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양자컴퓨터
후루사와 아키라 지음, 채은미 옮김 / 동아시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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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전기가 아니라 빛을 이용한 컴퓨터 - 광양자컴퓨터 - 입니다. 전자를 광자로 대체한다고 정리하면 개념상으로는 간단하지요. 아직 실현을 향한 과정에 있습니다. 워낙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져서 ‘초읽기’라는 것이 과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인간의 직감과 어긋난다는 점이다. 우리의 상식과 반대되는 규칙에 의해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바꿔서 생각하길 바란다. 오히려 인간의 직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 단계는 얼추 극복했다고 우길 수 있는 수준이라 믿었는데, 교재도 부교재도 필기도 시험도 모두 영어라서, 한글로 물리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 읽는 속도가 심히 저하되는 것이라 우기고 싶은 심정입니다. 예) 양자얽힘 -> entanglement

 

“양자컴퓨터를 실현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양자중첩’과 ‘양자얽힘(entanglement)’에 대해 설명해보자. 이들은 양자 특유의 아주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양자역학이 일반적으로 경원시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원래 이런 것이다’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일단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하자.“

 

"양자얽힘 상태에 있는 양자끼리는, 예를 들어 서로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강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한쪽이 외부에서 받은 영향을 다른 한쪽도 동시에 받는 것이다."

 

“우리는 광자라는 미시적인 세계만이 아닌, 광펄스라는 거시적인 세계에서도 양자텔레포테이션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세계에서 최초로 입증한 것이다. (...) 그것은 1935년에 슈뢰딩거가 의문을 던진 슈뢰딩거의 고양이 패러독스와, 아인슈타인 등이 제창한 EPR 패러독스라는, 양자역학의 여명기에 등장한 2대 패러독스에 대한 해답을 21세기의 기술을 사용해서 (실험실) 테이블 위에서 동시에 확인한 것이다.”

 

- 기존의 양자컴퓨터는 “양자 어닐링 머신quantum annealing machine”이라 불리는 것.

- ‘조합 최적화 문제’의 계산 처리에 특화된 전용 머신

- 2013년 NASA와 구글이 공동 구입 :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양자인공지능연구소’설립.

- 저자가 목표로 하는 양자텔레포테이션 기술을 적용한 컴퓨터의 열에너지의 배출량은 이론상 ‘영’

 

설명은 친절하고 연구실 풍경도 생생한데, 기억이 흐릿하네요. 양자역학 우수한(?) 성적으로 전공한 과거는 별 도움 안 되는 군요. 세월무상!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이후의 소식이 기다려집니다. 열에너지 배출이 줄어든다니 지구가 잠시 조금이라도 시원해지는 기분! 


물론 앞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있는 새 기술들에 미리 의존해서 낭비하는 방식으로 신나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은 공유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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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 ‘오늘의 식탁’에서 찾아낸, 음식에 관한 흔한 착각
정재훈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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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를 통해 광고를 하는 약이나 음식을 신뢰하지 않는다. 경험적인 데이터가 쌓이기도 했고, 광고란 과장하기 마련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게 한국은 광고와 카더라 통신의 지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음식의 효능에 대한 거의 본능에 가까운 믿음을 버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과학자들의 복잡한 설명을 이해하기보다 특정 음식을 먹었더니 이렇더라는 이웃의 체험담이 훨씬 쉽게 다가온다. 첨단 과학기술을 누리고 있지만 과학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인 사람의 수는 아직 많지 않다. 냉면집에 메밀의 효능 광고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가장 괴로울 때는 지인들이 혹해서 추천할 때인데, 나는 현대의 광고 시장이 예전 장날 만병통치약을 팔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 실제로 구경은 한 번도 못했지만.

 

관련 분야를 전공한 친구는 이미 오래전에 가짜사과향을 만들어내는 일의 가치를 상실하고 업계를 떠났다. 실로 오랜만에 이 분야의 ‘과학적 시각으로 정보를 전공하는’ 책을 정독해본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이 정보 전달에만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합리적 의견 제시도 좋다.

