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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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어떤 장면과 기억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선명한 경우가 있다. 다른 모든 중요하고 심각한 것들은 다 잊어버렸는데 유독 그 한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소환되는 경험이 있다. 이 책의 도입부가 그렇게 너무나 사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시작되어 나는 한동안 별 그리움 없이 잊고 살았던 시절이 자꾸만 떠올랐다. 마치 일기를 공개한 것처럼 섬세하면서도 중요한 모든 것은 그렇게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둘만의 교집합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이 소설의 이야기는 브레이크 없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아끼며 천천히 녹여 먹듯 읽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살면서 얼토당토않은 상대에게 급작스런 감정을 느끼게 되거나 더 나아가 고백까지 하게 되는 혹은 받는 경우들이 있다. 당사자로서는 그런 상황 자체가 버겁게 마련이라 상대를 살필 여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첫 인상 말고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대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무모함은 무엇이었을까, 신비롭고도 참 강렬한 한 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눈에 반하는 것을 믿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아주 잘 아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타입이라 모험적인 그 세계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거의 없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일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 자신이 끔찍하게 싫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해서도 잘 알기 때문에 비로소 특별한 감정이 자라나게 되는데, 이런 나를 변호하는 구절을 오래 전 <비포선라이즈>를 통해 들으며 안심한 기억이 난다.

 

네가 아까 커플이 몇 년 동안 같이 살게 되면 상대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고 또 상대의 습관에 싫증을 느끼게 돼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고 했잖아.

난 정반대일 것 같아. 난 상대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정말 사랑에 빠질 것 같거든.

 

나는 혜인이 좋은 이유를 한 열가지는 숨 한번 쉬지 않고 말할 수 있었는데, 사실 고민하고 말 것도 없이 나의 마음은 예스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 좀 해볼게,하고 우물거리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고백을 들은 것도 누군가의 첫 연인이 되는 것도 처음이었으며, 무엇보다 연애나 사랑 같은 건 먼 훗날의 것이었지 그게 내 것이 될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ㅇ벗었기에 나는 시원하게 좋아,하고 말해줄 수 없었다.

 

소리 내지도 못하고, 어깨를 마음대로 들썩이지도 못하고, 그저 8절 문제지 위에 펜을 쥔 자세 그대로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모습에, 그 모습을 보고 내가 느끼는 지금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확신했다. 이건 명백해, 백 퍼야, 저 머리띠가 조금만 더 고급이었어도 이건 사랑이 아니었을걸? 나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 대신 혜인의 손을 붙잡고 열람실을 뛰쳐나왔다.

 

물론 사는 일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상대, 가장 가까웠던 존재가 어느 순간 멀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제 발을 담근 이 강물은 오늘 이 강물과는 다르다고 한 철학자를 소환할 필요도 없이, 매순간 변화하는 것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유일한 실재성이라 결국 아무도 서로를 지속적으로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하다. 그렇지만 얼마나 잘 이해하는 가와는 별개로 여전히 슬픔과 쓸쓸함은 남는다.

 

그때-그곳이 지금-이곳과 너무 비슷하거나 달라졌을 때, 내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나곤 했으나 이제 원기억마저 희미해진 이곳에는 겹쳐지는 것도 길어낼 것도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도 이제 그때,가 떠오르지 않는 나이가 되었구나.

 

‘세월이 금방’이라는 말은 듣는 즉시 이해가 되었지만 뜯어볼수록 참 이상하고 오묘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곱씹자 가슴 안쪽을 고운 사포로 긁어내리는 기분이 들어 정말로 가슴을 쓸어 만졌다.

 

관계 속의 나와는 별개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척 유쾌하게 풀어내고는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꼭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무척 힘겨웠을 것이다. 진심을 속속들이 짐작할 순 없지만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그대로 온전히 풀어 주었기 때문에 글 속에서나 대화 속에서 이토록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대부분의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었고 고맙게도 시간과 거리가 나를 대신해 끊어주기도 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고,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 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

 

때론 우리는 마치 진정한 사랑이란 목숨까지 아깝지 않다고 자신을 온통 쏟아 부을 정도의 모성애나, 열병처럼 격렬한 성애로 치닫는 이성애 혹은 동성애만을 해당 범주에 공식적으로 올려 주곤 한다. 하지만 이토록 이성애로 조건화되고 끊임없이 의식화되고 한편 강요받는 사회가 아니라면 사랑은 딱 한 가지 정체성과 합치하는 감정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이 모든 조건화된 환경 속에서도 더할 수 없이 자연스럽게 내가 사랑이라고 느낀 모든 것이 진짜 사랑의 감정이었다고 말한다. 단지 내용에 몹시 이끌려서가 아니라 그 편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작가는 <시절과 기분>이라는 제목에 사랑이란 그렇게 다양한 것이라는 말을 이미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시절의 흐름에 따라 느껴지는 기분들.

