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정경개론
롤프 렌토르프 지음, 하경택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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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서를 읽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무엇보다 그 학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 큰 유익일 것이다. 즉 그 학문의 핵심적 논의와 과정을 빠르게 조망함으로 그 학문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집중해야 할 주제들에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할 수 있다. 또한 파편적인 정보들을 큰 흐름과 맥락 가운데서 통전적으로 볼 수 있다. 꿰어내지 못한 정보는 유의미한 적용까지 이르기 힘들다. 더불어 세부 영역에서 핵심적인 주제들을 다룰 수 있다. 이는 앞의 유익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각 세부 영역의 역사를 알고, 그러한 파편적 정보들을 모아 더욱 세부적 주제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 


좋은 개론서가 많지만 정작 개론서를 꼼꼼하게 읽지 않거나 혹은 성급하게 세부적인 주제로 뛰어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모든 개론서가 유익한 것은 아니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저자의 관점이 투영되고, 따라서 객관적 정보는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많은 논의들 가운데 어떠한 주장들을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론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저자의 책이 필수적이다. 처음에 방향을 잘못 잡으면 되돌아오기에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효율적 독서의 비결은 어떤 책을 읽을지 선택할 수 있는 분별력을 키우는 것이며, 반대로 어떤 책을 읽지 않아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일 것이다.


롤프 렌토르프(Rolf Rendtorff, 1925-2014)는 게르하르트 폰 라트(Gerhard von Rad, 1901-1971)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 렌토르프는 그의 스승인 폰 라트의 주요한 통찰들과 함께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Springs Childs, 1923-2007)의 정경비평 관점으로 구약성경을 바라본다. 렌토르프는 역사 비평적 방법을 비판하면서 최종적으로 주어진 구약성경의 본문을 존중한다. 현재의 형태를 존중한다는 것은 이전의 다양한 층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성경이 형성되고 편집되었던 다양한 층과 이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는 그러한 인식을 배제하지 않고 현재의 형태가 아주 정교하게 결합된 구성을 보인다고 강조한다.


​렌토르프의 『구약정경개론』은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ein kanonischer Entwurf의 1권으로 이미 국내에 번역 출간된  『구약정경신학』(새물결플러스, 2009)과 짝을 이루는 책이다. 출간의 순서는  『구약정경개론』이 10년가량 늦지만 저자의 의도대로라면 이 책을 읽은 뒤 2권으로 넘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제1권에서 현재 주어진 성경 본문을 존중하며 첫 구절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정경을 한 차례 관통 한 뒤, 각 주제의 관련성을 더욱 부각한 2권을 읽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구약성경을 포괄적이면서도 섬세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히브리 성경의 순서에 따라 구성된다. 히브리 성경의 정경은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구성된다. '토라'는 '모세오경'이라고 명명되며, 히브리 성경의 '예언서'는 '여호수아로 시작하여 열왕기에 이르는 '전기 예언서'와 우리가 흔히 아는 예언서인 '후기 예언서'를 지칭한다. '성문서'는 앞의 두 부분에 속하지 않은 모든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히브리 성경이 어떤 이유로 이러한 순서와 구성으로 정경화 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순서와 구성을 통해 통찰과 새로움을 경험한다. 


​이 책 곳곳에 저자의 통찰이 담겨있다. 꼼꼼하게 읽어 가다 보면 성경의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구약 성경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세부적 본문들을 큰 맥락 가운데서 볼 수 있다. 또한 '토라'의 중요성과 더불어 '토라'와 '예언서', '성문서'와의 긴밀한 관계를 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정경적 흐름 가운데 꼼꼼하게 본문을 살핀다. 중간중간 박스로 삽입되어 있는 설명을 통해 정경적 관점에서 비판받아왔던 본문들은 다시 한번 학문적 첨언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하나님의 의는 그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런 신실하심을 믿었고, 그는 그것을, 말하자면, 자신의 "인정"을 통해 확인했다 - P57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과 벌이는 신학적 논쟁 가운데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파괴되도록 허용하셨을 때 하나님이 과연 의롭게 행동하셨는가의 여부에 관한 질문이다(18:16-33). "온 땅의 심판자"이신 그분은 소돔에 대한 것과 같이 예루살렘에 대해서도 모두 의롭게 행동하셨다 - P61

파라오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적대자이다. 그는 야훼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했던 그 백성 이스라엘을 압제한다. 그는 매우 근본적인 방식으로 야훼를 "인지하는 것"을 거절한다. 즉, 그는 당초 야훼 알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를 알지도 못한다. 또한 그래서 그는 야훼의 능력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더 강한 자라고 여긴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을 적대하는 신이 되게 한다 - P91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자이시고, 이로써 동시에 열방의 창조자이시다. 하나님은 자신과 특별히 관계를 맺기 위해 어떤 백성을 부를지를 자유롭게 결정하실 수 있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역사는 창조와 함께 시작된 세상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게 된다. 이런 특별 위치는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이미 구상되어 있었고, 이제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장된다. 이런 이스라엘의 특별 위치의 결과는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될 것이다 - P104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거주하심은 동시에 그분의 "거룩함"의 지속적인 현존을 의미한다. 그분의 "거처"는 그분이 직접 거룩하게 하시는(출 29:43 이하) "성막"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 거룩함을 유지하고 또한 계속해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이 거룩함을 유지하고 또한 계속해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거룩함의 손상 이후 그 거룩함을 항상 다시 회복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거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직접 이스라엘에게 보조 수단으로서 규정들을 주신다. - P127

