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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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일이니 르포 만화도 그래픽 노블이라는 말 자체도 몰랐고 그저 이런 작품도 가능하구나... 하는 충격이 컸다. 나의 20대란 다소 과장되고 건방진 존재로 좌충우돌하는 시절이었던지라... 비극일수록 태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학습하자란 태도가 있었지만, 진실은 공감할만한 경험 부족에 기인한 독서였다.
 
지금은 남을 의심부터 하고 돈을 쓰지도 못하고 아끼기만 하는 이들이 한국전쟁 혹은 다른 이유로 말 못한 고초를 겪었을 지도... 무섭고 두려운 일, 배고프고 추워서 생존이 힘겨웠던 기억이 많이 남아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정도의 이해는 가능해졌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어 그저 현재가 되고 마는데...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인간이 스스로와 타인에게 가한 상처에 완치란 없구나... 서글프다. 조금씩이라도 낫게 해주는 방법들이 있을 텐데…….
 
청자이자 화자인 저자의 태도는 재독하는 지금에는 따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많다. 뭘 잘해서 부럽다는 게 아니라 애쓰는 면이... 자꾸만 쉬운 결정, 조금이라도 편한 쪽 말고... 여러 기능이 쇠퇴하고 늘 피로하더라도 나도 가끔은 뭔가 답삭 열중하고 애써보고 싶기 때문에.
 
요즘 친우들은 ‘차별을 차별하고 혐오를 혐오하자’고 분노하는 이들과, 그런 방식으로는 얼마 못 가니까 바라는 것들은 모두 희망에 녹여 간절하게 사랑을 담아 이야기하지는 이들로 크게 나뉘었다. 나는 그 어느 쪽도 못할 듯해 홀로 난감하다.
 
재구성이 아니라 읽고 해석하는 법... 블라덱을 대하는 슈피겔만의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바람과 5월이면 취임하는 집권당의 행태에 대한 절망 사이에서... TV 뉴스도 기사도 읽지 않는데... 매일 모욕당하며 사는 기분이다. 혐오와 대화와 해석... 중 뭐라도 할 수 있을까.
 
근현대사를 향한 쏟아지는 비난과 욕설과 악의로 두드려 맞는 현실의 한국인 독자로서 나는... 슈피겔만이 묻는 ‘역사를 왜 읽는지’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고통스럽다... 다 같이 조금 덜 고통스럽게 살고 싶고 낫고 싶은데,
 
온갖 창조적인 프레임에 가두고 혐오와 분노 속에 살아가게 하는 세력들 때문에... 고통스럽다.
 
2022년에 시작된 전쟁이, 아직 멈추게 하지 못한 전쟁이... 일상의 이유들을 핑계로 잊고 싶어도 퍽퍽 떠올라서... 고통스럽다.
 
“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냐. 하지만 살기 위해 싸워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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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 하편 - 교과서보다 쉽고 흥미진진한 물리학 교실 ㅣ 재미로 읽다가 100점 맞는 색다른 물리학
천아이펑 지음, 정주은 옮김, 송미란 감수 / 미디어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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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에서는 친절한 교과서처럼 물리의 기본 개념들을 차분히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면 하권에서는 재밌는 실례들에 더 집중한 분위기이다. 물리학의 전공분야들 중에서 전자기학이 별로였던 나는 그 중요성을 분량으로 강조한 이 책이 오히려 신뢰가 간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싫을 게 있었나 싶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전자기장의 영향을 받고 산다. 인간의 몸은 전도체이다. 달리 말하면 전하가 늘 흐르고 있고 전기작용이 늘 일어나고 있고 언제든 전기가 통과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 원자의 구조가 그러하니 원자의 구성물인 모든 존재 역시 그러하다.

 

이에 더해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물건들 역시 전자기의 힘으로 운용된다. 쓸만한 힘을 내려면 에너지를 집약해야 하는데 그러다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기적이 상존하지만 전기가 뒤덮고 있는 공간에 살면서 전기사고가 드문 것 역시 기적 중 하나이다.