 

조금은 서글픈 기분 속, 여전하게 뛰는 이 심장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 중략. 오랜만인지, 처음인지 알 수 없는 고동이 기차가 내는 착, 착 소리와 함께 반복되었다. 그건 어떤 과거의 회한으로 뻗어나가 겨울날의 술집으로 데려가기도 했고, 가본적 없는 미래의 풍경으로 도약해 가닿기도 했다. 대부분 슬펐지만 어떤 것은 너무 생생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는 대체로 외로웠지만 그럼에도 문을 열었을 때 언제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순전하게 기뻐했다.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슬픈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생각했고, 아무여도 아무래도 좋을 일이라고도 잠시 생각했다. 상상만으로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가능 세계를 그려보는 일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내가 된 나를 통과한 사람들, 슬픔과 불안에서만 찾아왔던 재미와 미(美) 역시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열차가 멈추기 전까지 이 진동이, 흔들림이 계속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문득 아직 심장이 잘 뛰고 있는 걸까하고 심장자리에 손을 얹고서야 안심을 하곤 하는 요즘의 나는 주인공이 느끼고 있는 뛰는 심장이, 흔들림이, 진동이 부럽기만 하다. 구축한 일상을 단번에 날려버릴 과감한 행동으로 이어질 여지가 섭섭할 만큼이나 전혀 없으니, 그 이유도 답도 괘념치 않고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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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머니 어따 놨어? ㅣ 고래책빵 어린이 시 2
강선재 지음 / 고래책빵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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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머니'란 제목을 보니 아주 아주 어릴 적 혹부리 영감님의 혹을 도깨비들이 노래 주머니라고 달라고 한 내용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얼굴에 혹주머니가 달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도깨비들이 있다는 것도 무서워서, 마음이 달달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할아버지와 도깨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너무 궁금해서 끝까지 읽은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시주머니란 시가 될 재미난 생각들이 잔뜩 들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의지하는 존재이겠지요. 엄청 귀엽고 반짝 반짝 눈이 빛나는 초등생 시인이 시가 잘 안 써진 어느 날 살짝 쿵 내뱉은 원망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우리 집 큰 꼬맹이는 초등 시절 곧잘 시를 써서 - 가족 구성원들 모두를 대상으로 한 편씩 - 학교 문집에도 발표 되곤 했는데, 다른 문예창작 모집하는 이벤트에도 보내볼까, 하고 생각해보는 와중에 슬슬 시 편수가 줄어들더니 중학생이 되자 시작을 중단한 듯합니다. 일시 중단이라 믿고 싶습니다만, 어찌나 아쉽고 섭섭한지…….

 

시어로 표현된 인상적인 가족들 각각의 모습도 재미있고, 아이의 시점에서 무엇이 가장 포착하기 쉬운 행동양식이나 인상이었는지, 그리고 아이가 각각의 관계에 대해 해석하는 내용이라든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하고 풍부한 정보가 가득하면서도 시적 재미와 감동이 있는 활동이었는데…….

 

그래서 4살 때부터 시를 쓴 4학년 시인인 저자 본인과 작품들도 몹시 궁금했지만, 혹시나 다시 시작 열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심을 품고 선택한 책입니다. 읽는 과정에서 혼자 푹 빠져서 심하게 즐기느라 본래의 목적을 완전히 망각했지만 말입니다. 


시어만큼 생생하고 풍부한 - 시인이 직접 그린 - 일러스트레이션들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나도 다시 크레용을 집어 들고 쓱쓱싹싹 막 그림들을 그려볼까 이런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작사작곡한 노래들도 있습니다.^^

 

성장과 변화라는 흐름에 저항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모든 모습들이 지켜보는 이들로서는 하나같이 아까운 어린아이들. 익숙한 일상이 멈춰 버린 시절에 어른들이 염려하고 불안해하며 생각이나 고민 속에 갇혀 있을 때에도 아이들의 눈에 담는 세상은 여전히 신기하고 재미난 그런 모습들일지 모릅니다.

