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있는 계절
이부키 유키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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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가 배경이라 내용을 알기 전에도

그립고 뭉클한 정서가 있다.


더구나 유기견을 받아들이고 함께 하는 이야기라면...

내 어린 시절에도 개가 있던 참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는 사는 속도가 인간적으로 느리고

어쩐지 날씨가 따뜻했던 장면들만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으로 얼마간 포기하고 좌절하며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간다.


그럴 때도 개라는 존재는 체온만큼 참 따뜻하다.

 

표지가 누군가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너무 힘들지 않게 쉬어 보라고 하는 것 같다.


무척 따스할 이야기라 벌써 손이 시린 계절에 더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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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딸들 -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
소피 카르캥 지음, 임미경 옮김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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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라스Marguerite Duras


 

작가를 모르고 무슨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가하는 말들은 많지만그렇다고 작가의 전기(傳記)부터 읽고 작품을 찾아 읽게 되지는 않는다그런 의미로 이 책을 만난 건 우연한 행운 같기도 하다. <2의 성>을 더듬더듬 읽는 중이라서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전기를 먼저 읽어 볼까 하는 생각에 책을 펼쳤다가뒤라스Marguerite Duras의 이야기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읽었다.

 

20대부터 만난 그의 작품들은 쓰라림의 통증을 느끼게 했는데그건 절단골절혹은 내과적 질환에 동반되는 통증과는 좀 다른 것이었다피부가 긁히고 찢기고 갈리고 벗겨져서... 소스라치는견딜 수 없는체면을 못 차리고 일단 비명을 지르게 되는 그런 종류.

 

작가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니 이전에 미리 만난 작품들의 여러 구절들이 이런 배경이런 정서였구나하는 새로운 체험으로 바뀐다아이가 몰랐으면 하는 서사들을 거침없이 전하는 무심한 어머니누구나 다소간 그럴 지도 모르는 간헐적인 애정작가의 신화학을 구성하게 된 대체 불가한 사랑...에 대한 결핍과 갈망’.

 

아무리 아프고 괴로워도 작가의 무기는 그 모든 경험들을 글로 쓸 수 있다는 것이야기의 소재로 삼아 대상화할 수 있다는 것그래서 스스로를 그 시절과 경험으로부터 분리해낼 수 있다는 점이 아닌가 한다.

 

폭력고통침묵에의 강요애정 결핍소통 고갈신뢰 손상형태를 달리하는 감금으로부터의 탈출뒤라스에게 글쓰기를 향한 욕망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하나의 삶을 현실 옆에 나란히 놓고점선의 형태로 끌고 가려는 욕망이랄까요하여간 신기하죠글쓰기를 향한 이 욕망은……

 

지옥이라는 가족을 떠나 새로운 연대를 찾고두려움과 슬픔이별과 죽음을 표현할 언어들을 찾고의미를 부여하고자신만의 지적인 복수와 재판을 완결하고비로소 원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트는 일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이런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뒤라스의 인물들이 가진 열정광기지성이 얼마나 오래 담금질 된 탁월한 것들인지 숙고한다.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가장 애정이 크고 기대가 커서 두근거리며 읽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내용이 없다실망이 아니라 작가에 대해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완전한 독서라기엔 미진하지만 완역판 <2의 성일독을 마친 후 이곳에서 보부아르를 다시 만나는 일은 일종의 의식 같은 기분이 든다.

 

심통을 부리는 떼쟁이 어린 보부아르서재 책상 아래 들어가 숨어서 아버지가 낭독해주는 시구에 귀 기울이는 걸 좋아하는 아이손에 펜을 쥐는 것이 바늘을 쥐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이라고 확신한 어린 시몬.

 

얼마나 고집불통인지 꼭 노새 같다니까.”

 

저자는 아이에게는 분노가 필요하고그것이 일종의 자기표현이라 여긴다동의하는 바이고 그런 현상은 아이가 아직 갖추지 못한 언어체계로 인해 차분히 주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리고 이런 경험은 아주 귀중하다보부아르 자신도 그런 자잘한 승리에서 용기를 얻은 덕분에 규칙의례관습 역시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음식 투쟁의 이야기에서는 나의 어린 시절을 대입해 한껏 감정 이입하였다입에서 거부 반응이 나는 걸 먹기 싫은 건 당연한 것!