 

“끼니는 생리적 배고픔에 따라 먹는 자연스러운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이 만든 사회적 약속일뿐이다. 배가 안 고프면 안 먹어도 된다. 끼니를 거른다고 건강에 해로울까 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간헐적 단식’이 다이어트 법이라는 것을 책을 읽고 알았다. 아니 우리 다들 간헐적 다이어트 하고 사는 것 아닌가요. 저녁 식사 후 다음날 첫 식사까지. 프랑스 음식이 살이 안 찐다는 것도 처음 듣는다. 과잉 정보에 괴롭다고 생각했는데 정보 폭격을 잘 피해 살고 있었나보다.

 

집밥을 먹으면 더 건강해질까. 엄마음식에 대한 눈물겨운 추억도 그리움도 없고 집밥에 대한 애정도 별로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통밀빵을 배달해주는 베이커리가 있다면 결코 집에서 빵을 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한식이 건강한 음식이라는 것에도 불만이 많은데, 음식량이 많고 반찬 가짓수도 많은데 조리법에 소금, 설탕, 기름이 빠짐없이 들어가니 특별히 건강한 음식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집밥을 먹어 건강해졌다면 음식 덕을 본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없이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더 영향이 크지 않을까.

 

포장 문제와 배달 노동의 착취 구조가 없다면, 전문가가 위생적으로 건강 지식을 활용해서 만드는 음식을 파는 곳이 있다면, 나는 집밥에 대한 아무 미련도 남지 않을 듯하다. 돌밥돌밥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식사를 전담하는 주부들의 최애 음식이 남이 해주는 음식이란 건 농담이 결코 아니다.

 

궁금하고 흥미로웠던 내용은 3부에서 많이 만났다. 잘못된 정보 혹은 위도를 가지고 오도된 정보로 돈을 버는 업자들의 놀이터가 된 언론과 사회, 그 정보를 믿고 또는 혹해서 약이건 음식이건 사 먹는 소비자들은 돈만 쓰고 원하는 효과는 얻지 못하고 신상품을 다시 구매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구조를 지적한다.

 

“코로나19가 예상보다 오래가면서 무슨 음식, 어떤 영양제를 먹으면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주장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지만, 실은 면역력이라는 말 자체가 틀린 용어다. 면역은 무조건 강하면 좋은 어떤 힘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이다. (...) 면역력은 학술 전문 용어가 아니라 마케팅에 남용되는 잘못된 개념일 뿐이다.”

 

그러니 어떤 단일 식품이나 단일 성분이 만병을 고치고 몸무게를 줄이고 젊어지게 만들고 등등의 효과를 가져 올 거란 생각을 하지 말자. 세상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효과를 보이는 성분을 추출해서 효과를 증대시킨 것이 우리가 아플 때 복용하는 정제약품들이다.

 

“그 성분이 몸에 좋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성분도 동일하게 다 몸에 좋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말하기 나름이에요. 오히려 그것을 더 많이 먹어서 균형 있는 섭취가 되지 않는 게 더 문제에요.”

 

그러니 식품을 먹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확률은 미약하고 상시 복용해서도 안 되는 일이며 장기간 복용하면 심각한 건강상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일례로 사과보다 비타민 C가 몇 배란 말은 믿지 말자. 사과는 비타민이 별로 없는 과일이다. 그러니 비교하는 광고의 의도는 차이로 착각을 유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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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친구 1 ㅣ 스토리콜렉터 95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박아람 옮김 / 북로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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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호러인데 주인공이 만 일곱살이라 읽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다. 한부모 가정, 동거남의 폭력, 도망... 도입부부터 어둡다. 소름이 쭈뼛한다. 어린 아이가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과중한 힘겨움으로 뒤틀리는 듯 불편한 분위기이다.

 

“이번엔 다를 거야. 아빠가 죽고 나서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이번엔 다를 거라고. 그러나 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도망치는 것이었다.”

 

“잘못되면 안 돼. 넌 엄마를 보호해야 해.”

 

도망을 가는 존재들은 늘 같은 패턴을 보인다. 최종적으로 몸을 숨길 수 있는 작은 장소로 들어가서 숨을 돌리고 머문다. 그래서 도피는 언제나 불안하고 긴장을 유발한다. 


나는 대도시의 익명성뿐만 아니라 인구가 많아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는 사회적 관계 훈련과 합리성을 더 의지하는 편이라 소도시의 폐쇄성이 불길하다.