 

부디 무언가를 재미있어 하는 그 재능과 마음이 다치는 일 없이 무탈하길, 모두의 아이들이 모두 무사하길 기원합니다.


시인의 하루(?)는 시작이 이렇다고 합니다. 한숨이 쉬어질 만큼 귀엽고 안쓰럽습니다.^^



<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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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박종원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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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딸을 잃고 연이어 아내마저 사망하여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처음부터 소개되면서 주인공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후 주인공은 혼자 남게 된 자신이 느끼는 절박함과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원인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인생의 행로를 정해 가게 된다. 장편 소설답게 그 후로도 상당한 분량이 감정적으로 파탄이 난 상태의 어수선하고 복잡한 시공간을 오가며 드러나는 조각들을 퍼즐처럼 기억하고 천천히 맞추어가는 스릴러의 형식을 따른다.

 

스릴러 소설의 소재로서는 특이하게 등장하는 댄스에 관한 저자의 자료 조사가 상세해서, 나처럼 문외한도 만약 관심이 있다면 저자가 등장인물을 통해 제시한 단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상당한 이론적 준비가 된다. 꽤나 방대한 내용과 다층적인 구조를 가진 500쪽이 넘는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나 홀로 모래사장에 앉았다. 아득한 지평선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가끔 은빛 구름에서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흔적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디론가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변덕스러운 소나기만큼 자신도 혼란스러웠다.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이라는 제목이 빛나는 희망과 말랑한 행복을 의미할 것 같았던 첫 인상과는 달리 저자의 글 호흡은 굉장히 길고 한 번에 읽어내기에는 버거울 만큼 촘촘하다. 저자와 주인공처럼 독자 역시 제대로 몰입해서 읽어 나가야지만 마라톤과도 같은 이 소설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스릴러 추리 소설을 읽는 일반적인 독법에 맞게 표현된 문장들에 드러난 힌트들을 잘 읽어내고 기억하는 노력과 함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하는 활력이 넘치는 음악과 댄스라는 소재를 잘 감상하고자 한다면, 가끔은 영상을 보듯 생생하게 상상해보는 노력도 소설 전체를 감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 과정에서 공감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을수록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삶의 진짜 모습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주체에 따라 수많은 변이를 가지는 삶의 모습들을 일단 그렇다고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만이 아니라 개별적 사건들 속에 녹아 들어간 진실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주인공의 말과 태도를 통해 반복해서 추리하게 한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냐.’

아내는 결혼 전부터 이런 의미의 말을 종종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사실이 모두 진실은 아냐.’ 중략.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면, 전부는 진실일 터였다.

전부가 진실이 아니라면 보이는 것만 믿고 싶은 것일 터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자신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의 죄책감을 가지는 이들이 있고, 현실 사회에서도 분명히 때론 자주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스케일이 방대한 만큼 등장인물들 역시 다양한데 거의 중반에 이르기까지 옴니버스를 떠올릴 만큼 각각의 캐릭터들이 강렬하고 개성 있게 소개된다. 그런 만큼 이들 사이의 관계들이 개별 스토리텔링을 통해 생동감을 충분히 제공한다.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면 소설을 읽는 기분만이 아니라 장편 범죄 영화를 몰입해서 시청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작품이 제공하는 또 다른 매력이자 흥밋거리다.

 

댄스, 춤이라는 소재를 극심한 혼돈에 갇힌 등장인물이 일종의 출구로 선택한 점이 생경하면서도 적어도 내게는 완전히 낯선 세계의 모습이라 읽는 내내 궁금하고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온갖 모순과 이율배반, 노력이나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서 방지할 수 없는 비극들이 혼재한 삶을 살아가야하는 불안한 이들이 언어만으로는 충분하게 선명하지 않은 자신의 감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솔직하게 드러나는 몸의 언어, 춤을 선택한 것이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내게도 미리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그 감각을 훨씬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범죄 스릴러 장르이지만 제목에서 충분히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고 읽는 내내 기대했기 때문에 비극과 불행을 보고 싶지 않은 심정을 다독이며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심적으로 극한의 고통을 당하며 깊이 파묻힐 것만 같은 짙은 농도의 감정들과 반전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있지만, 다행히 댄스라는 출구가 의외의 역동적인 몸짓으로 묶여 있는 감정들을 털어버리게도 한다. 덕분에 한식 코스요리를 즐기고 난 이후처럼, 전체적인 느낌은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몰입이 방해받지 않아 큰 재미로 수렴되는 인상적인 장편소설이다.

