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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염라가 산다 - 제1회 사회평론 어린이·청소년 스토리대상 수상작 ㅣ 사회평론 청소년문학 1
이담 지음 / 사회평론주니어 / 2025년 8월
평점 :
“메타저승이 세워진 후 저승 영혼들 사이에 불만이 가득했다.”
“돌아가셨다”란 표현을 일상어로 쓰지만, 어디로 가신 건지는 종교별로 개인별로 분분하다. 선친이 떠나신 후 그리움이 커질 때마다 나는, 부디 어딘가 다른 세상에 잘 도착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 필요를 이해하니 메타저승과 관련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우리 집 십대들이 읽기 전에, 내가 먼저 즐겁게 읽는다.
주인공인 차기염라대왕이 이승에 내려와서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는 전개, 묘사와 설정이 촘촘하면서도 미스터리해서 재미가 크다. 아이들의 사연이 훨씬 더 방대한 어른들의 사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추리소설 읽듯 집중해서 읽게 된다. 시신으로 발견되어 깜짝 놀랐지만, 그래서 저승이 개입할 확실한 이유가 생겨 이야기가 명확해진다.


“이진이 빙의가 됐다는 건 원망의 마음이 풀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하고 가슴에 사무친다는 뜻이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가볍게(?) 읽을 거란 선입견은 이번에도 깨졌다. 짐작하는 바를 족족 능가하는 반전들이 계속 이어진다. 깜짝 놀랄 만큼 서늘한 이유를 만나고서 이복동생인가 했던 흔한 설정은 머릿속에서 재빨리 자취를 감춘다. 스포일링 방지를 위해 어떻게든 중요한 반전 내용들은 피해서 기록해야겠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괴로운 일은 무엇일까. 그 순위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버림받고 부정당하는 것은 성별 나이 불문 참 아프고 서러운 일이다. 현실에서는 사정을 다 알 기회가 적으니,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이토록 생생하고 자세하게 심정을 들려주면서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제안이 더없이 고맙다.
“책임져야 하는 무언가가 살아갈 힘이 되곤 해.”
버림받는 건 인간만이 아니라서 길냥이 이야기를 넣어준 것도 좋고, 촘촘한 차별이 어떻게 큰 원칙을 교묘하게 피해 일상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는지, 그 복잡한 사정과 심정을 차분하게 드러내는 것도 귀하다. 재미있게 속도감 있게 읽다가도 가만히 한참 생각하게 되는 사려 깊은 청소년 문학 작품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이러저러한 성장의 어려움을 겪지만, 안타깝게도 그 경험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만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입장이 가장 중요해지고 타인의 - 사회적 약자로서 어린이, 청소년 - 입장에 대해, 늘 진심으로 진지하지 못한다. 성인독자로서 자주 부끄럽고 반성이 되는 지점이다.
“나는 독립된 존재로서 지금, 이 순간 분명히 여기에 있다. (...) 지금껏 ‘나’로서 살았다.”
누구의 삶도 개별 선택들이 모인 합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삶이 죽음으로 모두 끝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다른 이들에 의해 영속성을 가질 수도 있다. 저승세계와 영혼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한 영혼이 고유한 유효기간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
복잡다단한 감정에 휘둘리며 몹시 힘겨운 감정을 품은 채로, “사랑받지 못하고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살았던 영혼이 지닌 아픔은 크고 무겁다. 의도가 있든 실수든 미숙이든, 가해를 한 상대가 사과를 먼저 해주는 것은 단단한 마음의 매듭을 푸는 가장 중요한 시작이다.
주인공 염라희처럼 나도, 이진이 순순히 저승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기쁘고 시원하기보다 마음이 먹먹하게 아팠다. 가족을 향한 마음과 양육자의 사랑을 바라는 강렬한 바람은 비례하는 아픔과 상처를 야기한다. 상대를 아프게 상처주려는 행위는 때론 자해와 같은 몸부림이다.
잊었던 중요한 것들, 더 숙고해야할 것들, 반성해야 할 것들, 기억하고 변화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며 읽다가, 마지막 반전에서 크게 웃었다. 정말 상상도 못할 반전이라서 오히려 통쾌했다. 차분하고 진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위트 가득한 아이디어도 샘솟는 멋진 작가님이다.
반전 이후 염라희의 생활이 너무나 궁금하다. 시리즈로 나올 이유는 분명하니 꼭 다음 이야기도 써주시면 좋겠다. 빨리 써주심 더 감사하겠다. 우리 집 십대들의 후기도 무척 기대된다. 선선한 가을, 함께 읽고 재밌게 얘기 나눌 시간을 고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