 

소설의 배경이긴 하지만 어둠으로 시각을 차단시키고 청각으로 목소리로 공포를 고조시키는 특이한 도입을 펼치는 작품이다. 소리에 민감한 나는 뇌가 긁히는 날카로운 자극을 받는다.

 

“머릿속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괜찮다. 어쨌든 그 소름 돋는 여자는 아니니까. 어쨌든 꿈은 아니니까.”

 

“제발 잠들지 않게 해주세요.”

 

아이의 실종으로 긴장이 고조되었다가 크리스토퍼가 ‘착한 아저씨를 따라 숲 밖으로 걸어 나온’ 이후 퇴원도 하고 학교에도 가고 수학도 잘 하게 되고 복권이 당첨되어 빚도 갚고 집도 산다. 그리고 예전에 마을의 한 아이가 생매장 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착한 아저씨는…… 나한테 진실을 말하기가 두려운 거야. (...)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아저씨의 마음을 읽어버릴 거예요.”

 

꿈과 현실, 상상과 실제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힘과 존재가 이야기 속에서 확실하게 등장할 것도 같고 이 모든 게 꿈과 망상인 듯도 하다.

 

“말해줄 수는 없고, 보여줄게. 하지만 명심해라 (...) 우리가 두려움을 삼키지 않으면, 두려움이 우릴 삼킬 거야.”

 

어린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공포감을 맛보고, 판타지의 세계와 상상의 친구에 의지하고, 철학과 종교에 관한 체험과 사고훈련을 겪는 일은 드물지 않지만, 가정폭력, 아동학대, 성범죄, 종교의 폐해, 정체 모를 질병까지…….

 

“실종된 여자아이 사진이 보였다. (...) 사진 속에 멈춰 있는 어린 소녀. (...) 미소 띤 얼굴이 겁에 질린 얼굴로 바뀌었다. 이윽고 그 애는 조용히 뒤로 돌아 사진 밖으로 달아났다. (...) 뱀 같은 여인이 바로 뒤에 있었다.”

 

초기에 청각적 공포가 도드라지는 설정이었다면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생생한 화면을 띄우듯 묘사가 구체적이 되고 화려해진다,

 

“힘을 쓰면 현실 세계에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그 두 가지는 늘 붙어 다녔다. 그러니까 많은 것을 살려낼수록 나는 죽어갈 것이다. 내가 쏟는 코피는 이 세상의 피다.”

 

스티븐 킹 스타일 오컬트 호러를 표방한다고 해서 문화적, 종교적 이해가 부족한 독자로 잘 읽을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다. 영적 전쟁과 사교에 관한한 매번 참 할 말을 잃는다. 어디라도 소속되고 싶은 욕망이란 모든 판단력을 흐릴 정도로 절실한 것일까.

 

그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네 혀를 잘라야 할 것 같구나”

 

1권에서 배경과 설정 자체는 새로운 것이 없는 편이라고 느꼈는데 작가가 준비한 세계관은 무척 방대했다. 크리스토퍼를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을 지나고 나면 더 혼란스럽고 더 재밌어진다. 대화가 많아 분량에 비해 체력이 남을 정도로 쉽게 읽힌다.

 

당연하겠지만 갈등이 최고조가 되어 폭발하는 2권까지 읽어야 이야기의 세계를 포괄적으로 구성한 메시지들을 모두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도입이 가장 무서웠다고 느꼈는데 결국 예상 못한 공들인 반전에 심장이 덜컥 크게 움직였다.

 

“전쟁놀이를 하는 소년들. 오로지 시간만이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땅을 두고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게 하기라 얼마나 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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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넘어지지 않는 몸을 만드는 스쿼트 발뒤꿈치 쿵 ㅣ 헬스케어 health Care 22
가마타 미노루 지음, 이윤미 옮김 / 싸이프레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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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지만 어쨌든 매일 한다!하는 실내 동작(?)들 중 하나가 스쿼트입니다. 몇 해 전까진 하다말다 한 근력 운동인데 갈수록 근손실이 무서울 정도이지요. 허벅지 살이 물컹 흔들거리는 걸 목격하고 게으름과 최대한 타협한 것이 스쿼트입니다.


