 해와 세찬 비를 번갈아 보았다. 가끔 한가로이 풀 뜯, 아니 뽑았다. (게으른) 소처럼 일 (잘)했다고 여물도 꼬박꼬박 거하게 잘 받아먹었다. 2주째 어느 날 서울 ㅇㅇ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 이게 그 유명한 스미싱이로구나, 잔뜩 경계하며 통화를 했다. 서울 ㅇㅇ빌라에 사는 사람 맞는가. 그렇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왜 묻는가. 신고가 들어왔다, 지금 집 앞이다. 나는 지금 집에 없다. 신변에 문제는 없는가. 지방에 내려와 있고 문제없다. 지방 어딘지 말해줄 수 있나. 밀양이다. 이름과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나. 그걸 왜 말해야 하나. 신고가 들어왔다니까, 앞집 주민이 불렀다, 집 앞에 우편물은 쌓이는데 며칠째 그대로라고, 요즘 흉흉한 일들이 많아서 확실하게 해 두려고 그런다. (현관문 딸 기세) 아이고, 그렇구나, 수고하신다, 고맙다, 아무개이고 모년 모월 모일에 태어났다, 지금 휴가차 시골에 내려와 있고 무탈하며 내가 책을 좀 주문한 게 집 앞에 쌓이고 있는 모양이다, 이상 없다, 거듭 고맙다... (왜 부끄러웠는지?)





풀 뜯, 아니 뽑느라 전화를 못 받았다면 집 문 따일 뻔했다. 나는 좋은 이웃을 둔 건가. (본인은 오지랖이라고 하셨다) 눈떠보니 후진국인 요즘,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위 소포 중 일부 내용 인증한다. ebs 티셔츠 꽤 큼직하고 프린키피아 문진은 목직하니 귀엽다. 돌아왔고 살아 있고, 창문 너머 들리건대 매미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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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7-2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수도 있겠군요
그래서 택배함이 필요한듯 하네요
그 와중에 죄다 알라딘 ^^

에르고숨 2023-07-24 22:38   좋아요 1 | URL
이웃의 관심이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운 듯도 하고; 어쨌든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연락 받고는 앞집 눈치 보여서 알라딘 주문을 더 못 넣었다는 비밀이 있습니다...ㅎㅎ
 


양말 신는 법 몰라서 사 보는 사람 없겠지. 귀엽기로 작정한 책에는 헤죽, 무장해제하는 수밖에 없다. 색색깔 양말 그림들이 어찌나 예쁜지, 기분도 예뻐진 것 같다(응?). <연필 깎기의 정석> 류 있잖은가, 혼자 심각하게 진지할 덕후의 쿵짝에 기꺼이 동참해줄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필요하겠다. 전문적인 엉뚱함, 다른 말로 덕력이 <연필 정석>에까지는 못 미친다만. 흑백 내지였던 <연필 정석>에서는 현저히 부족했던 색깔 보는 재미가 <양말 법>에는 있다. 양말의 초짧은 역사, 양말 해부학, 양말 신는 법(하하), 양말의 종류 및 소재, 관리, 수선, 개는 법, 신는 대신 양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등이 짤막짤막하게 적혔다. 꽤 괜찮은 양말 한 켤레 가격으로 값을 내린 <양말 신는 법>이다. 읽는다기보다는 보는 책 되겠다.


이대로 끝맺으면 아쉬우니 제목 취지에 맞게 양말 신는 법을 제대로 알려드리겠다. 제1단계. ‘손에 양말 한 짝을 꼭 쥔다. 면밀하게 살펴본다. 당신은 이 양말을 신을 것이다. 그리고 양말을 신은 당신은 아주 멋져 보일 것이다.’(20) 제2단계가 정말 중요하다. 밑줄 쳤다. 결정적인 내용 유출 주의경보를 울리는 바,


삐삐삐3

2.

1.

두둥.



발을 준비한다. (20)




미안, 오발령. 뽀송뽀송하고 포근포근하고 만만하고 흔하고. 불가피하지 않은 한 매일 갈아 신으며 비교적 민주적인 의류 아이템. 새 양말 혹은 빤 양말처럼 기분 좋은 게 있을까. 있지. 많지. 양말 그림도 그렇지. 눈요기 잘 했다. 하지만 뭐랄까, 덕력이 부족해, 덕력이... 할 때는 뭐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가 있다. 덕력과 글력(?) 보장하는 시리즈로 알고 있다. 양말을 빌미로 구달 선생을 만났다. 저자도 밝히는 바, ‘아무래도 이 책은 양말 이야기를 빙자해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털어놓는 대나무 숲이 될 것 같다’(12)고 한다. 아무튼 시리즈 독자가 기대하는 바도 그러하다. 프리랜서 글쟁이로서의 힘든 일상과 양말 사랑하는 얘기를 들었다. 부디 글 많이 팔아 예쁜 양말 쇼핑하는 데 지장이 없길 바란다. 저자의 양말 컬렉션이 초반에 88켤레이다가 후반부에 110켤레(수드라 양말 82+브라만 양말 28)까지 늘어난 걸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후훗.


