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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 현대인의 삶으로 풀어낸 공자의 지혜와 처세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3월
평점 :
물리학 책을 읽다가 꽤 재밌게 쓴 글을 홀랑 날렸다. 이게 얼마만인가. 90년 대 초반 이후로 처음인 듯. 이런 짓을 다 하는구나. 그냥 쓰던 글이 사라진 것 뿐인데 생각의 갈래가 사방으로 뻗치며 불안을 고조시킨다. 읽을 책이 있다는 건 언제나 위로.
1. 정치는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닌, 영향력을 펼치는 일이다.
정치의 본질이 서비스라는 것, 서비스의 확대와 관리를 위해서는 합당한 권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목적이 그랬다면 마치 정치에 대한 간명한 정의처럼 당연한 말로 들린다. 어쩌다 그런 현실이 드물고 귀할까.
2. 리더가 피해야 할 세 가지 그릇된 예절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행함에 공경하지 않으며, 상을 지내면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볼 수 있겠느냐?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러움은커녕 타인의 것들을 빼앗아 제 이익으로 삼으려는 생각에 골몰하는 이들이 바이러스처럼 사라지는 법이 없다. 배울 만큼 배우고 멀쩡한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이들일수록 그악하다는 것을 상기하면 교육과 사회의 정상성이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없다.
3. 배워서 제때 익히고
배운 것을 제때 익히는 것도 중요하고 ‘제때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늦게 독학으로 배우거나 배울 기회가 없는 중요한 것들이 적지 않다.
살면서 겪는 혼란과 스스로 감당해내는 심적 고통 중에는 배운 것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방법을 알아도 실행할 수 없는 경우에 종종 기인한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될 때까지 끈기 있게 헤쳐 나가고 싶은데 당황 끝에 악수를 두는 일을 아직도 반복한다.
4. 스승
늘 감시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모습이 딱히 비공개된 것도 아니니 특히 어린 사람들의 눈에 그 모습이 비칠 거라 생각하면 종종 정신이 아득해진다.
배우고 기억하려는 노력에 딱히 게으른 삶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내용을 토대로 자신을 얼마나 단련해왔는지는 자평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모두가 언제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남들에게 옳다고 바르다고 당연하다고 가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많은 말들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얼마나 자주 자신에게 묻고 있는지.
5. 사귐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모든 일을 통해 나를 훈련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귐에 게을렀던 시기가 큰 실수처럼 느껴진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잘못 생각한 시간이 짧지 않았다. 사는 세계가 어쩔 수 없이 줄어들었을 것인데 그 탓에 가장자리를 쭈욱 늘려주는 고마운 이들을 잘 알아보게 된 것도 사실이다.
6. 덕행
다반사를 모두 덕에 따라 운용하기란 몇 안 되는 가족 간에도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란 적절한 규칙에 의해 다스려지는데 리더의 ‘덕행’이란 자신의 위치를 지킬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방향을 가이드하기도 하고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자기중심을 삼은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덕으로 정치한다는 건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뭇별들이 둘러싸는 것과 같다.”
: 진중하고 굳건히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
7. 멈추지만 않는다면
...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자
농담과 우스갯소리로 친근한 관계가 될 리는 없을 것이다. 설혹 잠시 가능하다해도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터. 나는 힘든 얘기를 힘을 들여 해주는 친구들이 늘 고맙다. 역지사지로 내가 그런 역할을 했을 때의 고단함과 결심의 크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고 담담하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적하고 단점까지 굳이 이야기해주는 이들은 귀하고 중한 이들이다. 종종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이 과분한 행운처럼 느껴진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니다.
일독 후 단상을 적다가 호흡이 차분히 멈추니 불안도 잦아 들었나 보다. 글도 마치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