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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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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실리지 않은 책 주제에. 희한하게 몇몇 이미지는 눈에 선하다. 무슨 글발이 이래. 묘사든 역사든 일화든, 고상하고 지적이고 다정하다. 주말에 부랴부랴 만나 반해버린 배리 로페즈 선생이다. (부랴부랴 읽을 책이 아니다. 곱씹을 문장투성이다. 울면서 쓰고 있다) 읽고 보니 원제 ‘Arctic Dreams’가 마침맞다 싶다. 북극 꿈들, 혹은 북극이 꿈꾼다. 북극이 제국의 팽창주의식 ‘정복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모험심, 지적 호기심, 비장함 넘치는 난파, 조난 이야기 등. 나아가 큰돈벌이 수단은 지금도 다르지 않아서 산업 개발, 광산, 석유시추시설이 들어선 현재 (아)북극 모습도 볼 수 있다. 바로, 형용사(arctic)+명사(dreams) ‘북극 꿈들’이다. 그러나 북극을, 땅과 얼음과 동물을 그렇게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로페즈 선생의 역설(力說)이 주어(arctic)+동사(dreams) ‘북극이 꿈꾼다’에 깃들었다면... 억지스럽나?


음. 대지와 동식물을 존중한다고 걸핏하면 자연에, 그러니까 땅이나 하늘이나 햇볕이나 바다나 얼음에 절하는 (이렇게까지 절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느꼈음)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그렇지 않을걸? 겸손해진다. 더욱 겸손해지고 싶어진다. 우리, 인간들 말이야. 부자란 무엇인가. 앎이란, 삶이란, 살육이란, 죽음이란, 순환이란 또 무엇인가. (김영민 교수 아니다)  ‘모순 한가운데를 살아내야 한다’(634)고, 답이 없는 질문을 견디는 게 아마도 삶이라고 한다만. 모순보다 먼저 무지, 무지의 이복동생인 알고자 하는 욕망, 그에 따라 쌓아놓은 책들, 그중 북극을 꿈꾸다가 어떤 고양감을 주었다고 할까. 



북극 동물들과 빙하와 역사와 저자 일화가 아홉 장에 엮였다. 어쩜, 북극의 남쪽 한계 정의가 없다고는 하지만 (아)북극 정말 넓지 않나? 저자가 머물렀던 곳들이 주로 북아메리카 북극이다. 저 많은 섬, 반도, 해협 지명들에 이름을 준 사람들 이야기가 잠깐씩 소개되니 지리덕후들은 좋아하리라. 유명한 난센과 피어리 뿐 아니라 바이프레히트도 잠시 언급하는데 란스마이어의 소설 <빙하와 어둠의 공포>에서 봤던 이라 무척 반가웠다. 란스마이어의 작중 인물 마치니가 좇는 한 세기 전 탐사대 대장이 바이프레히트다.


기후 위기의 바로미터가 북극이라고 운을 띄우면 자동적으로 돌아오는 답이 있을 터다. (해보시길) ‘하지만 북극곰 개체수는 늘었다며(+피식)?’다. 그러니까 ‘잘’ 사는 북극곰과 따뜻해지는 북극 따위 잊어도 좋고 온난화는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다(일회용 컵과 빨대 더 쓰자), 그만 뚝! 식이다. 하지만 곰곰. 개체수가 는 건 당연하다. 북극곰 사냥을 제한한 지 반세기가 넘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활동터 해빙이 없어지면서 왜 ‘바다곰’이 내륙에 출몰하는지, 물범을 잡는 대신 육지동물 순록을 사냥하거나, 마요네즈를 받아먹고 그토록 자주 관광객의 눈에 띄는지 생각해보라고 이어 물어보리라 다짐한다. 옳다. 북극곰 개체 하나하나에 동정심을 느낀다기보다(느끼기도 하지만), 북극곰 종조차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면 과연 다른 동물들은? 인간은? 지구는?이 이어지는 질문인 거다. 해빙이 사라진 검은 바다는 더 많은 열을 흡수해 해빙을 더 많이 녹이는 양의 되먹임 현상. 북극의 온난화로 인한 제트기류 약화, 그에 따른 우리나라의 한파와 폭염 및 장마 등 우리 삶이 북극과 연결돼 있다. 멀리 떨어진 곳의 기후가 서로 영향을 주는 걸 '원격 상관'이라 한다고 어디선가 보기도 했다. 빙하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우리일 거라는 사실도.