살까 말까 망설이고, 사고 나서 후회하거나 사지 않아서 후회, 사고 나서 만족하거나 사지 않아서 만족하는 등의 장면이 익숙하면서, 그게 나는 왜 좋지. 책 또 샀다고 징징대는 글들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양말 구매 고민 글도 재미있어. 곰곰 생각해보니 수집하는 물건이 양말이면 퍽 괜찮을 것 같다. 부피 크지 않고, 매우 다양하고, 비교적 값싸고, 신을 수 있고, 나눠 줄 수 있고, 더구나 글쟁이 구달 선생은 이런 발랄한 양말 책도 써냈고. 뭐니 뭐니 해도 양말은 책보다 훨씬… 아니지. 나는 책 수집하고 있지 않아!(다짐체) 집에 읽을 책이 많을 뿐. 양말로 돌아오자면,


(더럽지 않습니다. 갓 빨아 냄새 좋은 겁니다)


양말 서랍에 회색 양말만 줄줄이 꽂혀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려다가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 매일 회색 양말만 신었다가는 글마저 칙칙한 회색 톤으로 써버릴 게 분명하다. (31)


미안하다, 나다. 구달 선생이 보면 진저리를 칠 내 양말 서랍이로구나. 회색과 검은색이 주를 이루고 가끔 알록달록한 것은, 어디 보자… 알라딘 양말이다. 옛날에는 내 서랍도 이렇지 않았다. 음(할많하않체). 꾸준히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기호품이 (책을 제외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위 사람들 고민을 덜어주기도 한다. (책 선물은 무례하기가 쉽다) 일본 여행에서 저자 친구가 눈치 빠르게 사서 건네주고, 저자 모친이 딸을 위해서는 당연히 양말 코너를 둘러보게 되고. 그렇지 않은가. 나 역시 참 편한 사람이라고, 문준이 말한 적 있다. 한 손엔 커피콩, 다른 손엔 포도주를 든 문준이라고, 있다. 양손에 각각 각성제와 진정제를 가진 방문자 tmi. 아무튼, 양말의 구달 선생이 성토하는 회색 양말 소유자가 당신들의 양말을, 취향과 지향과 기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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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 지다웨이 | 문희정 옮김 | 글항아리


황폐화된 육지를 떠나 인류는 바다 속으로 이주했다. 21세기 끝자락이 배경이다. 열기와 자외선이 이글거리는 육지에는 전투형 안드로이드가 활약하고 사람들은 바다 속에서 산다. 피부 관리사 모모가 주인공이다. 어쩐지 어두운 과거가 있는 듯, 30살인 2100년 현재 엄마와는 20년째 만나지도 않고 홀로 살며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였던 앤디를 추억한다. 앤디의 행방부터 암묵적 스포방지일 텐데, 놀라운 건 이후에 더 큰 이야기가 기다린다는 점이다. 너무 나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한편 들면서 예의바른 독자로서 입꾹, 다만 막막하고 슬펐다고 까지만 써둔다.


1994년에 쓰인 점 감안하면 퍽 파격적인 퀴어 SF인 듯하다. 작가 지향 혹은 취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점도 재미 요소 되겠다. 이토 준지의 무시무시한 캐릭터 도미에라는 이름, 파올로 파솔리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그대로 차용한 점 등. 또한 서문에서 밝힌 바, 지다웨이 선생은 집필 기간 니노 로타, 우테 렘퍼, 반젤리스 음악을 들었다는데, 며칠 전 반젤리스 선생의 타계 소식도 있어서 공교롭다. 나 또한 좋아했던 작곡가이고 무엇보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빈 선생이 건반을 맡았던 장면을 가장 잘 기억한다. 가까이 또 멀리 알던 사람들의 부고를 접하는 게 나이 드는 일의 주 업무인가 싶기도 하다. RIP.