 

2차대전 이후 남성의 사망이 급증하여 바뀔 수밖에 없었던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빈자리들이 여성의 직업과 학문 연구의 통로로 열리기 시작했다보부아르의 어머니는 물론 그런 변화에는 관심이 없었고 일고의 가치도 두지 않았다그렇다고 별스럽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부르주아 계층 여성으로서 자녀의 예절 교육과 훌륭한 결혼은 일반적인 목표였으며당시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존대하고 복종하던 시절이었다.

 

보부아르의 영민함은 부당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지시들을 따를 수 없게 했고현실의 지루함을 독서에 몰두함으로서 견딘다자신이 받는 교육에 결핍된 것들도 알아차리고규율을 수호하는 것으로 아이를 지키려는 어머니와의 균열은 커진다자신이 받은 교육의 한계와 선입견을 벗어날 수 없었던 어머니와의 정서적 유대는 망가졌다.

 

나는 결혼하지 않겠어결혼은 중요하지 않아.”

 

싫어요미사에 가지 않을래요드릴 말씀이 있어요저는 이제 하느님을 믿지 않아요.”

 

보부아르가 <작은 아씨들>을 읽고 조 마치처럼 작가가 되고 지식인과 결혼하여 지적인 동반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이 당시 보부아르가 느끼던 박탈감은밀한 수치심어머니와의 냉담한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준 작품이라니 그야말로 구원의 선물이다.

 

이후 마음먹은 모든 일 대학입학자격획득학사학위교수자격시험에 도전사내아이처럼 자른 머리 모양새 -을 해내고 자신이 자유롭고 명석하다고 느끼게 된 후엄마도모든 여성들도 여자의 운명이라는 것에 희생되는 삶을 산다고 확신하고글을 쓸 결심을 한다한 때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진 관계가 되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작품을 쓸 수 있게 된 일은 참 다행이다읽기를 미뤄두곤 있지만 수용과 이해의 정서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사르트르, (...) 우리를 지배하는 건 바로 육체야그러니 우리가 어떤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그렇게 맹렬히 사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자문해봐야 해개념을 좇다가 삶을 놓치고 있어우리는 이미 안전선을 넘어갔어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콜레트Sidonie Gabrielle Colette


 

세 명의 작가세 개의 작품 세계 중 가장 도전적인 읽기일 거란 겁을 잔뜩 먹은 콜레트멋지고 위대한 작가들은 많으나 다 좋아하고 공감하는 것은 아니듯콜레트와 그의 작품에 대한 그런 자연스러운 불화와 거리감이 내게는 있다.

 

저자가 열렬히 감각적으로 작품들 - <클로딘> <여명> - 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위로 삼아 재밌게 읽는다오독일 수 있으나 저자는 콜레트에 와서 가장 명랑하고 들뜬 팬의 느낌을 전하는 듯하다즐겁고 신나게 자신의 문학 우상을 만나러 생가를 찾아가는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어떤 매력일까덕분에 나도 궁금해 하며 따라 읽는다.

 

어머니 시도의 삶이 무척 자세하고 생생하게 담겨 있다끔찍한 폭력이 이어지는 결혼생활이 무시무시하다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이 낸 흉터를 남편이 무덤까지 가지고간 일을 뿌듯해하고사망 전에 이미 매혹 당한 연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자랑스러워한 강하고 인상적인 인물이다남편이 기특하게도’ 사망한 후 연인과 재혼한다콜레트는 막내딸로 태어난다.

 

어머니의 눈길은 벽을 통과한다.”

 

자식에 대한 강한 애착은애정과 다정함 이외의 것들을 품고 있었다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조종해야 하고 소유해야 한다는머리를 빗겨 주는 행동조차 사랑이자 길들이기라는 양면적 의미를 가진다실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이 행위는 다른 행위들과 함께 폭력을 품은 권력 게임이기도 하다.