어쩌면 빙산 같기도 한 이런 아름다운 책을 써놓고 처음 만나는 독자가 아연하여 실색하게끔 2020년에 타계하신 저자시여. 동물, 땅, 인간에 대한 사색, ‘대지에 깃든 모든 것을 존중하는 태도’(24)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우리는 지평선에서(<호라이즌>), 숲과 사막에서(<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또 만납시다. ‘빛에 다가가려 한 하나의 고귀한 표현’(634) 고맙습니다. RIP.


레이 슈와인스버그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배로우 해협을 따라 날다가 남쪽을 향해 외로이 얼음을 건너는 북극곰 한 마리를 본 적이 있다. “저놈을 따라가면 좋겠어요.” 슈와인스버그가 엔진 소음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그냥 내려가서 저놈을 따라가고 싶어요.” 그는 눈알을 굴리며 자기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170)


#배리로페즈리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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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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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포가 뭔가. 주인공 이름이다. 미국과 핵을 공유하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워싱턴 선언과는 상관없으나(정치 과몰입한 거 아니다) 도시 이름을 따온 건 맞다. 이름에 얽힌 사연이 후속편 밑밥이기도 하겠다. 피해자를 불에 태워 죽이는 연쇄살인이 발생한다. 정직 상태에 처해 있던 경관 포가 불려나와 대활약을 펼친다. 표지에는 잘 탄 성냥 대가리 다섯 개가 그려져 있지만 이멀레이션 맨이 실제로 사용하는 도구는 지포라이터다. 중요하지 않다. 제목이 ‘퍼핏 쇼The Puppet Show’인 건 중요하다. 최근에 내가 본 puppet 단어는 대니 하이퐁이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글 속에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이다. ‘So this puppet leader in Asia is parking US nuclear weapons in the region, (…)’ (정치 과몰입한 거 아니다2)


(다음어학사전) puppet: 1. 인형 2. 꼭두각시 3. 괴뢰


괴, 괴뢰(!) 언제 적 봤던 단어인가. 어 롱 롱 타임 어고~ 괴뢰 쇼 술 취한 퍼핏 리더는 마이크와 함께 놔두고 <퍼핏 쇼>로 돌아간다. 꼭두각시에 연결된, 보이지 않는 실이 말 그대로 실마리를 이룬다. 무슨 다 타버린 성냥 대가리 같은 소리냐. 스포 0인 리뷰를 쓰기 위한 헛소리다. 사실 한 마디면 된다. 재밌다! 버스에서 읽었다. 366쪽 마지막 문장을 눈에 넣었을 때 큰 숨 한 번 쉬고 책을 덮었다. 367쪽을 훑지 않으려고 무척 애썼다. 쾌락주의자답게 즐거움을 잠시 유예하기 위해서였다. 집+맥주+두근두근 스릴러 결말 조합 말이다. (냉장고에 맥주가 있는) 집에 도착하고 나서 후두둑, 큰 비까지 쏟아져 환상적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문장, ‘비 오고, 냉장고에는 맥주가 있다’로 끝나는 일기를 쓸 수 있는 밤이기도 했다. 내 문장 중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안다. 당신은 알고 싶지 않으시다. 지면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적지 않겠다. (적는 게 지면을 더 아꼈겠다만, 어쩔)


사람 죽이는 이야기(응?)를 왜 이렇게 읽어대는 걸까. (나 말이다) 나쁜 놈이 결국엔 죗값을 치르리라는 걸 알아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지? 무엇을 위해서? 정의? <퍼핏 쇼> 등장인물들 대화를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정의보다는 복수가 실현되는 걸 보는 게 좋았던 듯하다. 정의는 거창하고 멀다. 복수는 개인적이고 가깝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형(私刑)이 집행되는 장, 소설이다. 피해자 혹은 피해자였던 가해자가 공권력에 기대지 않는, 기댈 수 없는 이유는 고위 권력의 공고한 성(城)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풍경이다. 검사 신성가족은 서로를 ‘배려해’ 기소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증거가 있어도 빠져 나간다. 더딘 정의 실현보다 소설 속 강렬하고 빠른 복수는 훨씬 큰 위안이 돼준다. 친구가 돼준다.