 

“유조차가 오일을 담고 운송하는 중에는 연료유와 오일탱크의 마찰과 충돌로 정전기가 발생하게 된다. 만약 이때 발생한 정전기를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누적된 정전기가 스파크를 일으켜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땅과 잇닿은 쇠사슬로 정전기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한 번도 못 본 장면이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간단한 방식으로 전기를 지면으로 보내는 영리한 아이디어이다. 소음은 괜찮은 건가? 누구 이런 장면 보신 분~

 

전쟁은 범죄이고 전쟁에 무슨 영웅이 있을 수 있냐고 생각한다. 그러니 ‘전서구’ 비둘기의 군사적인 목적이 달갑지 않지만, 덕분에 비둘기에게 내장된 내비게이션을 알게 되었다. 고대이집트인들은 이미 비둘기의 장거리 비행 능력, 방향 감각, 귀소 본능의 탁월함을 알아차렸다.

 

20세기 과학자들이 훈련받은 전서구들의 날개 아래에 작은 자석을 매달았더니 귀소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자석의 자기장이 비둘기 체내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혼란을 가져와 방향감각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 비둘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안하고 슬프다.

 

더 놀라운 것은 해부를 통해 전서구 머리 부위에서 강자성을 띤 사산화삼철Fe3O4 입자를 다량 발견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자기장을 감지하는 세포가 있다니, 나만 놀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인가 싶지만, 이 입자들이 배열을 형성하며 지구자기장에 매우 민감한 내비게이션을 구성한다니 멋지다. 방향감과 공간감이 부족한 내게는 없을 지도…….

 

인간으로서 나는 국가, 산업, 도시화된 기반시설들과 독립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존재인가. 전기 하나만을 가지고 가만 생각해본다. 전기가 없으면 내 생활과 생존은 가능한가. 만약 전 세계에 전기 공급이 없어진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전기 없이도 인류는 길고 긴 세월을 살아왔는데도 나는 눈앞이 깜깜하고 막막하다.

 

“사람 귀의 가청주파수 범위는 20~20,000Hz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청력에 손상을 입는 까닭에 중년 이후부터 고주파 소리에 대한 청력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를 의학 용어로 노인성 ‘난청’이라고 한다. 잘 느끼지 못할 뿐, 40~50세 이상의 성인 대부분이 이 같은 증상을 보인다. 그중에는 ‘나이가 들어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는데, 유심히 관찰해보면 사실 이런 사람이 큰 소리는 잘 못 들어도 작은 소리는 잘 듣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손상된 청력 더하기 나이 들어 손실되는 청력까지 더하면 지금 들리는 것들이 다 행운이라고 느낀다. 듣고 싶지 않아 괴로운 내용들도 많지만. 음악은 특히 현악기의 떨림과 울림은 오래오래 듣고 싶다. 좋아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더 오래 듣고 싶다. 계절마다 들리는 빗소리와 바람소리도... 생각만 해도 설레네. 노인성 난청으로 작은 소리를 잘 듣게 된다면 새롭게 들리는 다른 소리들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기쁘다.

 

이 책에서 적외선, 자외선, 가시광선 설명하는 내용을 읽다가, 어제 이웃님이 공유해주신 판데믹 시절 ‘방역’과 ‘소독’ 관련한 아주 중요한 글이 생각났다. 인간이 하는 여러 어리석은 짓거리들 중에 시간을 두고 되갚음을 당할 짓이다. 내 손, 내 몸, 내 집만 소독하면 안전해진다는 생각 - 개인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 그런 생각이 확산될수록 판매가 늘어나는 관련 산업, 그래서 광고들...

 

자외선과 면역력만으로 인간은 생존 가능하게 진화했는데, 이미 그것만으로도 때론 강력한 유해물질이 되고 독이 되고 면역체계는 인간을 공격하기도 하고 면역폭풍 - 과민반응 - 으로 사망하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다. 있는 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대신 대체품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내 생각에 상품이 아니고 공짜이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되니까. 참 나쁜 유해한 시스템이다. 인간이 멸종한다면 그건 자본주의 때문이다.