“아저씨를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이 동네에서 제일 잘나가는 정원사를 만나면, 그게 바로 나를 만난 것과 같아. 내 몸 전부가 그 사람 안에 있을 테니까.” (125)


마라코트 심해 | 아서 코난 도일 | 이수현 옮김 | 행복한책읽기


‘수심 540미터의 심해를 탐사하던 마라코트 박사 일행은 바다가재를 닮은 거대한 생물 마락스의 공격을 받고 케이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8113미터의 해저에 낙하한 일행은 8000년 전 화산작용으로 해저로 침몰한 후에도 살아남았던 아틀란티스의 후예들과 조우하는데...’(알라딘 책 소개) 도일 경의 SF는 곧잘 판타지로 흐른다. 심해 탐사에만 머물러도 재미 한 가득일 텐데, 마라코트 박사 일행은 해저의 거대 악을 해결하고 귀환하신다. 명확한 선악 구도, 숨겨왔던 권능, 예쁜 여인 구해 독신 면하기, 이 유치함 뭘까. 이제 도일 경 작품은 이별해도 될 나이? 옳다, 지천명.ㅜㅜ 적응이 안 돼.


“불운한 존재여. 너를 그 자리에서 날려 버릴 힘과 의지를 지닌 것은 내 쪽이야. 네놈은 너무 오랫동안 그 존재로 세상을 저주해 왔다. 네놈은 모든 아름답고 선한 것을 감염시키는 질병이었어. 네가 사라지면 인류의 심장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고, 태양은 더욱 밝게 빛날 것이다.” (148)


물고기 인간 | 알렉산드르 벨랴예프 |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라플라타 강을 배경으로 갓난아기 때 상어 아가미 이식 수술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은 이흐티안드르(그리스어로 물고기 인간)라고 하는 젊은이의 삶과 아름다운 처녀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러시아 SF소설의 대표작’(알라딘 책 소개) 웰스의 모로 박사(1896년) 후예라 할 살바토르 박사의 생체실험실이다. 1928년 작. 물속과 실험실 장면뿐 아니라 법정드라마까지 펼쳐져 흥미롭다. 세월이 흘러 누군가는 연구를 계속하고 누군가는 새 삶을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정신줄 놓고 거리를 떠돈다. 등장인물들 각각의 마지막 모습을 언급해주는 방식이 훈훈하다.


작가 알렉산드르 벨랴예프(1884~1942)와 과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1917~1985) 간 친족관계는 알지 못한다. 후자는 ‘은여우 길들이기’로 유명한 소련의 유전학자다. 둘 사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면 더 흥미진진했겠다. 왜? “동물의 몸,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신체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인간이 손댈 필요가 있다고 저는 단언합니다.”(270) 같은 주제를 과학자-과학소설가 사이, 그것도 가족 모임 식사 자리에서 토론한다면 재미있을 듯 하잖아. 아무튼 바다 카테고리이므로 발췌는 이렇게.


“인간이 물속에서 살 수 있다면, 해양개발과 심해 해저의 개척은 아주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 되면 바다는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며, 바다의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 희생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자들을 우리가 애도하는 일도 없어질 것입니다.” (278)


잭과 천재들 2 | 빌 나이ㆍ그레고리 몬 | 남길영 옮김 | 와이즈만북스


1권 남극에 이어 2권은 하와이 니호아 섬 깊은 바다다. 해수 온도차를 이용한 에너지 발전 얘기가 나온다. 아탈리 선생 <바다의 시간>에서도 본 바 있는 바다의 숱한 잠재성 중 하나 되겠다. 발전소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고, 마침 시설 일부가 훼손되는 사건도 일어난 참이라 우리의 잭 무리가 (당연히) 실상을 파악하고 해결한다. (스포 아니지?) 잠수정을 타고 심해로 내려가는 모험에 이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일까지 겪게 된다. 손에 땀을 쥐진 않고, (맥주를 쥐고) 마음 푹 놓고 보는 우리 귀염이들 이야기. 섭섭하지 않게 또 만날 기회가 있어서, 3권은 정글이다.


그의 말은 옳았다. 별들은 아름다웠다. 행크 박사는 우리들이 수시로 아무 때나 “끝내준다, 대박” 같은 수식어를 쓰는 습관을 고쳐 주었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 말을 사용할 때면, 움찔움찔하며 경고했다. 그렇지만 밤하늘의 별들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어쨌든, 너무, 기절할 만큼 멋졌다. 사방에서 빛을 내고 있는 별들은 마치 수십억 개의 우주선들이 지구를 향해 돌며 헤드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젖히고 좌우로 움직이며 별을 쳐다봤다. 별빛이 가득한 까만 밤하늘은 그야말로 멋지고, 강렬했고, 무서웠고, 그리고 이상하게 추웠다. 행크 박사님은 인간과 같은 고등 생명체의 수가 이 우주에는 너무 터무니없이 적다고 늘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드넓은 밤하늘에 쏟아지는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고등 생명체이기는커녕, 잘라 낸 발톱보다 작고 한없이 하찮은 존재로 느껴졌다. (300-301)




-이글루스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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