복수보다, 혹은 복수만큼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해본다. 사과 아닐까. <퍼핏 쇼>에서 복수하는 사람이 복수 당하는 자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살해 장면을 진행형으로 보여주지 않기에 알 수 없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미안하다’는 <퍼핏 쇼>에 한 번 나오는데 같은 맥락은 아니다만 그래도 약간 뭉클했다) 요는, ‘미안하다’는 진짜 이상하다. 을 입장에서 하게 되고 그래야 하는 말인데 하고나면 갑이 주로 운다. 이쪽 편의 복수와 저쪽 편의 사과. 그게 그렇게 힘든 모양이다. 그렇게 힘든 게 소설 속에서 이뤄지는 게 보고 싶어서 계속 읽는다. 사람 죽이는 이야기든 살리는 이야기든 아무튼 소설을.


아까 마이크 살포시 쥔 채 일시정지 당했던 괴뢰 지도자 다시 재생해보자. 또 말하지만 내가 정치 과몰입한 거 아니다. 뉴스를 찾아보지 않아도 귀에 들어오는 소리가 ‘pathetic’(대니 하이퐁)할 뿐이다. 프리덤, 자유, 민주주의, 위협, 프리덤, 자유, 사기꾼, 프리덤, 자유, 핵, 핵, 자유, 무릎 꿇을 필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선 출마 선언문을, 이후 모든 연설에서 줄기차게 재활용하는 빈곤함이여. 자신이(!) 뭐가 그렇게 억울하고 뭐에 그렇게 분노하는지 도대체가. 정치인이여, 프리드먼 말고 소설 좀 읽기를. 죽이도록 복수하고픈 마음들과 진정한 사과의 힘을 깨닫기를. 괴뢰 지도자 영어 좋아하시던데. 카카오번역베타에 문장 하나를 넣었더니 다음 영어문장을 준다. 내가 쓰려고 했던 문장에 인공지능은 ‘Why don't you’를 덧붙이고 끝에 느낌표 대신 물음표를 넣는다. 나보다 친절하다. Why don't you step down and read a novel?


괴뢰 지도자는 보고 싶지 않고 워싱턴 포는 계속 보고 싶다. 워싱턴과 퍼핏이라는 단어 태그 말고는 둘이 하등 상관이 없다. 실례했다. 포는 정의롭다. 정의감이 끓어올라 순간 발끈하며 초인 근력을 보여주는 건 때로 닭살스럽다만, 그 역시 통쾌해서 사이다 마신 셈 쳤다. 포가 너무 올곧아서, 약점 소유자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먼 그대’ 같다. 작가라고 모를 리 없어 틸리 브래드쇼가 우리에게 왔다. 강력한 두뇌와 빈틈, 동료이자 친구. 따라서 뭐다? 우리의 친구다. 젊고 똑똑한 브래드쇼의 성장과 변화가 밑밥1, 워싱턴 포 이름과 관련한 과거와 치유가 밑밥2, 범인읍읍읍읍(스포 0!)이 밑밥3으로, 후속편 기대하게 된다. <퍼핏 쇼>의 영리한 결말과 밑밥이, 혼자서도 시리즈로서도 멋지다. 포+브래드쇼 웰컴!


브래드쇼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지도를 보고 인상을 썼다.

“왜 그래요, 틸리?”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거 말이 안 되는데요, 포.”

“뭐가요?”

“내 모델에 맞지가 않아요.”

“설명해봐요. 크레용 기법으로 부탁해요.” (359)



P. S. <타이탄의 세이렌>(커트 보니것)에 의하면 우리은하 지구 영국 평원에 배치된 거대한 돌들은 트랄파마도어에서 보낸 메시지다. 타이탄에 이십만 년 간 정박하며 뷰어로 메시지를 읽은 샐로가 번역해준 의미는 다음과 같다.