 

아이는 자라고 결국엔 자신을 삼키려는 어머니를 포옹하지도 사랑하지도 더 이상 숭배하지도 않게 된다숨이 막히기 때문이다매번의 충성 신호검열……강해지는 비난과 미움생존을 위한 분리무수한 딸들이 살아남고 남을 방법을 모색한다그러나 발언권도 없던 19세기 아이들의 전략은 선택지가 넓지 않다기숙학교이른 결혼세계 오지 여행.

 

뜻밖에도 콜레트는 글 쓰는 일을 크게 즐기고보람을 느끼며 살지 않았다오히려 남편의 감시 하에서 살던 글쓰기 강제노역자였다고 한다평생을 글쓰기가 즐겁지 않았다고매우 증오했다고 하는 대작가라니.

 

글쓰기가 가닿는 지점은 글쓰기뿐이다내게 다른 출구는 없다.”

.

.

이 책에서 유난히 마음이 혹하고 반짝거리던 내용은 세 명의 작가가 서로에 대해 언급하거나서로의 작품에 대해 평하는 드물게 등장하는짧은 내용들이었다내용이 무엇이건 강력한 애착 관계인 어머니와 딸여성작가……언뜻 공통점이 많을까 했던 읽기 전의 짐작은 별반 적중률이 없었다그럼에도 이들은 작품으로 존재로 이미 느슨한 연대를 이루고 산 것이라 그렇게 믿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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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지금 - 전 세계가 주목하는 2022 최신 연구 트렌드
국립과천과학관 지음 / 시공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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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을 읽은 후 읽으니 묘하게 기분이 좋다. ‘세상의 모든 과학을 담아 주셨다니 이미 좋아하는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위업이다전공학문을 싫어하지 않아 삶의 낭비가 줄었다고 여기며 사는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과학애호자는 못 되지만과학팬 정도는 되겠다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과학은 ‘science’라는 단어가 학문을 뜻할 때의 의미이기도 하다사람들이 인문과학사회과학자연과학이란 용어들은 익숙하게 사용하면서 과학을 사유 방식과 연구 방법이 아닌 자연과학 분야로 소급하는 것이 종종 불만이기도 하다.

 

분야별혹은 학자별로 궁금하고 관심 있는 내용을 찾아 순서 없이 읽기에 완벽한 책이다공저자들이 고심해서 주제들을 선별한 느낌이 든다아주 전문적이거나일상에서 경험할 일이 없는 과학은 없다그보다는 과학으로 유혹하려는 재밌고 매력적인 주제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책이다.

 

대중문화와의 접점들특히 영화와 문학에 연계한 과학적 사실들은 모든 면에서 흥미롭다가령 20세기에 물리학과 동기들 7명이 함께 영화관에 가서 한 줄로 앉아 진지하게 즐긴 영화 <컨택트>의 추억과 근래에 읽은 SF문학을 모두 소환하며 즐길 수 있는 특이하게 재밌는 책이다.

분야가 다양하니 늘 모르던 것들새롭게 흥미로운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다가장 충격적인 것은 2018년 6세계보건기구에서 노화란 자연현상이 아니라 질병이라고 공식화해서 국제 질병 분류에 포함시킨 것이다. ‘좀비세포로 불리는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여러 기술이 연구 중이라고 한다.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이 반갑지 않은 이유가 건강하게 끝까지 살 가능성 때문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수명을 과학기술로 얼마나 늘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누군가에겐 고대하던 소식일 것이다.

 

미래 사회가 무척 궁금한 나도 조금쯤은 솔깃하지만 기후격변으로 인한 재해와 부정의하게 가해지는 환경재난의 피해와 종식되지 않는 세계 곳곳의 전쟁들과 극심해지기만 하는 빈부격차가 심화될 미래라면 오래 목격하는 일이 고통스러울 거란 생각도 한다.

 

과학이니 책의 내용을 질문 형식으로 바꿔 읽어 보았다.

