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피터팬 - 중증자폐인 아들을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전경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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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MBC <실화탐사대>를 나는 아직 못 보았다. 그럼에도,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두고는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양육자들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여전히 그렇다는 것이 아플 뿐이다.

 

능력주의와 극우가 찰떡 같이 융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배려와 연대와 복지는 범죄처럼 오역되고 욕을 먹고 위협을 당한다는 현실도 아프다. 차분히 읽고 할 수 있는 도움에 참여하면서, <피터팬재단>이 설립되고 피터팬마을이 생기고 피터팬들도 갈 곳 있고 살 곳 있는 한국 사회로 바뀌길 지켜볼 것이다.



 


나는 지금 막 인생 전역을 명받았다. ‘기대여명은 수개월이라는 활자가 무심하게 찍혀 있는 진단서.”

 

필요한 순간 도와줄 다른 이가 없다면, 양육자는 고열에 시달려서 정신이 아득해도 일어나야 한다. 양육 대상이 아직 어리거나, 평생 도움이 많이 필요한 경우라면, 내 미래의 죽음이 나란 존재의 소멸이라서 두렵고 슬픈 게 아니라, 양육과 보호의 역할을 못하는 되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사건이 된다.

 

이 책의 저자이자 아버지의 사정도 그렇다. 시한부 진단을 받아도 아들 밥 먹이는 게 걱정이라 퇴원을 해야 하고, 차마 맘대로 죽지도 못할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아직... 이런 염려와 걱정에 잔인할 정도로 응답이 부족하다.

 

동반 자살이란 단어, 잘못 쓰이고 있는 건 알지? (...) ‘Murder Suicide’ 이건 살해 후 자살이야.”

 

법과 지침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글로 기록되어있는데도 현실에는 없다. , 어째서 그럴까. 그 법과 지침이 환영이 아니라면, 그에 따른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들고 불가능하게 느껴져야 하는 걸까.

 

저자이자 아버지는, 주눅 들어 애원하거나 비굴해지다 외면당하는 존재가 더 이상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국민이고 생존권이 있고 복지서비스를 누릴 권리도 있다. 그러니 당당하게 요구하기로 결심했다.

 

제 마지막 소원은요. 아들이 집도 잊고, 저도 잊고 새로운 곳에서 혼자 잘사는 것. 그저 그것 하나뿐이에요.”

 

그러나 현실 사회의 부조리는 끝없이 무례하다. 전혀 모르는 상태로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변형된 상징이자 희생양으로 이용될 뻔하기도 하고, OECD 국가라는 성취를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사회는 헌법에 명시된 책임도 방기하고, 세금과 예산 타령만 한다.

 

그래서 저자는 여기저기 막다른 골목에서도 더 크게 외친다. 복지예산과 지출은 의무이고, 내 요구는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장애에 따른 필요는 부모만이 끝까지 가정에서 책임지는 일이 아니라고.

 

이 나라는 우리에게 늘 밖으로 물러나라고 가르쳐왔습니다. (...) 우리는 잘 준비된 시설의 안전선 안으로초대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 필요한 건 배제가 아니라 배려입니다.”

 

저자가 찾아낸 희망과 계획을 책에서 만나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는 이 최소한의 사실에 동의할 수 있고, 인간이라서 동등한 우리가 다른 핑계로 서로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두가 함께 하면 현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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