“교체 부품을 최대한 빨리 배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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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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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난 적 있다는 말을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만났다기보다 당신이 나를 어렴풋이 봤다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어머니의 옛집 2층 작은 창을 통해서, 약 2초간. 그때 당신이 머물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당신은 견디지 못했을 테고 나와 어머니 역시 다른 삶을 살았을 겁니다. 다른 삶, 닿을 수 없는 당신에게 닿으려고 허공에서 홀드를 찾듯 버둥거리는 삶 말입니다. 당신의 고독이란 것을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면함으로써 얻어오지 않았던가요. 그러니까 우리가 멀리서 잠시 만났던 그 여름날, 어머니는 옳은 선택을 했던 겁니다. Il faut payer. 당신이 당신의 암벽을 가지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에는 어머니와 나를 잃는 세계도 있었습니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어머니와 나는 행복했습니다. 당신도 그러했기를 바랍니다.


어떤 원망도 없이, 당신의 산과 고독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수직에 가까운 수십, 수백 미터 높이 암벽에 매달려 홀드 하나하나마다 죽음을 상기하는 삶이란. 거대한 자연 앞에 한없이 미약한 존재감을 느끼는 순간이란. 생사의 경계를 함께 넘는 동료애나, 손에서 놓치고 만 물병이나, 등반에 장애가 되는 일행을 향한 증오나, 추락사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나, 부상당한 친구의 안타까움이란. 정상을 밟고 무사히 내려왔을 때의 성취감이란. 신체가 느끼는 낱낱의 고통과 집중력과 피로감을 샤워로 씻어내는 청량감이란. 열여덟 시간의 잠이란. 조난자를 구하거나 기록을 갱신하려는 욕망이란. 소문이 전설처럼 전해지는 유명 등반가의 명성이란. 변덕스러운 날씨와 장비를 탓할 수 없는 운이란. 단출한 소지품과 가재도구란. 떠도는 삶이란.


당신의 고독을 자유라 불러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력을 닮은 온갖 무거운 것들, 결혼, 가족, 가정, 정착지를 이루지 않음. ‘대가’를 치른 자유는 가벼웠습니까. 비싼 값으로 맞바꾼 고독은 행복했습니까. 이곳에선 시선을 들면 언제든지 알프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의 손과 발자국, 땀과 고독을 비밀처럼 간직한 그 ‘신전’(86)을 볼 때 나는 당신을 봅니다. 어머니의 옛집 2층 창을 통해 당신이 나를 보았던 것처럼 아련하게. 배낭 하나에 온 인생을 넣고 책임과도 같은 중력을 거슬러, ‘소설 속의 누군가처럼 사랑을’(210) 하며 오직 두 손 두 발로 암벽을 오르는 ‘이 아름다운 미국인’(193) 아버지.


어머니는 당신이 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세계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저 ‘떠나가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 흘끗 뒤를 돌아보는 것’(168)처럼 당신을 생각하는 편이 최선이라고. 다만 잠깐 손들어 인사해 봅니다. 커다란 허공 속, 수직 암벽, 의지할 곳이라곤 작은 홀드 몇 개와 로프일 뿐 나머지는 모두 죽음일 때, 혹시 당신은 한 번이라도, 당신과 같이 ‘옅은 빛깔의 머리털’(242)을 한 작은 존재를 생각했을까요. 무게, 중력, 추락하기에 맞춤한 짐. 그러지 않았기를, 내가 당신을 책임의 땅으로, 구속으로 끌어내리지 않았기를, 않기를 원합니다. 어머니께 전달되지 못한 당신의 편지처럼 이번에는 내가 당신께 닿지 못할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식으로 몇 번 발음해보았다는 내 이름을 서명으로 남깁니다. 당신의 산에 보 픽스(beau fixe)가 가능한 한 자주 함께하길 빌며, 장.