 

우리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대부분의 심리적 활동이 실은 뇌를 구성하는 세포 즉 뉴런들의 광대한 네트워크 위를 흐르는 전기화학적 신호일 뿐이라는 것은 어떤 메시지로 들리는가.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일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까지도 디자인이라 한다면디자인의 가치는 사람의 경험을 혁신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유전정보를 미리 알고 질병 유발 유전 요인을 제가하거나 더 나은’ 우성 유전자를 갖게 하는 맞춤형 아기의 출생은 어떤 도덕윤리적 비난을 받을 수 있나.

 

슈퍼 근육 돼지뿔 없는 소인간 장기 생산용 돼지갈변 안 되는 사과맥주 맛을 높이는 효모코로나19 진단키트에 활용된 유전자가위(편집기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외계지적생명체탐사Search for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 SETI의 시발점인 된 아레시보 메시지에 기회가 있었다면 담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심채경 연구원도 참여하는 미국의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젝트는 2030년을 목표로 한 화성 유인’ 탐사 계획이다달 표면 거주 시설건설거주에 필요한 달 현장에서의 자원 확보달 표면 및 달 궤도선에서의 장기 체류 등이 중요 임무이다인간이 달에 가서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인류는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로 생물 종 하나쯤은 쉽게 없앨 수 있다대상국가의 농업을 망칠 목적으로 썩은 과일이 아닌 정상 과일을 먹는 초파리도 만들 수 있다유전자조작된 생물에서 태어난 돌연변이 유전자가 인간으로 건너올 지도 모른다예상할 수 있는 위험성은 사용자 탓인가 기술 자체인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5차 보고서에 따르면지구온난화가 인류의 책임일 가능성이 95% 이상이라 한다대규모로 기후조작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은 가능할까혹은 변해야 하는 건 기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일까.

 

- 2020년 지구는이산화탄소 농도는 측정 이래 최대였으며 코로나19와 함께 호주캘리포니아러시아의 산불동아시아 폭우허리케인과 태풍 등으로 최악의 자연재해를 겪었다이제 시작이라고 한다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변화해야할 것들은 무엇일까.

 

대중이 과학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과학 식자율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과학 대중화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과학기술 시민권Scientific Citizenship이라는 개념과 노력이 있어왔다사람들이 과학을 잘 알면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게 될까.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자 과학과 미래Science & Future의 약자를 의미하는 SF의 기능과 영향은 무엇일까. SF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과학에 대한 흥미도와 비례할까. SF 작가들이 과학자들보다 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사회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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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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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가 그려낸 SF 세계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책소개를 읽지 않고 대본집만 읽어 보았다소재와 상상력이란 독자의 취향과 공명을 해야 반짝빛나기도 하는 요소들인데 표지의 한 문장으로 이미 작품에 더 바짝 다가가고 싶은 나는 마치 기대라고 하고 있었던 상상력인 듯 작가가 내어주는 이야기들에 즐겁게 말려 들어가기만 한다환영목소리손톱 사이의 새싹.
 
역시미치는 중인 걸까.”
 
일상의 미스터리출생의 미스터리실종 미스터리가 촘촘하고 자연스러운 속도로 전개된다가독성과 흡인력은 말할 필요가 없다그렇다고 사건들의 해결에 골몰하느라 불친절하게 일상과 인물들을 스쳐 달리는 방식도 아니다. ‘가만히’ 잠시 정지한 듯한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비밀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것이라고 했다그렇게 벗겨 낸 세상의 비밀을 한 겹씩 먹으면어떤 비밀은 소화되고 흡수되어 양분이 되고어떤 비밀은 몸 구석구석에 염증을 만든다.”
 
