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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다 - 코로나 시대 우리 일
김종진 외 지음,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외 기획 / 후마니타스 / 2022년 3월
평점 :
기억이 안 난다. 나도 ‘닭장’이라 불렀는지. 그랬을 수도 있다. 생각 없이 갖가지 차별적 언어도 곧장 사용하니까. 업장에 환경에 대해 화를 내는 입장이었다고 해도... 그곳의 사람들이 ‘닭’이 되는 건 생각도 못했다.
“100여 명이 같은 공간에서 하루 8시간 이상 붙어 앉아 있으면서도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떤 긍정에서 나오는 믿음일까.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두려움이 면역력을 높이고 있는 걸까.”
초기에 많은 한국인들의 결정은 금시초문 수준의 희생과 절제였다. 그 이유에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염려도 컸겠지만 남들에 대한 걱정, 사회공동체에 염려가 내면화된 까닭도 컸을 것이다.
“대부분은 계약직 프리랜서로 ‘내 자리’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자리도 없는 사람들이 그 자리의 간격을 넓힐 수 있을 리 없었다.”
다시 닭장으로 생각이 귀환한다. 얼마간 생존 가능하게 해줄 테니 대신 한 몸 앉혀둘 공간에서 꼼짝 말고 머물라... 그렇구나, 닭을 그렇게 취급한 인간은 기어이 인간도 같은 계산법으로 오차 없는 공간을 제공했구나... 분한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회사가 정한 시간에 나와 회사가 정한 규칙에 맞춰 8시간 이상 회사 지시에 따라 일하는데도 회사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였고, 매달 주는 돈도 월급이 아니라 ‘판매 수수료’였다. 자신들은 회사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불러온 사람들일 뿐이었다.”
“경쟁과 닦달, 감시는 사람이 모여 있을 때 더 효과적이다. 회사가 책상 간격을 넓히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보험을 철회하면 상담사가 수수료를 두세 배 물어내는 구조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뿐만이 아니라 물질적으로 보상도 받아내는 악랄한 방식이다. 이러니 회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손해는 입는 일이 없다. 한 개인이 부당한 일에 저항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일하다 ‘그냥 자는 것처럼 책상에 엎드려서 죽기도 한다.’
오래 전(20여 년 전) 한국처럼 여성이 살기 힘든 국가에서 여성들의 자살율과 삶의 질이 최하가 아닌 괴리를 조사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가 경멸하듯 부르는 ‘한국 아줌마들의 수다’였다. 그러니까 악조건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동료들이라는 것이다. 이 구조는 여전히 여성들의 직장에서도 유일한 보호막이다.
기본 중에 기본을 정리한 듯한 요구조건들에 아연하다. 내가 아는 현실은 다른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가 없고, 내가 모르는 현실은 셀 수가 없다. 사람들이 직장에 사회에 요구하는 내용들은 판데믹 이전부터 이후로도 일하다 병들고 죽어 퇴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목소리이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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