민수기가 보도하는 시기는 뒤따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역사를 위한 본보기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이 시기에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이 계명들을 지키기에 역부족인, 계속해서 밝혀지는 이스라엘의 무능 사이의 긴장이 지배한다. 광야 세대가 하나님의 위대한 현현과 시내산에서의 율법 수요에 참여하는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그들은 이 계명들을 따라 사는 삶을 포기했다.
그들의 운명에서 두 가지 사실이 표본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사십 년의 고난의 시기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징벌이다.
둘째, 그것을 통해 결국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시며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다.
이 두가지는 이스라엘 백성 역사의 이어지는 시기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 P138

오경, 즉 "토라"는 정경으로서 히브리어 성경의 기초이며 핵심이다. 정경으로서의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어떤 부분도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자기 이해에 관한 중심적인 진술들을 이렇게 풍부하고 집중적으로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뿐 아니라 다른 어떤 부분도 이렇게 집중적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편집되고 형성되지 않았다.
이런 생성사로 인해 오경은 끊임없이 놀라운 방식으로 다음 두 가지를 보여 준다. 즉, 내적인 긴장들과 심지어 대립들까지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통일성과 완결성을 보여 준다.
오경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가장 먼저 정경적 최종 형태가 완결된 부분이다. 이런 사실에서 오경 안에 포함된 전승들의 수집과 구성적인 형태를 갖추게 한 것에 인정되었던 중요한 의미가 드러난다. 동시에 오경은 정경으로서의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부분에 대해 토대를 제공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P165

결국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기에 대한 총괄적인 회고는 그것의 시작과 끝이 예언자들의 말들을 통해 결정적으로 각인된다는 사실을 또한 보여 준다. 말하자면, 그 예언자들의 말들은 이 시기에 대한 하나의 틀을 형성한다. 다윗은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삼상 16:1-13). 그리고 그가 기름 부음 받은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거절당한 사울에 대한 대안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통해 특별한 중요성을 획득한다. - P229

엘리야의 등장은 북 왕국 역사에서 특별한 위기의 시점에 이루어진다. 바알 숭배를 국가적으로 장려한 것은 이미 오므리 치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하여(16:32) 바울 숭배에 중요한 지속적 동인을 제공했다. 이런 발전에 대항하는 엘리야의 간섭은 엘리야를 사무엘에서 시작하여 나단과 갓을 지나 아히야에 이르는 이전 예언자들의 반열에 오르게 한다. 그들은 왕들의 정치와 종교적 정책들을 비판하였고, 아울러 정치적 발전의 방향에 영향을 주었고 그것을 변화시켰다 - P246

예상되는 미래의 통치자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통치자보다 더 나을 것이며 그런 통치자와는 다를 것이라는 사실이 여기에서 완전히 분명해진다. 그는 다양한 삶의 영역에 있는 백성을 이끌고 통치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자질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판결은 - "보고 들을 바대로 판단하지 않고" - 확고하며 (3절), 특별히 사회적일 것이다. 그는 공동체에서 매우 낮은 위치에 있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정의를 베풀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인 권력의 수단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자들로부터 그들을 방어한다(4절). - P312

소명 비전으로부터 그의 생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 말씀은 줄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레미야는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또한 그가 빠져들게 되는 갈등들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러한 하나님의 말 씀을 강조하는 상징 행위들을 통해 유발된다. 그리고 그가 인내해야 했던 외로움이나 고난도 하나님의 말씀의 결과들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그의 주변 세계가 반응한 결과였다 - P403

하나님이 이미 귀환의 때에 관해 예고하신 바와 같이(11:19), 돌이킴을 통해서 사람들은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만들어야 한다(31절). 참으로 다시 한번 말한다. 즉, 하나님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죽는 자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돌이키라. 그러면 너희가 살게 될 것이다"(32절) - P437

요나서는 오바댜서에 대한 중요한 보충,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교정을 포함하고 있다. 오바댜서에서는 유다를 위한 구원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주제가 되었다. 이와는 달리 여기에는 하나님 구원 행동의 다른 측면이 분명하게 부각된다. 즉, 그것은 이방인을 위한 구원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 - P510

물론 양식들의 결정은 개별시들에 대한 격리된 고찰들을 넘어설 수 없다.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의 시편집이 분명 매우 의도적이며 복잡한 수집 과정을 거친 결과라는 사실이 점차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를 통해 개별 시편은 더 큰 맥락 안에놓이게 되며, 그것을 통해 그 시편은 종종 하나의 추가적인 기능을 획득할뿐만 아니라 드물지 않게 그 진술이 하나의 새로운 강조점을 얻게 된다. - P553

엘리후를 포함한 친구들은 계속해서 오직 하나님에 관해 말했다. 그들은 어떤 대답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욥에게 그 대답은 글자 그대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욥기의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야기체의 도입부와 긴 논쟁의 두 부분이 어떻게 불가분의 관계로 하나를 이루는지를 알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양측 모두 불완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 P611

유대 전승에서 "성문서"의 다섯 권의 작은 책들은 ‘메길로트’, 즉 "두루마리들" 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긴밀한 연관을 가진 하나의 그룹으로서 취급된다. 이 책들은 제의력을 따른 특정한 절기에 해당 절기의 낭독물로서 읽혔다. 즉, 유월절에는 아가서가, 칠칠절에는 룻기가, 성전의파괴를 기념하는 아브월 9일에는 애가가, 초막절에는 전도서가, 부림절에는 에스더가 낭독되었다 - P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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