주인공 나인이 일상에서 만난 미스터리는 자신의 출생의 미스터리와 함께 풀려 나간다기발함은 물론이고 청량한 숲향기를 맡는 듯 선하면서도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교묘하고 섬세한 설정은 너무나 새로워 이질적이기도 하고효능이 좋은 신약을 삼킨 듯 몸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네가 듣고 있는 이상한 소리그거 식물이 대화하는 소리야그게 들리는 건 너도 식물이라서야좀 많이 진화하긴 했지만.”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도 모두 중요하고 각자의 서사도 중대하다대본집으로 받았으니 영상화되는 상상도 해보는데아쉽게도 캐릭터들은 멋진데 이입할 배우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기존의 여러 이미지가 중첩된 이들 말고 연기 잘하는 신인들이 대거 기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리가 들린다니까 머지않았구나짐작은 했었거든. (...) 어쨌든 탄생이 다를 뿐이지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야너도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어절대로 다르지 않아. (...) 너무 오래 부정하지도 말고.”
 
존재로서 우리 모두 이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 는 동일 원소들의 결합이지만, ‘개체로서는 고유한 존재이며 자신의 경계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인간은 오랜 세월 위계적인 분류 체계를 만들었고폭력적으로 진화된 배제와 차별은 인간 종 내부에서도 구체적인 구분을 다져왔다그러니 사실이자 위로인 지모의 저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것이다이 작품의 갈등은 존재 깊숙한본원적인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떨리고 기대된다.
 
달라지는 게 있는가물론 있다아니이미 달라진 게 있다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살아 있기에 소리를 내는 다른 생명체처럼 식물도 그렇게 소리를 낸다. (..) 각자의 방식으로 숨쉬고 있기에 소리를 낸다. (...) 환청이 아니니 다행이었다.”
 
나인의 곁에 머무는 지인들의 반응들에 주로 안도하며자라나는 중이라는 건이렇게 유연하고 보드랍고 그래서 비폭력적일 수밖에 없다고새삼스럽게 어른들이 가하는 딱딱한 폭력의 언행들을 생각해본다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마치 식물처럼 제가 태어난 곳을 떠나지 못하고 견뎌야하는 인간의 아이들 역시그래서 온갖 상처를 받아 안은 식물의 모습 같다고.
 
무관심과 잘못된 양육에 식물이 그러하듯 죽어 버리기도 하고다행히 아주 척박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성장하기도 하고흔히 사용한 어린이가 새싹이라는 표현은 단지 비유가 아니라 그들의 처지와 아주 많이 닮아 있다고 느낀다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 참 아프다.

그리고 또 다른 미스터리 스릴러로 들어서는 시작이다이전의 내용들이 초록하고 파란 기분좋게 시원한 온도의 이야기들이었다면이제부터는 뜨겁고 붉은 색채들이 펼쳐진다그 과정에서는 검게 타버린 어두운 순간들도 등장한다심장의 온도는 올라가고 손가락은 차가워지는 기분으로 읽는다.
 
나인은 그 나무가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는다른 식물들과 다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나무는 아주 오래전에 죽은 인간이었다금옥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 금옥이 일본군을 피해 가족과 함께 야밤에 산을 넘던 때에금옥은 열두 살이던 해에 이 산을 넘다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졌는데그때 한두 해밖에 자라지 않은 이 어린 나무가 금옥의 상처를 관통했다숨이 꺼져 가던 그 순간에 금옥은 자신의 살결에 들러붙는 나무를 느꼈다.”
 
12살 어린 금옥의 피를 받아 자란 나무영혼이 나가지 못하고 얽매이게 된 금옥나이 탓을 또 하자면 울컥한다무섭고 아팠겠지그리고 어쩌면 이해를 못했겠지왜 인간들이 악착같이 죽고 죽여야 하는 지를일본군이 아시아 지역에서 학살한 인명은 얼마나 될까돈 주고 기록에서 삭제한 것들을 빼더라도.
 
작품의 주인공이 외계인으로 설정되었는데읽다 보니 외계생명체라는 SF적 느낌보다는성장하며 사회를 배워가는 부모에게서 분리되어 자아를 찾는 모든 아이들은 한동안 자신을 이 세상에 적응 못한 외계인처럼 느낄 수 있겠단 그런 생각이 든다익숙한 것들도 낯설어지고성장하느라 피곤하고잘 알고 있다고 믿은 것들도 의심이 되고나와 타인들을 알아 가는 일도 힘겹고.
 
