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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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반갑고 살짝 떨리는 정보라 작가님 신간 소식, 1부 2023-3 밤이 오면 우리는, 2부 2024-12 예언자, 3부 2026-3 우리는 악마에게서 왔다, 순서로 읽어본다. 월간지에 인덱스 해주셔서 기분이 방긋하다.



 

“어쩌면 인간은 점점 달아오르는 이 행성에 너무 많이,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목덜미가 잡힌 듯 꼼짝 않고 읽게 되는 이야기의 마력은 여전하다. 그래, 이게 내가 좋아하는 SF의 모든 것이지, 싶다. 작품 속 캐릭터처럼 불안과 의심에 싸여, 초조해하며 등장인물 - 혹은 로봇 - 을 파악하려 가늠해본다.

 

25년 전 나는 인간의 의식이 왜 창발emerging하는 지가 정말 궁금했다. 전기신호들 - 스파크 - 들이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의 수많은 조합으로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창조되는 그 기이한 현상.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인간의 뇌가 기능하는 방식으로 학습하는 AI 역시 그렇게 진화할 것이다. 그래서 몹시 비관적이다. 철저히 ‘합리적’으로 사고하면 인간이 말살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그래도 된다는 선례 - 지능이 높다는 이유로 다른 종을 죽이고, 착취하고, 변형시키고, 길들이고, 죽이고, 먹어치우고 - 를 남겼다.

 

“로봇은 안전장치를 가동하고 인간을 말살하기 시작했다. 벌써 오래된 얘기다.”

 

똑똑한 로봇들은 “언제나 같은 인간을 죽이는 일에 능숙”한 인간들을 이용해서 인간들을 죽인다. 반박할 논리가 하나도 없어서, 쓴 맛이 입에 고이는 기분으로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종을 위한 최선의 안전장치는 인류 문명의 종말”이라는 문장을 한참 보았다.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들로 대체되는 시간의 배열이 촬영본처럼 생생한 작가의 필력으로 이어진다. 거친 호흡이 타의로 멈춘 듯한 지점에서, 예언자는 몽환적인 서글픔과 비극을 뿌리며 이야기의 초점을 이동시킨다. 읽고 나니 몹시 슬픈 꿈을 꾼 것 같다. 의심도 못하고 정서적 이입을 깊이 해서 읽었더니 현실의 절망처럼 반전이 아팠다.

 

“결국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 자기 힘으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면 조만간에 자기는 왜 기계이고 너희는 인간이냐는 질문을 스스로 생각해낼 테니까.”

 

무엇이 인간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나는 늘 이런 질문을 하는 SF를 좋아했다. 대개의 작품에서, 인간은 부끄럽고 인간 아닌 존재들이 인간다움의 가치를 더 갈구한다.

 

기억 데이터의 이동과 저장 수준이 아닌, 학습 가능한 불멸의 ‘의식’이 이제 단일우세종이 될까. 너무 빠른 속도로 바뀌는 미래를 덜 보고 사는 나이라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인류의 모든 지식을 학습한 그 ‘의식’이 밝힐 우주와 생명의 비밀은 너무나 궁금하다. 진단서이자 예언서와 같은 작품, 정식 출간을 고대한다.

 

“통신망 안으로 녹아 흩어진 의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소멸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어딘가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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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피터팬 - 중증자폐인 아들을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전경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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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MBC <실화탐사대>를 나는 아직 못 보았다. 그럼에도,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두고는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양육자들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여전히 그렇다는 것이 아플 뿐이다.

 

능력주의와 극우가 찰떡 같이 융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배려와 연대와 복지는 범죄처럼 오역되고 욕을 먹고 위협을 당한다는 현실도 아프다. 차분히 읽고 할 수 있는 도움에 참여하면서, <피터팬재단>이 설립되고 피터팬마을이 생기고 피터팬들도 갈 곳 있고 살 곳 있는 한국 사회로 바뀌길 지켜볼 것이다.



 


“나는 지금 막 인생 전역을 명받았다. ‘기대여명은 수개월’이라는 활자가 무심하게 찍혀 있는 진단서.”

 

필요한 순간 도와줄 다른 이가 없다면, 양육자는 고열에 시달려서 정신이 아득해도 일어나야 한다. 양육 대상이 아직 어리거나, 평생 도움이 많이 필요한 경우라면, 내 미래의 죽음이 나란 존재의 소멸이라서 두렵고 슬픈 게 아니라, 양육과 보호의 역할을 못하는 되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사건이 된다.

 

이 책의 저자이자 아버지의 사정도 그렇다. 시한부 진단을 받아도 아들 밥 먹이는 게 걱정이라 퇴원을 해야 하고, 차마 맘대로 죽지도 못할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아직... 이런 염려와 걱정에 잔인할 정도로 응답이 부족하다.

 

“동반 자살이란 단어, 잘못 쓰이고 있는 건 알지? (...) ‘Murder Suicide’ 이건 ‘살해 후 자살’이야.”

