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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ㅣ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의 노랑노랑이 기억 속에서도 아직 이렇게 선명한데, 벌써 5년 전이라니... 예술은 사라지지 않아도, 내 수명은 호다닥 확실하게 사라지는 중니다. 읽기 전에 사진과 컬러 도판 130개를 넘겨보는데, 읽는 책의 형태를 한 소장각 예술품 같다.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시간을 기억하면서 삶의 흐름을 나의 방식대로, 속도대로 돌려놓겠다는 의지입니다. 맹렬히 지나는 시간의 한가운데서, 숨 막힐 정도로 무수한 사건 속에서 나 자신을 잊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예술의 명성이나 자본을 신화화하지 않으려는 분투이기도 합니다.”
30대까지는, 숙제처럼 전시회를 다녔다. 양질전환을 바라며 폭식하듯 가능한 경험을 늘렸다. 한두 시간이면 국경을 넘어 다닐 수 있는 유럽에 사는 동안에는, 낯선 도시의 다른 풍경보다 미술관과 박물관에만 오래 머물기도 했다.
그런데, 바라던 양질전환은 고사하고, 어느 순간 나는 식체한 듯 내 시선으로 예술을 보는 일이 지겨워졌다. 동시에 예술을 보는 내 시선이 지겨웠다. 체기가 병이 되었는지, 한동안은 작품들이 예쁜 쓰레기 같기도 했다.
“미술계가 세상보다 더 넓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스타 작가만을 좇는 근시안적 행태를 겸허히 반성하게 하는 존재들이 바크만의 집 도처에 놓여 있었다.”
하는 예술도, 보는 예술도, 아닌, 그래서 읽는 예술로 체험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바뀐 듯하다. 선물로 받은 이 책은 그 묵은 체증을 내려주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아름답고 치열하게 사람들과 세상에 고요한 외침을 들려주고 있는 지를 새롭게 알려준다.
함께 하는 삶의 일부로 존재하나 자기 자리를 고집하지 않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보는지를 도구적 허구로 가르쳐주는, 이 모든 “불확정성과 취약성”을 현실로 나 자신으로 인정할 용기를 내어주는 그런 작가들을 만난다.
“예술은 하는Doing Art 게 아니라, 그냥 인생을 사는Doing Life 겁니다.”
공동체가 없다면, 서로가 없다면 예술도 없다. 내게는 그것만이 자명하다. “몸과 정신, 공동체와 땅의 오랜 기억을 자각하고 공유하며 창조한” 자신만의 내러티브로 “진실”을 그리는 작가도 만난다.
덕분에 관람과 애호의 입장이 아닌 나를 고민해본다. 예술이 이토록 풍성한 지구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왜 기세등등한지를 애통해한다. 너무 빠른 판단을 내려할 때에도 “이 일이 아름다운가”란 질문을 잊지 않기로 한다.
“만약 어떤 인생이 숭고하다면,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단 한 가지 때문이다.”
