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
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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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객관적 조건만으로 행복을 지속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행복의 부재가 곧 고통이냐고 물으면, 오래 생각해봐야할 문제이지만. 운이 좋은 편에 속하는 삶을 살아도 고통을 늘 피할 수는 없는 듯하다.

 

심장이 아파오는 제목의 책이다. 저자의 나의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의 대답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다.



 

“‘태어날지, 태어나지 않을지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번역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을 보고 오해한 철학책이다. 사회적 문제로서의 생명 부정과 자살의 문제, ‘그럼에도살아가야할 이유 등을 담은 내용인가 했는데, 동서고금 문명사 전체를 살펴보며, 인류가 교류한 생명에 관한 철학을 소개한다.

 

문해력이 약해서 살짝 두려웠으나, 체감상 아주 오랜만에 읽어보는 철학 사상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태어나고 죽는 일은 그야말로 보편 경험이고, 사유하는 생명체로서 이보다 더 궁금한 소재도 없다.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배후에는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사고방식도 있습니다. (...) 그렇지만 (...) 해결되면 동시에 해소되는 탄식으로 파악하는 방식의 한계 또한 인식해야 합니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와는 내용이 다르지만, 우주에서 물질화된 모든 것이 재활용 - 재생 - 되는 방식의 윤회는 분명하니, ‘애초에 무엇이 윤회하는가라는 불교의 논쟁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그럼에도, 개체로서의 내 존재 - 또한 사랑하는 이들 - 의 소멸은, 어찌되었든 근본적으로 서러운 일이라서, 수행자가 모든 세상에서 증발하듯 사라진다는 불교의 열반이라는 종착점이, 우매한 내게는 큰 평안이자 여전한 통증이다.

 

제목 같은 생각이 든 적이 있는 이들도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나는 요즘도 문득 그러한 생각을 하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동안 겪는 삶의 모든 면면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기에 견딜 만하기도 하다.

 

운명애란 단순히 운명이라는 필연성을 긍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필연성의 내용이 무엇이건 그것을 긍정하고 수용하겠다는 결의를 내포한 개념입니다.”

 

이제는 정말 흐릿한 전생의 꿈같지만, 나는 대학원에서 철학도 배웠다. 대단한 통찰이나 성취는 없었지만, 철학서를 읽는 훈련은 지치도록 받았다. 덕분에 그때는 몰랐던, 생명철학을 읽는 지금의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니 순응이 아닌 결의로 삶을 받아들이고, 잘 살아내지 못하도록 하는 불의한 것들을 또 다른 결의들로 함께 바꿔나가고 싶다. 그리하여 인간이라서 외롭고 괴로운 운명이라는 필연성이 조금 더 견딜만해 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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