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성경으로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칸앤메리.박명준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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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이 돌아왔다. 시종일관 흥미로운 전개에 울고 웃다를 반복한다. 성경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진진하다니. 오랫동안 성경을 읽고 연구했는데. 이 책을 통해 미처 보지 못했던 성경 곳곳에 숨어 있던 부분을 새롭게 보게 된다.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말이다. 저자의 통찰과 적실한 표현으로 성경 이야기는 살아 숨 쉰다. 


레이첼 헬드 에반스(Rachel Held Evans, 1981~2019)는 『교회를 찾아서』(비아, 2018)를 통해 처음 만났다. 자신의 서사 가운데서 교회와 하나님에 대해서 풀어내는 능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그 책은 교회의 배타적 모습에 실망했던 그녀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된 과정을 그리는 그녀의 이야기다. 


『다시, 성경으로』는 성경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며, 본문의 행간에 담긴 미묘한 감정, 본문을 둘러싼 문화적 맥락 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풍성하게 풀어내고 있다.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가 가미되어 더욱 친근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여전히 신학적으로 논쟁 중인 까다로운 본문들이나 주제에도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이 해석의 작업에 동참하자고 손을 내민다. 


매 챕터는 거의 비슷한 구성이다. 시작은 성경 이야기의 재해석이다. 행간에 있는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말, 감정 등을 묘사한다. 이 부분만 따로 모아서 소책자를 내도 사서 읽고 싶을 정도다. 매우 흥미롭고, 새롭다. 놀라운 통찰 앞에 그저 감탄만 할 때도 있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저자의 표현력과 상상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매 챕터의 성경 이야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각각의 주제를 논한다. 각 주제는 기원, 구원, 전쟁, 지혜, 저항, 복음, 기적, 교회 이야기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느꼈던 그 이야기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더불어 신학적이며 역사적인 해석 작업과 실제적인 적용으로 우리를 이끈다. 산뜻하고 신선한 문체지만 내용은 단단하다. 그녀의 질문은 정직하고 날카롭다.  


책의 말미에 저자의 배려가 돋보인다. 그녀는 무엇보다 이 책이 자신의 어떤 책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읽히고 토론하고 창의적으로 사용되기를 바란다. '리딩 가이드'와 '토론을 위한 질문'은 우리가 이 책을 함께 읽도록 독려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질문에 피하지 말라 한다. 더불어 함께 상상해 보자 한다.  


국외 저자의 책을 읽을 때 간혹 경험하는 작은 뿌듯함은 국내 저자나 회사, 명칭 등을 발견하게 될 때다. 이 책에서도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백인 우월주의자였던 딜런 루프가 현대 엘란트라를 탔다는 것인데, 사실 썩 유쾌한 내용은 아니다. 이보다 더 자부심을 느끼게 했던 것은 4장에 등장하는 라승찬 교수다. 꽤 비중 있게 그의 책을 인용한다. 


아, 이 책의 '들어가며'만 읽었는데 내용뿐만 아니라 편집과 디자인 등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다 읽은 뒤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진다. 앞으로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은 믿고 봐도 되겠구나 생각된다. 그래서 이 출판사를 인터넷 서점에 알림 등록해뒀다. 번역도 매끄럽다(역시 알림 등록^^). 저자와 역자, 내용과 편집 등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책이다. 심지어 책의 크기와 무게까지도. 


안타깝게도 더 이상 이 저자의 출간 알림은 듣기 어렵겠다. 그녀는 작년 이 맘 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불과 37세로. 그녀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데. 다양한 성경의 이야기들과 신학적 주제들을 그녀가 어떻게 풀어낼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실하게 적용할지 기대되는데.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이 헛헛했다. 너무도 아쉽기에 더욱 소중한 이 책이다.

다양한 학자와 시인들, 성경을 바라보는 여러 전통과 관습을 통해 나의 성경은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유대인의 성경 해석법은 내게 성경 속 수수께끼와 모순에 맞서 싸우지 말고 대범하게 품으라고, 성경은 본질적으로 읽는 이가 씨름하며 의심하고 상상하며 토론하게 만드는 책임을 가르쳐 주었다. - P28

성경은 다양한 이야기의 모음집이기에 각각의 이야기는 그 쓰인 의도를 파악할 때 거기서 가장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 P31

"예술가라면 마법보다 영감을 선호한다고 할 것이다. 진정한 영감은 행운아나 인기 많은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에게 찾아온다. ・・・ 영감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자와 창조의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작은 창조자가 동역하는 과정이며, 일방이 아닌 쌍방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협업이다." - P33

"기원 이야기는 흑백 사진보다는 천연색 사진에 가깝다. 거기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사실과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향수와 경각심을 일으키는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 그 이야기 중 어떤 것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가려져 있다가 특정한 시점에 중요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 P48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빌려 왔는지 밝히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한 이스라엘이 이웃 민족들과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하며 유사한 문학 장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 P50

"창세기를 단순히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발견, 폐허에서 건져 낸 고고학적 성과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이 모든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완고한 근본주의자나 공격적인 무신론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기원 이야기에 신화나 과장의 흔적 또는 문화적 영향이 보일 때 결코 사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는 문학 양식을 크게 오해한 결과다." - P63

"상상력을 발휘해 성경을 해석하는 미드라시는 성경 해석이 꼭 제로섬 게임과 같은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좋은 이야기가 그렇듯 성경도 무궁무진한 통찰을 제공하며 새로운 도전을 불러온다. 관계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성경을 주셨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곧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회복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 P71

"어느 시대에나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은 이 선명한 정의의 끈을 붙들었다. 가난한 사람을 존중하고, 이방인을 환영하고, 핍박당하는 사람을 놓아주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자유를 위해 분투하는 그들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받침목이 되었다."
- P93

"오랜 세월 동안 성경의 구원 이야기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고 기득권자들에게는 도전이 되었다. 유월절 만찬상에 오른 음식과 흑인 영가의 가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성경은 결코 멈추지 않고 새로운 진리를 말할 것이며, 모두의 해방을 추구할 때 그저 그런 이야기란 절대 있을 수 없음을." - P99

"사무엘기와 열왕기의 저자가 현재 상황을 설명하려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왕정을 바라보고 있다면, 역대기의 저자는 역사의 치유와 민족의 단합을 위해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왕정 시대를 향수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같은 역사적 사건을 전혀 다르게 풀어내는 두 가지 이야기를 갖게 되었다."
- P140

"내가 성경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완료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예언자들이 살고 있으며 여전히 용과 짐승이 어슬렁거린다. 비록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승리는 결국 저항하는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어둠은 밝아 오는 빛을 막을 수 없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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