북쪽으로 가는 도중에 마침내 그르노블에서 그녀가 한 말을 알게 되었다. 자꾸만 굴러다니던 퍼즐 조각 하나가 문득 제자리를 찾아 들어간 것처럼 알아차렸다. 그는 그 집의 장식 없는 기다란 벽, 창문, 되는대로 마구 움직이는 아이의 조그만 팔과 더불어 그녀가 간단히 말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었다. ‘안녕’이었다. (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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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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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거쳐 간 사람이 많습니다. 숙박료가 비쌌던 만큼 숙식 서비스가 훌륭했거든요. 그뿐인가요, 외국인 손님이 주 타깃이었기에 피고용인들은 영어에 능했답니다. ‘헨리 아펜젤러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등 선교사들의 기록’(위키백과)을 보면 내 위상을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시기는 전성기 때가 아닙니다.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인천 호텔업이 저물었어요. 이후 나는 중국인에게 팔려 중화루라는 중국 음식점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전쟁을 겪고, 인천도 마찬가지로 황폐해졌지요. 나는 이러구러 임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입니다. 내가, 한낱 건물 주제에, 말하고 싶어 하는 시기 말입니다.


셜리 잭슨을 보았습니다. 쇠락해가는 중화루 3층에 고연주가 재개업한 호텔 손님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장기 투숙, 즉 글쓰기 작업을 위해서였지요. 잭슨 선생이 어찌나 담배를 피워댔는지 내 벽지가 누렇게 변색될 지경이었답니다. 대수이겠습니까. 내가 힐 하우스가 될지도 모르는데. 고연주, 지영현, 뢰이한이 엘리너, 시어도라, 루크로 재탄생할지도 모르는데. <힐 하우스의 유령> 보셨습니까. 거기에선 힐 하우스가 주인공이다, 이겁니다. 다시 말해 내가…… 어쩌면……


당신들은 나예요.

네, 이제 알겠어요.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게 되었다는 걸요. 당신들에게서는 어떤 얼굴이 보여요. 외롭고 고독해서, 한 번 만난 이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 오랫동안 함께 지낸 사람에게 실망하고 자리를 떠나온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 미련을 갖고 있는 사람. 아아, 그건 내 얼굴이에요.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결국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우리가 여기에 함께 있네요. 부유하고 있어요. (208쪽)


잭슨 선생이 당신들의 얼굴을 더 잘 보기를, 그러기 위해 나를 좀 더 각별히 여겨주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마침 고연주가 읽고 있던 <폭풍의 언덕>을 떠올렸습니다. 에밀리 브론테 환영 정도, 유서 깊은 건물이라면 만들어낼 수 있잖아요? 벽에 글자를 쓰는 것보다야 더 고차원의 파워가 필요한 건 사실입니다. 약간 힘들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브론테 환영은 임팩트가 세지 못했어요. 하지만 고딕이라면 건축 장치가 있잖습니까. 힐 하우스의 비뚤어진 벽면과 문 들을 생각해보세요. 내게는 층이 고르지 못한 계단이 있었던 겁니다. 잭슨 선생이 내 악의를, 원한을 부디 알아주길 바랐습니다.


원한은, 장기 투숙이 끝나듯 끝나는 걸까요.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기에 이야기는 계속되는 것이겠지요. 전쟁 동안 형성된 좌익과 우익의 상호 적대감, 가족과 재산을 잃은 막막함, 중국 동포가 겪는 한국인들의 혐오, 선진국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 그럼에도 아등바등 살아보려는 의지 등을 잭슨 선생이 알게 됐을까요.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저 모든 게 다 당신들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역사라는 것 말입니다. 100년 정도 서 있다가 허물어졌다가 다시 선 내가 보기에, 원한 같은 건 희미해진다 싶으면 당신들이 다시 만들기도 하더군요. 마치 원한이 이야기 혹은 역사의 원동력이라도 된다는 듯이.


당신들이 원한을 내게 투영하는 건 멋진 일입니다. 건물로서 하는 말인데, 건물은 잘 기억한답니다. 기억하고 이야기해요. 원한은 때로, 이야기하는 일만으로도 사그라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기억할 테니, 당신들은 이야기하십시오. 나는 여기 있습니다. 나는 ‘인천 일본 조계지에 있던 호텔로, 한국 최초 서양식 호텔’(위키백과)이었습니다. 1978년 철거되었습니다. 2011년 신축공사를 하던 중 내 옛 터가 발견되면서 문화재청은 보존 결정을 내렸어요. 2013년 나를 재현하는 사업이 추진됩니다. 공사가 한창일 때 나를 보러 왔던 소설가를, 나 또한 보았습니다. 내 터에 서린 원한을 보는 소설가의 원한을 나도 마주 보았습니다. 그것은 나와 연결된 것이어서 친숙했습니다. 2018년 완공된 나는 대불호텔(재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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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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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선방했다. ‘사랑-죽음’이라는 진부한 조합 사이에 광기가 들어가니 병적으로 어두워진다. 내용도 그러한가? 글쎄. 사랑이 있고 광기가 있고 죽음이 있기는 하다. 사랑은 싫고 광기는 가끔 무섭고 죽음은 별 감흥이 없다. 이를 어쩌지. 기예르모 델 토로의 극찬을 어째.