 

법과 지침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글로 기록되어있는데도 현실에는 없다. 왜, 어째서 그럴까. 그 법과 지침이 환영이 아니라면, 그에 따른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들고 불가능하게 느껴져야 하는 걸까.

 

저자이자 아버지는, 주눅 들어 애원하거나 비굴해지다 외면당하는 존재가 더 이상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국민이고 생존권이 있고 복지서비스를 누릴 권리도 있다. 그러니 당당하게 요구하기로 결심했다.

 

“제 마지막 소원은요. 아들이 집도 잊고, 저도 잊고 새로운 곳에서 혼자 잘사는 것. 그저 그것 하나뿐이에요.”

 

그러나 현실 사회의 부조리는 끝없이 무례하다. 전혀 모르는 상태로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변형된 상징이자 희생양으로 이용될 뻔하기도 하고, OECD 국가라는 성취를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사회는 헌법에 명시된 책임도 방기하고, 세금과 예산 타령만 한다.

 

그래서 저자는 여기저기 막다른 골목에서도 더 크게 외친다. 복지예산과 지출은 의무이고, 내 요구는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장애에 따른 필요는 부모만이 끝까지 가정에서 책임지는 일이 아니라고.

 

“이 나라는 우리에게 늘 ‘밖으로 물러나라’고 가르쳐왔습니다. (...) 우리는 잘 준비된 시설의 ‘안전선 안으로’ 초대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 필요한 건 배제가 아니라 배려입니다.”

 

저자가 찾아낸 희망과 계획을 책에서 만나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는 이 최소한의 사실에 동의할 수 있고, 인간이라서 동등한 우리가 다른 핑계로 서로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두가 함께 하면 현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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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구락부
이화경 지음 / 한길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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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장편소설,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짐작 이상일 거라 기대합니다. 문학으로 다시 체험하는 역사일 듯도 하구요. 읽는 내내... 육성으로는 다시 들을 길이 없는 조부모님 이야기들이 더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천아지. 천한 것. 형편없는 이름. 이번에도 천하다고 쫓겨날까봐 무서웠다.”

 

주인공과 조연들로 이루어진 구성이 아니라서 좋다. 감정 이입을 좀 더 하는 화자는 있지만, 덕분에 다른 상황이라면 알고 싶지 않은 인물의 이야기도 빠트리는 문장 없이 다 읽을 수 있다. 남 얘기할 필요도 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위한 내 인내심과 시간도 줄어드는 편이라서, 독서 자체가 훈련과 공부가 되었다.

 

기록되고 자주 회자되는 인물들로 역사가 바뀌어왔다고 단순화시키기 쉽고, 목소리도 존재도 지워진 이들을 기억하기란 어렵다. 비극적인 상황을, 수치스러운 역사를, 책임이 적은 이들에게 전가하는 멸칭과 심리와 논리를 되새긴다.

 

“바뀐 이름으로, 바뀐 처지로, 바뀐 마음으로 그녀는 있는 힘껏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보려 한다.”

 

굶주리다 팔려간 어린 시절, 도망밖에는 묶인 지옥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던 상황, 함께 어려움을 견디고 도와준 어른의 부재가 참 아프고 서럽다. 그래서 화자 천아지의 이후 선택은 그 시절의 허기에 기인한다.

 

물론 그녀가 유일한 피해자는 아니다. 글을 모르는 대다수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깨닫기 전에, 맞고 짓밟히고 죽어갔다. 그러나 “서른 살의 배운 여자”가 된 천아지는 조선에서 쓸모가 없었다.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꿈꾸는 것은 단 하나, 살아남는 것, 할 수만 있다면 자유로워지는 것.”

 

그녀가 사랑한 식민지 지식인은 저항의 수단으로 공부하고, 이론으로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가 아주 강했지만, 그 이론은 설명의 수단일 뿐, 실질적 무기가 되지 못했다. 변화를 위한 힘을 가진 이들 중에는, 독립보다 권력을 더 원하고, 타인의 열망을 자신의 야망을 위한 연료로 쓰려는 더 끈질기고 독했다.

 

유일한 사랑은 늘 미래와 가정 속에서만 희망과 약속을 얘기하고, 그녀는 자신이 도달한 답을 찾지 못한다. 생존을 위한 다음 선택은,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에서 지속적인 보호 장치도 바라던 미래도 되지 못한다.

 

“한 번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했기에, 국가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녀에게 국가가 마지막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가가 호명해준 이름은 스파이였다.”