 

밀착된 관계들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현대의 시공감에서 어쩌면 타인의 죽음은 그저 사건과 사실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그러한 무심한 시선을 가진 우리들에게 그 속의 불편한 진실을 하나 보여주고 싶은 지도 모른다. 정갈하고 깔끔한 사건 처리로 마감되고 마는 삶을, 불편하고 아프지만 우리 모두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뜨거운 시간들을 견뎌내다 혹은 실패하고 혹은 살아남는지 그 진정성을 보여 주려 한 지도 모른다.

 

표정을 보니 무엇인가 꼭 전할 말이 있는 것 같아.

이승에서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지.

 

어쩌면 진짜 가해자는 사라지고 또 다른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리기도 하는 경우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저자처럼 주인공처럼 끝까지 은폐되고 조작되는 진실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면 연약하고 불안한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이겠는가를 저자는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추리 과정을 망치지 않기 위해 내용 소개를 마감하며, 마지막으로 댄스와는 떨어질 수 없는, 따로 갈 수 없는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보너스처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장면들에 등장하는 음악들이다. 음악만은 상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등장하는 음악들을 찾아 플레이한 상태로 읽어 나갔다.

 

그저 익숙한 우울인지 체력이 더 저하되어서인지 매번 뭐가 원인인지는 모르고 견디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라틴아메리카 음악 Bachata, 기타와 퍼커션이 친밀한 파트너로 어우러지는 부드럽고 경쾌하고 감미롭고 매혹적인 리듬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노래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삶을 흥분시켰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다. 

오랜 기간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숨 쉬어 온 축복이고 축제였다.

 

장편 소설다운 묵직함, 고단하지만 해결의 희열이 중첩되는 스릴러 소설의 추리과정, 그리고 흔치 않은 소재인 음악과 댄스의 페어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에게 확실히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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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만두를 먹는 가족
이재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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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만두와 가족이 등장하니 따뜻한 생활밀착형 이야기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이야기의 도입부가 채 지나지 않아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영양’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소재가 나에겐 너무나 강렬하고 충격적이라 심하게 놀랐다.


여성과 아이에 대한 폭력이 등장하는 미디어물이나 문학작품을 감상하지 못한 지가 꽤나 오래 되었고, 의도적으로도 소비하려하지 않는다. 현실의 가혹함과 범죄 수위가 절망적일 만큼 높기 때문이며 정서 상 그런 장면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심약한 독자로서 자주 만날 수 없는 ‘하드하기 그지없는’ 이 작품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영양만두의 재료로 사용되는 ‘개’의 환경과 물론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개공장, 식육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이 책의 주요 살인 사건이 제대로 전개되기도 전해 마치 각오하라는 듯이 펼쳐져 있다. 그저 글자들일 뿐인데 이토록 음산하고 야만적일 수도 있다니. 문장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몸서리가 처지게 오싹했다.


“평생 개장사를 하니까 말이야. 개가 때론 사람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사람이 개로 보이기도 해. 요즘 사람들은 개를 개같이 키우지 않고 지 새끼처럼 키우잖아. 개장에서 사는 꼬락서니로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고.” 47


그 고비를 넘으면서 책을 덮지 않았다면 드디어 가족 수가 많은 한 남성이 살해된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데, 평소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타입이 아닌 나로서도 전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세계였다.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이런 세상은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평생 모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오죽하면 쓸쓸하고 적막한 주인공의 삶이 무척이나 인간적이게 느껴질 정도이다. 짧디 짧은 문장을 연결해서 속도감 있게 할 말 다 하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고 그 덕분에 몰입이 깨지지 않아서 숨을 거듭 멈추면서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미스터리의 구조가 아니라 분위기로 이렇게까지 독자를 겁먹게 할 수 있다니……. 물론 내가 겁쟁이가 그런 것뿐일 수도 있지만……. 이런 현실이, 유사한 현실이 실재할 것만 같은 분위기와 그것을 태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그저 소개하는 작가의 태도에 더 겁을 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보통 용의자 중에서 누군가는 범인이 아니어도 알리바이가 애매해야 되잖아. 그런데 알리바이가 완벽한 게 이상하지 않다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 거잖아.”