광기를 얘기하면 되겠다. 그 전에 잠시, 키로가의 사랑이 싫은 이유는 밝혀야지. 남자주인공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만 있지 그 사랑에 대해 독자가 느낄 수 있는 사랑스러움은 없다. 대상 존재의 심경 묘사나 대사가 거의 부재한다. 주인공의 일방적 사랑은 폭력으로 보일 정도다.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을 발화하는(?) 여인이라면 뇌막염 환자가 고작이다. 어떤 상태에서? 착란상태에서. 벡델테스트 통과 기대도 하지 않은 옛날 작가이긴 하나, 이런 사랑 불편해요, 불편해. 또한 사랑 테마는 아니지만, 제정신으로 심경을 드러내는 다른 여인, 마리아가 「엘 솔리타리오」에서 어떻게 되는지 보라.


광기를 얘기하면 되겠다. 그 전에 다시 잠시, 죽음이 별 감흥이 없다고 했다. 독사에 물려 죽고 일사병으로 죽고 꿀 먹고 죽고 가시철조망에 걸려 죽는다. 끝. ‘키로가의 작품에서 죽음은 추상적 혼란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이다.’(띠지) 실제로 벌어지는 죽음, 가차 없는 끝보다 내게는 오히려 (죽음이 없는) 밀림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강에서 나무를 건져 올리는 이들」이나 「멘수들」은 직선이 아니라 원 같아서 아직도, 여전히, 영원히 강에서 나무를 건져 올리고 벌목장과 포사다스를 오갈 것만 같다. ‘죽음’ 자리에 노동이나 밀림을 넣으면…… 이상하겠지. 미안. 이제 좋은 것만 남았다. 광기를 얘기하자. 부록 편에 실린 「광견병에 걸린 개」는 말 그대로, 폭발하는 광기를 보여준다.


올해 3월 20일, 산타페 차코 지방의 어느 마을 사람들은 아내를 엽총으로 쏜 다음, 자기 앞을 지나가던 인부까지 쏴 죽인 미친 남자를 추적하고 있었다. (305쪽, 「광견병에 걸린 개」)


첫머리에 결말을 척 던져둔 다음 10여 일 전 일기부터 날짜순으로 이어진다. 마을에 광견들이 득시글댄다. 전염병처럼 퍼져가는 광견병이다. 페데리코의 허술한 집이 문제다. 집 주위 개들이 어찌나 무서운지, 나에겐 좀비보다 더했다. 초현실적인 크리처가 실재 생물보다 더 무서울 수 없는가 보다. 또한 구성이나 내용이 『나는 전설이다』와 흡사해 놀랐다. (매시슨 선생이 키로가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랑 테마에서도 보았듯 키로가의 일방적 관점 서술이 일기 형식에 마침맞은 듯도 하다. 군더더기 없이 화자의 병적인 변화를 보여주기에 말이다.


작가 자신이 선집에서 제외한 작품이라던데, 부록 편이 없었다면 나로선 섭섭할 뻔했다. ‘사랑-죽음’이라는 닳고 닳은 조합 사이에 들어선 광기를 위해서라도. 기예르모 델 토로매니아를 위해서라도. 처음 만난 작가, 사랑은 조금 싫고 광기는 가끔 무섭고 노동은 참으로 슬펐던 오라시오 키로가다. ‘1910년 산이그나시오로 이주해, 밀림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집 『밀림 이야기』『야만인』 등을 출간했다.’(앞날개) 내가 더 보고 싶은 게 『밀림 이야기』 속에 모여 있을 것 같아 출간 기대하게 된다. ‘신간알리미 신청’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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