겉으로 보면 모르지만 당사자만은 느낄 수 있는 그 이질감낯섦생경함피곤함이곳에서 난데없이 추방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혹은 납치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아도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 불안은 넝쿨처럼 서로를 옭아맸다서로의 목숨을 반절씩 나누어 가진 양 굴었다.”
 
그리고 나무에 얽매인나무가 된혹은 금옥인 채로 살아가는 나무가 나인에게 알려 준다인간들을그들이 한 짓을 다 들었다고잔인함조롱분노절망슬픔부정공포여기에 유골이 있다고 그리고 이름들을 들었다고.
 
나인의 분위기와 출생능력 이외에 나인의 성격에 대해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알게 된다보고도 못 본 착알아도 모르는 척 하지 않는세상에서 현명하고 신중하다고 하는 남 일은 가능한 모른 척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되돌아올 반응과 피해를 짐작하면서도 이렇게 반듯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역시 외계인이라서 일까지구 인간에 대한 작가의 평가가 궁금했다잠시.
 
본인만 정의롭지.”
차만 다니는 길에 쓰레기 좀 버린다고 누가 피해 보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좀 있지.”
애도 없는 아가씨가 뭘 안다고 자꾸 말을 얹어.”
땅값 걱정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나인은 답답하면 못 참는 성격분하고 억울하면 답답해서 잠도 못 자고밥도 못 먹다 속병 나는 성격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피곤하게 살겠다는 성격이다승택과 같은 지인들이 이해할 수 없어 하면서도 싫지 않다고 하는 것이 따스한 온기 같은 격려이다이런 타고난 성격 이외에 나인에게 다른 능력도 있을까외계인으로서 자신을 받아들일수록 나인은 인간들의 능력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인간만이 타고난 힘나 역시 궁금하다.
 
살아가나는 건적응한다는 건익숙해진다는 건버텨야 한다는 건존속한다는 건그러니까 끈질기게 존재한다는 건세계라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유지한다는 건 지킨다는 것이고 동시에 버린다는 것이다.”
 
듣긴 했지만 믿지 않았던 말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는... 그 말이 얼마간이라도 힘을 가졌던 시절의 믿음이 아니라나는 현대과학의 지식정보로 그 말을 믿는다그런데 안다는 것은알기만 한다는 것도 힘이 있는 것일까언제나 그 점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이건 땅의 기억이다땅에 뿌리내린 모든 것의 기억이기도 하다. (...) 아주 작은 입자가 3차원 지평 위에서 홀로그램처럼 불완전하게 형체를 만들고 있었다. (...) 입자들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소리의 파동을 따라 흩어졌다가 뭉치기를 반복했다.”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인간들이 있다면나인은 그 대척에 선 존재이다사람을 살리는 일에 이유를 두지 않는다그 사람이 죽었든 살았든 모두 구하고자 한다.
 
이런 인물이 완전 낯설지 않는 것이 살면서 내가 만난 행운일까이런 이들은 의외로 많다강하고 선한굳이 산 사람들을 위한 목적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죽은 자들 역시 사과 받고 한을 풀고 억울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이들.
 
반대로 올바르게 쓰일 줄 모르는 힘은 재앙과 다르지 않다.’
 
한번 넘어가면 다시는 청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넘는 거지그 영역의 경계가 점이 지대야나는 이 점이 지대를 넘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 (...) 죄책감의 유효한 기간. (...) 자신이 저지른 일이 죄인 걸 깨닫고그 죄를 평생토록 어깨에 짊어지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거지. (...) 고통스럽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니겠니?”
 