 

“3D 영화는 빛의 편광 현상을 응용한 것이다. 좌우 양쪽의 눈으로 동시에 물체를 관찰하는 경우, 시야가 확보되고 물체의 원근을 파악하게 되어 입체감이 생성된다. (...) 즉 왼쪽 눈은 왼쪽 영사기에서 내보낸 화면만 볼 수 있고 오른쪽 눈은 오른쪽 영사기에서 내보낸 화면만 볼 수 있다. 그 결과 입체감이 생긴다. 우리가 3D 영화를 즐길 때 편광 안경을 써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3D가 아니라도 좋으니 영화관 가고 싶네. 어째... 글이 물리학을 핑계 삼은 하소연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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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 현대인의 삶으로 풀어낸 공자의 지혜와 처세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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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책을 읽다가 꽤 재밌게 쓴 글을 홀랑 날렸다. 이게 얼마만인가. 90년 대 초반 이후로 처음인 듯. 이런 짓을 다 하는구나. 그냥 쓰던 글이 사라진 것 뿐인데 생각의 갈래가 사방으로 뻗치며 불안을 고조시킨다. 읽을 책이 있다는 건 언제나 위로.



1. 정치는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닌, 영향력을 펼치는 일이다.

 

정치의 본질이 서비스라는 것, 서비스의 확대와 관리를 위해서는 합당한 권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목적이 그랬다면 마치 정치에 대한 간명한 정의처럼 당연한 말로 들린다. 어쩌다 그런 현실이 드물고 귀할까.

 

2. 리더가 피해야 할 세 가지 그릇된 예절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행함에 공경하지 않으며, 상을 지내면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볼 수 있겠느냐?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러움은커녕 타인의 것들을 빼앗아 제 이익으로 삼으려는 생각에 골몰하는 이들이 바이러스처럼 사라지는 법이 없다. 배울 만큼 배우고 멀쩡한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이들일수록 그악하다는 것을 상기하면 교육과 사회의 정상성이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없다.

 

3. 배워서 제때 익히고

 

배운 것을 제때 익히는 것도 중요하고 ‘제때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늦게 독학으로 배우거나 배울 기회가 없는 중요한 것들이 적지 않다.

 

살면서 겪는 혼란과 스스로 감당해내는 심적 고통 중에는 배운 것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방법을 알아도 실행할 수 없는 경우에 종종 기인한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될 때까지 끈기 있게 헤쳐 나가고 싶은데 당황 끝에 악수를 두는 일을 아직도 반복한다.

 

4. 스승

 

늘 감시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모습이 딱히 비공개된 것도 아니니 특히 어린 사람들의 눈에 그 모습이 비칠 거라 생각하면 종종 정신이 아득해진다.

 

배우고 기억하려는 노력에 딱히 게으른 삶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내용을 토대로 자신을 얼마나 단련해왔는지는 자평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모두가 언제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남들에게 옳다고 바르다고 당연하다고 가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많은 말들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얼마나 자주 자신에게 묻고 있는지.

 

5. 사귐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모든 일을 통해 나를 훈련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귐에 게을렀던 시기가 큰 실수처럼 느껴진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잘못 생각한 시간이 짧지 않았다. 사는 세계가 어쩔 수 없이 줄어들었을 것인데 그 탓에 가장자리를 쭈욱 늘려주는 고마운 이들을 잘 알아보게 된 것도 사실이다.

 

6. 덕행

 

다반사를 모두 덕에 따라 운용하기란 몇 안 되는 가족 간에도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란 적절한 규칙에 의해 다스려지는데 리더의 ‘덕행’이란 자신의 위치를 지킬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방향을 가이드하기도 하고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기중심을 삼은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덕으로 정치한다는 건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뭇별들이 둘러싸는 것과 같다.”

: 진중하고 굳건히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

 

7. 멈추지만 않는다면

 

...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자

 

농담과 우스갯소리로 친근한 관계가 될 리는 없을 것이다. 설혹 잠시 가능하다해도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터. 나는 힘든 얘기를 힘을 들여 해주는 친구들이 늘 고맙다. 역지사지로 내가 그런 역할을 했을 때의 고단함과 결심의 크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고 담담하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적하고 단점까지 굳이 이야기해주는 이들은 귀하고 중한 이들이다. 종종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이 과분한 행운처럼 느껴진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니다.

 

일독 후 단상을 적다가 호흡이 차분히 멈추니 불안도 잦아 들었나 보다. 글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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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다 - 코로나 시대 우리 일
김종진 외 지음,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외 기획 / 후마니타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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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안 난다. 나도 ‘닭장’이라 불렀는지. 그랬을 수도 있다. 생각 없이 갖가지 차별적 언어도 곧장 사용하니까. 업장에 환경에 대해 화를 내는 입장이었다고 해도... 그곳의 사람들이 ‘닭’이 되는 건 생각도 못했다.
 