“이상하다는 거야 안 이상하다는 거야? 중략.

“신인범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죽느샤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게 문제지.” 168


이 대사가 복선이기도 한데, 실제 살인 사건은 간단한 구조가 아니었다. 전개하는 도중에 처음으로 짐작할 수 있는 해법도 충분히 끔찍한데, 최종 결말에 이르면 작가는 기어코 바닥을 한 번 더 부수어 보겠다는 식으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신뢰까지 싹 걷어 치워버린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입니까? 그것도 한때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청춘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저는 최소한 그런 인간은 아닙니다.” 182


원한이 깊은 것도 아니고 그저 확실한 이익을 위해 이토록 흉악해질 수 있는 인간 세계, 발췌 내용이 많아서 미스터리를 망치는 건 아닌가 싶지만. 마음이 콕콕 찔리는 듯 따가웠던 구절들을 홀린 듯 다시 읽어 본다.


“탈은 보통 사람 얼굴하고 다르잖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글쎄요.”

“사람들이 평소 탈을 쓰고 살잖아요. 탈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탈 안에 있는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132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이유를 말해봐야 이유가 되겠냐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한테.”

“그래도 가족이잖아.”

“가족은 개뿔…….” 232


심기가 굳건하고 소설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 강렬하고 팽팽하고 쌩쌩 결말을 향해 달리는 소설이 드물게 큰 즐거움일 거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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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 공책 1 - 도리스 레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ㅣ 창비세계문학 73
도리스 레싱 지음, 권영희 옮김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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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 25년 전 대학원에서 읽은 책들이 개정되거나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당시에는 한글 번역서도 없어서 영어로만 읽었던 책들이라 집중하고 애쓴 것에 비해 남아 있는 내용이 거의 전무하다. 반갑기도 하고 하나같이 쉽게 읽히는 내용들이 아닌 것을 기억하는지라 조금쯤은 망설이다 마치 도전하는 심정으로 읽어 보았다.

 

이 책의 저자 도리스 레싱의 저명함은 설명이 사족이겠지만 또 다른 저명한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20대 초반에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눈을 떴다고 극찬한다. 그에 비해 20대에 이 책을 읽은 나는 차라리 이론서가 더 낫겠다 싶은 비참한 심정이었다. 당시 문학적 이해력이 부족하던 내게 특별한 도전을 끝까지 요구하던 무시무시한 작품. 물론 저서 자체의 명성과 저자의 능력이 의심할 바가 없다는 점에서 모든 헤맴과 오독은 순전히 나의 능력 탓이다.

 

어쩌면 1950년대 후반을 다루고 1962년에 출간된 이 책의 내용이 현재에 어떤 유용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겠냐고 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지만, 25년 전에 한번, 그리고 지금 다시 읽어본 나의 감상은 변하지 않은 현실이 절망스러운 만큼이나 이 책에서 선명하게 지적해내는 장면들이 바로 적용 가능한 시각과 세계관을 여전히 적용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책은 페미니즘 문학에서만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이 아니라 20세기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해당하는 시대와 문화에 대한 배경 지식이 얕기 때문에 당시 인물들이, 특히 여성 작가의 일상적인 삶과 추구하는 가치들과 그 속에서 분열되는 자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있지만, 그 역시 내 자신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뿐이다. 게다가 인문사회학에 대한 공부도 부족해서, 그 시절 서구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반전(反戰)운동, 공산주의의 몰락, 여성해방운동 등의 주제들을 기본적인 내용을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문학 속에 녹아든 의미들을 눈 밝게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당시 내가 시몬느 드 보봐르의 <제2의 성>을 비교적 잘 따라가며 읽고 중요한 내용을 파악했다고 느낀 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몇 편의 글에서 반복하여 예를 들기도 했지만, 한국 사회는 오랜 세월 공고했던 가부장제와 다른 모든 가치들을 뒷전으로 물린 경제성장 논리의 부작용들이 염려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심각한 사회적 범죄로 표출되는 끔찍한 경험들을 몇 년간 겪고 있다. 끊임없이 기사로도 재생산되고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지만, 결혼과 출산, 육아, 이혼율 등은 이제 특정 개인들의 개별적 특수성이나 특정 세대의 이기심 혹은 성별에 국한된 문제로 볼 수는 없다.