 

내게는 내 조부모님들과 부모님이 전해준 진실의 엽편들이 있다. 작가에게도 그럴 것이다. 소설의 방식이지만 나는 작가에게 이어진, 역사적 진실의 조각들을 만난다. ‘전체’ 진실은 모르겠다. 한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진실은 드러나는(to be revealed)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진실은 울퉁불퉁하고 앞뒤가 맞지 않으며 때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더 진실하다. “매끄럽고 앞뒤가 딱 떨어지는 것”들은 재구성과 조작과 연출 혹은 잘 포장된 거짓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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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테이프
전건우 지음 / &(앤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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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봐도 으스스... “사람의 손때가 많이 묻은 동전”이 “액운을 물리치고 잡귀를 막아주”는 줄 몰랐네요. 저로선 “손때가 많이 묻”었다는 게 더 무섭습니다만. 호러... 스릴러... 넘 오랜만이라 두근두근합니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걸,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펼친 샘플북, 트랙 3까지 분량만 있으니 읽고 나서 얼마나 더 궁금할지 두렵다. 믹스 테이프를 본 지가 까마득하다. 별밤을 청취하던 중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선물로 주고받았는데 남은 게 하나도 없다. 반세기 전에 친구가, 유학 선물로 믹스 녹음해 준 CD 두 장이 여전히 차에 실려 다닌다.

 

작품 속 믹스테이프에는 듣기 좋은 노래가 아닌 ‘죽은 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 녹음을 들은 자들은 죽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악령보다 인간의 그림자가 배후에 서성인다. 마치 실험을 통해 저주의 힘을 확인하려는 듯이.

 

“무엇보다, 점은 테이프 괴담이 처음 떠돌기 시작했던 게 1982년이었다는 사실이 주목할 점이죠.”

 

제공한 정보보다 더 많이 아는 듯한 의뢰인과,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는 전직 형사인 외뢰 수락인이 이 저주의 힘과 사건에 얽혀 있을지 - 혹은 무관할지 - 알아나가는 사건 전개가 기대된다.

 

특히 목소리를 듣고 자살한 이들이 “수치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니 전모가 더 궁금하다. 반갑기도 하다.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이란 못할 일이 없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괴물이다. 공모한 범죄와 죄악의 대가라면 문학에서라도 단죄해주는 이야기가 조금은 위로가 된다.

 

“검은 테이프? 왜 그런 이름이 붙은 거죠?”

 

남은 내용이 훨씬 더 많아서 출간이 기다려진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어두움’과 ‘죽음’을 책을 다 읽어도 끝나지 않는 공포로 엮어서 건네는 전건우 작가의 이 신작이, 이번 여름에도 서늘한 선물처럼 도착할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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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뱀파이어 ㅣ 문학동네 청소년 80
최상희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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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가 점점 더 많아진다. 청소년 문학이 따로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대한 보상 같은 궁금증이기도 했고, 훨씬 직설적인 표현 방식이 좋기도 했다. 지금은 숨 가쁘게 빨라진 변화가 넓힌 세대 차이에다가, 소셜미디어 사용으로 더 멀어진 다른 일상과 고민을, 문학을 통해서라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웃음이 나는 표지다. 그래도 표제작부터 찾지 않고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었다. 달라진 조건들은 많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꽤 외롭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동물 친구들과 동년배 친구들, 혹은 상상의 친구들이 채워준다. 욕망에 사로잡힌 못난 어른들의 세상에서 서로를 돌보는 이들 모두가 안타깝도록 연약하고 소중하다.

 

“500년 넘게 진짜 지루했는데 이제야 좀 재밌어 지려고 한다.”

 

표제작은 아주 흥미로웠고 너무 슬펐다. 속상해서 울고 싶기도 했다. 차별금지법도 혐오방지법도 없는 사회라서, 저지선도 교육도 부재한 현실이라서, 10대는 혐오를 놀이로 삼고 일상 언어로 사용하는 끔찍한 상황에서, 경박한 사고와 태도로 근거 없는 혐오와 단죄를 벌이는 풍경을 문학으로도 만나는 순간이 아팠다.

 

인간다움의 오류들을 정직한 문장으로 기록한 고발장 같다.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 보호 받지 못하는 어린이, 문제의 원인을 늘 외부에서 찾는 습관, 과학도 논리도 없이 가장자리에 있(다고 멋대로 규정한)는 이들에게로 당연한 듯 향하는 책임 전가,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고 혐오를 놀이처럼 여기는 아이들. 현실은 더 심각할 거란 경고다.

 

“적극적이란 단어가 왜 공정함과 연결되는 걸까, 소극적이면 비겁한 걸까.”

 

산업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을 선점하지 못하면 반드시 굶어죽고 말거란 두려움은 정확한 진단일까. 그래서 핵발전소도 더 짓고, 엄청난 열공해를 유발할 데이터센터도 최대로 짓고, 빙하가 녹는 것도 기회라며 북극항로 개척을 기뻐하고, 그렇게만 하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불행으로부터 더 유예 되는 걸까.

 

우리 집 십대 아이들을 생각하면 두렵다. 기성세대의 뜻도 의지도 상상력도 치졸해서 부끄럽다. 그 수준이 진심이자 최선일 거라 생각하면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사람을 살리고 살게 하는 일에는 다른 고민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양육/교육과 양육/교육 환경과 양육/교육종사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시작되어야 한다. 늦었지만 하루라도 더 늦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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