“100여 명이 같은 공간에서 하루 8시간 이상 붙어 앉아 있으면서도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떤 긍정에서 나오는 믿음일까.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두려움이 면역력을 높이고 있는 걸까.”
 
초기에 많은 한국인들의 결정은 금시초문 수준의 희생과 절제였다. 그 이유에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염려도 컸겠지만 남들에 대한 걱정, 사회공동체에 염려가 내면화된 까닭도 컸을 것이다.
 
“대부분은 계약직 프리랜서로 ‘내 자리’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자리도 없는 사람들이 그 자리의 간격을 넓힐 수 있을 리 없었다.”
 
다시 닭장으로 생각이 귀환한다. 얼마간 생존 가능하게 해줄 테니 대신 한 몸 앉혀둘 공간에서 꼼짝 말고 머물라... 그렇구나, 닭을 그렇게 취급한 인간은 기어이 인간도 같은 계산법으로 오차 없는 공간을 제공했구나... 분한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회사가 정한 시간에 나와 회사가 정한 규칙에 맞춰 8시간 이상 회사 지시에 따라 일하는데도 회사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였고, 매달 주는 돈도 월급이 아니라 ‘판매 수수료’였다. 자신들은 회사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불러온 사람들일 뿐이었다.”
 
“경쟁과 닦달, 감시는 사람이 모여 있을 때 더 효과적이다. 회사가 책상 간격을 넓히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보험을 철회하면 상담사가 수수료를 두세 배 물어내는 구조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뿐만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보상도 받아내는 악랄한 방식이다. 이러니 회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손해는 입는 일이 없다. 한 개인이 부당한 일에 저항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일하다 ‘그냥 자는 것처럼 책상에 엎드려서 죽기도 한다.’
 
오래 전(20여 년 전) 한국처럼 여성이 살기 힘든 국가에서 여성들의 자살율과 삶의 질이 최하가 아닌 괴리를 조사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가 경멸하듯 부르는 ‘한국 아줌마들의 수다’였다. 그러니까 악조건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동료들이라는 것이다. 이 구조는 여전히 여성들의 직장에서도 유일한 보호막이다.
 
기본 중에 기본을 정리한 듯한 요구조건들에 아연하다. 내가 아는 현실은 다른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가 없고, 내가 모르는 현실은 셀 수가 없다. 사람들이 직장에 사회에 요구하는 내용들은 판데믹 이전부터 이후로도 일하다 병들고 죽어 퇴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목소리이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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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 - 2020 볼로냐 라가치상 시네마 특별상 수상
지미 리아오 지음, 문현선 옮김 / 대교북스주니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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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Roland Truffaut

 

의지로 도망갈 기운이라도 있으면 책을 펼치지만

숨만 쉬고 능동적인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때는

타인의 창작, 생산물인 영화를 보며

식물처럼 가만히 있고 싶다.

 

3월엔 잠을 못 들 정도로 힘든 시간이 넉넉해서

자주 영화를 보다 뜨거운 눈을 감곤 했다.

 

책도 못 읽겠어서 집중해야하는 영화도 힘들어서

오래 전에는 ‘pass time’ 용이라 확신했던

영화들만 골라 보다가 의외의 메시지를

발견했다는 친구도 있다.

 

문득 못 가게 되니 더 특별해진 영화관을 떠올려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의 영화관들은

지금의 프랜차이즈 공간보다 여러 이유로 더 특별했다.

그때의 나는 영화상품을 소비하는 자의 정체성보다

분명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여행자다웠다.

 

영화관보다 영화가 중요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집에서 영화를 보다보니 만남이 점점 시시해진다.

연극공연을 무대가 아니라 동영상으로 보는

오케스트라를 헤드폰으로 듣는

우스꽝스럽고 서러운 소외된 기분...

 

숨은 그림처럼 담겼으나

알아볼 만큼 충분히 친절한

그리운 영화 장면들, 포스터들, 감독들의 얼굴을 찾아보며

이 책을 자막이 있는 무성영화처럼 다시 보았다.

 

마음이 마구 흔들린다.

그리운 것이 영화인지, 영화관인지,

늘 그렇듯 시절인지...

안부를 묻는 걸 잊은 친인들인지...

오지 않을 것 같은 반기고 싶었던 미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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