 

그중 외로운 여자 다섯 명은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데도, 혹은 그들 탓에 조용하게 혼자서 미쳐가고 있었다. 모두 스스로에게 의혹을 품고 있었다. 자신이 행복하다는 이유에서 죄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예외 없이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279~280


내 안의 긴장이 시작되었고 평화는 이미 사라졌다. 스위치가 켜지고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재닛에게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낸 다음 마이클에게도 아침을 차려줘야지, 차가 다 떨어졌다는 거 잊지 말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 쓸모없지만 틀림없이 불가피한 긴장과 더불어 원망의 스위치도 함께 켜진다. 무엇에 대한 원망일까? 불공평이겠지. 세세한 것들을 걱정하느라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원망. 519

 

크고 작은 범죄들로 거의 매일 자행되는 사건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대중교통 속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식당과 카페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부재하거나 마련되는 속도가 너무 늦어서 공포와 좌절과 무력감을 견디지 못한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자살이라는 또 다른 비극적 결말을 맞기도 한다.

 

이런 예들은 사실 나의 경험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데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저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가부장적인 면이 분명히 있으나 자식을 성차별하지 않고 폭력을 가하는 않는 부모를 운 좋게 만났고, 노골적이고 의도적인 성차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직장을 운 좋게 다녔을 뿐이고, 친구, 지인, 주변인들 역시 운 좋게 좋은 이들을 만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나의 사적인 경험을 토대로 실제로 성차별과 젠더폭력이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모르겠다거나 과장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나는 배고파 본 적이 없는데 정말 한국 사회에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있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여성적인 세계를 겨눈 그의 조롱은 그가 애나의 존재를 의식한 순간 시작되었다. 그래, 하지만 딱히 새로울 것도 없지. 애나는 이미 익숙한 터였다. (…) 아이도 그 조롱이 자신을, 그리고 여성 일반을 겨누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애나는 딸에게 조용히 공감하며 생각했다. 그래, 내 가엾은 딸아, 빨리 익숙해지는 편이 좋아. 끊임없이 그런 태도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니. 42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우리 시대의 어두운 비밀이죠. 아무도 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어딘가 문을 열면 그 안에서는 늘 날카롭고 절박한, 알아듣기도 힘든 비명 소리가 귀를 때리거든요.” 436-437

 

그래서 몇 십 년 전 탄생한 이 책의 내용이 읽을수록 대한민국의 현실을 환기시킨다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느낌이 한편으로 서글프고 두렵기까지 하다. 힘들 때 힘든 이야기를 굳이 찾아 읽고 싶지 않다는 심정은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혹시 기회가 있다면 그래도 나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불행을 증언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일상적인 언어와 표현으로 많은 공감을 나누고자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다소 경직되거나 경도된 한국 사회의 논의를 신기하게도 꼭 집어 지적해주는 듯한 내용도 있고, 당시에는 문학이라 더 어렵다고 느낀 부분들이 이제는 문학이라 가깝게 다가오는 점들도 있다. 그래서 이런 작품이 소위 세월과 무관하게 읽히고 재해석되는 명작일 것이다.

 

그건 차라리 우리 시대 여자들의 질환이다, 여자들의 얼굴이나 목소리에서, 혹은 그들이 사무실로 보내오는 편지에서 나는 매일 그걸 목격한다. 그들의 감정은 불의에 대한, 비개인적인 독성에 대한 원망이다. 그게 비개인적인 것을 알지 못하는 운 나쁜 여자들은 이러한 감정을 남편이나 연인에게 떠넘긴다. 반면 나처럼 운 좋은 여자들은 그 감정에 맞서 싸운다. 피곤한 싸움이긴 하다. 520

 

아직 잠든 채로, 나는 나 자신이 어떤 페이지에 써놓은 말을 읽어보았다. 용기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그런 용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삶의 뿌리에 놓여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작고 고통스러운 종류의 용기로, 이는 불의와 잔인함이 또한 생명의 뿌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396

 

여자가 여자를 지켜주는 여자들만의 기사도가 있는 법이고, 이것은 다른 어떤 충성심보다 강력하다.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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