 

정말 간단한 운동이고 공간도 필요 없고 생각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해도 됩니다. 플랭크는 최소한 엎드리고 매트라도 깔아야 하지만 스쿼트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맨 몸으로도 가능!

 

자세가 가장 중요한데 익숙해지면 근육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로도 자세가 바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렵지 않습니다.

 

노인 사망 원인의 70%가 낙상이라니! 어지럼증이 오가지만 근육 부족으로 넘어지는 일은 방지해보자 이런 서글픈 결심을 해봅니다. 그런데!

 

1.즐길 거리를 찾는다.

2.어쨌든 웃는다.

3.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4.꾸준히 배운다.

5.무리한 건강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6.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다.

7.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한다.

 

스쿼트 발뒤꿈치 관련 내용보다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는 7가지 방법’이 조곤조곤 재밌습니다. 식욕이 부족해서 때 맞춰 식사하는 일이 별로 즐겁지 않고 세상에 맛있는 음식도 뭐가 있나 싶은 유형인데 ‘3.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를 읽고 신기하게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효과를 보았네요. 부디 굶으면서 살 빼는 운동만 하지 마시길. 그런 괴로운 장면을 떠올리면 슬픕니다. 힘이 되는 음식 잘 드시고 근력 키우는 스쿼트 하셔요. 조용한 침묵의 움직임처럼 보이나 땀이 엄청 납니다.

 

너무 힘드심 의자 놓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방식으로 하셔도 됩니다.



 

스쿼트 종류는 여러 개를 소개하니 잘 맞는 걸로 하시면 될 듯하고, 발뒤꿈치 쿵은 골밀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하니 - 저자가 의사 - 일단 저는 해보겠습니다.


 

9월 1일 시작! 5분+5분 딱 10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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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거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한은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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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었는데 궁금한 것도 아쉬운 것도 불만도 없이 딱딱 소리가 들릴 정도로 깔끔하게 전개되고 말끔하게 마무리되고 작가 천재다! 이런 느낌을 늘 받는 것은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입니다.

 

모든 작품이 다 좋지만 <깨어진 거울>은 특히 더 좋습니다. 물론 취향, 상황, 번역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입니다만. 작품 자체의 무게감과 완결성이 추리장르의 대작이네요.

 

세상 다른 누가 ‘친절함’을 주제로 인물들의 자기중심성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한편 치밀한 추리 설정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요. 행복에 대한 관심과 기원을 무섭게 지적한 정유정 작가?

 

진의와 진심에서 벗어난 자기만족적인 친절함을 캐릭터의 말과 행동으로 목격하니 그 기막힌 괴리와 위선이 속이 울렁일 정도로 선명합니다.

 

남 못지않은 불안증으로 사는 저조차 본인의 불안정함을 핑계로 남의 감정을 제가 좋을 대로 원하는 대로 이용하는 인물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생기지 않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인간의 본질 한 가운데를 직접 파내는 냉철한 시선과 문장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아주 친절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했어요. (...) 단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나도 그런 사람을 알지. 그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위험하게 살게 마련이야.”

 

“체리는 집안일은 엉망이지만 무엇보다 오고 싶어 한다. 더욱이 지금 이 순간에 마플 양이 가장 중요시하는 장점이 있다. 따뜻한 마음과 생명력, 그리고 일상사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단 13권 밖에 없는 마플 시리즈를 읽어서 감동이 더 크고, 1962년 작가가 72세에 쓴 작품답게(?) 늙고 쇠약해지고 멈추지 않는 시대 변화를 도입부터 신랄하게 펼치는 서사가 굉장합니다.

 

친절과 간섭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 구분을 잘 하는 것은 참 어렵고 위험하고 귀한 태도입니다.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를 수도 있을 정도로 출간 년도와의 시간 차이가 상쇄되는 기분이 드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가능한 가스라이팅이나 인에이블링에 관심이 많은 저는 막무가내, 일방통행적인 친절의 동력과 심리는 무엇인지 골똘히 읽었습니다.

 

기력을 잃어가던 마플이 사건을 만나 생기가 솟는 장면이 재밌고 반갑습니다. 300쪽 밖에 안 되는 분량에 모든 사소한 단서들을 완벽하게 회수하며 최종 그림을 완성하는 신기에 가까운 필력! 한숨이 나올 만큼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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