내 기준으로는 이미 많은 스포일러를 남발해 버렸지만좋은 문학은 내용을 안다고 재미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결론으로 가면작가가 전하는 뭉클하고 단단한 메시지들을 만나게 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마음이 데워지기도 한다.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두어야 하는 건 무엇인지 다시 떠올리게 한다누군가는 다음 세대에게 진실을 알려 줘야 한다면누구라도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일이다그래야 모두가 야만성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다지우고 없애면 사라졌다고 안심할 이들이 있지만기억하는 이가 있다면의외로 진실은 힘이 세서 드러나기 시작하면 야만적이 권력으로도 중단할 수 없는 특이점에 다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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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홈트로 내 몸이 편해졌습니다 -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마음챙김의 시작
안미라 지음 / 더난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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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방식과 다르게 변화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기회나 계기가 간절하다물론 의지력이 강해서 생각대로 살 수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승무원이었던 저자의 경험은 극적인 편에 속한다난기류로 사고를 겪으며 상처를 입고 이우에도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었다.

 

다행히 현명한 저자는 아픈 몸의 통증을 치료하며 내내 다쳐있던 마음도 더불어 치유하기로 한다직장 생활을 충실히 하지만 매일 음주를 하던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간들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저자의 이야기에서 14살의 내면아이를 만난다.

 

부모의 이혼한부모와도 살지 못하고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지고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말까지 듣는다사정을 정확히 알아도 섭섭한 상황인데단절과도 같은 관계와 환경의 변화는 그대로 상처로 남았다.

 

무척 흔한 병명이나 도무지 공허하게 들려서 감정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병에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있다같은 진단을 받아도 개별 증상원인효과 있는 치료방법이 다 다를 수 있다자꾸 울컥하고 눈물이 나고 갑갑하고 죽을 것 같은내게만 실재하는 고통과 위협일 수 있다.

 

정신과 육체는엄밀히 말하면 정신 작용을 담당하는 ’ 역시 육체이니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상호 주고받는 것이 당연하다예전에는 나는 짜증이 왜 이렇게 자주 나지하고 그런 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적어 보다가그런 경우에 그저 배가 고팠구나즉 혈당이 낮았구나하는 간단한 원인을 찾아낸 적이 있다성격 탓이 아니라 혈당수치 탓.

 

그러니 우리 몸에 일어나는 여러 트러블을 잘 관찰하면 역으로 정신의 건강진단을 해볼 수도 있다저자 역시 잦은 알러지와 복통이 잦았다고 하니기분이 나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의 식사가 소화가 안 되고 체증이 생기는 것처럼어린 시절 강요당해 억지로 먹어야했던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이어지는 것처럼혹시 기억해낼 수 있다면 적어도 마음은 편해진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이유가 있었네” “그랬나 보다” “그러려니 하자” 등등은 나도 타인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수용하고 이해하는 꽤 유용한 툴tool이다.

 

우연히 만나게 된 기회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도움이 될 내용을 잘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마음 챙김의 과정을 읽으며 나도 마음을 좀 더 낮게 내려놓아본다상대가 선의로 해주는 말에도 예의바른 반응을 보이지만 생각은 뾰족하게 방법의 유효성부터 분석하려고 드는 이런 버릇은 사기당하는 일은 잘 피할지 몰라도 하여간 내 맘에도 들지 않는 습관이기도 하다.

 

운동으로 몸을 돌보고 명상으로 감정을 가라앉히고그제 어제 연이어 몸을 잘 쓰는근력 키우며 멋지게 사는 이들을 만난 뒤라 이어지는 여러 생각들이 많다자고 깨면 지인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고자가격리를 당해 일상이 중단되고나이 드신 부모님들의 서글픈 소식들이 들리고판데믹이라 아니라도 저자의 말처럼 당연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이 세상의 진실이다.

 

나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들어주길 원했다하지만 내가 슬프고 힘들다고 말할 때 그저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 무척 힘들었다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다가 (...) 나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미라야 괜찮니...?’ 홀로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은 실은 걷기 명상으로 시작한 것이다. 2000년 대 초반 어느 날 틱낫한 승려를 만나 시끄러운 마음으로 조용한 방에 앉아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당돌하게 물었더니 가르쳐준 명상의 방식이다오른발왼발한 발씩 내 속도로 앞으로.

 

부디 모두가 원하는 곳에 있길원하는 곳으로 다가가길도착할 힘이 충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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